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015년 7월 9일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이렇게 운 좋은 살인범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달력에 ‘X’를 표시하며 8월 9일을 기다리는 살인범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얼마나 그날을 고대할까요.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를 무참히 살해한 김OO. 그는 공소시효가 마무리되는 8월 9일이 지나면 진정한 자유인이 됩니다.
그에게는 두 번의 결정적 위기가 있었습니다. 우선, 그는 2003년 6월 5일 군산경찰서에 체포돼 범행 일체를 자백했습니다. 그를 숨겨줬던 인물도 자백했고, 범행도구인 칼을 봤다는 인물도 여럿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검찰, 당신들이 구속하지 않아 그는 풀려났습니다.
두 번째 위기는 12년 만에 찾아왔습니다. 지난 6월 22일 광주고등법원은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다시 재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10년을 보낸 당시 15살 최성필(가명)의 무죄를 입증할 명백한 증거가 나타났다는 근거를 들었지요. 명백한 증거는 바로 진범 김OO의 자백과 경찰 수사기록입니다.
사건 재수사가 불가피한 상황, 살인범 김OO은 많이 놀랐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6월 25일 항고하면서 재심은 기약할 수 없는 일이 됐습니다. 살인범은 다시 한 번 검찰의 도움을 받은 셈이죠.
사람을 죽였음에도, 검찰의 도움으로 두 번이나 자유를 찾은 사람. 이렇게 운 좋은 살인범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그동안 대한민국 검찰은 권력과 돈을 가진 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고 비판 받았습니다. ‘떡찰‘ ‘섹검‘이란 말이 시민들 사이에 유행할 정도로 검찰 내부의 문제도 많았지요. 그래도 살인범 김OO에겐 당신들이 유일한 희망일 겁니다.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재심을 반대한다는 당신들의 ‘즉시항고장‘을 읽고 또 읽어봤습니다. 살인범이 검찰에게 의지하는만큼, 당신들 역시 그를 믿고 있더군요. ‘즉시항고장‘ 내용을 반박하면서 그 신뢰관계에 금을 내고 싶습니다.
“내가 택시기사를 죽였다. 누명을 쓰고 나 대신 감옥에 간 최성필(가명)에게 미안하다“고 자백한 살인범마저 풀어준 당신들의 과거를 생각하면 이런 글이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당신들이 법원의 재심 결정에 항고한 이유는 한마디로 ‘김OO이 택시기사를 살해하지 않았다. 최성필이 범인이 맞다‘는 겁니다. 당신들은 김OO이 범인이 아니라며 아래의 근거를 들었습니다.
– 김OO과 임OO(살인범을 숨겨준 친구)은 경찰에서 자백했으나 이후 번복했다.
– 살해도구 칼을 봤다는 김OO 친구들의 진술은 모두 임OO에게 전해들은 내용이다.
– 침대 매트리스 밑에 숨겨둔 칼에 대해서 김OO과 임OO의 진술이 다르다.
– 살인 피해자 택시 운행기록계에는 사건 당시 승객을 태운 기록이 없다.
하나씩 따져 봅시다. 당신들도 김OO의 사건기록을 살펴봤겠지요. 그는 총 네 차례 군산경찰서에서 자백했습니다. 이런 그가 어떻게 자백을 번복했는지는 아마 당신들이 더 잘 알 겁니다. 경찰의 구속영장 청구 요청을 당신들이 기각하자 살인범이 말을 뒤집기 시작했으니까요. 그가 경찰서에서 나온 이후, 함께 자백했던 임OO과 같은 정신병원, 같은 병실에 입원한 사실도 잘 아시지요?
이런 맥락을 모를 리 없는 당신들이 “자백을 번복했다“는 걸 강조하다니요. 참 안타깝습니다. 게다가 김OO의 자백은 사건이 벌어진 당시 현장 상황, 목격자들의 진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과학적 검증과도 거의 일치합니다.
그동안 몇 번 이야기했지만, 당신들이 이해를 못하는 것 같으니, 다시 한 번 정리하겠습니다. 살인범의 자백은 이렇습니다.
