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의 파면 징계를 권고 받고도, 아무런 징계 없이 오히려 학교 임원으로 돌아온 사람이 있다. 그는 2013년 8월 9일부터 2016년 2월 29일까지 하나고등학교 교장을 맡은 이태준이다.
그는 2021년 4월 현재 하나고등학교 법인 하나학원의 이사다.
이태준 전 교장은 2015년 서울시교육청의 하나고 특별 감사 당시 주요 비리 책임자로 꼽혔던 인물이다. 그가 관여한 비리는 수가 많아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신입학 및 전편입전형 성적관리 부당처리, 교원 채용 업무 부당처리, 계약업무처리 부적정, 하나국제영어캠프 회계업무 부당 처리, 학교매점 위탁 운영 임대료 관리 부적정 등…”
당시 하나고는 남녀 성비를 맞추기 위해 지원자들의 점수를 깎거나 더하는 등 고의로 성적을 조작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이 씨가 하나고 교장으로 있을 2014년도 당시,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딸 김새미(가명)가 그해 8월 편입학 전형에서 면접 점수가 상향 조정된 사실이 밝혀졌다.
면접 전형 당시 김새미는 총점 12점을 받았는데, 돌연 14점으로 상향 조정되어 전산에 입력됐다. 면접 점수가 상향 조정된 김새미는 2014년 8월 하나고 전·편입학 전형에서 최종합격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교장에 대해 “전편입학전형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지도 감독의 의무를 소홀히 해 전편입학 전형의 공정성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교원 채용 업무 부당처리‘도 그의 책임이 크다. 이 교장은 2011년~2013학년도에 채용된 하나고 기간제 교사를 2014년~2015학년도에 공개채용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근무성적 평가 및 면담을 통해 부적정하게 정교사로 전환시켰다. 당시 이 교장은 최종 결재권자로서 총괄 책임자였다.
이 교장은 2015학년도 신규교원 채용 당시에도 학교를 방만하게 운영했다.
교원평가위원장인 정철화 하나고 교감은 공고에도 밝히지 않은 별도의 서류전형을 평가 항목으로 포함시키는가 하면, 객관적인 평가 기준도 없이 교원 지원자들에 대한 평가를 단독으로 실시했다. 그럼에도 이 씨는 학교장으로서 이를 바로잡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교장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 투명하게 이뤄져야 할 신규교원 채용질서를 문란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러한 감사 내용을 근거로 이태준 교장에게 중징계(파면) 조치를 권고했다.
정철화 당시 교감도 하나고 비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정 교감은 2009년 3월부터 2019년 5월까지 하나고에서 교감 및 교장직무대행으로 근무했다. 그는 학부모에게 강아지 ‘골든 리트리버‘를 요구한 사건으로 2015년 5월경 서울시교육청에서 중징계(정직)를 권고받기도 했다.
정 교감은 이 교장과 마찬가지로 ‘신입학 및 전편입학전형 성적관리‘와 ‘교원채용‘을 부당하게 처리한 문제로 교육청의 지적을 받았다. 이어 정 교감은 ‘청와대 고위 인사 자녀의 학교폭력 은폐 사건‘에도 연루됐다.
당시 피해 학생들은 가해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1학년 때 담임교사에게 2012년 3월경 알렸다. 피해 학생들이 기록한 자필 진술서 내용은 이렇다.
“이유 없이 팔과 가슴을 수차례 때렸다”
“OO이가 너무 많이 구타당하고 힘들어 해서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큰 처벌 없이 넘어갔다”
가해자는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언론특별보좌관을 지낸 이동관 대변인의 아들.
하지만 2012년 당시 피해자의 2학년 담임이었던 조계성 교사(현 하나고 교장)는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 관계가 회복 중이고 피해 학생들도 외부에 위 학교폭력 사실이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고 정 교감에게 보고했다. 당시 정 교감은 학교폭력위원회 위원장이었다.
정 교감은 학교폭력 사안을 보고받고도,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지 않고 담임 종결 사안으로 처리했다.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화해했고 아이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당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학교폭력이 발생한 사실을 신고 받거나 보고 받은 경우 학교폭력위원회를 반드시 소집해야 했다.
또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한 학교폭력위원회의 조치가 있을 경우 그 내용을 학교생활 기록부에 기록하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하나고 측에서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지 않은 건 청와대 고위 인사 자녀의 학교폭력을 사실상 은폐할 의도가 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폭력 사건을 규정에 따라 처리하지 않은 사건으로 보고 정 교감의 행위를 부적절한 조치라고 결론내렸다.
