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간부는 전화 한 통으로 딸을 우리은행에 취업시켰다. 그는 우리은행장 인사검증을 맡으면서, 뒤로는 몰래 자신의 딸을 채용해 달라고 우리은행 간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대놓고 “딸을 뽑아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우리 딸 백○○가 우리은행에 지원했어요. 학점이 썩 좋지 않으니 잘 부탁해요.”
우리은행은 간부는 이 말의 의미를 찰떡같이 이해했다. 국정원 간부의 딸 백○○은 아빠 덕에 2015년 우리은행 신입행원 공개채용에 합격했다. 당시 경쟁률은 63대1이었다.
우리은행 인사부가 백○○ 부정 입사에 큰 역할을 했다. 인사부 직원은 채용 청탁을 받은 간부에게 얘기를 듣자마자 ‘백○○을 반드시 1번으로 뽑아야 한다‘는 듯 백○○ 이름 옆에 이렇게 적었다.
“必(반드시 필), 서열코드 : 1″
백○○의 학점이 어떻든 문제 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대학 성적 평점이 3.0 미만이면 서류를 들춰보지 않고 탈락시켰다.
백○○은 학점이 2.83이었지만,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이광구 당시 우리은행장이 그를 직접 챙겼다. 이 은행장은 “면접 기회라도 주자“며 백○○를 밀었다.
인사부의 ‘必(반드시 필)’ 메모대로 백○○은 프리패스였다. 백OO의 아버지인 국정원 간부는 백창훈이다.
그는 2015년 9월부터 2016년 6월까지 국정원 2차장 산하 7국 경제분석 1처장으로 일했다. 백창훈은 우리은행을 포함한 금융권 정보 수집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은행장 선임에 영향을 미치는 청와대 보고용 문건을 작성하는 일을 총괄했다.
정부는 2016년 11월 우리은행이 일부 민영화되기 이전까지 은행장 선임에 관여했는데, 백창훈은 우리은행장 인사검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정부는 우리은행이 경영 위기를 겪을 때마다 세금을 지원했다. 2001년 12조7663억 원, 2009년에는 1조3천억 원을 우리은행에 투입했다. 대신 우리은행 지분 거의 모두를 정부가 가졌고, 은행장도 사실상 정부가 선임했다.
국정원 간부 백창훈이 우리은행에 자기 딸 채용을 청탁한 시점은 2015년 9월, 우리은행 민영화 추진 이전이었다.
예금보험공사가 우리은행 지분 29.7%를 7개 투자사에 매각한 2016년 12월부터 정부는 은행장 선임에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결국 국정원간부 백창훈은 자신의 공적인 지위를 이용해 딸을 부정 입사하게 만든 인물이다.
이광구 우리은행장까지 나서 부정 채용했지만, 백OO은 그해 대학을 졸업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엔 우리은행 간부가 나서 ‘퇴사 후 재지원‘이란 대책을 마련해 줬다. 그는 백창훈에게 제안했다.
“딸 백○○에게 그냥 사직했다가 다음 공채 때 다시 지원해보라고 하는 것 어때?”
백○○은 이 말대로 움직였다. 그는 부정 입사 반년도 안 된 2016년 3월 퇴사했다. 같은 해 하반기, 백○○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우리은행에 지원했다. 신입사원이 이례적으로 퇴사 직후 다시 공채에 지원했지만,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다.
국정원 간부 딸을 위해 이번에도 이광구 은행장이 직접 나섰다. 그는 백○○ 이름에 동그라미를 쳤다.
“백○○의 서류전형을 합격시키세요.”
당시 홍○○ 인사부장은 이○○ 채용팀장에게 다시 지시했다.
“합격권에 있는 지원자 중 꼴찌를 빼세요. 백OO을 대신 넣어야 합니다.”
결국 백○○는, 부모 찬스를 쓸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노력해도 합격하기 어렵다는 우리은행에 두 번 부정 입사한 셈이다.
백OO은 지금도 우리은행에서 일하고 있을까?
우리은행 측은 “부정채용자들의 재직 여부는 개인정보보호법 상 알려 줄 수 없다“며 백OO의 재직 여부를 확인해 주지 않았다.
기자는 백○○의 재직 여부를 확인하고자 우리은행 애플리케이션에서 백○○를 검색했다. 백○○라는 이름의 행원은 1명 검색됐다. 입사년도는 백창훈의 딸이 들어온 해와 같았다. 혹시 동명이인일까?
백○○은 많은 행원이 선호하는 서울 강남 쪽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6일 그를 찾아가 직접 물었다.
“백창훈 씨 아십니까?”
“우리은행 채용 비리 사건 판결문에 본인 이름이 나오는 걸 아세요?”
백OO은 무슨 질문을 하든 “업무시간이니 나가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백○○ 부정 입사에 가담한 사람들은 형사처벌을 받았다. 대법원은 올해 2월 이광구 전 은행장에게 징역 8월을 확정했다. 인사 채용 담당자에게도 벌금형이 확정됐다.
부정한 방법으로 우리은행에 입사한 사람 19명이 여전히 근무한다는 사실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우리은행은 이들에 대한 채용 취소와 관련된 법률 검토에 착수한다고 했지만, 피해자 구제 방안은 아직 없다.
이광구 전 행장은 2020년 10월 현재, ‘원피앤에스‘라는 회사에서 수억 원의 연봉과 차량, 운전기사를 제공받으며 고문으로 일한다고 알려졌다.
‘원피앤에스‘는 경비 용역, 사무기기 관리 등을 중점으로 하는 회사로, 우리은행 행우회가 지분 100%를 출자한 업체다.
백○○의 부정채용에 큰 역할을 한 홍○○ 전 인사부장은 우리카드 상무로 재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이들 외에 채용 비리 관련자들이 우리금융지주 내부 혹은 관계사에서 일하는지 우리은행 쪽에 물었다. 은행 측은 “개인정보보호법 상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회사 내부의 고위층이 은밀하게 관리해온 ‘청탁명부’에 대해서도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