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은 ‘합격자 바꿔치기’ 수법을 썼지만, “채용비리 피해자는 특정되지 않아 구제가 어렵다“고 했다.
우리은행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조직적인 채용 비리를 저질렀다. 합격권 안에 있던 일부 지원자가 부당하게 떨어지는 등 피해자도 발생했다.
3년간 27명이 부정한 방법으로 우리은행에 입사했는데, 이중 19명이 2020년 10월 기준 여전히 근무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채용비리 피해자 특정이 어렵다고 했지만,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공고를 내서라도 채용비리 피해자를 알아내 시험 기회를 주면 되죠. 피해자 특정이 안 된다는 이유로 손 놓고 있는 건 해결 의지가 없는 걸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획재정부가 2018년에 고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세부 가이드라인’에는 피해자 구제 지침이 명시되어 있다.
지침에 따르면,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특정 가능한 경우에는 해당 피해자에게 즉시 채용 또는 다음 단계의 응시기회를 줘야 한다. 서류 전형 피해자에게는 필기시험 기회를, 필기 전형 피해자에게는 면접기회를 주는 방식이다. 최종 면접 피해자는 즉시 채용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지침이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채용비리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을 때에는 ‘제한경쟁채용’을 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피해자 범위를 설정하고, 해당자들끼리 시험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기획재정부는 “피해자 또는 피해자 그룹이 특정·확인될 경우 부정입사자가 퇴사하기 전이라도 피해자 구제를 우선 추진”하도록 지시했다.
실제 SRT(수서고속철도)는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세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피해자 구제를 실시했다.
SRT는 2016년 채용 비리로 피해를 본 지원자 99명을 대상으로 제한경쟁채용을 거쳐 직원 16명을 2018년에 채용했다. SRT는 2015년 7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진행된 신입·경력직원 공개채용에서 자사 임직원의 지인, 친인척 등의 채용 청탁을 받고 23명을 부정 채용한 바 있다.
강원랜드도 빠르게 대처했다. 강원랜드는 채용비리로 합격 기회를 박탈당한 응시자 4명을 바로 채용하고, 채용비리와 탈락의 연관성이 확실하지 않은 나머지 3198명에겐 응시기회를 줬다.
기획재정부의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세부 가이드라인’은 공공기관에 해당하는 내용이지만, 우리은행도 이를 벤치마킹 할 수 있다.
결국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는 우리은행 등 은행권의 의지에 달려 있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채용비리가 확인된 우리은행-대구은행-광주은행-부산은행은 하나같이 피해자 구제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사단법인 ‘전국은행연합회‘가 2018년 6월 제정한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에도 피해자 구제 방안이 나온다.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 제35조에 따르면, 은행은 채용비리 피해자를 파악한 경우 그 피해자에게 피해 발생단계 바로 다음 전형에 응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은 은행 4곳 모두 전국은행연합회 사원은행으로 모범규준이 적용된다. 하지만 우리은행, 부산은행은 “해당 모범규준은 본 사건(채용비리) 이후인 2018년 6월 18일 최초 시행돼 본건에 (소급)적용이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셜록>은 우리은행 채용 탈락자 A 씨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A 씨는 2017년 우리은행 공채에서 예비합격자를 통보 받았지만 최종 불합격된 인물이다.
A 씨는 “2017년 최종 면접 결과 ‘예비합격자’라는 안내 이메일과 수신 문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나도 우리은행 채용비리 직접 피해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2017년 신입사원 채용 당시, 권광석 우리은행장(당시 부행장)이 채용을 청탁한 지원자 조OO 씨는 점수 조작으로 1차 면접을 부정 통과했다. 부정입사자 조 씨는 현재 서울시 서초구 모 지점에서 일하고 있다.
A씨가 우리은행에 바라는 건 하나다.
“과거 강원랜드와 가스안전공사에서 채용 비리 피해자 구제 조치가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은행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채용비리 피해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길 바랍니다.“
우리은행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문제는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언급됐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23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실시한 종합감사에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에게 이렇게 질의했다.
“(채용비리) 피해자에 대한 구제 대책이 없습니다. 채용 비리 당시 지원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특별전형을 치르거나, 이것이 어렵다면 부정 채용자수만큼 이번에 증원해서 (사람을) 뽑을 필요가 있습니다. 부정 채용자에 대한 법률검토만 한다는데 (우리은행의 방안이)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이어 민 의원은 “우리은행을 필두로 대구은행 등 다른 은행들도 (피해자 구제 관련 법적 검토 등을) 하길 바라는데 금감원에서 나서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윤 원장은 “(피해자 구제 방안 등) 지적한 부분에 100%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며 “본원이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답했다.
우리은행도 피해자 구제에 대해 “현실적인 한계가 있지만 법률검토 등을 통해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민병덕 의원실에 서면 답변을 보내왔다.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사례는 이미 우리나라에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일부 은행은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빠르고, 적극적이고, 조직적으로 채용비리를 저지른 모습과는 무척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