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볕이 따뜻했다. 바람 없이 잔잔한 남쪽 바다는 볕을 받아 반짝였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전남 완도군 공설묘지는 고요했다. 여기에 기구한 사연을 품은 한 남자가 누워 있다.

전남 완도군 공설묘지. 이곳에 김신혜의 부친 김OO가 누워 있다. 김 씨는 사망 뒤에 ‘성추행범’으로 만들어졌다. ⓒ박상규

2000년 캄캄한 새벽 의문의 죽임을 당한 뒤 한적한 버스정류장에 버려진 소아마비 장애인 김OO(당시 52세)씨. 장애인으로서의 삶은 순탄치 않았을 터. 죽음 이후에는 성추행범이라는 오욕이 덧붙여졌다.

경찰은 그를 죽인 범인으로 첫째 딸 김신혜(당시 23세)를 지목했다. 그녀는 부인했다. 경찰은 폭행, 욕설, 협박으로 그녀를 존속살해범으로 압박했다. 수사기관은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장애인 김OO씨는 평소 두 딸을 성추행했다. 첫째 딸 김신혜가 보험금을 노리고 김씨를 수면제로 살해했다.”

세상에 이런 인생이 또 있을까? 김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2000년 3월 7일 이후 15년이 흘렀다. 첫째 딸 김신혜는 무기수로 청주여자교도소에 있다. 그녀는 “내 아버지는 성추행범이 아니고,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고 15년째 주장하고 있다.

더는 스스로 말 할 수 없는 김OO씨의 무덤 앞에 한 남자가 섰다. 2015년 1월 15일 오후였다. 그는 무덤 앞에 소주 한 잔 따르고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진실을 꼭 밝히고 싶습니다.”
김신혜의 남동생 김종현(가명. 34)씨가 지난 1월 15일 완도군 공설묘지를 찾았다. 그는 아버지 묘소 앞에서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말했다. ⓒ박상규

김 씨의 둘째 아들 김종현(가명. 34)씨다. 사망 당시 김씨의 자녀는 모두 세 명. 김신혜, 김종현(당시 19세), 김수현(가명. 당시 18세)이 그들이다. 세 남매는 졸지에 ‘부모 없는 아이들’이 됐다. 이혼한 엄마는 예전에 집을 떠났다.

첫째 김신혜는 아버지 사망 이튿날인 3월 8일 경찰에 체포돼 구속됐다. 미성년자인 종현, 수현 남매만 남았다. 지난 기사에서 밝힌 대로 김신혜는 경찰에게 많은 폭력을 당했다. 종현, 수현 남매는 무사했을까?

“무사하긴요. 저와 동생 수현이도 경찰에게 많이 맞았죠. 저는 누나가 보는 앞에서도 맞았습니다.”

종현씨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떨궜다. 사고 당시 열아홉이었던 그는 이제 30대 초중반의 어른이 됐다. 그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경찰이 미성년자인 두 남매까지 때렸다니, 사실일까?

사건이 발생한 2000년 3월 그때로 돌아가기 전, 완도경찰서에서 근무했던 한 은퇴 경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를 지난 1월 26일 완도에서 만났다.

“김신혜는 키 155cm에, 몸무게 약 38kg으로 굉장히 왜소했어요. 그런 김신혜가 혼자 술취한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먹여 죽인 뒤 내다 버렸다? 김신혜가 범인이라면, 분명히 공범이 있을 거라고 봤죠. 여자 혼자 하기 힘든 일이지. 아버지가 김신혜보다 덩치도 훨씬 컸고. 범행 현장 가봤어요? 거기까지 어떻게 김신혜 혼자 가요.”

그의 말대로다. 사건의 여러 정황은 김신혜가 혼자 벌인 일이라고 믿기 어렵게 한다. 경찰, 검찰도 김신혜에게 공범 여부를 계속 추궁했다. 경찰은 공범으로 종현, 수현 남매도 의심했다. 아버지 김 씨 앞으로 여러 개의 보험이 가입돼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경찰은 남자인 종현 씨를 집중 추궁했다. 아니, 추궁을 넘어 피의자도 아닌 참고인 진술을 위해 완도경찰서를 찾은 3월 9일부터 구타했다고 한다. 김신혜는 이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 1월 28일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 접수한 김신혜 사건 재심청구서에 이 내용도 실렸다.

