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015년 5월 21일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살인범의 뒷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약 40년을 경찰로 살아 많은 일을 겪은 그에게도 그날의 기억은 충격이다.
“그걸 어떻게 잊어요. 살인범이 하루도 처벌받지 않고 경찰서에서 걸어 나가는데.. 정말 미치겠더라고.”
12년 만에 다시 찾은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현장.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의 한숨은 깊었고, 목소리는 떨렸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아픔이 올라오는 듯했다.
“김OO이 자백한 게 조서에 그대로 담겨 있어요. 녹음까지 다 했어요. 범인만 아는 정보를 이야기하는데, 처음엔 우리 형사들이 다 놀랐다니까.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사체 부검 결과와도 일치해요. 범인을 숨겨준 친구도 자백했고, 범행 도구인 칼을 봤다는 사람도 여럿이고..”
황상만은 잠시 말을 끊었다.
” 누명 쓴 가짜 살인범 최성필(가명)의 조서를 읽어보세요. 완전히 엉터리라니까. 국과수 부검 결과와도 안 맞아요. 두 조서를 비교하면 누가 범인인지 금방 알죠. 그런데도 누명 쓴 사람은 감옥에서 10년 살고, 진짜 범인은 자유를 얻고..이게 법치국가입니까?”
그의 말대로다. 진범 김OO의 자백은 놀랍다. 그의 진술과 사체에 남은 흔적은 일치한다. 그를 숨겨준 친구는 물론이고 그의 아버지 진술과도 맞다. 사망한 택시기사 동료들이 본 사건 현장 모습과도 일치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혹시 김OO은 알고 있을까? 그가 택시 안에서 사람을 헤치고 있을 때, 길 건너편에서 그 정황을 목격한 복수의 사람이 있다는 걸. 김OO의 자백은 이들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께 살해된 택시기사는 40대 유OO. 유도를 해 체격이 좋았다. 택시 안에서 십여 차례 흉기로 공격받아 사망했다. 갈비뼈 두 개가 크게 손상됐다. 길 건너편의 목격자에 따르면, 그는 택시 문을 열고 비명을 질렀다. 그를 돕기 위해 동료들이 달려왔을 때 운전석 문은 그대로 열려 있었다.
자, 이제 이런 객관적 사실과 김OO의 자백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직접 살펴보자. 2003년 6월 5일 군산경찰서에서 작성한 김OO 피의자신문조서를 공개한다. 분량상 일부를 생략했다.
- 피의자는 다른 사람을 칼로 찔러 죽인 사실이 있나요?
“예, 있습니다.”
- 그 일시와 장소를 말하시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2000년 6~7월(실제는 8월) 사이 새벽이었으며,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 버스정류장 부근 택시 안에서 입니다.”
- 피의자가 칼로 찔러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요.
“제가 탔던 택시의 기사를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 살해한 이유를 말하시오.
“당시 제가 약 2~3주 돈 없이 생활을 해서, 돈을 구해야했습니다. 어떻게 돈을 구할지 생각하다 택시기사의 돈을 빼앗기로 했습니다. (범행 당시) 택시기사를 (칼로) 위협하는 과정에서 택시기사가 도망을 가려 해 칼로 찌른 것입니다.”
- 범행에 사용한 칼은 어디에서 구입했나요.
“제가 구입한 건 아닙니다. 당시 살았던 집 창고 안에 있던 것입니다. 종이 케이스에 들어있던,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칼입니다.”
- 당일 행적을 자세히 진술하시오. (답변 중 구체적이고 잔인한 내용은 윤색함)
“(중략) 택시기사를 상대로 돈을 빼앗을 생각으로 동생이 사용하던 진한 곤색 가방 안에 칼을 케이스 통채로 넣고 그날 저녁 12시 조금 넘었을 때 집에서 나왔습니다. (택시를 타고 뒷좌석에 앉아) 기사에게 약촌오거리에 가자고 했습니다. 목적지 도착 300m 전에 제가 택시기사에게 ‘여기서 세워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칼을 꺼내 위협을 하고 돈을 뺏었어야 하는데, 택시기사 몸이 운동을 한 사람처럼 보여서 망설였습니다.
제가 ‘앞쪽으로 조금만 더 가주세요’라고 말하자 택시기사가 버스정류장 앞에 섰습니다. 기본요금만 나왔다고 하더군요. 택시비도 없는 상태여서 강도를 하기로 결심하고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 ‘가진 돈 다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택시기사가 놀래 당황하면서 ‘뭐야’라고 하며 운전석 문을 열고 나가려는 것 같아 제가 왼팔로 택시기사 왼쪽 어깨 옷을 잡고 흉기로 공격을 했습니다.
택시기사에게 붙잡히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 마구 공격했는데, 어디를 몇 번 공격했는지 기억에 없습니다. 택시기사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아, 아’ 소리를 질러, 저도 문을 열고 버스정류장 뒤쪽 공원으로 도망갔습니다. 도망가다가 공중전화로 그 근처에 사는 친구 임OO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임OO 집에 가니, 제가 모르는 임OO의 친구도 있었습니다. 그 친구를 보내고 임OO 방에 들어가 불을 켰습니다. 제가 식은땀을 흘리고 옷에 피가 묻은 걸 보고 임OO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 ‘아무 일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물 좀 달라고 하여 임OO이 물을 가지러 간 사이, 제가 택시기사를 찌른 칼을 가방에서 꺼내 (임OO) 침대 매트리스 밑에 넣어놨습니다.
