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양육비를 안 주고 아이 얼굴도 안 본 엄마. 그러면서도 한 신용카드 업체 일반인 광고 모델로 나서 ‘럭셔리 라이프’ 이미지를 뽐낸 ‘배드마더’가 밀린 양육비 전액을 지급했다. 아이 아버지는 투쟁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만 했다.
양육비 미지급자 최수진(가명. 1987년생)은 2019년 7월부터 양육비 매달 60만 원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어겼다. 2020년 9월 기준, 최 씨가 미지급한 양육비는 약 900만 원.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지난 7월 7일 “모델이 된 ‘배드마더’.. 현대카드 해당 광고 삭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해당 기사는 1년간 양육비를 안 주고 아이도 만나지 않으면서, 현대카드 일반인 모델로 TV 광고에 등장한 양육비 미지급자 최 씨의 이중적인 모습을 지적했다. 최 씨는 양육비 미지급으로 채무불이행자가 됐지만, ‘럭셔리 카드’ 컨셉의 광고를 남매들과 함께 찍었다.
양육자 김민호(가명, 86년생)씨가 밀린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한 1년 4개월의 여정은 험했다.
김 씨는 먼저, 올해 2월께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전 부인의 신상과 얼굴을 공개했다. 연락처도 모르는 상대에게 양육비를 받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채권추심과 동시에 전 부인 통장 2개도 압류했다. 올해 3월에는 법원에 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 절차를 밟았다.
그럼에도 전 부인이 양육비 지급을 이행하지 않자, 김 씨는 양육비 문제를 약 1년간 집중 보도해 온 <셜록>에 관련 내용을 제보했다.
김 씨는 지난 7월, 여성가족부 산하의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도움의 요청했다. 그는 양육비 ‘직접지급명령’ 소송을 제기했다.
직접지급명령은 가정법원이 비양육자의 고용주(소득세 원천징수 의무자)에게 “비양육자의 급여 일부를 양육자에게 지급하도록” 명령하는 규정이다. 비양육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2회 이상 양육비를 미지급하는 경우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부산의 한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급여소득자’ 최 씨에겐 강력한 압박 수단이었다. 김 씨가 이런 법적 절차를 밟자, 최 씨는 먼저 문자를 보내는 등 반응을 보여왔다.
“네 목적이 돈(양육비 의미) 받는 것이면, 나와 관련된 기사, 카페 게시글 등 다 정리해야 해.”
최 씨는 미지급 양육비를 주기도 전에, 본인이 원하는 것부터 제시했다. 그는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통장 압류를 풀고,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올라간 신상을 내리고, 채무불이행자 등재를 말소하길 요청했다.
김 씨는 최 씨의 ‘조건부 약속’에 화가 났다.
“아이한테 사과하고,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제가 법적 절차까지는 안 밟았을 겁니다. 양육비를 갚기도 전부터 본인이 원하는 걸 제시하니 진정성이 안 느껴지는 거예요. 제가 아이 양육비를 구걸하면서 받아야 합니까?”
최 씨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셜록> 보도에 대한 조정신청을 했을 때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올해 7월 양육비를 갚기도 전에, <셜록>에 기사 삭제를 요청하고 손해배상금 2000만 원을 청구했다.
“저는 아이에게만 나쁜 엄마이지 그 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질타받을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양육비 미지급건 이행하고자 합니다. 기사가 너무 많이 (온라인상에) 퍼져, 저와 제 가족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기자는 양육비 미지급의 해결 목적을 달성하셨으니, 기사 삭제를 요청드립니다.”
-최수진 씨가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 中-
최 씨는 언론중재위에 중재를 요청했지만, 정작 기일에는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 그의 불출석으로 중재는 성사되지 않았다.
양육자 김 씨는 8월 말, 양육비 지급 촉구 시위에 참가한 본인 사진을 첨부해 “다음은 네 차례가 될 수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최 씨에게 보냈다.
그제서야 최 씨는 미지급 양육비 중 350만 원을 9월 6일 입금했다.
남은 양육비 약 500만 원을 받아내는 시간도 고됐다. 김 씨는 ‘근무지 조회’를 통해 최 씨의 일터를 알아냈다. 그는 ‘마지막 압박 카드’로 근무지 앞 시위를 예고했다.
최 씨는 버럭 화를 냈다.
“너희 집이 진짜 60만 원 없어서 생활에 지장가는 거 아니잖아? 나는 그 돈이 피 같은 돈이다. 그래도 어렵게 모아서 (양육비) 주려고 하는데, 더이상 건들지 마라.”
최 씨의 말은 김 씨에게 충격을 줬다.
최 씨는 10월 동안 두 차례에 거쳐, 남은 양육비 약 500만 원을 지급했다. 아이를 키우는 김 씨는 양육비이행관리기관의 역할이 강화되길 원한다.
해외 주요국의 양육비이행기관은 한국에 비해 역할과 권한이 크다. 한국처럼 양육비 채권자 소송에 대한 법률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노르웨이, 핀란드에선 양육비이행관리기관이 양육비 받아내는 일을 대신 한다.
미국 50개 주에서는 양육비이행관리 프로그램(CSE)을 운영한다. 각 주정부의 CSE는 양육비를 수집 후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이를 위해 급여징수, 세금환급금 징수, 복권당첨금 징수, 퇴직금 압류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
실제 2017년 기준 미국에서 양육비 채무자로부터 수집·징수되어 전달된 양육비 규모는 한화로 약 31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양육자 김 씨는 여전히 고민이 깊다. 양육비를 불성실하게 준 최 씨가 앞으로는 자기 책임을 다할지, 김 씨는 불안하다. 두 살 때부터 엄마를 못 본 경민이는 이제 겨우 유치원생이다.
“전 부인이 양육비를 성실히 보내오면,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양육비 보내줘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습니다. 상대가 아이 안부도 묻고, 양육비 미지급에 대해 사과를 하면 더는 법적 문제제기도 안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어떤 결정도 내리기가 힘듭니다.”
김 씨는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양육비를 받기 위해선 자기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제 사례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이유는 양육비 미지급 실태를 알려, 인식을 바꾸고 해결하고자 하는 공익적인 목적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권리인 양육비만 생각하고 싸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