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를 저지른 은행의 뒤끝은 확실하고도 거대했다.
우리은행은 신입사원 부정 채용 과정에 권광석 부행장(현 은행장)이 연루됐다는 사실을 보도한 진실탐사그룹 <셜록>에게 10억 원을 물어내라고 요구했다.
<셜록>이 지난 10월 26일 보도한 ‘권광석 우리은행장마저 채용비리 연루’ 기사가 권 은행장과 우리은행의 명예를 훼손했으니 각각 5억 원씩 달라는 주장이다.
우리은행은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선임해 지난 11월 언론중재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진정하며 중재를 신청했다.
김앤장 변호사가 작성한 신청서의 핵심은 이렇다.
“권광석 은행장은 2017년 부정입사한 조OO의 채용을 청탁한 사실이 없습니다. <셜록>의 보도는 허위입니다.”
우리은행의 이런 주장은 하나도 새롭지 않았다. <셜록>이 취재할 때부터 우리은행은 늘 같은 주장을 했다.
<셜록>은 1심, 2심, 3심 판결문을 토대로 우리은행 채용비리 문제를 취재했다. 부정하게 입사했으나 여전히 우리은행에 다니는 사람을 찾아갔고, 홍보실은 물론 부행장을 통해 반론도 들었다.
부정 채용 ‘청탁자 권광석’은 1심은 물론이고 대법원 판결문까지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우리은행은 <셜록>에 10억 원을 요구하며 이런 논리를 폈다.
“판결문이 잘못된 겁니다. 판결문에 왜 권광석 은행장 이름이 올라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사자(권광석)도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은행 채용비리 1심 선고는 2019년 1월, 대법원 선고는 올해 2월에 나왔다. 명색이 은행장이란 사람이 채용비리 유죄판결문에 자기 이름이 적시된 사실을 최근까지 몰랐다고?
그럼 담당 변호인과 직원들을 탓해야지 <셜록>에 10억 원을 요구할 일이 아니다. 백번 양보해서 “판결문이 잘못됐다”는 우리은행의 주장이 맞다고 치자. 그렇다면, 법원에 정정을 요구하든 재심을 청구해서 판결 자체를 바꾸는 게 순서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앤장 변호사는 언론중재위에 출석해 열심히 주장했다.
“기사 내용은 사실이 아닙니다. 권광석 이름은 물론이고 사진도 모두 내려 주십시오.”
별 근거 없는 주장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중재위원에게 사과까지 했다. 한 중재위원이 우리은행을 대리하는 김앤장 변호사에게 물었다.
“판결문에 권광석 은행장 이름이 적시된 걸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요? 1심 결과 나오면 은행으로 송달되지 않나요?”
또 다른 중재위원이 김앤장 변호사에게 물었다.
“1심부터 3심 판결문에 이름이 등장하면 사실로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럼에도 우리은행 측은 계속 “<셜록>의 기사는 허위이다, 기사와 사진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이런 막무가내에 논리를 대는 건 피곤한 일이다. 더 듣거나 말하는 건 불필요해 보였다. 내가 중재위원들에게 요구했다.
“우리는 판결문을 기초로 사실대로 보도했습니다. 우리은행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중재 불성립으로 종료해 주십시오.”
그렇게 우리은행이 제기한 언론중재는 끝났다. 권광석 은행장은 개인 자격으로 중재위에 중재를 신청했는데, 최근 취하했다고 한다.
우리은행, 뒤끝은 창대했으나 마지막은 초라했다.
우리은행은 자기들이 10억 원을 요구하면 <셜록>이 겁먹을 줄 알았나부다. <셜록>은 광고가 아닌 독자(왓슨) 구독료로만 운영된다. 사실대로 공익성에 맞춰 보도했다면 위축될 이유가 없다.
우리은행은 앞으로 민사소송을 신청하거나, 수사기관에 형사고소할 수 있다. 그건 그들의 자유다. <셜록>은 그에 맞춰 대응할 생각이다.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정말 당신들 주장대로 판결문이 잘못됐다면 우리은행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길 바란다. 내가 ‘재심 3부작’ 진행해봐서 하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