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 2015년 6월 17일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드디어 진실이 제 자리를 찾을까?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실이 15년 만에 밝혀질까?
택시기사를 살해했지만 하루도 처벌받지 않은 진범 김OO, 그를 구속시키지 않은 정OO 검사, 15살 소년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 익산경찰서의 그때 그 형사들도 지금 이 기사를 보고 있을 듯하다. 이들과 여러 독자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전한다.
“법원이 진범 김OO의 자백 내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법의학자에게 과학적 근거를 물었고, 누구도 예상 못한 곳에서 의미있는 자료가 발견됐습니다.”
말 그대로다. 이 사건 공소시효가 두 달도 남지 않은 지금, 진짜 범인이 누군지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발견됐다. 살해 피해자의 사체를 부검한 부검의가 당시 손으로 작성한 기록이 그것이다. 이는 진범의 자백을 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인 증거여서 그 의미가 크다.
법원이 법의학자에게 의견을 물었다는 사실 자체도 중요하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2000년 8월 10일에 발생했다. 며칠 뒤 15살 소년 최성필(가명)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다. 진범 김OO은 3년이 지난 2003년 6월 5일 군산경찰서에 체포돼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OO을 풀어줬다. 결국 그의 자백은 단 한 번도 법원에서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지 않았다. 누명을 쓴 최성필씨의 진술 역시 과학적으로 검증받지 못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5년 만에, 드디어 법원이 법의학자에게 과학적 의견을 물었다. 누구 진술이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고 신빙성이 있는지 따진 셈이다. 법원은 왜 움직이기 시작했을까? 새로운 자료는 어떻게 세상에 나왔을까?
15살에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10년을 보낸 최성필(가명)씨는 2013년 4월 광주고등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접수했다. 이 법원 제1형사부 서경환 재판장은 지난 5월 21일 조선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김윤신 교수에게 사실조회를 요청했다.
김 교수는 택시기사 살인사건이 발생한 2000년 8월 10일 그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서부분원 법의학 과장이었다. 그는 다른 부검의와 함께 택시기사 유OO씨 사체 부검에 참여한 인물이다.
살해된 인간의 사체에는 대개 범인에 대한 정보가 남는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사체의 흔적으로 범인의 살해 도구와 방법을 추정하고, 범행에 소요된 시간을 유추하기도 한다.
법원은 이런 여러 가지를 김 교수에게 물었다. 질문만 던지지 않았다. 검사가 작성한 가짜 살인범 최성필의 신문조서, 군산경찰서가 체포한 진짜 살인범 김OO의 신문조서까지 첨부해 이렇게 물었다.
“피해자(사망한 택시기사)에 대한 자료와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는 조서는 어느 것입니까?”
김 교수는 답변서를 지난 6월 9일 광주고등법원에 접수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질문의 취지는 짐작이 가지만, 양자택일의 판단은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생각됨. 다만, 최성필의 진술 내용에는 상당 부분 부자연스러운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보이는 반면, 김OO의 진술 내용은 상대적으로 더 신빙성이 높아 보임.”
김 교수는 왜 이렇게 답했을까?
추후 보도하겠지만, 누명을 쓴 최성필의 진술에는 모순이 가득하다. 범행 과정은 증인의 진술과 다르고, 사체에 남은 흔적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반면 김OO은 진범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정보까지 자세히 자백했다. 핵심은 이것이다.
“칼로 오른쪽 목 밑 쇄골 부위를 찌르자 칼끝에 뼈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칼로 찌른 후부터는 택시기사에게 붙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 마구 찔렀습니다.”
쇄골 부위를 찌르자 칼끝에 뼈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매우 구체적인 진술이다. 법원도 이를 눈여겨 본 듯하다. 김OO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사체, 특히 갈비뼈에 흔적이 남지 않았을까? 법원은 부검에 참여했던 김 교수에게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었다.
“부검 결과, ‘갈비뼈 손상 흔적‘이 있었습니까? 있었다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2000년 사건 당시에도 부검감정서는 작성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감정서에서는 갈비뼈 손상 여부, 부위, 정도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김 교수는 과거 감정서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정확한 답변을 위해 국과수 서부분원을 찾아 당시 부검기록을 살폈다. 바로 여기에 당시 부검의가 부검 과정을 손으로 작성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갈비뼈 손상 부위와 그 정도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발견된 셈이다. 여기엔 2000년에 작성된 감정서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적혀 있다. 이를 바탕으로 김 교수는 법원에 보낸 답변서에 이렇게 적었다.
“(사체) 우측 제2번, 제3번 늑골(갈비뼈)의 절단 혹은 부분 절단 흔적이 있었음.”
우측 2번, 3번 갈비뼈는 김OO이 언급한 쇄골 아래에 있다. 법원은 이번엔 흉기 손상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묻는다.
“늑골을 충격한 흉기의 흔적을 본 사실이 있습니까? 본 사실이 있다면, 흉기에 어떤 흔적이 남을 수 있습니까?”
김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흉기의 종류나 강도(굳음의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을 것이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할 때, 통상적인 부엌칼이나 과도의 경우라면 흉기에 손상이 동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됨.”
법원이 위의 질문을 한 이유가 있다. 진범 김OO의 친구 임OO은 범행도구인 칼을 봤다면서 “가정집에서 쓰는 식칼이었는데, 칼끝이 휘어 있었습니다. 칼에는 피와 돼지비계 모양의 지방분이 많이 묻어 있었습니다“라고 군산경찰서에서 진술했다.
즉, 법원은 임OO의 진술이 믿을 만한지, 정말 칼끝이 휘어질 가능성이 있는지 물은 것이다. 법의학자인 김 교수는 “그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다. 김 교수는 법원에 보낸 답변서에 이런 내용도 담았다.
“임OO의 진술 내용 중, 특히 흉기에 관한 부분은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감이 있다고 생각되며, 더욱이 김OO, 임OO 두 사람의 진술 내용은 서로 모순되거나 부딪히는 부분이 없다고 판단됨.”
정리하면 이렇다.
1. 쇄골 부위를 찌르자 칼끝에 뼈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범인의 자백)
2. 부검 결과 갈비뼈가 절단, 손상됐다. (사체 부검 결과)
3. 부엌칼이 갈비뼈를 충격하면 손상될 가능성이 높다. (부검 참여 법의학자 의견)
4. 식칼의 칼끝이 휘어 있었다. (범행도구 칼을 본 목격자 진술)
자, 어떤가. 범인의 자백 – 사체에 남은 흔적 – 범행도구를 본 목격자의 진술이 충돌하지 않는다. 여기에 국과수 기록까지 존재한다. 법의학자 역시 이런 상황과 상반되지 않은 의견을 법원에 제출했다. 15살 소년이 누명을 벗기 위해서는 무엇이, 얼만큼 더 필요한가.
국과수의 기록과 더불어 새롭게 안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진범 김OO은 개명을 했다. 기사를 보고 있을 그에게, 살인범을 풀어준 검사에게, 15살 소년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 경찰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이름을 바꾼다고 과거 행적까지 바뀌는 건 아닙니다. 진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