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살, 3살 자녀를 위해 지은 한약 봉지가 조제 한 달 만에 터질 듯 부풀었다. 대전에 있는 A 한의원에서 2012년 9월 19일 지은 한약이다.

한약은 상한 것처럼 보였다. 조제한 것 중 세 봉지에서만 이상이 생겼지만, 부푼 봉지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둥둥 떠다녔다.

두 아이의 아빠 B 씨는 부패했을지 모를 한약을 어린 자녀에게 먹일 수 없었다. 일단 아이들에게 먹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10월 20일, B 씨는 두 아이와 함께 A 한의원을 찾았다. 그날에도 B 씨는 1살짜리 아이를 A 한의원 의사에게 다시 맡겼다. 한의사는 둘째 아이에게 침을 놓았다.

치료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기 전, B 씨는 한의사에게 한약이 부풀어 오른 까닭을 물었다.

“선생님. 아이들 한약 세 봉지가 부풀었더라고요.”

“그럼 안 부푼 것 먹이세요. 제가 먹어봤는데 이상 없습니다.”

B 씨는 한의사의 답변에 당황했다. 한의사는 문제의 한약이 상한 것 같다고 인정하면서도, 부풀지 않은 나머지 한약은 괜찮을 테니 먹여도 좋다고 말했다. 납득할 만한 근거를 내세운 건 아니었다.

‘본인이 먹어보니 괜찮은 것 같으니 3살짜리 아이에게 먹여도 된다‘는 한의사의 논리는 B 씨에게 전혀 와닿지 않았다. 되레 의사는 한약이 부패한 책임을 부모에게 돌렸다. 보관을 잘못한 것 같다고 했다.

B 씨는 기분이 나빴다. 전문지식이 부족한 점을 이용해 한의사가 문제를 피해 보려는 속셈 같았다. 곧 이어지는 한의사 말은 B 씨를 결국 분노하게 했다.

“환불해 줄 테니까, 약 갖고 나가요.”

집에 돌아온 뒤 B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겪은 일화를 올리기로 했다. 10월 22일, B 씨는 A 한의원의 이름과 그곳에서 겪은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올렸다. 한의사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서 한 일이었지만, 피해 재발을 막을 의도가 더 컸다. 다른 사람이 자신과 같은 피해를 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A 한의원의 이름을 블로그에 썼다.

“한약이 부패하여 상하고, 불순물처럼 침전물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진심이 담긴 진정성 있는 사과의 한마디 말도 않은 채, 오히려 본인(한의사)도 먹었는데 이상이 없었으니 아이도 먹여도 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며… (중략) A 한의원을 이용할 수 있는 많은 분들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 B 씨는 블로그 인터넷 주소를 복사해 여러 곳에 붙여넣었다. 병원 정보를 공유하는 네이버 카페와 지역 정보 공유 사이트에 아래와 같은 글과 함께 블로그 주소를 첨부했다.

“부패로 인한 상한 한약을 아이에게 먹여도 된다고 하는 A 한의원의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담긴 블로그가 있습니다.”

보건소와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이트에도 앞서 올린 글과 비슷한 내용을 올렸다. 글을 쓸수록 B 씨의 비난 수위는 점차 올라갔다.

“이렇게 비윤리적이고, 비양심적이고, 의료인의 자질도 없는 이 한의원을 그냥 두고 봐야하는 건가요.”

B 씨는 네이버 지식인 등에도 글을 썼다. “한의사조차 상했다고 인정한 약을 어떻게 3살 아이에게 먹여도 된다고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느냐“며 문제의 약봉지 사진을 공유했다.

‘공익 → 비방’ 바뀌면서 1심 무죄, 2심 유죄

얼마 후 A 한의원 한의사는 B 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B 씨가 인터넷에 A 한의원 한의사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은 B 씨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기소했다.

검찰은 “B 씨가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연히 사실을 드러내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B 씨 손을 들어줬다. “표현상 오류나 과장은 있지만, 사실에 부합하고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고 동기를 밝힌 점“을 들어 2014년 2월 무죄를 선고했다.

B 씨의 행동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본 것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되지 않는 유일한 조건은 ‘공익적 목적’이 인정될 때다. 공익을 위해 사실을 유포하는 것에 대해서는 죄를 면해준다.

공익의 반대 개념은 비방으로 여겨진다. 1심 재판부는 ‘B 씨가 환자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의견을 제공한 점‘과 ‘특정 분야 인터넷 소비자에게만 정보를 제공한 점‘이 비방할 목적과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다.

“글의 공표 상대방은 피고인 블로그의 이웃이거나 한의원 등 의료 정보를 검색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에 한정되고, 그렇지 않은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을 보면… (중략)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B 씨 1심

2심에서 결과는 뒤집혔다. 2014년 8월, 2심 재판부는 원심을 뒤집고 B 씨에게 50만 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B 씨가 공익적 목적이 아닌 비방의 목적으로 글을 썼다고 여겼다.

