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이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아 두 배의 통증과 비용을 치르고 치과를 나올 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얼굴 본 적 없는 대학생이 보낸 SNS 메시지였다.
“혹시 <셜록> 탐사보도 교육생 관련 여쭤보고 싶은데, 메시지로 연락드려도 괜찮은가요?”
이미 메시지로 묻고선, 메시지로 연락해도 괜찮냐고 묻다니. 욱신거리는 왼쪽 볼, 헉 소리 터지는 병원비로 마음이 복잡했지만, 그래도 친절(?)하게 답장을 보냈다.
“넵, 괜찮습니다.”
내 몸과 마음 상태를 알 리 없는 이 젊은 친구는 또 메시지를 보냈다.
“올해에도 교육생 모집할 계획이 있나요?”
이번 달에 결제해야 하는 신용카드 대금 걱정으로 지금 내리는 함박눈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어떻게 훗날의 교육생 모집까지 생각하나.
메시지를 씹어 버리고 눈 속을 걸었다. 내가 꼽는 21세기 대한민국 최고 특종, ‘황우석 사태’를 취재 보도한 한학수 MBC 피디와 점심 약속이 있었다. 이가 아파도 한 피디와는 밥을 먹어야 했다. 내가 존경하는 언론인 아닌가.
식사를 마쳤을 땐 눈이 그쳤다. 배를 채우니 신용카드 결제금 걱정도 사라졌다. 메시지로 질문해도 되는지를 메시지로 물은 발랄한 학생이 떠올랐다. 늦은 답장 두 개를 연속으로 보냈다.
“(교육생 모집) 고민하고 있습니다.”
“<셜록> 교육생을 하고 싶으신가요?”
이번엔 학생이 내 질문을 씹었다. 2시간 뒤에 답장이 왔다.
“네, 맞습니다. 대학교 3학년 2학기 다녀야 합니다.”
이걸로 더 알아야 하는 정보는 없었다. <셜록> 탐사보도 교육생은 학생보다 졸업생이 더 적합하니, 발랄한 학생은 이미 녹아버린 눈처럼 내 마음에서 ‘아웃’ 됐다.
밤이 왔다. 학교를 마치려면 아직 한참인데, 그 학생은 왜 <셜록>의 문을 두드렸을까. 이번엔 내가 먼저 메시지로 물었다.
“아직 학생인데, 왜 <셜록> 교육생을 하고 싶다는 건가요?”
우라질, 이 학생 또 씹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문자 메시지가 아닌 장문의 자기소개서가 도착해 있었다. 한 대목이 이렇다.
“비록 완벽한 체계가 갖춰진 곳이 아니더라도 제 가치관에 부합한 곳에서 저널리즘을 배우고 싶습니다. (중략) 만약 탐사보도 교육생을 뽑는다면, 다른 언론사 인턴 대신 <셜록> 교육생이 되고 싶습니다.”
눈이 내리고 녹은 지난 2월 16일, 17일의 일이다. 그리고…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
그 주 일요일인 21일, <셜록> 공동창업자(누군지 아직은 비밀)와 함께 발랄한 학생을 만났다.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않은, 학생의 메시지를 받은 뒤 떠오른 구상을 이야기했다. 나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스페인 프로축구팀 FC바르셀로나(이하 바르샤) 알아요? 축구 ‘졸라’ 잘하는데…”
학생은 잘 모른다고 했다. ‘그래? 그럼 내가 이야기해 주지…’ 나는 길게 ‘썰’을 풀기 시작했다.
바르샤의 모토는 ‘클럽, 그 이상’
<셜록>의 모토는 ‘저널리즘, 그 이상’
믿거나 말거나, 의도적으로 모방하지 않았는데도 바르샤와 <셜록>은 팀 정체성을 나타내는 모토가 같다. 2010년대, 과르디올라 감독이 이끄는 바르샤 멤버 11명이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은 이런 말을 하며 비웃었다.
“저런 꼬꼬마들을 데리고 축구를 하겠다고? ㅋㅋㅋ”
모욕적이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바르샤의 공격진 메시–페드로–다비드 비야, 중원의 사비–이니에스타, 수비수 조르디 알바의 키는 모두 170cm 안팎으로 작은 편이다. 이런 ‘꼬꼬마’들을 운동장으로 내보낼 때, 과르디올라는 말했다.
“자, 이제부터 진짜 축구가 뭔지 보여주자!”
