양육비를 고의로 안 주는 ‘나쁜 부모’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한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10월 20일 문을 닫았다. 양육비이행강화 법안에 따라 이젠 여성가족부가 나쁜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다.

<배드파더스> 사이트 자원봉사자 구본창 씨는 “국가에서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면, 사이트는 당연히 문을 닫아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소신을 밝혔다. <배드파더스>는 할 일을 마치고 명예롭게 퇴장하는 셈이다. 

구본창 씨는 양육비 미지급자 제보를 받아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진에게 전달하는 일을 했다. 그는 신변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운영되는 사이트 운영진을 대신해 자원봉사자로 외부 소통을 맡았다.

<배드파더스> 사이트 자원봉사자 구본창 씨. ⓒ 주용성

<배드파더스>가 문을 열고, 스스로 닫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2018년 7월 만들어졌다.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2018년 당시 이혼한 한 부모 중 약 80%가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 여성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양육비를 고의로 안 주는 부모들의 신상(얼굴, 이름, 직업, 주소 등)을 온라인 사이트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양육비를 안 주는 나쁜 부모의 명예보다 아동의 생존권이 우선이라는 가치를 내세웠다.

평소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관심이 많던 구 씨도 지인이 만든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그는 2013년경 필리핀에 설립된 WLK(we love kopino) 대표로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 사이에 낳은 아이들)와 그 엄마들의 양육비 문제 해결을 돕는 활동을 해왔다.

“코피노 엄마들처럼 한국의 양육자들도 양육비를 제대로 못 받는다는 걸 몰랐습니다. 한국에서도 양육비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절감해 <배드파더스> 활동에 뛰어 들었죠.”

<배드파더스> 사이트는 일명 ‘배드파더스 명예훼손 사건’을 계기로 변곡점을 맞았다.

‘배드파더스 명예훼손’ 사건은 양육비 안 주는 부모의 신상공개를 공익 실현으로 인정받은 재판을 말한다. 수원지방법원은 2020년 1월,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구본창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이후 <배드파더스> 신상공개 효과는 상당했다. <배드파더스> 등재로 해결된 ‘양육비 미지급 건수‘는 사이트 폐쇄 직전을 기준으로 220명이다. 배드파더스 명예훼손 사건’ 1심 판결 이전과 비교할 때 해결 건수는 약 2배 늘었다.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신상공개 될 것‘이라는 사전 통보만으로 해결된 사례도 약 700건에 이른다. 국가가 방관한 일을 <배드파더스>가 해낸 셈이다.

<배드파더스>는 ‘사인이 운영 주체’라는 탄생 배경 때문에 한계에 자주 부딪혔다. 법원은 작년 12월 ’게시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 사진과 직업 정보를 삭제하라고 <배드파더스>에 명령했다.

국가기관이 아닌 사인이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형사처벌 대상이 아닌 양육비 미지급을 이유로 얼굴 사진과 직업정보까지 공개하는 건 양육비 미지급자의 인격권, 명예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판단이었다. 이 판결로 <배드파더스>는 존폐 위기에 놓였다.

구 씨와 <배드파더스> 운영진들은 국가가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길 기대했다.

“양육비 미지급은 국가가 해결 할 문제잖아요. 저와 <배드파더스> 사이트 운영자들은 국가에서 양육비 지급을 강제해 하루 빨리 이 사이트가 사라지는 게 소원이었어요.”

<배드파더스> 사이트 자원봉사자 구본창 씨. 경찰청 앞에서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제한 법안 통과를 외치고 있다. ⓒ 주용성

이들의 바람대로 양육비이행강화 법안이 만들어졌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에 대한 형사처벌-신상공개-출국금지가 지난 7월 13일부터 가능해졌다.

구 씨는 법안 통과를 환영하면서도 “해당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진 미흡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 가지를 지적했다.

먼저, ’공시송달 제도 도입‘이다. 양육비 미지급자는 가정법원의 감치명령 결정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1년 이내에 양육비를 안 주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의 형사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감치 판결을 받기까지 난관이 많다. 잠적, 위장전입 등으로 양육비 미지급자의 주소지가 실거주지와 다를 경우 송달이 어렵다. 의무위반자가 소송 서류를 송달받지 않으면, 재판은 무효화 될 수 있다.

대안으로 ’공시송달‘이 언급된다. ‘공시송달‘은 당사자의 행방을 알기 어렵거나 상대의 거주지가 불명확해서 송달을 못할 때 법원 게시판에 소송 서류을 2주간 게시해 송달하는 방법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송달이 이뤄진 걸로 간주하고 후속절차가 진행된다.

실제 전주혜 국민의힘 국회의원(비례대표)은 양육비 이행 소송에서 양육비 지급 의무자의 송달 회피에 따른 절차 지연이 발생하지 않도록 ’양육비 관련 공시송달 특례 조항 신설’을 올해 6월 발의하기도 했다.

두 번째로, ‘양육비 미지급자 얼굴 공개’다. 여성가족부는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양육비 미지급자의 실명, 나이, 직업, 양육비 채무액, 주소, 근무지 등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할 수 있다. <배드파더스>와 달리 얼굴은 공개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구 씨는 “동명이인이 많은 상황에서 양육비 미지급자들의 얼굴 사진이 없다면, 효과적인 압박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양육비 미지급 채무 조건 하향화‘다. 여성가족부의 출국금지 요청은 양육비 채무 5000만 원 이상인 경우에만 적용된다. 구 씨는 “출국금지 요청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매월 받아야하는 양육비 금액이 30만 원인 양육자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양육비 미지급 금액이 5000만 원을 달성하려면, 약 13년이 걸립니다. 13년 동안 아이는 자라는데… 사실상 양육비 문제를 해결하지 말라는 이야기죠.”

마지막으로 구 씨는 이 말을 덧붙였다.

“저는 <배드파더스>가 폐쇄돼도, 양육비 싸움을 이어나갈 겁니다.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은 개인으로 움직이지 말고, 양육비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에 오시면 좋겠습니다. 단체에서 힘을 모아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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