2심 재판부는 ‘의사가 부패한 한약을 아이에게 먹여도 된다고 말했다고 오인할 수 있게 글을 쓴 점‘, 그리고 ‘부패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 책임이 모두 한의사에게 있는 것처럼 글을 쓴 것‘은 한의사를 비난하기 위해 한 행동 같다고 판단했다.

“보건소로부터 잘못된 보관 방법으로 한약이 부패했을지도 모른다는 답을 듣고도, 조제 과정에서 한약이 부패했다는 취지의 글을 게시한 점 등의 제반 사정을 법리에 비추어보면, 피고인(B 씨)이 적시한 사실은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 B 씨 2심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상고 기각 결정을 나오면서 2015년 3월 B 씨에게 벌금 50만 원형이 확정됐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소원심판’ 청구인 <셜록> 이명선 기자. ⓒ주용성

모호한 법원의 ‘비방의 목적’ 기준

소비자는 물품을 선택할 때 긍정이든 부정이든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소비자 권리는 우리 법에 보장되어 있다. ‘소비자가 물품을 선택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소비자가 사업자의 사업 활동 등에 대하여 의견을 반영시킬 권리‘가 있다고 소비자기본법 4조에 적혀있다.

헌법 제124조에도 “국가는 건전한 소비행위를 계도하고 생산품의 품질 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소비자 권리가 실제로 잘 실현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소비자가 의견을 표출하기 쉬워지자, 사업자가 자신에게 좋지 않은 내용을 쓴 소비자를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하거나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면, 유포한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지 간에 명예훼손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고소만으로 소비자의 입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사업자는 고소 혹은 고소 경고를 통해 손쉽게 안 좋은 평판을 관리할 수 있다.

문제는 ‘비방의 목적’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B 씨의 1심과 2심 결과가 달랐듯 ‘공익적 목적이냐 비방의 목적이냐’ 판단하는 법원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법원의 판단을 통해서만 처벌 여부가 가려지기 때문에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판례에 나온 비방에 대한 기준은 추상적이다. 내용과 유포 상대, 표현 방법 등을 고려해 비방의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정한다고는 하지만, 이를 근거로 비방 유무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판사 개인이다.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는지 여부는 적시 사실의 내용과 성질, 당해 사실의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방의 범위, 그 표현의 방법 등 그 표현 자체에 관한 제반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12도10392

B 씨와 유사한 일을 겪은 C 씨의 사례만 보더라도 추상적이고 모호한 ‘비방‘의 기준을 알 수 있다. 2011년 12월, C 씨는 유명 산모 인터넷 카페에 ○○산후조리원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온수 보일러가 고장 나고, 산후조리실 사이에 소음이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자 조리원에 환불을 요구했다.

C 씨는 환불 과정에서 겪은 조리원과의 갈등을 카페에 올렸다.

“250만 원이 정당한 요구의 청구인가를 물어보니 막장으로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네요. 제가 겪은 사실 모두 후기에 다 올리겠다 했더니 ‘해볼 테면 해봐라‘면서 오히려 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합니다.”

산후조리원 측은 C 씨를 고소했다. 명예훼손으로 피고인석에 선 C 씨는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C 씨 행동에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며 다음과 같은 이유로 2012년 6월 B 씨에게 50만 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막장 대응‘과 같이 다소 과격한 표현을 쓰는 등 비난 수위가 정도를 넘었다는 점을 유죄의 근거로 들었다.

“카페 회원 수가 20,000명이 넘는 점, 인격적으로 비난하는 표현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점, 피해자(산후조리원)가 피고인(C 씨)의 환불요구를 거절한 직후 게시물 및 댓글을 계속적, 중복적으로 게재한 점 등을 볼 때 주로 공공의 이익에 관하여 사실을 적시하였다고 볼 수 없다.” – C 씨 1심

항소 기각 후 이어진 대법원 판결은 정반대였다. “산후조리원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자 하는 임산부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정보 및 의견 제공이라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피고인의 주요한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산후조리원 이용대금 환불과 같은 다른 사익적 목적이 내포되어 있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인에게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산후조리원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는 내용의 글로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한 정도는 인터넷 이용자들의 자유로운 정보 및 의견 교환에 따른 이익에 비해 더 크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의 제반 사정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중략)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 C 씨 상고심

같은 사례, 다른 결론.

B 씨와 C 씨 모두 불만족스러운 서비스를 경험하고 환불을 요구했다가 사업주로부터 거절당한 후 사업주를 비난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둘 다 유죄, 무죄를 한 번씩 경험했지만, 결과는 크게 갈렸다. B 씨는 유죄, C 씨는 무죄가 나왔다.

한의원에 대한 불만을 인터넷에 게시한 B 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결국 벌금형이 확정돼 범죄자가 됐다. 반면, 산후조리원에 대한 불만을 인터넷에 게시한 C 씨는 항소심까지 유죄였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로 결론 나 억울함을 씻었다.

과연 B 씨와 C 씨의 결과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다만, 몇 가지 사실은 명확하다. B와 C 씨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겪은 고초는 형벌에 준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사업자가 소비자를 상대로 고소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알려지는 것만으로 입을 여는 소비자는 줄 것이다.

소비자 권리가 설 자리가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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