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6시간 비행기 타고 국경을 넘었다. 하루라도 온전한 여자로 있다면 그보다 곳으로도 있다. 마음은 여자인데, 몸은 남자라니. 세상에 이보다 아득한 거리는 없다. 몸과 마음의 거리를 좁힐 있다면, 10시간 20시간 비행이 그리 대수일까.

스무 정태연(가명) 씨는 태국 방콕의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 직원이 태국어로 쓰인 동의서를 갖고 왔다.

수술을 하다가 생명에 위험이 와도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볼펜을 손도 떨렸다.호모 새끼라고 손가락질 하던 무수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떨리는 손으로 사인을 했다.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수술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마취에서 깨어나면 나는 여자가 되어 있을 거다.. 호모 새끼라는 놀림도 이젠 안녕이다..’

눈을 떴다. 유방 확대, 고환 적출과 재건 수술을 한다고 했으니 시간이 흘렀을 터다. 먼저 수술한 언니들은 하체 가랑이 사이가 도끼로 내려찍은 듯이 아프다고 겁을 줬는데,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상체 가슴 부위만 많이 아팠다. 태연씨 몸조리를 위해 한국에서 함께 언니가 말했다.

지금 3 만에 깨어난 거야. 죽는 알았어. 의사가 다행인 알라더라.”

가슴 수술을 마치자 심박수와 체내 산소포화도가 급속도로 떨어졌다 수술을 강행하면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갈 없다고 판단한 의사들이 성기 수술을 포기했다. 가랑이 대신 태연 마음이 도끼로 찍힌 듯이 아팠다.

그냥 죽게 두지 그랬어. 언제까지 이렇게 살라는 거야!”

남자의 몸으로 살아야 하는 여자의 삶은 무기한 연장됐다. “이렇게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없는 독한 운명. 아무 잘못도 없이 손가락질 받는 운명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오래전, 태연 씨는 엄마에게그냥 죽이지 그랬냐 퍼부은 적이 있다. 엄마는 태연 말보다 지독한출생의 비밀 들려줬다.

임신했을 , 엄마도 지우고 싶었어근데, 병원비가 없어서 지웠어.”

가난해서 태어난 아이 이전에 성폭행이 있었다. 엄마에게 사랑을 속삭인 남자는 알고보니 유부남이었다. 사이에서 (태연 씨의 언니) 태어났다. 남자와 헤어진 엄마는 어린 딸을 데리고 경상남도 고향 마을로 돌아갔다. 남자는 여자를 기어코 찾아내 강제로 성관계를 했다. 그때 생긴 둘째가 바로 태연 씨다.

초등학교 입학 , 외고모할머니 댁에 얹혀 때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고모할아버지의남자 냄새 그렇게 좋았다. 밤마다 삼촌 옆에 붙어 잤다.

트랜즈젠더 정태연 씨. ⓒ박유빈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족들 눈에 태연 씨는 남자였으니까.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부터 엄마 속옷을 몰래 입어보곤 했다. 스스로를 여자라 여겼다. 주변에서도 아들인지 딸인지 헷갈려했다.

엄마는 먹고살기 위해 다른 형제만 다섯인 친부 집에 태연 씨와 친언니를 보냈다. 어느 , 태연 씨는 발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다 아버지에게 걸렸다. 아버지는사내 놈이 한다 태연 씨를 두들겨 팼다. 발목이 부러져 학교에 가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이러다 내가 죽지싶어 집을 나왔다. 신문 배달, 돼지갈비집 영업 끝난 방석을 깔고 수만 있으면 가리지 않고 일했다. 학교를 그만 무렵부터 여자 옷을 입고 머리를 길렀다.

만에 다시 엄마를 만나 마음을 잡고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에 소문이 돌았다.

원래 남잔데, 여자 입고 다니는 정신병자야. 병원에서 나온 얼마 됐대.”

그런 말과 이상한 시선은 아버지 주먹질처럼 태연 가슴에 아프게 박혔다. 사람들이 번을 여자로 봐도, 길에서 어쩌다 호모 아니야?”소리를 들으면 인생 이제 망했구나절망감에 빠졌다. 학원을 그만두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배우 하리수가 TV 등장한 2001열아홉 태연 씨는세상에 나같은 사람이 있구나생각했다. 피씨방에서 인터넷을 검색하자나같은 사람들이 모인카페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언니를 만나 트랜스젠더 바를 처음 방문했다. 신세계였다.

우리같은 사람들도 저렇게 파인 드레스 입을 있네.’

