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지하철 안,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폰을 꺼내 확인하니, 카카오톡 메시지가 가득 찼다. 시민단체 양육비해결총연합회(이하 양해연) 운영진들이 개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기자님, 양육비 법안 통과습니다!!” – 박문희(가명)

“양육비 이행강화법안 통과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강하나 (가명)

실현 가능성이 낮았던 양육비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니! 답문을 보내려는 찰나, 이영 양해연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양육비 법안이 통과됐는데, 제가 <셜록> 기자님한테 전화를 안 할 수 없죠. 저희가 1년간 제대로 못 자고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해왔잖아요. 국회, 법무부, 여성가족부 어디든 발 벗고 뛰었더니, 그 간절함이 통했나 봅니다.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은 출국금지, 신상공개, 형사처벌로 양육비 미지급자를 강하게 제재하는 내용을 담았다. 본회의 참석 국회의원 256명 중 249명 찬성, 7명 기권으로 개정안은 통과됐다.

양육비 법안이 21대 국회를 통과한 2020년 12월 9일은 <셜록>이 ‘양육비 외면하는 배드파더스’ 기획을 시작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었다.

2019년 12월 10일, 양육권자 강하나(가명) 씨가 경찰청 앞에서 양육비 지급 촉구를 위한 시위를 하고 있다. ⓒ 주용성

‘배드파더스’ 취재를 시작한 작년 겨울, 미혼이면서 아이가 없는 내게 양육비 문제는 생소했다.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 취재 때 이혼 판결문에서 본 게 전부다. 양육비는 ‘판결에 따라’ 비양육자가 ‘의무적으로’ 양육자에게 지급하는 돈이라고만 생각했다.

판결에 따른 채무이기 때문에 국가가 관리, 감독할 거라 여겼다. 내가 1년간 만난 양육자들은 그 생각을 뒤집었다. 양육비를 받기 위해 투쟁에 가까운 노력을 하는 부모는 많았다.

양육비 약 5400만 원과 위자료 3000만 원을 받지 못해 8년을 싸운 가정폭력 피해자 강하나 씨. 강 씨는 8년 싸움 끝에 최근 전 남편에게 밀린 양육비 중 일부인 4500만 원을 받았다. 전 남편은 감치 기로에 놓이자, 4500만 원을 한 번에 지급했다.

삼형제 월 양육비 45만 원을 받기 위해 6년을 싸운 ‘싱글대디’ 최성철 씨. 최 씨는 밀린 양육비 약 3000여만 원을 받기 위해 양육비 ‘이행명령’ 소송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연예인이자 대학 교수인 이다도시 역시 전 남편에게 10년간 양육비를 못 받았다. 이다도시는 여러 방송에서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알리고 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출신 김동성 씨에게 양육비 약 2400만 원을 받지 못한 이소미(가명) 씨. 이 씨 역시 밀린 양육비를 받기 위해 양육비 ‘이행명령’ 소송을 진행 중이다. 김동성 씨의 신상은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돼 있다.

아이 얼굴은 안 보면서 ‘현대카드’ 일반인 광고 모델로 나선 전 부인에게 양육비를 받기 위해 1년을 싸운 김민호(가명) 씨. 김 씨는 1인 시위, 소송 등으로 전 부인을 압박한 끝에 밀린 양육비를 겨우 받아냈다.

시민단체 양육비해결총연합회(대표 이영, 이하 양해연)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린 6일 오전 9시경, 국회 정문 앞에서 20대 국회 회기 중 양육비이행 강화 법안 통과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셜록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고생만 있는 게 아니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역고소, 폭행 사건도 벌어졌다.

양육자 이선희(가명) 씨는 양육비를 받기 위해 전 남편을 찾아갔다가, 명예훼손, 협박 등의 혐의로 고소당했다.

강하나 씨는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기 위해 전 남편을 찾아갔다가, 폭행을 당했다. 전 남편은 사건 당일 강 씨를 시장과 길거리에서 구타하고, 한 취재기자의 새끼손가락을 골절시켰다. 같은 현장에 있던 <셜록> 기자인 나도 그에게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상해를 입었다.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은 강 씨의 전 남편을 공동상해, 상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지난 10월경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징역 1년을 구형했고, 그의 선고 공판은 내년 2월께 진행될 예정이다.

‘국가가 먼저 양육비 문제 해결에 나섰더라면 어땠을까. 양육비 때문에 고생한 엄마가 거리에서 폭행을 당하거나, 무책임한 아버지에게 고소당하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양육비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됐다. 이혼 한부모 가정 중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비율이 2018년 기준 약 80%에 달하는 건, 이런 분위기 탓이 크다.

양육비 이슈는 위에 열거한 한부모 가정의 노력, 배드파더스 사이트 활약 이후에야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여러 양육자의 노력으로 ‘양육비는 아동의 생존권’이란 인식이 퍼지는 과정에, ‘배드파더스 재판‘은 한국 사회에 화두를 던졌다. 양육비 안 주는 부모의 신상 공개가 과연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말이다.

‘배드파더스’ 사이트 자원봉사자 구본창 씨는 양육비를 주지 않아 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된 부모 5명에게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해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 지난 1월 피고인 구 씨의 행위를 공익 실현으로 판단하고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배심원 7명(예비 배심원 1명 제외)도 피고인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를 평결했다.

피고인 구본창 씨가 무죄 선고를 받고 법정을 나서는 모습. ⓒ셜록

이영 양해연 대표의 말대로, 그동안 양육자들은 양육비 미지급자의 출국금지, 신상공개, 형사처벌과 같은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국회, 법무부, 여성가족부, 법원을 숱하게 찾아다녔다.

관련 법안 통과는 이들의 노력으로 가능했다. 양육자 이 씨는 양육비 개정안 통과에 이런 소회를 밝혔다.

아이들에게는 적시에 필요한 양육이 있어요. 한 달만 양육비가 끊겨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에겐 타격이 큽니다. 국가는 오랫동안 아이들의 생존권인 양육비 문제를 방관해왔고, 2020년이 되어서야 법안을 통과시켜줬습니다. 기쁘면서도 아쉬움이 큽니다.‘

<셜록>이 양육비 문제를 취재한 지 1년. 이제 많은 게 달라졌다. 임무를 다한 배드파더스는 오는 7월 사이트를 폐쇄할 예정이다. 양육비 미지급자 형사처벌, 출국금지, 신상공개 법안이 통과됐으니 말이다.

양육비 못 받은 부모들의 노력으로 세상은 여기까지 왔다. 이제 국가의 책임과 의무가 남았다. 법대로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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