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015년 6월 19일에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15살 소년이 살인 누명을 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그 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습니다. 그는 지금 개명을 한 채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누명으로 감옥에서 10년을 보낸 최성필(가명)은 여전히 고통속에서 지냅니다. 어른이 되어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아직 ‘살인자’라는 꼬리표를 못 뗐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때는 2000년 8월 10일 새벽. 15년이 지났지만 그는 지금도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고통은 다른 가족에게 이어졌습니다.
최성필의 아내가 독자 여러분에게 직접 글을 썼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최성필(가명)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부탁 아닌 부탁을 하려합니다.
저는 남편을 믿고 의지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편견과 오해가 있었다면 올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저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방송을 보고 알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지, 왜 국가가 한 아이의 인생을 망가트리는지, 크게 놀랐습니다.
방송을 본 후 약 6개월 후 남편을 만났습니다. 큰 덩치와 어울리지 않게 순하고 착한 남자였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10년을 보내고 나온 사람이라는 걸 전혀 몰랐습니다. 어느날 그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혹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이야기 알아?”
“TV에서 봐서 알지. 그 살인 누명 쓴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 아이가 바로 나야.”
깜짝 놀랐습니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명을 썼던 그 15살 소년이라니요. 처음엔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방송을 다시 봤습니다. 수없이 여러 번 사건을 검색했습니다.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이 세상에 많은 남자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 누명 쓴 소년이 어른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을까. 헤어져야 하나..’
솔직히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만날수록, 내면을 알수록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제 남편은 정도 많고 곁의 사람을 아낄 줄 아는 남자입니다. 다른 사람부터 생각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남편이 어린 시절 살인 누명을 썼습니다. 가슴이 저리더군요.
제 남편은 살인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을 했고, 미래를 함께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희의 사랑으로 아이도 태어났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모두 똑같다고 했지요. 저와 남편은 아이를 잘 키우고 싶습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게 있더군요. 저와 모든 가족은 그가 살인범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살인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습니다.
‘그럼 내 아이는 살인자의 자식이란 말인가.’
아버지의 누명이 자식에게까지 되물림 되는 건 아닌지, 가슴이 무너집니다. 저와 남편이 바라는 건 딱 하나입니다. 재심이 열리고 거기에서 ‘최성필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라는 판결을 받는 것, 오직 그뿐입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 아닌가요?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괜한 고집과 주장이 아닙니다. 곧 이 기획 ‘그들은 왜 살인범을 풀어줬나‘를 통해 보도가 될 겁니다. 남편이 사람을 죽였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가 입었던 옷, 경찰이 어디선가 가져온 칼.. 그 어디에서도 피해자의 혈흔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뿐인가요? 남편이 허위로 진술 내용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피해자 사체 부검 결과에도 다릅니다. 게다가 범행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진술도 남편의 말과 다릅니다.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고 무섭습니다. 도대체 경찰이 어떤 강압수사를 하고, 15살 소년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남편은 허위자백을 했을까요? 며칠 동안 경찰서에서 맞은 그 아이는 과연 무엇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요? 한 아이의 인생이 거기서 무너졌고, 누구도 보상할 수 없는 10년을 감옥에서 잃었습니다.
저에겐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좋은 추억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을 감옥에서 보낸 남편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습니다. 이제라도 좋은 기억을 그에게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옆에서 남편을 보고 있으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좁은 감옥에서 10년을 산 탓인지 건강도 나빠졌답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정신적 상처는 더욱 큽니다. 그는 아직도 떨고 있습니다. 사람 많은 곳에 가거나, 낯선 타인을 만날 땐 꼭 저를 데려갑니다. 조금 이상하여 시어머니에게 왜 그런지 물어봤습니다. 시어머니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습니다.
“성필이가 아직도 그러니?”
“예, 어딜 가든 꼭 저를 데려 가려고 해요. 예전에도 어머니랑 같이 다녔어요?”
“예전에 나한테 말하더라. 사람들이 자기를 살인자로 볼까봐 무섭고 두렵다고.”
또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왜 하필 살인사건이 벌어진 그날 그 시간에, 그 거리를 지나서 누명을 썼을까요. 저는 남편 앞에서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소한 일에 울고 짜증을 내면, 남편을 얼마나 울고 싶은 일이 많을까요? 세상 어디에서 자기 아픔에 대해 하소연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저희는 평범한 사람, 평범한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이게 그렇게 큰 욕심이고, 이기적인 생각인가요? 이 사회는 우리에게 왜 이렇게 가혹할까요?
남편에게 붙은 그 지긋지긋한 살인자라는 꼬리표를 이젠 떼주고 싶습니다. 죄 없이 10년을 감옥에서 살았고, 여전히 고통받고 있으니까요. 또 제 아이는 어떻게 합니까. 죄 없는 그 아이도 ‘살인자의 자식‘으로 고통받게 해야 하나요?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두려움 없이 살고 싶습니다. 제 자식을 그런 사회에서 키우고 싶습니다. 재심은 반드시 열려야 합니다. 법정에 다시 서기만 하면 남편은 무죄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사건을 재수해야 합니다.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15년을 기다렸습니다. 충분히 가혹한 세월이었습니다. 더 기다리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다른 걸 바라지 않습니다. 진실, 우리 가족은 오직 그것만을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