그때 태연 씨는 브래지어 속에 물풍선을 넣고 다녔다. 파인 옷은 꿈도 꿨다. 속에 물풍선을 오래 품고 있으면 체온과 마찰로 종종하며 터지기도 했다.

어머, 아래는 어떻게 저렇게 평평하지?’

무엇보다아래 신기했다. 얇은 비키니 하의 아래 뭔가가 튀어나와야 하는데, 그게 없었다.

여기서 열심히 일만 하면, 그래서 돈만 모으면 나도 언니들처럼 있겠구나.’

그날로 일을 시작했다. 20 평생 불편하게만 느낀 몸을 바꿀 방법을 알려준 곳이다. 호르몬 주사도, 성전환 수술 정보도 그곳에서 얻었다.

기녀는 이름이 중요한데, 아이 (I can do it)’ 김태연(2000년대 초반 당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을 거둔 한인 여성 사업가. “He can do it, she can do it, why not me?”라는 말로 유명세를 탔다.) 알지? 나중에 사람처럼 되라는 의미로 태연 어때?”

마담 언니가 지어 이름 덕분인지, 손님들이 좋아하는 목소리와 몸매 때문인지, 태연 씨는 일을 시작하자마자 인기가 좋았다. 어려운 안무도 어깨 넘어 곧잘 따라했다.

성기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가 무대에 서려면 얇은 비키니 아래로 성기가 튀어나오지 않게 테이핑을 해야 했다. 탓에카순이(cut, 고환적출 성기 성형수술 트랜스젠더를 이르는 은어)’ 무대에 세우는 그곳의 암묵적 룰이었다. 마담 언니는 인기 좋은 태연 씨를 무대에 올리고 싶어했다. 손님을 홀리는 끼는 누가 가르친다고 배울 있는 아니기 때문이다.

언니, 테이핑 하고 나면 얼마나 아픈 알아?  카순이들 세우면 되지 자꾸 나보고 올라가래?”

마담은 태연 씨를 가게의에이스 키우고 싶었다타고난 몸매와 , 승부욕까지 갖춘재목태연 씨에게 마담은 800 원을 미리 당겨줬다. 성전환 수술을 하라는 뜻이다. 태연 씨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자기돈 500 원을 합쳐 1300 원을 들고 태국행 비행기를 탔다.

수술에 성공하고 투자금 800 원만 갚으면 바로 세계 작정이었다. 몸과 마음은 일치시키고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1’ ‘2’ 바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트랜스젠더 정태연 씨. ⓒ박유빈

남자친구도 있었다. 군입대를 앞두고 트랜스젠더 바에서 웨이터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이었다. 태연 씨의 처지를 알면서도 사랑을 줬다. 결혼해 아이를 입양해 함께 기르고 싶었다.

그렇게 바다 건너 태국으로 떠났다. 위에서 말한 대로 끝내 남자의 흔적을 지우지 못했다. 군생활 내내 하루 걸러 편지를 보내던 남자친구는 마지막 휴가 복귀 더는 힘들어서 만나겠다 이별을 고했다.

평범한 삶은 아무나 누리는 아니었다. 태연 씨는 업소로 돌아갔다. 다른 길을 기회도 있었다. 서울 이태원의 유명한 트랜스젠더 바에서 일하는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대충 싸서 서울로 올라와 .”

하리수의 성공을 이을 4인조 트랜스젠더 걸그룹을 만들겠다고 소형 기획사에서 연습생을 찾았다. 가게를 옮길 때마다 에이스가 태연 씨에게도 섭외 연락이 왔다. ‘나도 하리수 언니처럼 있는 건가?’ 기대하며 서울로 향했다.

안무 연습을 가까이 했을 때쯤 기획사에서 들고 계약서에는반전라 모바일 화보 촬영이라는 의무 조항이 있었다. 데뷔를 포기했다. 다시 업소로 일을 나갔다. 화장품 통에 적힌 영어 단어 하나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 ‘말레 뭐니?”

언니, 이거메일(male)’이라고 있는 거잖아. 남성용 화장품이라고, 남성용.”

말레가 아니고 메일이야? 남자는 (man) 아니니?”

동생에게 망신을 당했다.

그래, 세계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돌아올 있어. 근데 공부는 늙어서는 하잖아.’

시내에 있는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다. 스물 나이에 수학 선생님을 쫓아다니며 초등학교 수준의 산수부터 다시 배웠다. 금방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통과했다.

