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계의 파수꾼이 쓰러졌다. ‘삽자루’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우형철 씨 얘기다. 우 씨는 인터넷 강의 업체의 댓글 조작을 세상에 처음 알린 수학 강사다.
그는 작년 3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다. 좋은 언변은 사라졌고, 가족의 도움으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비대면 수업 활성화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인터넷 강의 업계 상황과 비교하면 우 씨의 상황은 암담하다.
대성마이맥 ‘일타 강사’ 박광일 씨가 지난 18일 구속된 이후, 우형철 씨의 행적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일타 강사는 1등 스타 강사를 줄인 말이다. 박 씨는 대성 국어 1등 강사였다.
박 씨의 댓글 조작 의혹을 처음 제기한 사람이 바로 우형철 씨다. 우 씨는 2019년 6월, 자신이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에서 박광일 씨의 여론 조작 범행을 고발했다.
“박광일이 끝판왕입니다. 아이디별 콘셉트 설정해서 학년, 문-이과, 성별, 수강 과목 등을 조작해서 비하 작업용 아이디를 설정했어요.” – 우형철, 2019년 6월 22일, 유튜브 채널 ‘삽자루’에서
검찰 수사 결과, 우 씨의 주장은 상당 부분 사실이었다. 처음 의혹이 제기됐을 때 박 씨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법원은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박 씨 일당을 구속했다.
우 씨가 고발한 대로 박 씨 일당은 IP 추적을 피하기 위해 필리핀에 댓글 공장을 차렸다. 이들은 같은 대성 소속의 국어 강사에 대한 악플도 달았다.
”필리 박(박광일 지칭) 구속됐어.
“팡일(광일)이가? 그건 너무했네. 구속은 심했다.”
박 씨의 구속 소식에 우 씨는 씁쓸해했다고 우 씨의 가까운 동료 A 씨는 전했다. 우 씨가 사교육계의 댓글 조작 문제를 세상에 알린 건, 형사처벌을 위한 게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관련 사실 폭로 전에 박광일 씨 등 당사자들에게 해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문제 강사와 인터넷 강의 업체들은 이를 외면했다. 사교육 업체들은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우형철은 사비로 소송전을 이어갔다. 그렇게 싸운 세월만 12년이다.
“고소 (당하는 거) 무서워서 실명공개 꺼리지는 않을 겁니다. 깔끔하게 실명 때려버려야죠“ – 우형철, 2018년 8월 24일,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법원은 댓글 조작을 폭로한 우 씨의 행위는 범죄라고 판단했다. 그는 진실유포죄로 최소 두 번 처벌 받았다. 우형철 씨는 과연 범죄자일까, 공익제보자일까.
그가 건강과 명성을 잃으면서까지 밝힌 사교육계 비밀은 이렇다.
”나이, 성별, 최적합된 아이디를 추출하세요“
국내 대표 교육기업을 표방하는 디지털대성의 댓글 조작 역사는 유구하다.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금의 수법과 비교하면 10년 전 댓글 조작 수법은 원시적인 수준이다.
10년 전에는 사교육 업체 직원이 직접 가담했다. 대성 소속 직원 4명이 학생으로 가장해 수험생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자사 강사는 치켜세우고, 타사 강사를 비방했다.
위 사실은 디지털대성 부사장이 법원에서 직접 인정한 내용이다. 대성 부사장 법정 증언에 따르면, 대성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학생들을 기만하는 여론 조작에 가담했다.
댓글 조작 수법은 2013년 무렵부터 진화했다. IP 추적이 쉽고 우 씨가 사교육계의 댓글 조작 행태를 지적하자, 대성은 2013년쯤부터 댓글 조작을 대신해 줄 용역업체를 찾아다녔다.
2013년 11월, 대성은 한 바이럴 마케팅 회사와 계약을 체결했다. 말이 바이럴 마케팅이지, B 회사는 가짜 아이디를 돈으로 사서 대성을 위한 여론 몰이를 했다.
“다른 사람 아이디를 구매해서 대성에 관한 우호적인 댓글을 작성하는 것이 계약 내용이었습니다.” – B 회사의 법정 증언
2014년 3월, 대성은 다른 바이럴 마케팅 C 업체와도 계약을 맺었다. C 업체 주 업무는 대성 소속 강사 비판하는 글 지우기였지만, 가짜 아이디로 댓글 조작도 했다.
댓글 조작 회사의 핵심 기술(?)은 캐릭터 육성이었다. 그럴듯하게 캐릭터를 미리 만들어놔야 읽는 사람이 속기 때문이다. 이들은 10대가 쓸법한 용어로 댓글을 달았다. 업계에서는 이런 작업을 ‘네임드 작업’이라고 부른다.
이 작업은 쉽지 않았다.
“네이버 카페에 침투하는 ID들은 3개월 동안 50개를 침투시키고 떨어지는 ID를 지속 보충하여 50여개의 ID를 유지시키고 이후 떨어지는 ID 발생 시 위의 육성 전략을 도입하려고 합니다.” – 2013년 11월 B 업체가 대성에 보낸 이메일
대성은 선생님처럼 해결책을 제시했다. 대성은 두 차례에 걸친 B 업체와의 회의에서 ‘어떤 게시판을 공략하면 좋을지, 아이디는 어떤 방식으로 추출할지’ 방법을 친절히 알려줬다.