“이번 사건의 경우 1학년 때 가해학생으로부터 학교폭력으로 인해 힘든 상황에 처한 피해학생들이 고민 끝에 상담을 신청하게 된 사항으로 담임교사가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항에 해당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감사 내용을 근거로 정철화 교감에게 중징계(파면) 조치를 권고했다.
동시에 서울시교육청은 김승유 당시 하나고 이사장, 이태준 교장, 정철화 교감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하지만 서부지검은 입시비리, 학교폭력 은폐, 교원 채용 부적정 등에 대해 2016년 11월 30일 불기소 처분을 결정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했지만, 고검은 2017년 4월 12일 항고를 기각했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 때문일까? 서울시교육청의 중징계 권고에도, 이태준 교장과 정철화 교감의 징계는 미미했다.
교육청의 징계를 받는 공립학교와 달리, 사립학교는 자체 교원징계위원회를 구성해 교사들을 징계한다. 사립학교법상 교육청의 징계는 권고에 그친다.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이태준 교장은 서울시교육청의 중징계(파면) 권고를 무시한 채 2016년 2월경 하나고를 퇴사했다. 현 사립학교법상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을 경우 퇴사가 제한되지만, 2016년 2월 당시에는 이 법이 시행되지 않았다. 하나학원은 이 전 교장에 대한 징계위원회도 열지 않았다.
이 교장은 어떤 징계도 받지 않고 하나고를 떠났다.
정철화 교감도 무사했다. 하나학원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 이후인 2017년 11월 29일, 교원채용 업무 건에 대해서만 정 교감에게 견책 처분을 내렸다. 신입학 전형업무 부적정 문제는 징계시효 3년을 넘었다는 이유로 처분하지 않았다.
정 교감의 징계가 경징계에 그쳤지만, 서울시교육청은 하나학원에 재심의를 요청하지 않았다.
이 교장과 정 교감이 중징계를 피하는 동안, 관할 지도 기관인 서울시교육청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징계대상자인 이태준 교장이 교육청의 징계요구를 따르지 않고 퇴사를 했지만, 이에 대해 당시 이사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사립학교법 제20조의2(임원 취임의 승인취소) 에 따르면, 관할청의 ‘학교의 장에 대한 징계요구’를 따르지 않을 경우 관할철은 해당 학교법인 임원에 대한 취임 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교육청에서 징계요구를 했는데 학교법인이 이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임원승인 취소를 한 적은 없다“면서 “이 부분에 대해 법원에서 엄격하게 판단하기 때문에 교육청 입장에서는 횡령 정도의 중대한 사유가 아니면 임원승인 취소를 하는 건 부담이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2015년부터 2년 동안 ‘감사결과 미이행’에 대해 하나학원에 수차례 독촉했지만, 하나고가 이를 따르지 않았다“면서 “사립학교법상 사립학교에 대한 교육청의 제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이 손을 못 쓰고 있는 사이, 이 전 교장과 정 교감은 무탈히 지내고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퇴사 의사를 밝혔던 이태준 전 교장은 퇴사 7개월만인 2016년 9월경, 하나고 측에 복귀 의사를 알렸다. 그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 이후인 2017년 7월 하나학원 이사로 취임했다.
정철화 교감은 이 교장이 퇴임한 2016년 3월부터 약 2년 동안 교장직무대행까지 맡았다. 이후 정 교감은 그동안의 비위에 대해 경징계만 받고 2019년 5월 명예퇴직했다. 그는 퇴임 당시 하나고의 수년치 입학전형 정보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들고 잠적한 걸로 알려졌다.
윤 의원은 “특권층 자녀의 부정편입학은 우리 사회 공정에 대한 가치를 훼손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검찰 재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윤 의원은 “관할청의 징계요구를 학교법인이 이행하지 않는 행태가 반복된다면 관련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기자는 반론을 듣고자 지난 3월 24일 이태준 전 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드릴 말씀 없다는데, 왜 자꾸 그러십니까! 할 말 없습니다. 끊으세요!”
정철화 전 교감은 수차례 전화에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의 딸에게도 전화해 부친의 근황을 물어보았지만, 아무 답변이 없었다.
한편, 법조계에 따르면 이 전 교장과 정 전 교감은 <동아> 사장 딸의 ‘하나고 부정편입학 의혹’ 재수사와 관련해 최근 피고소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걸로 알려졌다.
앞서 전교조는 해당 의혹과 관련해 하나고의 ‘서류 및 면접 평가표’ 등을 입수해 이태준 전 교장, 정철화 전 교감 등을 2019년 10월 24일 검찰에 재고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