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015년 6월 10일에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가슴 속에서 뭔가가 쿵하고 내려 앉았다. “몸보다 마음이 피곤하다“는 일기의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 그랬다.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은 그날의 답답함을 저 문장으로 표현했다.
이 기획을 시작할 때 공언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다고 말이다. 우선 황상만 전 반장이 앞장섰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진짜 범인은 거리를 활보하고, 15살 소년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 이들은 침묵하는 현실. 황 전 반장은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는 글을 썼다.
호소문과 함께 12년 전 그가 쓴 일기도 공개한다. 정확히 2003년 6월 8일 일요일 밤에 쓴 일기다. 바로 그 전날, 진짜 살인범은 유유히 경찰서를 빠져 나갔다. 황 전 반장은 곧바로 다짐했다.
‘경찰 얼굴에 먹칠을 하겠다. 진실을 보여주겠다.’
그는 왜 이런 다짐을 했을까. 황 전 반장의 오래된 일기와 호소문, 일독을 권한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이제 2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오래된 일기] 2003년 6월 8일 일요일 밤에
나는 그 소년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이름이 최성필(가명)이라고 했던가? 검거 당시 만 15세의 어린 나이였다지. 왜 우리는 솔직하지 못할까?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걸까?
“나는 범인이 아니다“라고 3년 동안 외쳐댄 힘없는 어린아이의 절규를 왜 외면하는가. 법은 만인 앞에서 평등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중략)
나는 2000년 8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며칠 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의 파장을 왜 모르겠는가.
모른 척 덮어둘까? 그러면 범인으로 검거되어 교도소에 있는 그 아이는? 생을 마칠 때까지 세상과 경찰을 원망하고, 힘 없는 자신까지도 미워하며 사람다운 생활을 포기하며 살아갈지도 모르는데..
진범이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당시 그 소년을 검거해 승진까지 한 담당 형사는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겠지. 경찰에 대한 원망이 쏟아지고, 높은 분들은 나에게 경찰 얼굴에 먹칠한 놈이라고 욕을 하겠지.
그냥 모른 척 할까? 그러면 내 자신의 양심은 물론, 형사로서의 양심, 어른으로서의 양심을 모두 버리고 국민을 속이는 결과가 된다. 게다가 억울하게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어린 소년에게는 더욱 큰 죄를 짓는 결과가 될 텐데 어떻게 하나.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한 명의 무고한 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정의라고 하였던가. (중략)
며칠밤을 고민한 끝에, 나는 15만 경찰의 얼굴과 명예에 먹칠한 놈이 되고자 결심했다. 자신의 살을 도려내는 고통이 있다 해도 이 일은 결코 숨겨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우리 경찰이 반성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진정으로 국민에게 신뢰와 박수를 받는 경찰이 되어야 한다. 어떤 동료는 나에게 말한다.
“왜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하세요?”
죄 지은 자를 벌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지만, 죄 없는 자를 벌하는 것은 너무 큰 잘못이다. 그렇기에 수사 단계를 거쳐 심리하고, 이에 의거해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이 사건에서, 우리 경찰과 검찰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수사를 하였는가? 법원은 진정한 법의 양심에 따라 판단했을까? 변호사는 진정으로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양심껏 변론했을까? 이번 사건은 경찰, 검찰, 법원, 변호사 모두의 책임 아닌가?
김OO! 나는 이 사람이 진범이라고 확신한다. 사건 당시 이 사람은 가방에 칼을 넣고 택시를 탔다. 첫 번째 택시에서는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내렸고, 두 번째 택시를 타고 가던 중 강도를 하려다 피해자(택시기사)를 칼로 마구 찔러 사망하게 했다.
그런데, 자백만 가지고는 처벌하기가 어렵단다. 3년 전에 범행에 사용된 피묻은 칼을 찾아야만 하고, 범행 당시 입었던 피묻은 옷을 찾아 증거로 제출해야만 범인으로 인정할 수 있단다. 더구나 (김OO은) 범행 후에 살던 집에서 이사까지 했는데..비행기에서 떨어진 바늘을 사하라사막에서 찾는 게 더 쉽지 않을까? 김OO은 수차례 자백을 했고, 그의 제일 친한 친구 OO의 보충 진술까지 여러 번 있었다.