대성은 학생들이 자주 찾는 ‘디시인사이드 인강갤러리’가 주요 목표가 되어야한다고 지시했다. 아이디도 디시인사이드 스타일로 다시 만들라며 용역 업체에 족집게 과외를 해줬다.
“디시인사이드 인강갤러리를 주도할 수 있는 아이디를 분배해서 키워주세요. 나이, 성별, 최적합된 아이디를 추출하세요.” – 대성이 B 업체에 지시한 내용
댓글 조작 사실 폭로했다는 이유로 300만원 벌금형
아이디가 늘어나자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다중인격자들이 출몰했다. 재수 중이라던 사람이 한 달 만에 고3이 됐다. 예비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느닷없이 수능 강사를 추천했다.
한 네티즌의 글이 의혹에 불을 지폈다. 2014년 5월 16일, 익명의 네티즌이 쓴 ‘대성 알바의 정체 그것이 알고 싶다’란 글이 10대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다.
2014년 5월 22일, 우 씨가 나섰다. 이 글을 참고삼아 ‘대성 그 성장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제작했다. 그는 대성이 강사를 홍보하기 위해 여론 조작을 했다고 폭로했다.
“대성에서 이렇게 학생들을 현혹시키면서, 알바를 써가면서 돈을 벌어도 되겠습니까. 우리가 학원 강사지, 양아치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돈을 벌면 되겠습니까.” – 우형철, 2014년 5월 22일, 유튜브 채널 ‘삽자루’에서
대성은 우 씨를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검찰은 우 씨의 주장이 허무맹랑하다며 그를 기소했다.
2014년 8월 12일, 우 씨는 ‘멈추지 않는 대성 알바’라는 제목의 고발 영상을 또 공개했다. 범죄가 공개되고도 대성이 댓글 조작을 이어가자 결심한 일이었다.
”파렴치한 짓을 하는 회사가 어떻게 대한민국 학원의 재벌이 되겠습니까?” – 우형철, 2014년 8월 12일, 유튜브 채널 ‘삽자루’에서
수사 결과, 대성이 댓글 조작에 가담한 증거는 차고 넘쳤다. 대성 소속 강사 추천 글의 IP가 대성의 IP와 일치했다. 대성을 추천하는 아이디들은 몰려다니며 타사 강사를 비방하곤 했다.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중 대성 소속 강사 D 씨가 “내가 다 꾸민 일이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D 강사는 대성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이 벌인 일이라며 대성을 옹호했다.
압수수색 즈음 의심되는 문제 계정이 집단 탈퇴하기도 했다. 우 씨가 가짜 아이디로 지목한 계정들이 사라졌다.
검찰은 우 씨가 사기 등의 혐의로 디지털대성을 고소한 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댓글 조작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는 대성의 주장을 검찰이 받아줬다.
“사실을 말한 게 죄라면 달게 받겠습니다”
법원은 명예훼손 소송에서 대성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2016년 12월, 2018년 2월 두 번의 확정판결을 통해 우 씨에게 벌금 총 300만 원을 내라고 선고했다.
검찰은 대성의 댓글 조작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반면, 법원은 대성이 댓글 조작에 가담한 것이 맞다 봤다. 유포한 내용이 진실이기 때문에 법원은 우 씨를 ‘허위사실 명예훼손죄’가 아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했다.
대성은 애초 우형철을 허위사실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우 씨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자 법원은 공소 내용을 변경했다.
첫 번째 사실적시 명예훼손 재판에서는 법원이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허가하면서 죄명이 바뀌었다. 검찰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예비적 적용법조로 설정해달라고 하자, 법원이 이를 허락했다.
두 번째 사실적시 명예훼손 재판에서는 재판부가 직권으로 공소장을 바꿨다.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의 공소사실 중에 사실적시 명예훼손 공소사실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유죄라고 했다.
법원은 두 번의 재판 모두에서 우 씨의 폭로가 순수하지 않다면서 유죄로 판단했다. 그가 경쟁 회사 소속 강사인데다가 ‘몰염치’ 등의 어휘를 쓴 것은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다.
“수험생의 학원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공익 목적이 부수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주된 목적은 피해자 회사를 비방하는 것에 있었다고 판단되므로, 비방의 목적이 없었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이유가 없다.” – 서울서부지법, 항소심, 2017년 8월 10일
A 씨는 재판정에 선 우 씨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했다. 허위사실 명예훼손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공소 내용을 변경을 하겠다는 판사의 말에 우 씨는 벌떡 일어나 판사에게 외쳤다고 한다.
이 말은 ‘내가 한 대 맞더라도, 너의 범죄를 세상에 알리겠다’는 심정에서 터져 나온 말이었다고 A 씨는 전했다.
“사실을 말한 게 죄라면 달게 받겠습니다.”
주인 없는 우 씨의 유튜브 채널이 그를 응원하려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선생님이 이겼어요’, ‘정의가 승리한다’ 식의 댓글이 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