발재간 좋은 꼬꼬마들은 짧은 패스를 정신없이 이어가는 ‘티키타카’로 피지컬 좋은 거인이 운집한 명문 클럽을 차례로 박살 내고 세계 챔피언이 됐다. 이들이 주축이 된 스페인 대표팀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과 두 번의 유럽챔피언 연속으로 제패했다.
꼬꼬마들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진기명기 기술만 보여주지 않았다. 이들이 진정으로 보여준 건, 축구가 발명된 이후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는 단순하고도 명쾌한 진리, 바로 이것이다.
“이봐, 축구는 키–얼굴로 하는 게 아니야. 발로 하는 거라고!”
바르샤의 황금세대를 이끈 메시, 사비, 이니에스타, 페드로, 알바, 피케, 부스케츠, 푸욜, 발데스…이들은 모두 바르샤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인 ‘라 마시아’ 출신이다.
함께 운동하고, 비슷한 환경에서 바르샤의 축구 철학과 전술을 익힌 라 마시아의 아이들은 공을 잘 다뤘고, 마땅히 가야할 곳으로 공을 보냈으며, 그곳엔 어김없이 동료가 있었다. 이들이 세계 정상에 오른 건 우연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내가 학생에게 제안했다.
“<셜록>만의 ‘라 마시아’를 만들 생각인데… 거기 멤버로 들어올래요?”
발랄한 학생은 무모하기까지 했다. 모 일간지에 인턴 지원서를 냈는데, 그걸 버리고 <셜록>으로 오겠다고 했다.
언론사 사장(규모는 작아도 난 사장이다)에게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는 깡, 누가 만든 길이 아닌 내 길을 가겠다는 결심. 그거면 됐다. 뭘 더 바라겠는가. 같이 해보자는 말에 학생은 ‘정말요? 이게 다예요?’라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내가 허세를 떨며 거만하게 말했다.
“내가 있잖아요! 글쓰기, 취재… 그런 건 제가 가르쳐 주면 되죠.”
다음날인 22일, 모 일간지는 이 학생에게 ‘인턴 1차 합격’ 문자를 보냈다. 학생은 그 언론사에 “가지 않겠다”고 답했다. 며칠 뒤, 새 사실도 알았다. 이 학생은 <시사인> 대학생 기자상을 탄 인물이었다. “상 탄 거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내가 물었다.
“부끄럽게, 뭘 그런 걸…”
그래, 그런 겸손함이면 충분하다. 더 바라는 건 욕심이다. 이 학생 포함, 총 세 명을 선발했다. 우린 한국 언론사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로 했다.
바르샤의 ‘라 마시아’에서 영감은 얻은 <셜록>의 ‘유러스 프로그램’. 취재방법, 글쓰기 등 기술 전수에 그치지 않고 <셜록>의 철학, 가치관, 목표를 배우고 공유하는 장기 교육 프로그램이다. 우린 돈 받고 교육하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반대로 돈을 주고 교육을 시킬 생각이다.
우리의 목적은 분명하다. 적당히 그렇고 그런 기자가 아닌 ‘<셜록> 기자’를 키우는 거다. <셜록>은 이제 이전의 교육생과 유러스 멤버 중에서만 기자를 선발할 예정이다.
대한민국에서 대입제도보다 징그럽게도 달라지지 않는 게 바로 언론사 공채 시스템이다.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해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던 시절에도 언론사는 ‘서류–필기시험–면접’으로 기자를 선발했다.
집마다 전화기를 설치하는 감격시대를 찍고, 공중전화기 앞에 줄을 길게 서는 삐삐시대를 넘고 넘어, 스마트폰을 든 지리산 할머니가 미국 뉴욕의 손녀와 화상대화를 하는 오늘날에도 언론사는 ‘서류–필기시험–면접’으로 기자를 선발한다.
박정희가 죽고 그 딸이 대통령을 하고 감옥에 갈 만큼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에도, 언론지망생은 한 장소에 떼로 모여 필기시험을 치고 같은 주제와 소재로 논술시험을 친다.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만큼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뭔가 이상하고 기괴하지 않은가.
<셜록>은 답답한 동굴에서 나오기로 했다. 동굴에서 나오니 사방팔방 길이 열려 있다.
유러스(Eurus)는 그리스 신화에서 동풍(東風)의 신을 뜻하는 에우로스에서 비롯됐다. 별들의 신과 새벽의 신 사이에서 태어났다. 영국 드라마 <셜록>에서 유러스는 셜록 동생 이름이다.