“2000년 3월 9일 늦은 오후에 수사과장실로 강제로 끌려갔는데, 그 자리에서 수사과장 OOO과 저의 남동생 김종현이 있었습니다. 수사과장은 저에게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 (징역) 얼마 안 산다’면서 자백을 강요했고 ‘네 동생들도 잡아 넣어줄까?’라며 협박을 했습니다. 제가 계속 억울하다고 하자, 수사과장이 남동생 김종현에게 ‘네가 했냐, 누나가 했냐’라고 말했습니다. 동생 종현이가 ‘누나를 믿는다’고 하자 수사과장이 두꺼운 큰 책을 들어서 종현이의 머리를 때리고 폭언과 욕설을 했습니다.” – 대한변호사협회가 접수한 김신혜 사건 재심청구서 中

종현 씨도 당시를 기억한다. 종현 씨는 “책 모서리로 몇 대 맞고 참고인 진술을 시작했다”며 “쌍시옷 들어가는 심한 욕설도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이 작성한 진술조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진술인(김종현)은 누나인 김신혜와 공모하여 아버지 김OO을 살해할 것을 마음 먹고 완도로 내려온 것은 아닌지요.”

“아닙니다.”

(중략)

“재자 질문을 하겠는데, 진술인은 김신혜와 아버지를 살해할 것을 공모한 사실이 있는지요.”

“절대로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첫 참고인 진술 순간에는 그런대로 폭력 없이 넘어갔다. 경찰의 폭력은 종현씨가 2차 참고인 진술을 위해 완도경찰서를 찾은 3월 10일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김신혜가 누드사진으로 자신을 협박하고, 입에 수건을 물린 채 얼굴을 때렸다고 지목한 B경찰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고모와 완도경찰서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저를 보더니 갑자기 B경찰이 달려와 날아 차기를 하더라고요. 허벅지 등을 맞고 휘청했죠.”

종현씨의 두 번째 참고인 진술은, 김신혜의 뺨과 뒤통수를 때리며 자백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진 A경찰이 진행했다. 압수수색 영장도 없이 김신혜의 집을 뒤지고 누드사진을 불법으로 가져온 그 경찰이다. 종현씨를 주로 때린 이는 바로 이 경찰이다.

“자기(경찰)들이 듣고 싶은 말을 안 하면 바로 손으로 때리더라고요. 뺨을 때리고 뒤통수를 치는 거예요. 안 했다고 하면 때리고, 자기들이 하는 말을 내가 인정 안 하면 또 때리고..”

이게 끝이 아니다.

“내가 계속 A경찰이 원하는 대답을 안 하니까, 어떤 사무실로 끌고 가더라고요. 그곳에서 갑자기 제 손목에 수갑을 채우는 거예요. 그 상태로 30분 정도 있었어요.”

 

2015년 지난 1월 15일 밤에 찾은 완도경찰서 출입문. “환한 미소의 당신, 완도 경찰의 얼굴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김신혜 3남매는 경찰에게 폭력을 겪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상규

A경찰은 조서를 작성하면서 사실이 아닌 기망의 질문으로 종현씨와 누나 김신혜를 이간질하기도 했다. A경찰이 작성한 참고인 진술서의 한 대목을 보자.

“진술인은 누나와 함께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는가요?”

“저는 하지 않았습니다.”

“누나는 진술인과 같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을 하는데, 진술인은 죽이지 않았단 말인가요.”

“저는 진짜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누나 혼자 아버지를 죽였다는 말인가요.”

“모르겠습니다.”

“그럼 누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단 말인가요.”

