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2015년 4월 29일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택시는 움직이지 않았다.
소나기가 쏟아진 8월의 그 새벽은 습했다. 뒷좌석에 손님 한 명을 태운 택시 한 대가 저 멀리서 다가왔다. 택시는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멈췄다. 손님은 금방 내리지 않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옷에 피를 가득 묻힌 손님은 택시 뒷문으로 내려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택시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운전석 쪽에서도 움직임은 없었다. 운전기사는 발로 가속 페달을 밟을 수도, 손으로 기어를 넣을 수도 없었다.
그는 흉기에 찔려 생명이 위태로웠다.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께 발생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현장은 참혹했다. 무서운 ‘놈‘이었다. 흉기로 열두 차례나 택시기사를 공격했다. 피에 물든 택시는 폐차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이 사건은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겠다. 사람을 열두 번이나 찔러 살해한 그 놈, 단 하루도 처벌받지 않았다. 경찰에 체포됐었으나, 유유히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그는 여전히 자유롭게 살고 있다. 대한민국 어디선가 편하게 이 글을 읽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살인범만큼 무섭고, ‘독한 놈들‘ 때문이다. 15살 소년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고, 진짜 살인범에게 자유를 준 권력자들.
내용은 이렇다. 택시기사 살인사건 발생 사흘 뒤인 2000년 8월 13일, 익산경찰서는 15살 최성필(가명)군을 범인으로 체포했다. 하지만 그는 범인이 아니다. 경찰은 과학과 적법수사로 범인을 잡지 않았다. 조작, 강압, 폭력수사로 살인범을 창조했다.
“경찰에서 수사받는 동안 계속 맞았아요. 울면서 ‘내가 안 죽였다‘고 애원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할 때까지 저를 때렸어요.”
소년은 울었다. 그 눈물은 아무 힘이 없었다. 소년은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무려 10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15살에 들어가 25살에 나왔다.
최성필씨가 감옥에 갇힌 지 3년이 지난 2003년, 전북 군산경찰서에 첩보가 입수됐다.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
군산경찰서는 드디어 진짜 범인을 체포했다. 살인범은 자백했고, 흉기를 목격한 증인이 있었으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살인범을 숨겨준 사람까지 모두 자백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검찰은 살인범을 구속시키지 않았다. 그에게 자유를 줬다. 대신 진범을 잡은 경찰 수사팀은 해체됐다. 핵심 인력은 파출소 등 더는 수사권한이 없는 곳으로 발령이 났다. 왜 그랬을까?
“자기들이 잡아 넣은 가짜 살인범이 감옥에 있잖아요. 우리가 진짜 살인범을 잡으니까 익산경찰서, 검찰, 법원이 얼마나 당황했겠어요. 자기들 실수와 잘못 숨기려고 15살 아이를 감옥에 그냥 둔 건데, 인간으로서 할 짓입니까? 죄 없는 사람은 가두고, 살인범에겐 자유를 주고..그 똑똑하고 힘 있는 사람들이 이래도 되는 건가요?”
진짜 살인범을 체포했던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은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눈빛이 떨린다. 베테랑 ‘수사반장‘ 황상만은 파출소로 좌천된 뒤 수사팀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지난해, 그는 경찰에서 정년 퇴직했다.
최성필씨는 다시 재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 ‘살인자‘라는 낙인을 지우는 건 당연하다.
박준영 변호사는 지난 2013년 4월 최씨 재심청구서를 광주고등법원에 접수했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법원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경찰, 검찰이 진짜 범인을 체포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는 이들 탓에 우리 국민은 살인범과 함께 15년을 살았다. 그 사이 끔찍한 일도 벌어졌다. 진짜 살인범을 잘 아는 핵심 증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감옥에서 10년을 보낸 최성필씨도 출소 뒤 한 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택시기사 살인범은 오는 8월 9일을 애타게 기다릴 것이다. 그날이 지나면 제 아무리 사명감 많은 경찰이어도 그를 잡을 수 없다. 그날로 이 사건 공소시효는 끝난다.
살인범에게 자유를 준 검찰, 15살 소년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 경찰,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 판사 역시 이날을 기다릴 터. 이들 역시 이 사건이 영원히 묻히길 바랄테니 말이다.
그동안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여러 방송과 언론이 이 사건을 다뤘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민의 분노는 그 순간뿐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8월 9일을 맞아야 할까? 그럴 수는 없다. 4월 28일 기준, 앞으로 104일 남았다.
기획 ‘그들은 왜 살인범을 풀어줬나‘를 시작한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 바로 눈 앞에 있는 살인범을 체포하지 않는 수사기관, 15살 아이의 억울함을 모른 척하는 국가, 이 상황을 그냥 둬야 할까?
그건 도리가 아니다. 살인범과 ‘그 놈 풀어준 놈들‘ 앞에서 가만히 있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팀을 구성해 정면돌파하기로 했다.
우선,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이 어렵게 나섰다. 그는 1976년 경찰 생활을 시작해 주로 수사부서에서 일했다. 수많은 강력사건을 다뤘고, 많은 범인을 체포했다. 경찰로서의 사명감, 인간적 양심으로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을 체포했었다.
자기 앞에서 진짜 범인이 유유히 걸어나가는 모습을 고통스럽게 바라본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우리 팀에서 고문 역할을 할 예정이다.
다음은 박준영 변호사. 최성필씨같은 사람들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과감히 변호사 사무실을 내놨다. 사익을 추구하며 공익활동을 하는 건 박 변호사에겐 아직 어색한 일이다. ‘수원역 노숙소녀 살인사건‘ 등에서 피고인들의 허위자백을 밝혀낸 경험을 바탕으로 무기수 김신혜의 재심도 돕고 있다.
신윤경 변호사도 힘을 보탰다. 신 변호사의 학창시절 취미와 특기는 공부였다. 공부가 가장 쉬웠고, 즐거웠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면서 공부의 어려움을 알았다. 변호사가 된 이후, 책에 나오지 않는 이 사회의 슬픔을 조금씩 알게 됐다. 역시 김신혜, 최성필씨의 재심을 돕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쓰는 나, ‘백수‘ 박상규다. 지난 2014년 12월 31일, 10년 다닌 <오마이뉴스>에 사표를 냈다. 더 자유로운 취재와 글쓰기를 위해서다. 백수가 됐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니 행복하다.
전직 베테랑 형사, 변호사 둘, 기자 한 명. 우리는 한 팀으로 뭉쳤다. 스스로의 얼굴을 걸고 이 사건에 뛰어들었다.
마지막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이 사건은 해결하기 어렵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예정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택시기사 살인범을 안다.
1981년생. 김OO
우리만 아는 게 아니다. 검찰, 경찰도 안다. 알면서도 잡지 않을 뿐이다. 공소시효가 다 되도록 특별한 움직임이 없으면 우리는 이 사건 관련자들을 계속 공개할 예정이다. 협박 하는 거 아니다. 국민으로서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건기록 공개 등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생각이다. 가짜 살인범과 진범 수사기록, 이 두 개를 보면 누가 택시기사를 살해했는지 국민도 금방 알 것이다.
우리는 결심하고 선택했다. 살인범과 그를 풀어준 사람들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우리 얼굴을 봤을 것이다. 우리는 잃을 게 없다. 이제 당신들이 결심하고 선택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