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015년 5월 14일 공개했던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가깝고도 먼 곳이다. 백 번 찾았고, 천 번 기억에서 지웠다. 어쩌면 그곳은 그에게 세상의 끝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길을 나서자고 간청했다. 그의 입에서 고통스런 신음이 터졌다.
“안 돼. 나한테 자꾸 그러지 마요. 난 거기 안 가.”
그의 눈빛이 떨렸다. 박준영 변호사가 다시 한 번 고통스런 부탁을 했다.
“반장님,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이번 기회 아니면 진짜 살인범과 ‘그 놈‘ 풀어준 사람들에게 책임 물을 수 없어요.”
“……”
“그냥 이렇게 앉아서 8월 9일 맞아야 합니까? 반장님 아니면 그 사건 누가 마침표를 찍어요?”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 그는 후배 경찰들을 생각했고, 그들의 처지를 걱정했다. 자기가 다시 나서면 후배 경찰들이 난처할 수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가 한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반장님, 가짜 살인범 최성필(가명)이 그곳에 옵니다. 지금 쯤 집에서 출발했을 겁니다. 반장님도 가셔야죠.”
“최성필..그 아이가 거기에 온다고?”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 최성필은 어떻게 사느냐고 되물었다. 살인 누명을 쓴 채 10년을 감옥에서 살고, 이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고 박 변호사가 말했다. 2000년 그해, 15살이었던 최성필. 결국, 그 아이가 황상만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갑시다.”
그가 무거운 숨을 길게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켓을 입고 사진 한 장을 주머니 안에 넣었다. 지난 4월 23일 오전, 황상만은 그렇게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께 택시기사 한 명이 무참히 살해된 곳이다.
“그 사건을 생각하면 미운 사람이 너무 많아.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그래서 약촌오거리에 다시 가기 싫은 거예요.”
사건이 발생하고 사흘 뒤 범인이 체포됐다. 15살 최성필이었다. 그는 살인죄 등으로 10년 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그는 누명을 쓴 가짜 살인범이다. 사건 발생 3년 뒤인 2003년 ‘진짜 살인범은 따로 있다‘는 첩보가 군산경찰서에 들어왔다.
“첩보를 입수하고 군산경찰서 서장, 수사과장 등 모든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했어요. 이걸 수사하느냐, 마느냐 고민이 컸지. 3년 전에 익산경찰서가 체포한 가짜 살인범이 감옥에 있잖아. 근데 우리가 진짜 살인범을 잡으면 여러 사람이 난처해지지. 엉뚱한 범인을 잡은 경찰과 검찰, 그 아이에게 10년을 선고한 판사..“
그해 6월 5일, 당시 군산경찰서 형사반장 황상만은 진짜 살인범을 체포했다. 1981년 생 김OO. 그는 범행 목적, 방법, 도피 장소 등 모든 걸 자백했다. 진짜 살인범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놀라운 정보까지 털어놨다. 범행 당시 그를 숨겨준 임OO도 체포했다.
국가는 그를 격려하고 박수를 쳤을까? 정반대 일이 벌어졌다.
“김OO에게 모든 자백을 받았어요. 택시기사가 살해된 상황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사체 부검 결과와도 일치했죠. 흉기를 목격한 사람도 여러 명이고. 우리가 구속시켜달라고 영장을 신청하면, 검사가 판사에게 영장을 청구하지 않고, 계속 돌려보내더라고.”
왜 그랬을까?
“왜긴. 15살 가짜 살인범을 잡은 경찰, 검찰, 판사 입에서 모두 곡소리 나게 생겼으니 그렇죠. 모두 옷 벗는 게 정상이지. 자기들이 감옥에 넣은 그 아이에게 사과하고 반성해야죠. 근데 그 사람들이 그걸 하기 싫어서 15살 아이를 계속 감옥에 두고 진짜 살인범을 풀어준 거라니까!”
황상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검사가 구속영장을 돌려보내면, 증거를 더 보강해 구속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진짜 살인범 김OO은 총 4회, 그를 숨겨준 임OO은 5회 범행을 자백했다. 임의로 자백하는 상황을 담은 진술동영상도 촬영했다. 둘의 의견은 일치했다. 그럼에도 수사지휘를 하는 검사는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황상만은 계속 수사했다. 범행 도구인 칼을 봤다는 새로운 증인도 확보했다. 검사는 달라지지 않았다. 황상만은 약 1년간 집요하게 사건에 매달렸다.
“주변에서 많이 말렸죠. 계란으로 바위 치기고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그 싸움을 왜 했느냐고 12년 전 그 질문을 다시 던졌다.