내친김에 재수학원에도 등록했다. 스물 다섯이 되던 3 첫째 , 처음 전국모의고사에서 수리영역 100 만점에 6점을 받았다. 달에 문제씩만 맞춘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8개월 , 서울의 사립대 윤리교육과와 법학과에 동시 합격했다. 일가친척 사이에서도, 트랜스젠더 동료들 중에서도 대학 문턱을 처음 밟았다. 선생님이 되고싶었지만나같은 선생을 어느 학부모가 반길까하는 마음에 법학과를 선택했다.  

트랜스젠더 정태연 씨. ⓒ 박유빈

남들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가는 2 , 스물 여섯 태연 씨는 조교실 문을 두드렸다. 학적부의남자표시와 달리 여자 모습을 태연 씨를 보고 조교 입이 벌어졌다.

이렇게 여자 모습으로 학교 다닐 있게 도와줄 있을까요? 제가 가슴 수술도 했고 여자로 사회생활을 지가 거의 10년이 됐는데, 어떻게 남학생으로 학교를 다니겠어요.”

태연 씨보다 한참 어린 조교가 협조해줬다. 여자 기숙사에 입소할 있게 관계자도 설득했다. 입학할 목표는 하나, 졸업이었다. 교수님이 출석 체크 때가 위기였다.

남학생 이름인데, 대출(대리출석) 아니야?”

누가 들어도 남자같은 이름에 학생들 이목이 집중됐다. 1학년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여자 이름으로 개명을 시도했다. 엄마가 작명소에 가서 이름 개를 받아왔다. 하나가계희였다. 예쁜 이름을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웠다.

엄마, 이거 잘못 읽으면게이잖아. 이런 이름을 받아오면 어떡해?”

계희대신 다른 이름을 들고 법원에 갔다. 성별 정정에 비하면 개명은 수월했다. 이름 하나 바꿨을 뿐인데 학교생활을 하며 일이 줄었다.

하지만 타고난 끼를 감출 수는 없었다. 축제 시즌이 되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나도 연예인장기자랑 행사가 열린다는 소리를 들었다. 검은색 점퍼 안에 달라붙는 코르셋 탑과 핫팬츠를 입고 학교에 갔다.

겉옷을 훌훌 벗어 친구한테 맡기고 무대 위로 올라가자 동기와 선배들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당시 유행한 이효리의 <톡톡톡>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유흥업소가 아닌 정식(?) 무대에 서는 처음이었다.

내게 노크를 , Baby 톡톡톡. 나의 맘을 열어 Honey 꼭꼭꼭.”

<위문열차>에서 군인들이 떼창을 하듯 복학생들이 몰려와 환호했다. 하루아침에법대 이효리 유명해졌다. 트랜스젠더인 들통날까봐 연애 하자는 사람들을 피해다니자재수 없는 라고 미움을 샀다.

목표 대로 대학을 졸업했다. 성공 보증수표는 아니어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있는 자격증을 기분이 들었다. 2011, 신입사원을 모집하는 대기업 뷰티 업종 계열사에 원서를 냈다. 화장품 관련 지식이라면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여자 모습의 증명사진을 붙이고, 주민번호에는 ‘1’ 썼다. 다행히 서류와 면접을 통과했다.  

입사 직전, 임원진을 따로 찾아가 트랜스젠더임을 알고 뽑은 건지 물었다. 이렇다 저렇다 대답은 들었지만 회사에 다닐 수는 있었다. 회식날 사달이 났다.

, 나도 사회생활이라는 하는구나.’

설렌 마음에 마시는 술을 받아 마셨다. 노래방에서 댄스곡을 부르면 놈의 끼가 튀어나올까봐 일부러 조용한 발라드를 불렀다.

미투 운동 없던 시절, 상사가 술에 취한 태연 몸에 손을 댔다. 다음 날부터 상사는 태연 씨만 찾았다. 입사동기들의 눈빛이 이상해졌다. 어느 , 탕비실 안쪽에서 동기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언니 아무래도 하리수같지 않냐? 손도 너무 크고 목소리도 이상해.”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자기가 끼면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내게 그러느냐 물어볼 수도 없었다.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강제로 아웃팅을 당할 수도 있었다.  

결국 입사 3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성전환 수술 실패 때만큼은 아니었으나, 가슴이 아렸다. 얼마나 어렵게 들어간보통 사람의 인가.

다시 취업하는 무척 어려웠다. 외모는 여자, 주민번호는 남자. 불일치가 태연 씨의 발목을 잡았다. 세상의 편견과 혐오는 빙하처럼 차갑고 견고했다.