그렇다면 천안소년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최성필에게는 위와 같은 물적 증거가 단 하나라도 있었다는 말인가? (중략)
이 세상에 어떤 범인이 십 여 차례 칼질을 하여 사람을 죽여놓고 (곧바로) 태연하게 목격자인양 신고한 다음 현장에서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겠는가. 게다가 (최성필은 당시) 15세밖에 되지 않았다. 십 여 차례나 칼로 사람을 찌른 범인의 옷에 단 한 방울의 피도 안 묻을 수 있는지도 판단해 보라. 전문적인 도살꾼이라도 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자백이 있었다는 이유로 2심 법원까지 (최성필을) 극악무도한 살인자로 인정했다. 물론 자백은 증거의 왕이다. 그러면 사건 후 3년이 지난 지금, 자신이 그 사건의 범인이 틀림없다고 자백하고 이에 대한 보충 자료까지 확보된 진범의 자백은 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인가. 오히려 (김OO의) 자백이 더 신빙성 있지 않은가?
(김OO을) 진범으로 인정하면 경찰의 망신, 검찰의 망신, 법원의 망신이라니..망신당하기 싫어서,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힘 없는 어린 소년을 앞으로도 7년 동안 어둠과 고통 속에 방치하는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말인가?
나는 밝혀낼 것이다. 어느 누가 진짜 범인인지를. 이로 인하여 누가 망신을 당해도 좋다. 나 역시 경찰의 한 사람으로서 비난받고 돌멩이를 맞아도 좋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는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진실과 정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고,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피곤하다, 정말 피곤하다. 몸보다는 마음이..
[호소문] 이제 겨우 두 달 남았습니다
저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해 사건의 진범을 체포했지만, 검찰의 석방 지휘로 여러 차례 자백까지 한 살인범을 석방해야만 했던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 황상만입니다. 제가 진범을 체포하기 3년 전인 2000년 8월, 당시 15살이었던 최군이 살인범으로 몰려 10년을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가 석방된 지도 5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최군의 ‘잃어버린 10년‘을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최군은 자신의 누명을 벗겨달라고 2013년 4월 광주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2년이 넘었지만, 법원은 지금까지 묵묵부답입니다. 이 사건 공소시효는 오는 8월 9일 완료됩니다. 이날이 지나면 진범을 영원히 심판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살인자라는 누명
최군은 30세가 되었습니다. 결혼을 해 귀여운 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군에게는 여전히 ‘살인자‘라는 누명이 남아 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최군과 그의 어머니에게 1억4000만원을 물어내라는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최군은 평생 ‘살인자‘로 살아야 합니다. 최군의 아들은 평생 살인자의 자식으로, 그 자식은 다시 살인자를 할아버지로 둔 오명을 짊어진 채 살아야 합니다.
이와 반대로 검찰이 풀어준 진짜 살인범은 지금까지 단 하루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하며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30년 넘는 세월 동안 경찰로 살면서 수많은 강력 사건을 수사하고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사건은 저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퇴직해 수사권도 없는 저를 흔듭니다.
국가가 진짜 살인범을 풀어주고, 15살 소년에게 누명을 씌웠습니다. 이걸 그냥 두고 봐야 합니까? 저의 양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곧 공소시효가 끝납니다. 최군이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약 1년간 제가 진범을 수사한 사건기록(복사물)이 지금 광주고등법원에 있습니다. 재심을 청구한 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15살 소년에게 큰 잘못을 저지른 경찰, 검찰, 법원은 여전히 침묵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힘이 아니면 이 사건은 해결할 수 없습니다.
침묵은 때로 악을 돕습니다. 이제 15살 소년에게 정의를 돌려줘야 합니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재심과 재수사 촉구 서명에 동참해 주십시오.
제가 앞장서 법원과 검찰에 여러분의 서명용지를 전달하겠습니다. 공소시효까지 이제 겨우 두 달 남았습니다.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