“칼로 (택시기사의) 쇄골 부위를 찌르자 칼 끝에 뼈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택시기사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아, 아‘ 소리를 질렀습니다. 제가 왼팔로 택시기사 왼쪽 어깨를 잡고 칼로 마구 찔렀습니다.”
피해자 유OO씨 사체 부검에 참여했던 김윤신 조선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당시 국과수 서부분원 법의학 과장)는 최근 법원에 보낸 사실조회 답변서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사체) 우측 제2번, 제3번 늑골(갈비뼈)의 절단 혹은 부분 절단 흔적이 있었음.”
제2번, 제3번 갈비뼈는 쇄골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이번엔 당시 길 건너편에서 문제의 택시를 목격한 사람의 진술을 보시죠.
“‘아, 아‘ 하는 비명소리를 듣고 쳐다보니, 길 건너편 버스승강장 앞에 택시가 정차해 있고, 택시기사가 운전석 밖으로 나오면서 ‘억‘하는 소리를 내고 다시 운전석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도움 요청을 받고 사건 현장에 도착한 동료 택시기사 조OO의 진술도 보시죠.
“사고 현장에 갔을 때, 차량의 운전석 문은 절반 정도 열려 있었습니다.”
살인범 김OO의 자백과 과학적 검증(국과수 부검), 목격자의 진술이 너무나 일치합니다. 이럼에도 김OO의 자백 번복을 무죄 근거로 들겠습니까?
또 당신들은 택시 운행기록계에 손님을 태운 기록이 없다면서 김OO은 범인이 아니라고 했지요. 택시를 타고 기본요금이 나오는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면, 요금을 표시하는 운행기록계를 켜지 않는 택시기사를 종종 만나는데, 이건 저만의 경험인가요? 당신들도 이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운행기록계에 흔적이 없다는 이유로 ‘김OO은 택시를 안 탔다‘고 단정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게다가 김OO은 “약촌오거리에 도착하자 택시기사가 ‘기본요금 나왔다‘고 말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운행기록계를 켰으면 택시기사가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손님도 두 눈으로 뻔히 볼 수 있으니까요.
당신들은 살인범 친구들의 진술에 대해서는 ‘임OO에게 전해들은 것으로 증거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옹색한 주장으로 보이지만, 백 번 양보해 당신들의 말이 맞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왜 당신들은 “형이 내게 사람을 죽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 김OO 친동생의 진술에 대해서는 침묵하는지요. 게다가 김OO은 당시 군산경찰서로 찾아온 자신의 부모에게 울면서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설마 이런 진술에 대해서도 “나중에 번복하지 않았느냐“고 하실 건가요?
살해도구 칼에 대한 당신들의 의견은 더욱 당황스럽습니다. 여기에 그대로 옮겨봅니다.
“김OO, 임OO이 경찰 조사과정에서 자백 취지로 진술할 때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식칼을 누가 매트리스에 넣었는지, 김OO이 임OO의 집에서 식칼을 가져간 것이 언제인지, 식칼의 모양 등에 대해 김OO-임OO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점..”
칼을 누가 매트리스에 넣었는지, 김OO이 언제 칼을 찾아갔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범행도구를 침대 매트리스 밑이라는 특정된 곳에 한동안 보관했다는 게 핵심 아닌가요? 살인범 김OO은 사건 발생 3년 뒤 자백했습니다. 그는 칼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가 묻어 있었다는 건 확실하게 기억하는데, 오래된 일이고 그 당시 정신이 없어서 다른 사항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겁이 나서 자세히 쳐다볼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사건 기록을 봤다면 김OO 외에, 칼에 대해 진술하는 임OO과 친구들의 진술이 일치한다는 걸 알 겁니다. 게다가 당시 국과수 서부분원 법의학 과장이었던 김윤신 조선대 교수는 “임OO의 진술 중 흉기에 관한 부분은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감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부분은 외면하면서 왜 부차적인 문제에 집착하는지, 참 이상합니다.