이제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정식 요원인 셜록, 셜록 이전 단계인 유러스, <셜록>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왓슨으로 구성된다.
새 출발선에 선 세 명이 모인 첫날, 내가 물었다.
“떨려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다. 떨리고, 무섭고, 두렵지 않은 길은 가면 안 된다. 우린 제대로 된 길을 가는 중이다.
바르샤의 전성기를 이끈 과르디올라 감독이 ‘라 마시아의 아이들’을 운동장에 내보낼 때 한 말을 ‘유러스의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다.
“자, 이제부터 진짜 저널리즘이 뭔지 보여주자.”
<메시지를 보냈다, 제대로 낚였다> – 유러스 멤버 이나영
환한 머리에 자리 잡은 갈색 비니. 거칠어 보이는 갈색 가죽 재킷.
박상규 선배의 첫인상이다. 바로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그를 만날 줄은 몰랐다. 사실 <셜록>을 제대로 안 지도 얼마 안 됐다.
몇 달 전, 후배가 페이스북에 공유한 기사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한 여성이 빨간 테이프로 입을 막은 채 헌법재판소 앞에 서 있는 사진. 테이프엔 ‘진실유포죄’가 적혀 있었다.
해당 기획 기사들을 지하철에서 정주행하였다. 처음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다른 기사들도 읽었다.
어느덧 <셜록> 유튜브 영상을 섭렵하고, 재심 프로젝트 3부작을 담은 책 <지연된 정의>를 읽고 있었다. 한 마디로 <셜록>과 박상규 선배한테 꽂혀 있었다. <셜록>에 내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을까? ‘무대뽀’ 성향이 발동했다.
“안녕하세요, 올해에도 교육생 모집하실 계획 있으신가요?”
단순히 교육생을 모집하는지 궁금했다. SNS로 인사치레 수준의 메시지가 몇 번 오갔다. <셜록> SNS 계정으로 “아직 학생인데 셜록 교육생을 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요”라는 메시지가 왔다.
예비 취준생의 촉이 왔다. 이 기회는 잡아야 한다. 그동안 제출했던 자기소개서에 비하면 짧지만 진솔한 글을 써서 보냈다. 만나자는 OK 싸인이 떨어졌다. 얼떨결에 <셜록> 창업자들과 밥 먹는 자리가 마련됐다.
사람들은 눈매로 상대방의 성격을 종종 파악한다. 나처럼 고양이 눈매를 가진 사람은 차가울 거란 오해를 받는다. 사람의 눈빛은 다른 외적 요소보다 많은 정보를 준다. 편견이든 아니든 말이다.
어쨌든 박 선배의 눈은 착해 보였다. <지연된 정의>에 보인 휴머니즘이 담겼다고나 할까. 선배의 이야기는 더 흥미진진했다.
작년에 군 자살 사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레퍼런스로 봤던 탐사보도 영상이 있다. 특성화고 졸업을 앞둔 고등학생이 회사 현장실습에 나갔다가 자살한 사건이다. 알고 보니 선배가 <연합뉴스> 단신 보도에서 발제한 아이템이었다. 2005년 군 의료 기록 조작 사건의 취재기에선 젊은 기자 시절 박 선배의 패기를 보였다.
5시간 이어진 대화는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꿈이 기자다. 사람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고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다. 선배는 기자를 꿈꾸는 내게 기회를 줬다. 오랜만에 설레는 감정을 느꼈다.
이젠 선배의 다른 이야기와 취재 방법이 궁금하다. 어떻게 하면 좋은 문제의식과 휴머니즘이 공존하는 기사를 쓸 수 있을까. 그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유러스가 되었다.
왓슨에게 부끄럽지 않은 셜록 구성원이 되는 게 목표다.
<‘기자’ 이름값을 하고 싶습니다> – 유러스 멤버 박나리
자칭 ‘정석 기자 지망생’입니다. 신문을 읽고 밥상머리 토론을 즐기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기자를 꿈꿨습니다. 기자 되기 좋다는 사회학과를 선택했습니다. 교내방송국에 들어가 명함 들고 학교를 누비며 취재했습니다.
“넌 기자랑 잘 어울려, 기자 될 것 같아.”
