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다, 대머리!”
치료를 위해 밀어버린 머리가 놀림감이 됐다. 아이들 사이에서 ‘항암치료’라는 해명이 통할 리 없었다. 독한 항암 치료제 영향일까. 이차 성징이 시작될 무렵, 임푸른(현재 35세) 씨 몸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다.
또래 남자 아이들의 가슴이 벌어지고 목소리가 굵어지는 동안, 임 씨 교복 안쪽엔 큰 엉덩이와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살짝 볼록한 가슴이 숨어 있었다. 성인이 돼 혈액 검사를 해 봤지만, 남성 호르몬 수치는 ‘정상’이었다.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지 몸으로 느껴지진 않았지만, 어딘가 애매한 제 몸을 사람들이 어떤 시선으로 볼지는 예상됐다.
임 씨 고향 충청남도 아산은 온천으로 유명하다. 남들과 다른 몸이 신경쓰일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가던 온천도 끊었다.
상대방이 여성이건 남성이건, 혹은 그도 아닌 제3의 어떤 성이건, 매력적인 이라면 호감이 생겼다. 남녀공학 중학교에 다니던 때엔 같은 학교 여학생에게, 남고에 다닐 땐 다른 남학생에게 마음이 동했다.
바이섹슈얼(bisexual, 양성애자, 남녀 모두에게 끌림을 느끼는 성적 지향) 혹은 팬섹슈얼(pansexual, 범성애자, 모든 성별 정체성을 가진 사람에게 끌림을 느끼는 성적 지향)이라는 말은 성인이 된 뒤 알았다.
이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손을 잡고 몸을 섞고 싶은 상대를 만난 적 없었다. 임푸른 씨는 스스로가 에이섹슈얼(asexual, 무성애자, 타인에게 끌림을 잘 느끼지 않는 성적 지향)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타인과 성적 접촉을 할 일이 거의 없다보니, ‘난 남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고민에 골몰할 필요도 크지 않았다.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은 그렇게 계속 유예됐다.
스물다섯, 처음 연애를 했다. 대학 시절 가깝게 지낸 여자 동기가 졸업 후 고백했다. 연애 욕구가 강렬하진 않았지만, 오는 사람 안 막는다는 생각 반, 남들 다 하는 연애, 늦게라도 한 번 해 보자는 마음 반으로 고백을 받아들였다.
관계는 5년간 이어졌다. 연애하는 동안 소위 ‘남자 구실’을 못 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성적 쾌감을 크게 느끼는 것도 아니었다. 그쪽(?) 일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어느 날, 여자친구는 장난삼아 자기 옷을 임 씨에게 입혔다. 임 씨 키가 165cm 정도, 여자친구 키가 170cm가 훌쩍 넘어, 여자친구 옷이 임 씨에게 넉넉하게 맞았다. 여자친구는 “너무 잘 어울린다”며 웃었다. 이 사건이 임 씨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줄은 두 사람 모두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까진 남동생과 한 방을 쓰느라 자신만의 공간이 없었던 터에, 딱히 여자 옷을 입거나 립스틱 바르고 거울 앞에 서 볼 생각을 못 했다. 임푸른 씨 눈에도 처음 입어 본 여자 옷이 자신에게 ‘찰떡’ 같았다. ‘난 남성이 아닐지도..’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네가 원래부터 어딘가 여자 같아서 한 번 입혀 봤다”던 여자친구는 막상 임 씨가 스스로 여성스러운 옷을 찾아 입기 시작하자 당황했다. “데이트 할 때는 좀 멋지게 입어달라”고 요구했다.
교제 기간이 길어지자 여자친구는 미래를 말했다.
“우리 둘을 반반씩 빼닮은 아이를 갖고 싶어.”
여자친구를 사랑했지만, 결혼을 하고 2세를 낳는 그림은 도무지 그려지지 않았다. 임푸른 씨는 더 늦기 전에 이별을 택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남자가 아닐 수 있다는 성별 정체성을 처음 일깨워주고, 여성으로서 어떻게 입고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교본이 돼 준 것도 그 여자친구였다. 지금은 누군가와 결혼 해 아이를 낳고 잘 살고 있을 그 친구에게 임 씨는 지금도 고맙다.
이별 이후 여성과 남성의 삶을 오갔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임 씨는 A시가 운영하는 사회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2년여 동안 일했다. 단발머리에 성별 구분이 모호한 옷을 입고 출퇴근 하자, 인사권자인 공무원이 불편해 했다.
임 씨는 상사가 “머리를 자르라”면 잘랐고, “옷이 그게 뭐냐” 지적하면 다시 남성적인 옷을 사 입었다. 그런데도 학부모들로부터 “저 선생님은 너무 여자같다”고 말이 나왔다. 그렇다고 더 남성스러워 보이게 얼굴을 뜯어고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퇴사를 택했다.