“예, 저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작성한 김신혜의 피의자 신문조서 어디를 봐도 “동생과 함께 아버지를 죽였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A경찰은 거짓으로 종현씨를 압박했다. 헌법 제12조 2항과 7항은 각각 이렇게 규정돼 있다.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

박준영 변호사는 “헌법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것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고, 속여서 자백을 받는 것은 불법임을 강조하고 있다”며 “A경찰의 위와 같은 위법한 신문은 직권을 남용하여 형사상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종현씨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변호사는 “A경찰은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고립무원상태에 있는 어린 유가족들을 속였다. 누나에겐 동생의 진술을 의심케하고, 동생에겐 누나의 진술을 의심케하여 이들을 이간질시키는 아주 질 나쁜 수사를 했다”면서 “경찰이 이를 부인하더라도 이는 조서를 통해 확인되는 팩트”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다시 합리적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혹시 종현씨가 누나 김신혜를 돕기 위해 뒤늦게 ‘경찰 폭행’ 이야기를 지어낸 것 아니냐고 말이다. 아래의 편지를 보자.

김신혜의 동생 김종현(가명. 34)씨가 지난 2000년 12월 19일 광주고등법원 판사에게 보낸 편지. 종현 씨는 이 편지에서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고, 죄 없이 수갑에 채워진 사실을 밝혔다. ⓒ박상규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저는 피고인 김신혜의 남동생 김종현입니다. 누나의 억울함을 풀고자 짧게 글을 올립니다. (중략) 저는 3월 7일부터 일주일간 완도경찰서를 밤낮으로 다니며 형사들에게 조사를 받고 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들) 직업이 형사다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형사들이 저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제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는 욕설과 폭행을 했습니다. 참 황당했습니다. 수갑이란 죄 지은 사람에게 채우는 거 아닙니까?”

종현씨가 2000년 12월 19일 광주고등법원 판사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종현씨는 뒤늦게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게 아니다. 이미 15년 전부터 경찰의 폭력을 증언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국가기관과 법원이 19살 청소년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어떤 상처는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하고 누나가 범인으로 지목돼 체포됐을 때, 종현씨 곁에는 어른이 없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는 여동생과 맨몸으로 수사기관을 상대했다.

“그때는 진짜, 만날 생각한 게..잘못이 없어도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너무 힘드니까.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집안 친지분들도 몰라라 했으니까요.”

15년 전 그날의 사건은 종현씨에게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가 됐다. ‘존속살해 집안’이란 낙인이 찍히자 많은 친구도 떠났다. 그는 99세 할아버지를 모시고 여전히 고향 완도에서 살고 있다. 누나의 ‘무죄 귀향’을 기다리는 중이다.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 없이 김신혜의 집을 수색한 뒤 남긴 진술서. 왼쪽은 민간인 이아무개 씨, 오른쪽은 김신혜의 동생 김종현(가명. 34)이 쓴 것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두 진술서의 필체가 동일하다. 게다가 오른쪽은 종현씨의 필체와도 확연히 다르다. 경찰의 조작이 의심되는 문건이다. ⓒ박상규

아, 마지막으로 경찰이 어린 종현씨를 상대로 벌인 또다른 ‘장난질’을 보자. 종현씨를 구타한 A경찰은 당시 종현씨를 앞세워 압수수색 영장 없이 서울 김신혜의 집을 수색했다.( 관련 기사 보기) 당시 A경찰은 경찰도 아닌 자기 군대 동기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후일이 두려웠을까? 경찰은 면피를 위해 이상한(?) 기록을 남겼다. 압수수색을 지켜봤다는 군대 동기 이아무개 씨와 종현씨의 진술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진술서 필체가 동일하다. 

종현씨는 “나는 당시 진술서를 쓴 적도 없고, 내 필체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종현씨가 쓰지도 않은 진술서(오른쪽)가 완도경찰서에 버젓이 남았다. 독자들이 직접 확인해 보시길. 이게 과연 저 위의 종현씨 필체와 같은지 말이다. 게다가 왼쪽은 이아무개 씨의 진술서다.

당시 김신혜 가족을 수사했던 완도경찰들은 끈질기게 한 가족을 유린했다. A와 B경찰은 “기억 안 난다” “내가 조사 안 했다” “안 때렸다” “(우리가 때렸어도) 공소시효 끝난 것 아닌가요?”라고 말하고 있다.

(박상규 기자가 2015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셜록>에 다시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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