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신입행원 채용에서 총 26명에게 불공정한 혜택을 줬다. 그 중 21명이 한 남자의 손을 거쳤다.
그는 2013년 상반기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신한은행에서 인사부장을 맡은 김인기 씨다. 조용병 회장이 2015년 3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신한은행장을 역임한 시기와 일부 겹친다.
신한은행은 ‘부모 찬스’ 등을 사용한 사람을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합격시킨 김인기를 확실히 챙겼다.
신한은행은 2017년 12월경 상무 자리를 만들어 그를 거기에 앉혔다. 금융감독원이 시중 은행을 대상으로 ‘은행권 채용비리’ 관련 현장검사를 진행할 때였다. 채용비리 실행자가 본부장에서 신임 상무로 승진한 셈이다.
신한은행은 회유도 시도했다. 검찰은 2018년 7월 채용비리를 수사하면서, 신한은행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진술을 얻기 위해 김인기 씨를 상대로 ‘작업’을 진행한 정황을 발견했다.
한마디로 ‘조용병 회장을 지켜야 우리가 보호받을 수 있다’는 논리가 동원됐다. 이 작업에는 김인기에 이어 신한은행 인사부장을 맡은 이승수가 나섰다. 그는 검찰 수사가 한창인 2018년 7월, 한 법무법인에서 김인기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채용비리는 조용병 회장 연임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회장님이 연임이 돼야, 우리를 ‘케어’해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회장님이 아니면 누가 우리를 ‘케어’해 줍니까?”
진옥동 당시 신한금융지주 부사장(현 신한은행장)도 나섰다. 진 부사장은 김 전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당신과 이승수가 불구속 돼야 회장(조용병)님도 무혐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길어봐야 1년입니다.”
김인기는 어떤 비밀을 알고 있길래 신한은행은 그를 회유하려 했을까. 기자는 지난 8월 14일 오전, 김인기가 일하는 회사를 찾았다. 그는 2020년 10월 현재 신한금융그룹의 계열사인 ‘신한아이타스’에서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신한아이타스가 입주한 서울 여의도 모 건물 1층에서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김인기 본부장님이요? 옆 건물에서 일해서 출근했는지 모르겠는데요…”
신한아이타스 관계자가 알려준 옆 건물을 찾았다. 그곳에서도 김인기 본부장을 만날 수 없었다. 김인기 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그는 상대가 기자인 걸 알고 전화를 받자마자 끊었다.
이승수 전 인사부장도 신한은행 채용비리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 전 부장이 연결된 채용비리 연루자는 5명. 이 중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회사 회장의 조카손자 나OO 씨는 부정한 방법으로 입사해 여전히 신한은행에 다니고 있다.
이승수 전 부장은 현재 신한리츠운용 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신한은행이 비밀로 작성해 직원 채용 때 활용한 ‘특이자 및 임직원 자녀 명단’의 ‘경로’ 란에 등장하는 인사들도 역시 무사하다. 경로는 특이자에 관한 전형 결과 등을 알려줘야 하는 신한은행 내부 직원을 뜻한다.
올해 1월에 내려진 채용비리 1심 판결문에 등장하는 신한은행 고위직은 모두 9명.
윤OO 신한은행 본부장, 임영진 신한은행 부행장, 김OO 신한은행 실장, 민정기 신한금융지주 부사장, 정OO 신한은행 실장, 김OO 신한은행 본부장, 김OO 신한금융지주 부사장, 윤승욱 신한은행 부행장, 임OO 신한은행 부행장이 그들이다.
이 중 대부분이 무난히 퇴사했고, 남은 3명은 신한은행 혹은 그 계열사에서 근무 중이다.
2013년 상반기 특이자 성OO의 ‘경로’로 지목된 임영진 부행장은 현재 신한카드 대표이사다. 2013년 상반기 특이자 양OO의 ‘경로’인 김OO 실장은 현재 서울에 위치한 신한은행 OO금융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3년 상반기 특이자이자, 이규성 전 장관의 조카 이OO의 ‘경로’로 등장하는 정OO 실장은 현재 신한은행 인사본부장과 인사부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부정입사자, 부정채용 실행자-가담자 대부분이 2020년 10월 현재 신한은행과 계열사에서 일하는 셈이다.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11부(재판장 손주철)는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피고인 7명 중 조용병 당시 신한은행장, 윤승욱 부행장, 김인기 인사부장, 이승수 인사부장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올해 1월 선고했다. 이들 역시 무사하다.
조용병 전 신한은행장은 올해 3월 신한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윤승욱 전 부행장은 신한은행 계열사인 ‘신한신용정보’로 이직해 고문을 맡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신한은행 직원 A 씨는 “채용비리에 연루된 피고인과 가담자들이 다수의 직원들이 가고 싶은 유망 부서나 실적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자리로 옮기는 걸 보면 씁쓸하다”고 밝혔다.
그는 “신한은행이 채용비리 책임자들을 퇴사시키지 않는 이유가 있다”며 “살아남은 사람은 채용비리 재판에서 회사 측에 유리한 진술을 했거나, 앞으로 회사가 유리한 진술을 하도록 유도할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신한은행 취업규칙에 따르면, 형사상의 범죄로 선고유예를 제외한 금고 이상의 유죄를 ‘확정 판결’ 받았을 경우엔 자연면직된다. 신한은행 채용비리 재판은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신한은행에 ‘부정채용 책임자 근무’ 문제에 대해 질의했다.
신한은행은 “현재 채용비리 관련 2심 재판이 진행 중이고 결과가 확정되지 않았다. 아울러 재판 중에 언급된 임직원의 ‘재직 여부’ 등은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바, 당사자 개인 동의 없이 요청하신 내용에 답변이 불가하다”고 답했다.
2020년 10월 현재, 신한은행은 신입사원 공개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