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이렇게 한결같을까.
근로복지공단은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버팀목’을 자처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본업인 산재보상을 결정할 땐 가차 없다. 특히 도로교통법을 위반해 사고를 당한 사례에서 그들의 일관성(?)이 드러난다.
기획 <어느 늙은 라이더의 죽음> 3화 기사 ‘배달 라이더 산재 불인정.. ‘2만원 좌회전’은 정말 범죄인가’에서 다룬 사례를 보자.
- 오토바이로 출장을 가던 중 중앙선 침범해 차와 충돌한 A 씨 (서울행정법원 2019구합65986)
- 회식 끝나고 숙소로 가는 길에 무단횡단을 하다 차에 치인 B 씨 (울산지법 2020구합5632)
- 회식 마치고 오토바이 타고 가다 신호 위반 사고당한 C 씨 (서울고법 2018누53063에 해당)
A, B, C 씨는 모두 일하다가 사망했다. 이들의 유족은 법원 소송을 거쳐 겨우 산재를 인정받았다.
노동자나 유가족은 산재 급여를 신청할 때 운이 좋으면 한 번, 나쁘면 세 번의 관문을 넘어야 한다. 맨 처음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면 1)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심사를 청구해야 한다. 여기를 넘지 못하면 2) 재심사도 청구할 수 있다.
재심사를 청구해도 불승인됐다면 유족은 이젠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3) 행정소송을 걸어 싸워야 한다. 일하다 사망한 A, B, C 씨의 유가족은 바로 이 어려운 ‘세 관문’을 넘었다. 고법까지 간 C 씨는 무려 네 단계를 넘은 셈이다.
애초 근로복지공단이 ‘희망버팀목’이 되어 산재를 승인했다면 유족들은 법원까지 가는 수고와 비용을 덜지 않았을까.
근로복지공단의 일관성 없는 결정으로 법원까지 갔다가 판결도 없이 돌아온 사건도 있다.
공사현장에서 방수 작업을 하던 노동자 D 씨, 그녀는 2018년 9월 14일 평소처럼 출근했다. 오전 5시 30분께 사장이 태워주는 차로 숙소에서 인천 중구 중산동 공사현장으로 이동했다.
평소 사장은 공사현장 아파트 정문에 내려줬는데, 그즈음 며칠은 공사장 맞은편 아파트 정문에 내려줬다. 사고가 난 그날도 그랬다. 공사장을 가려면 왕복 8차선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다.
D 씨는 초록색 신호로 바뀐 신호등을 보고 길을 건넜다. 저쪽에서 한 차량이 빠르게 달려왔다. D 씨는 피할 새 없이 차에 부딪혀 횡단보도와 인도 사이에 떨어졌다. 차가 달려올 땐 이미 신호등은 빨간 불로 바뀐 상태였다.
D 씨는 당일인 9월 14일 오전 7시 43분에 사망했다.
충돌 차량과 사고 현장 근처에 주차된 차에서 블랙박스 영상이 확보됐다. 인천중부경찰서가 작성한 사고경위 보고서에 따르면, 충돌 차량은 사고 지점까지 약 110km/h로 달려왔다. 현장 제한속도 40km/h보다 약 3배가 빨랐다. 충돌 시 횡단보도 신호등은 붉은색이었다.
D 씨 유가족은 1단계인 근로복지공단 경인지역본부에 산재 심사를 2019년 4월께 청구했다. 공단의 산재 불승인 결정 이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일용근로자란 (중략) 근로계약을 1일 단위로 체결하고 그 날의 근로가 끝나면 사용종속관계도 끝나 계속 고용이 보장되지 않으며, 통상 공사현장에 도착하여 작업할 것을 허락받은 때 근로계약이 성립한다고 할 것입니다. 비록 고인이 (중략) 공사현장 근처까지 이동했다고 해도 그것만으론 동 공사현장에 채용되어 소속된 자라고 보기 어렵다.”
D 씨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근로복지공단은 하루마다 계약을 맺는 일용직이란 이유로 D 씨가 일하러 가는 ‘출근길’이란 기본 전제를 무시했다. 산재법 제37조 제1항에선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출퇴근하는 중 발생한 사고를 재해로 인정한다.
D 씨의 가족은 재심사 청구라는 2단계 관문을 2019년 11월에 넘기 시작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이하 산재심사위)는 그나마 상식이 통했다. 여기에선 D 씨와 사업장의 근로계약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산재 승인은 되지 않았다. 또 다른 쟁점, 붉은색 신호등에서 길을 건넌 D 씨의 생전 행동이 발목을 잡았다. 산재심사위는 이렇게 결정했다.
“경찰서 교통사고 조사결과 상 고인이 보행자 신호가 적색일 때 무단횡단 하던 중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고인의 재해는 위법한 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이므로 산재보험법 제37조에 따른 업무상의 재해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에 더는 기대할 게 없다.
D 씨 유가족은 ‘최후의 3단계’인 행정소송을 2020년 3월 시작했다. 5개월 뒤, 근로복지공단은 돌발 행동을 한다.
마지막 변론 기일은 2020년 8월 20일, 근로복지공단 소송수행 담당자는 불승인 처분을 취소하겠다고 법원에 알렸다. 산재를 승인하겠다는 뜻이니, 처음 본인들의 주장을 번복한 셈이다. 왜?