‘나는 남자일까 여자일까? 둘 중 어느 쪽도 아닐 수도 있을까?‘
고민을 더 미룰 수 없는 시점이 찾아왔다. 국내 최대의 온라인 MTF(male to female, 출생 당시 법적 성별은 남성이나 스스로 생각하는 성별 정체성은 여성인) 트랜스젠더 커뮤니티 ‘넷포TG’에 가입해 활동을 시작했다. 두 번째 연인은 여기서 알게 된 남성이다.
이전 여자친구가 ‘그냥 남자로 살면 안 되냐’는 신호를 보낸 것처럼, 이번에 사귄 남자친구는 ‘남자 여자 왔다갔다 하지 말고 여자로만 살면 안 되냐’, ‘어디 가서 바이섹슈얼이라고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썩 내키지 않아도 크게 어려운 요구는 아니었다.
액체가 든 병을 흔들면 안에 든 내용물이 중력을 따라 움직이듯, 임 씨의 성별도 상황에 따라 흐르듯 움직였다. 임 씨와 같이 유동적인 성별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라고 부른다.
긴 탐색을 거친 임 씨는 요즘 스스로를 여성이라 인식하고 생활한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여성 모습의 증명사진과 숫자 ‘1’이 불화하는 주민등록증은 캐릭터 스티커로 가렸다.
상황에 따라 다시 남성으로 살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호르몬 요법이나 성기 수술 등 의료적 트랜지션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신체 조건 역시 ‘수술 없이도 원하는 성별을 선택해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가치관에 영향을 줬다.
연인에게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 임 씨의 성별 정체성을 사회의 다수는 이해하지 못한다. 임 씨는 처음 온라인 MTF 커뮤니티에 발 들인 2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커뮤니티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다른 트랜스젠더들의 의료적 트랜지션(transition, 성전환) 및 법적 성별 정정 과정을 돕고 있다.
임 씨가 도움을 줬던 이들 가운데는 수술 이후의 삶에 크게 만족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성급한 결정을 후회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특히 성별정정 이후의 삶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성급하게 수술과 성별정정을 택한 경우가 그렇다.
커뮤니티 회원 중에는 트랜지션을 거쳐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껴 활동을 그만두는 이가 많았다. 그렇다보니 정보가 축적되지 않고, 성별정정을 목적으로 한 수술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임 씨 본인은 수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함에도 커뮤니티 운영자로 활동하며 다른 이들에게 수술과 성별 정정 관련 정보를 꾸준히 제공하는 건, 시행착오 겪는 사례를 줄이고 싶어서다.
같은 이유에서 임 씨는 트랜지션과 성별 정정을 마친 트랜스젠더들에게도 커뮤니티에 남아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어 주도록 권유한다.
“호르몬 치료든, 성기 수술이든, 법적 성별 정정이든. 모두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성별 정정만 할 수 있다면 이후의 삶이 어떻든 그걸로 만족한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행복한 게 최고라고 생각하거든요.
본인이 정말 (의료적 트랜지션 조치를) 하고 싶어서 하는 거면 상관이 없는데, 지금은 사회가 정한 틀에 맞춰 살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거잖아요. 이런 강요에 따른 선택이 온전한 자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처럼 수술을 안 해도 여자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복지사 일을 그만둔 뒤 부모님의 자영업을 돕다가 지금은(2018년 기준) 정의당의 지역 당직자로 일하고 있는 임 씨의 꿈은 훗날 트랜스젠더를 위한 복지관을 만드는 것이다.
임 씨는 이번 기획 1, 2화 주인공 정태연(가명) 씨와 마찬가지로 수술 없이 성별정정 하는 초기 사례가 돼 보고 싶다고 말한다.
임푸른 씨는 남성과 여성, 그 사이 어딘가를 끊임없이 유동한다. 누군가는 ‘성별은 타고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수 있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임 씨와 같은 이들이 야기할 ‘사회적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2017년 말 유럽 최초로, 연방정부가 2018년 12월까지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 출생 증명 서류 등에 ‘제3의 성’을 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트랜스젠더를 비롯해 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과 다르게 살아가길 희망하는 이들이 온전한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란 요구다.
네덜란드 법원도 2018년 5월 처음으로 출생기록부에 남성 혹은 여성이 아닌 ‘결정되지 않은 성’을 등록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반면 한국에선 헌법 제36조 ‘양성평등’ 규정을 ‘성평등’으로 개정하자는 요구조차 종교계 등 반발로 답보 상태다.
임 씨와 같은 사람들이 삶을 직접 선택할 권리는 언제쯤 존중될까.
(2018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같은 내용을 <셜록>에 다시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