이 사건만 보면, 검찰은 살인범에게 무척 관대합니다. 그의 변호인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사람 인생이 달린 문제여서 엄격하게 따지는 것이라고요? 자 그럼, 살인 누명을 쓴 15살 최성필에겐 당신들이 얼마나 부실한 수사를 하고 엉뚱하게 기소를 했는지 따져보겠습니다. 최성필을 기소한 당신들의 공소사실의 요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최성필은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 7분께, 오토바이를 운전하다가 약촌오거리 방면으로 우회전하면서 직진하는 차량들을 살피지 않았다. 이때 택시기사 유OO에게 ‘운전을 좋게 하라’는 욕설을 듣자, 최성필은 택시를 추월하여 약촌오거리 시내버스 승강장 앞 도로에서 택시 앞에 오토바이를 세웠다.
최성필은 택시기사에게 다가가 ‘왜 욕설을 하느냐’고 대들면서 멱살을 잡았다. 택시기사가 ‘너는 어미 아비도 없느냐’는 등의 욕설을 계속하자, 최성필은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 먹었다. 최성필은 오토바이 사물함에 보관중인 식칼 1자루를 꺼내어 오른손에 들고 택시의 조수석 뒷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택시기사를 공격했다..”
당신들이 봐도 이 공소사실은 어색하지 않나요? 말다툼 하던 사람이 오토바이로 가 칼을 들고 오는 동안 택시기사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게 정말 이상합니다. 칼을 든 최성필이 운전석 쪽으로 가지 않고 굳이 조수석 뒷문을 열고 택시 안으로 들어갔다는 걸 차치하더라도 말입니다. 당신들이 살인범 김OO에게 했던 방식대로 하나씩 살펴봅시다.
1. 오토바이가 앞을 막았다면 택시는 급정거를 했을 겁니다.
2. 또 멱살을 잡고 말다툼을 했으면 그 새벽의 거리는 시끄러웠겠지요.
3. 택시기사는 폐와 심장을 다치는 등 많은 출혈로 사망했습니다.
4. 많은 출혈 탓에 택시를 폐차해야만 했습니다.
5. 당연히 최성필이 이용한 칼과 그가 입은 옷, 신발 등에서는 혈흔이 나와야겠지요.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택시 운행기록계에는 급정거한 기록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운행기록계 전문가는 사고 택시는 완만하게 최종 정차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사건 당시 길 건너편에는 차량 두 대와 무려 네 명의 시민이 있었습니다. 이중 우리가 접촉했던 세 명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를 못 들었습니다. 택시 앞에 오토바이는 없었습니다.”
설마 최성필과 택시기사가 사랑을 나누듯 속삭이며 싸웠을 거라고 믿는 건 아니죠? 택시 어디에서도 최성필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국과수에 의뢰한 칼과 최성필이 입었던 우의, 반바지, 반팔 티셔츠, 슬리퍼, 오토바이 안장 등 총 7가지의 물품에서도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과학적 검증에서 아무런 증거가 나오지 않았고, 목격자들의 진술과도 다른 상황. 도대체 당신들은 무슨 근거로 최성필이 택시기사를 죽였다고 주장하는 겁니까?
최성필이 일관되게 자백을 했다고요? 경찰에서 총 4차례나 일관되게 자백했고, 그를 숨겨준 친구도 자백했으며, 현장 목격자와 범행도구인 칼을 본 사람이 있는데도 김OO을 풀어준 당신들이니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게다가 최성필은 법정에서 범행을 부인한 바 있고, 경찰에게 강압수사를 받으며 폭행당했다고 법정에서 말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도 호소했습니다. 당신들이 김OO을 풀어준 2003년 6월에도 감옥에서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공익을 대표한다는 대한민국 검찰의 잣대가 이렇게 다르다니요. 궁금합니다. 당신들은 정말 김OO이 살인범이 아니라고 생각하나요? 아니면 살인범이란 걸 알면서도 당신들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서 이토록 잔인한 방법을 쓰는 건가요?
사람은 신이 아니기에 실수를 하고 잘못도 저지를 수 있습니다. 대신 신은 사람에게실수와 잘못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마음을 줬습니다. 당신들에게도 그런 마음과 용기가 있길 바랍니다.
혹시라도 이 사건을 재수사할 의지가 있을지 모르니 몇 가지 팁을 드립니다. 살인범 김OO은 중고 물건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바꾼 채 살아가고 있지요. 전화기에 그의 번호를 입력하니,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영화배우 얼굴이 뜨더군요.
대한민국 검찰, 당신들이 풀어준 살인범은 그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