“재판 과정에서 가해 차량의 과실, 즉 과속한 사실이 확인되어 재처분을 요청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최근 기자에게 밝힌 ‘돌발 행동’의 이유, 뭐가 좀 이상하다. D 씨 유가족이 처음 산재 심사를 청구했을 때, 근로복지공단은 ‘교통사고 발생상황보고서’를 판단자료로 사용했다. 그때 이미 근로복지공단 경인지역본부는 상대 차량이 80km/h 이상으로 달렸다는 자료를 확인했음에도, 산재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약 2년이 지나서야 법원에서 스스로의 결정을 뒤집은 근로복지공단. 이렇게 될 거 처음부터 산재를 승인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험난한 과정을 겪은 사람은 D 씨 유가족만이 아니다. 최근 5년간 약 1만 명이 겪은 문제다.
근로복지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앞서 얘기한 3단계 관문인 심사청구·재심사·행정소송 과정에서 산재 승인 결과가 뒤집힌 사례는 총 9494건이다.
2016년부터 2020년 7월까지 근로복지공단에 청구한 심사 현황을 보면 전체 심사청구는 4만3945건이다. 그중 세 번째 관문인 행정소송을 겪은 6120건의 사례에서 소송을 통해 산재로 인정된 경우는 650건이다.
처음부터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승인을 했다면 650명 이상의 노동자와 가족은 법정 다툼을 피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을 겪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많다.
법정 싸움을 준비 중인 한 배달 노동자를 지난 3일 만났다. 배달대행업체 기사이자 퀵서비스 업체 사업주인 구종선(55세. 가명) 씨는 오른쪽 다리를 전다. 검정 조끼에 가슴팍에 달린 스마트폰을 보면 그는 누가 봐도 배달 노동자다. 하지만, 불편한 다리를 보면 그가 배달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구 씨는 사고 당시 기억이 없다. 신호를 위반해 달리다가 다가오는 화물 차량과 충돌해 의식 불명에 빠졌다.
“일 나간 건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부터 한 20일은 기억이 아예 없어요. 아주대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사고 났다는 얘기가 (귀에) 들리니까 어렴풋이 사고가 난 줄은 알고 있었지. 저는 가족들하고 차를 타다 교통사고가 난 줄 알았어요. 간호사한테 우리 가족들은 어떻게 됐냐고 물어봤어.난 아무것도 몰랐던 거죠.”
그는 2020년 5월 25일 낮 12시 30분께 경기도 안산 서울예대 앞 빌라로 음식 배달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그는 경기 안산시 단원구 덕성초교 사거리에서 직진해 사무실로 돌아가려 했다.
안산 단원경찰서에서 작성한 교통사고사실확인원에 따르면 그는 차량 신호가 붉은색일 때 사거리에 진입했다. 결국 그는 오른쪽에서 달리던 포터2 화물차량과 충돌했다.
구 씨가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아내가 2020년 6월 17일에 산재를 신청했다. 그는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작은 희망을 품었다.
근로복지공단과 산업재해보상보험재결위원회(이하 재심사위원회)는 그의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른 12대 중과실에 의한 재해에 해당하고 전적으로 또는 주로 청구인의 범죄행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재해에 해당”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억울할 건 없었어요. 제가 법을 위반한 거니까.”
산재 급여를 못 받아도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퇴원 이후 병원이 그에게 의료비 구상금으로 약 6600만 원을 청구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가족으로 딸 셋과 아내가 있는데요. 2020년 5월 사고 당시, 직업 있는 사람이 저 말고 없었어요. 관리비, 수수료 등 월 300~400만 원을 계속 내야 하는데 (일을 쉬니까) 방법이 없었죠. 저는 큰 애가 다니던 대학교 교직원으로 일을 시작했고, 아내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요양원 들어갔어요. 한 가정이 쉽게 무너지겠구나 싶었죠.”
인터뷰 중에도 그의 스마트폰은 쉴 새 없이 “띠리링~ 띠리링~” 울었다. 배달기사용 애플리케이션에서 배달 가능한 콜이 떴다는 걸 알리는 소리다.
사고 이후 구 씨는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지만, 배달 일을 아예 포기할 순 없다. 그에겐 아직 갚지 못한 의료비가 약 5000만 원 남았다.
구 씨는 현재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사거리에서 신호위반으로 사고를 겪은 그가 산재 승인을 요구하는 건, 너무 과도한 게 아닐까?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생각할 듯하다.
앞서 언급했던 A, B, C 씨 사건을 다시 한번 보자. 중앙선 침범부터 무단횡단에 신호위반까지… 전부 도로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위반했고 노동자에게 과실이 있다. 그럼에도 사법부의 판결로 국가는 이들의 산재를 인정했다.
구 씨의 경우 처음 산재를 신청한 날부터 재심사 청구 결과가 나오기까지 약 10개월이 걸렸다. 그동안 그의 가족들은 산재가 승인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산재 급여는 이들에게 거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일하다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의 다수는 고위험 육체노동자다. 다친 사람과 남은 가족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바로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산재보험이다.
강순희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지난 4월 13일 <매일노동뉴스>에 칼럼을 썼다. 한 대목은 이렇다.
“우리는 근로복지공단을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버팀목으로서 ‘노동복지허브’라고 쓰고 ‘일하는 모든 국민을 촘촘하고 두텁게 보호하는 기관’이라고 읽는다. 이것은 공단이 26년 동안 걸어온 길이었고 또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지향점이기도 하다.”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좋은 말만 모아놨을까. 일하다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누구보다 바라는 바다.
근로복지공단은 한결같이 그 기대를 저버렸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