임OO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아침이 되어 창문을 통해 밖을 보니 경찰관들이 (범행 현장 옆) 공원을 수색하는 게 보였습니다. 점심 때쯤 임OO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집) 앞에서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낌새를 채고 저에게 ‘혹시 저 사건 네가 한 짓이냐’고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니다’라고 했는데, 임OO이 솔직히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여 ‘사실은 내가 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 친구 임OO에게 ‘사실은 내가 한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면, 그게 무엇을 뜻하나요.
“임OO 아버지께서 사람이 칼에 찔린 사건을 말했는데, 그게 바로 제가 택시기사를 찌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 그 이후에 대하여 말하시오.
“임OO이 그럼 칼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어봐 (중략) 제가 ‘네 침대 매트리스 밑에 숨겨 놓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임OO이 ‘그럼 내가 칼 위에서 잠을 잔 것이냐’라고 질색을 했습니다. 임OO이 칼을 보자고 하여 제가 보여준 뒤 다시 매트리스 밑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 이후 약 4~5일(실제로는 약 열흘) 정도 임OO 집에 머문 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 가방에서 칼을 꺼냈을 때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나는가요?
“피가 묻어 있었다는 건 확실하게 기억하는데, 오래된 일이고 그 당시 정신이 없어서 다른 사항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겁이 나서 자세히 쳐다볼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 도망가려는 택시기사를 왜 찔렀나요.
“그냥 무의식적으로 찔렀습니다.”
- 택시기사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요?
“예,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택시기사를 공격했을 때 칼 끝에 뼈가 걸리는 느낌이 들어 죽었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습니다.”
- 범행 후에 어디에 있었나요?
“임OO 방에서 일주일정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이 일을 어떻게 해야하나 많은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 임OO이 자수를 하라거나 신고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던가요?
“자수하라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 (가짜) 범인이 잡혔다는 말을 들은 사실이 있나요?
“사건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택시를 탄 적이 있습니다. (택시기사에게) 그 사건에 대하여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범인이 잡혔는데 중국집 배달원(실제로는 다방 커피 배달 돕는 직원)이라고 하여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 범인이 아닌 사람이 잡혀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자수를 하지 않았나요?
“..겁도 났었고..가족들이 괴로워할 것 같아 용기가 나지 않아 자수를 하지 못했습니다.”
- 현재 심정은 어떤가요?
“그 당시에..(내가) 돈이 얼마나 필요했길래 사람을 죽였을까..한 번만 참았으면..참으로 후회가 됩니다. 그리고 진즉에 자수를 했더라면 저 대신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고생을 덜 했을 텐데..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마음뿐입니다.”
- 참고로 더 할 말이 있는가요?
“저 때문에 피해를 본 분들께 죄송합니다. 저 또한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홀가분하고 죄송하네요. 이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죄송할 따름입니다.”
김OO은 이렇게 자백했고, 누명을 쓴 최성필에게 사과의 뜻도 밝혔다. 무려 네 차례나 비슷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그에게 자유를 줬다. 물론 이유는 있다. 한마디로 증거를 더 확보하고 물증인 칼을 찾아오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상만 전 반장은 할 말이 많다.
“사건 발생 후 3년 만에 잡은 진범입니다. 쓰레기장으로 간 칼을 어떻게 찾을까요? 비용과 인력을 주면 쓰레기장까지 다 뒤지겠다고 했어요. 그 비용과 수색에 필요한 시간을 산출했고, 매립장 사진과 쓰레기 반입량자료까지 첨부해 검사에게 보고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김OO이 칼 끝이 뼈에 걸린 느낌이 났다고 했죠? 그 탓에 칼 끝이 휘어졌는데, 그걸 봤다는 사람까지 있어요!”
황상만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다.
“더 많은 물증 확보? 물론 필요하면 해야죠. 그러면 하나만 물읍시다. 누명 쓰고 감옥에 간 최성필, 그 아이의 범행을 입증할 물증을 익산경찰서와 검찰은 찾았나요? 하나도 없어요! 국과수까지 동원했지만 칼은커녕 혈흔도 못 찾았어요! 지문, 머리카락도 없었고.”
김OO이 자백한 다음날인 2000년 6월 6일, 황상만은 형사 한 명을 천안소년교도소로 보냈다. 그 형사는 그곳에서 최성필을 만났다. 최성필은 이런 진술서를 썼다.
저는 2000. 8. 10. 02시 07경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 시내버스 정류장 앞 도로에서 택시기사를 죽인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억울합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김OO은 6월 7일 걸어서 군산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곧바로 한 식당에서 그와 그의 가족들이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혹시 범행 은폐를 위한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닐까? 확실한 건, 이 자리에 한 국가공무원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며칠 뒤, 김OO일은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자백을 뒤집고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그는 태연히 이런 말도 조서에 적었다.
“황 반장님이 사실은 밝혀진다고 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2015년 5월 21일 기준, 진범을 잡을 수 있는 공소시효는 81일 남았다. 나도 김OO과 같은 생각이다. 사실은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