친구들의 칭찬(?)과 달리, 취재하며 꿈을 잃어갔습니다. 군에서 입은 부상으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을 앓고 있는 취재원에게 병의 고통을 캐물었습니다. 아들의 시신이 있는 안치실에서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를 두고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든 다큐멘터리의 조회 수는 천여 회, 보도 이후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소외된 목소리를 찾아 그들에게 위로가 되는 뉴스를 만들었습니다’고 적은 자기소개서의 문구가 싫었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보도한 이후 달라진 건 제 경력뿐인 것 같았습니다. 기자는 왜 고통을 마주하고 이를 전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필요했습니다.
이대로 ‘언시생‘이 되고 그다음엔 언론사에 취직한 ‘직장인‘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우연히 진실탐사그룹 <셜록>을 만났습니다. 은행권 채용 비리를 알리고 비리 입사자가 퇴사하기까지 관심을 놓지 않는 솔루션 저널리즘, 포털 화면을 빼곡히 채운 기사들 틈에서 자신의 문법으로 기사를 그려가는 모습이었습니다.
기자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사회의 여러 면면에 귀 기울이고 이를 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자’로 목표를 고쳤습니다.
박상규 선배는 제 생각을 존중했습니다.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우연한 만남은 필연이 됐습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사대문 안에서 만나기 어려운 존재를 조명하며 출발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출발하고 싶습니다. 사회의 아픔을 직시할 때 느끼는 불편한 마음에 지고 싶지 않습니다.
‘고통에 눈 감은 채 고통과 연대할 방법은 없다.’
가려진 목소리들을 듣고 전달하고 싶습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진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기사 안에 사람을 담아내는 <셜록>과 함께하며 고민의 답을 찾고 싶습니다. 시원한 해답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현장을 누비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려 합니다.
<기막힌 아이템을 시작합니다> – 유러스 멤버 남궁현
“이거 왜 하고 싶어요?”
“재밌어 보이니까요.”
‘아차!’ 싶었습니다. 5월 날씨에 걸맞지 않게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탐사보도 교육생 면접에서 ‘재미’를 운운하다니. 맞은편의 박상규 기자가 절 노려보는 듯했습니다. 갓 군에서 전역한 대학생티를 못 벗은 철없는 답변이라 자책했습니다. 이틀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뭐 하고 지내십니까?”
박상규 기자였습니다. 얼떨결에 “커피 마시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셜록>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사진과 사람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중학생 때 공모전 상품으로 카메라를 받은 뒤 줄곧 사진을 찍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땐 세월호 참사를 접하며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두 관심사가 맞물려 대학 진학 후에는 사진기자를 꿈꿨습니다. 사람 이야기를 담는 목격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대한항공 직원들의 총수 ‘갑질’ 규탄 시위, 광화문광장의 태극기 집회 현장 등에서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사진에 함께 할 글을 쓰려는데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체계적인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친한 형으로부터 <셜록> 교육생에 지원하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글로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셜록> 기사를 제 사진으로 채우겠다는 사심도 생겼습니다.
교육생 합격 후 제 이름이 새겨진 <셜록> 명함을 받았을 때 무척 신났습니다. 취재원을 대하는 태도부터 판결문 구하는 방법까지, <셜록> 구성원과 동기들로부터 많은 걸 배웠습니다. 하지만 교육생으로 보낸 3개월은 너무 짧았습니다. 취재를 끝내지 못한 채 학교로 돌아갔을 땐 갑자기 잠에서 깬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요즘 뭐 하고 지냅니까?”
반년이 지난 2월의 어느 쌀쌀한 오후, 박상규 기자가 다시 전화로 안부를 물었습니다. 한없이 늘어진 채 방학을 보내던 저는, 얼떨결에 “운전 연습하며 지낸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저녁 때 삼겹살을 사준다기에 주저 없이 집을 나섰습니다.
“내가 기막힌 아이템이 하나 있는데… 관심 있어요?”
고기를 구워주던 박상규 기자가 제게 물었습니다. 솔깃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덜컥 휴학한 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교육생 과정에서 못다 한 취재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기막힌 아이템’은 유러스 동료와 함께 준비중입니다. 이렇게 글로 남겼으니 꼭 완성해야겠습니다. 또 못하면 부끄러울 테니까요.
“뭐 하고 지내냐’”는 박상규 기자의 질문에 주저 없이 답할 시간을 보내겠습니다. ‘기막힌 아이템’이 뭐냐구요?
곧 기사로 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