“누명 쓰고 감옥에 있는 15살 아이가 불쌍하잖아요! 형사이기 전에 나도 자식을 둔 부모잖아요. 그 전에 인간이고요! 괴로웠죠. 양심상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지. 눈 앞에 진짜 살인범이 걸어다니는데, 형사로서도 참을 수 없었고. 이걸 모른 척 하면 내가 평생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죠.”
인간적 양심과 형사로서의 사명감으로 시작한 일. 돌아온 건 박수가 아닌 좌천이었다. 국가는 포기하지 않는 그를 자리에서 밀어냈다. 황상만을 지구대(파출소)로 발령내 더는 수사하지 못하도록 했다. 수사팀은 해체돼 뿔뿔이 흩어졌다. 더 큰 손이 개입한 듯했다.
“보통 경찰서장은 해당 지역에서 지위가 되는 사람이 하거든요. 근데 느닷없이 경찰청 본청 간부가 군산경찰서장으로 와 나를 지구대로 보내더라고. 고참 형사반장들의 힘이 너무 커졌다는 이유를 들면서요. 그때 비수사 부서로 간 사람들은 대부분 금방 복귀했거든. 근데 나는 끝까지 복귀시키지 않더라고요. 내가 여러 번 복귀 의사를 밝혔는데도.”
1976년 경찰이 돼 수십 년 수사부서에서 일한 베테랑 형사 황상만. 그는 다시 사건 수사를 하지 못했다. 2014년 군산의 한 지구대에서 정년퇴직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그에게 상처로 남았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진짜 살인범 김OO과 원수도 아니고, 그저 진실을 밝히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저는 이런 주장까지 했어요. ‘백 번 양보해서 진짜 살인범 체포를 포기할 수도 있다. 대신 감옥에 있는 가짜 살인범 최성필을 풀어주자. 누가 봐도 그 아이가 범인은 아니지 않느냐.’ 난 걔가 진짜 불쌍했어요. 풀어주고 싶었지. 내가 직접 최성필을 만나려고 했는데..그 전에 나를 쳐내더라고.”
황상만은 군산의 한 아파트에 산다. 그의 집에서 익산 약촌오거리는 가깝다. 차로 40분이면 도착한다. 거길 다시 가는 데 12년이 걸렸다. 그는 차 안에서 내내 고통스런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직업병인지도 모른다. 현장에 도착한 황상만은 마치 수사라도 하듯이 현장을 살폈다. 진짜 살인범이 도망간 길을 다시 걷기도 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저 쪽에서 가짜 살인범 최성필이 걸어왔다. 아내와 젖먹이 아이도 함께 왔다.
15년 전 살인사건이 발생한 현장에 도착한 최성필은 황상만에게 꾸벅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황상만은 손을 내밀어 최성필의 손을 잡았다.
“네가 최성필이냐?”
“네, 맞습니다.”
“아이고..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너를 정말 풀어주고 싶었어. 근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네. 10년 동안 고생 많았다. 내가 진범을 정말 잡고 싶었거든..정말 잡고 싶었어. 어쨌든..미안하다.”
엉뚱한 범인을 잡은 사람들 입에선 ‘곡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최성필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들 대신 황상만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날 가짜 살인범 최성필은 황상만에게 점심을 샀다. 둘은 같은 상에 앉았다. 그 식당은 진짜 살인범 김OO이 약 열흘간 숨어지낸 임OO의 집에서 가까웠다.
점심을 먹고 나온 뒤 황상만에게 집에서 가져 온 사진에 대해서 물었다. 그가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냈다. 12년 전 진짜 살인범을 잡았을 때의 형사반장 황상만이 옅게 웃고 있었다.
“보통 문제의 사건을 수사하면 지휘를 하는 검사가 형사반장을 부르거든.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의견도 나누고 그래요. 1년 동안 다른 일 전혀 않고 이 사건에만 매달렸는데, 검사는 나를 한 번도 안 불렀어요. 난 아직도 그 검사 얼굴도 몰라. 전화도 한 번 안 하더라고. 왜 그랬겠어요? 나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겠죠. 자기도 난처하고. 그래서 사건을 묵혀버린 거예요. 일종의 직무유기지.”
형사반장 시절의 황상만 얼굴을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그때 그 검사. 그는 지금 전북의 한 검찰청에서 일한다. 높은 자리로 승진도 했다. 그리고 또 한 명, 진짜 살인범 김OO도 형사반장 황상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혹시라도 잊었을까봐 김OO이 2003년 6월 22일 황상만 반장 앞에서 신문조서에 직접 쓴 글을 공개한다.
“황 반장님과 그 외 형사분들께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