트랜스젠더 정태연 씨. ⓒ박유빈

업소는 나이도 물어보고 민증(주민등록증) 요구 해요. 아무것도 필요 없이 그냥 이것(얼굴) 예쁘면 바로 일을 해요. 바로 그날 돈도 들어와요. 나이 이제 서른여섯이고 법대 나온 이력이 전부인데, 같은 사람에게 다른 길이 있겠어요?”

태연 씨는 다시 세계 돌아갔다. 2014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친구사이 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는 전체 성소수자 고용상태가 특히 불안정하다. 전체 성소수자 정규직 종사자는 44%였지만, 트랜스젠더 가운데 정규직 종사자는 26.1% 불과했다.

트랜스젠더는 우리 사회에서 생존 자체가 어려운 셈이다. 성별정정이 수월하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된남녀내용을 바꾸려면 보통 어려운 아니다. 국가는 생식능력 상실 몇가지 요건을 따져 본다.

1. 19세 이상으로 혼인중인지, 미성년인 자녀가 있는지 여부

2. 성장기부터 지속적으로 선천적인 생물학적 성과 자기의식의 불일치로 인하여 고통을 받고 오히려 반대의 성에 귀속감을 느껴왔는지 여부

3. 정신과 진료나 호르몬요법에 의한 치료 등을 실시하였으나 여전히 수술을 희망하여, 자격 있는 의사의 판단과 책임 아래 성전환 수술을 받아 외부성기를 포함한 신체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는지 여부

4. 성전환 수술의 결과 생식능력을 상실하였고, 향후 종전의 성으로 재전환할 개연성이 없거나 극히 희박한지 여부

5. 범죄 또는 탈법행위에 이용할 의도나 목적으로 성별정정허가신청을 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여부

– 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 435 6

생식능력 제거 외과적 수술을 성별정정의 필수 요건처럼 박았다. ‘외부성기를 포함한 신체외관 판단 요건으로 적시했다. 이렇게 수술을 요구하고 외모까지 판단하는 사례는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유럽 대부분 국가에선 외과적 수술 없이도 성별정정이 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성전환 수술을 하려면 비용도 비싸거니와 병원 찾기도 어렵다. 힘들게 수술을 시도해도 태연 씨처럼 실패하는 사례도 있다.

헌법과 도덕은 앞의 평등과 사람을 차별하지 것을 요구하지만, 현실에서 트랜스젠더는 예외 예외다.

태연 씨는 오후 6 즈음에 일을 시작해 다음날 아침 8시께 집에 돌아온다. 낮에는 잠을 잔다. 탓에 그녀와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인터뷰를 모두 끝낸 어느 태연 씨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엊그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르더군요. 겉모습을 보니 위는 여자, 아래는 남자. 스스로너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몸으로 어떻게 살아갈래생각하니 죽음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언젠가 문자메시지로 태연 씨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이렇게 답장이 왔다.

꿈이요? 이렇게 살다보니 웃음, , 희망 모든 것들은 항상 것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남들이 쉽고 당연히 가질 있는 것들을 저는 목숨을 걸고 아둥거려야 겨우 얻을 있거든요. 아름답고 행복한 것들은 저에겐 허락되지 않았던 같아요.

태연 씨는 기독교 신자다. 그녀의 문자메시지는 이렇게 이어졌다.

몇년 전부터 신학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꿈을 가졌어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하나님을 배우고 세상에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물거품이 됐어요. 교단에서 성소수자를 받지 않기로 했대요. 또다시 분노와 절망, 좌절만이 제게로 찾아왔죠.”

태연 씨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한국의 일부 기독교는 태연 같은 사람을 배척한다. 종교마저 외면했지만, 태연 씨는중심으로 짜인 사회에 다시 부딪쳐 보기로 했다. 자기처럼 성전환 수술을 못하거나, 하지 않은 사람들도 성별 정정이 가능하게 해달라는 소송을 하기로 했다.

트랜스젠더 정태연 씨. ⓒ박유빈

남녀를 구분하는 주민번호 ‘1’ ‘2’. 태연 같은 사람에게 숫자 ‘1’ ‘2’ 사이의 거리는 멀고도 멀다. 국가는 사이에서 수술용 칼을 들고 있다. 통행세를 징수하듯이 길을 통과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칼을 대려 한다.

태연 씨는 그런 국가에 맨몸으로 맞서볼 생각이다

현재 스토리는 8화가 연재중입니다.
연재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