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015년 7월 16일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 진실을 말하는 용기만이 거짓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을 조작한 익산경찰서. 모든 일은 이들의 거짓말에서 시작됐다. 살인 누명을 쓴 소년의 눈물, 진범을 풀어준 검찰, 15년째 이어지는 진실 공방 등 그 모든 시작은 익산경찰서의 ‘주먹‘이었다.
진실을 말할 좋은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익산경찰서는 주먹과 몽둥이로 15살 소년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는 배짱(?)은 있어도, 진실을 말할 용기는 없었다. 주먹으로 ”15살 소년 살인범‘을 창조한 이들 중 일부는 상금을 받고 승진도 했다.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살해된 때는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께. 익산경찰서는 사건 발생 사흘 만에 15살 최성필(가명)을 범인이라며 체포했다. 바로 그날부터 ‘최성필은 범인이 아니다‘는 주장과 언론의 의혹 보도가 이어졌다.
그동안 여러 신문과 방송이 이 사건을 다뤘다. 정점은 지난 2013년 6월 15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송한 ‘979 소년범과 약촌오거리의 진실‘이 찍었다. 방송 이후 익산경찰서를 비판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놀란 익산경찰서는 다음날 서장 명의로 공식 입장을 밝혔다.
“수사기관(익산경찰서)의 협박 및 폭력이 있었다는 당시 피의자(최성필)의 주장 및 방송사의 수사미진에 대한 이의에 대하여, 보다 엄격하고 충실하게 당시 수사상황을 재검토하여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사실 관계를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익산경찰서는 억울한 사법적 피해의 발생 가능성에 대하여 최선을 다해 조치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들은 약속을 지켰을까? 아니다. 이들은 또 거짓말을 했다. “충실하게 수사상황 재검토”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조치” 등은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동원된 말에 불과했다.
상식적으로 따져보자. 수사상황을 재검토하여 의혹이 없도록 사실 관계를 밝히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먼저 폭행 및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한 당사자를 불러 물어봐야 한다. 최성필만 익산경찰서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게 아니다. 공범으로 의심받은 그의 선배와 친구도 “경찰에게 맞았다“고 밝혔다. 익산경찰서는 이들을 단 한 번이라도 불렀을까?
“부르긴요. 한 번도 안 불렀어요. 내심 기대했는데, 연락도 없었어요.“
최성필씨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의 선배와 친구도 경찰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 익산경찰서가 밝힌 최선을 다한 조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당시 익산경찰서에서 진상 조사 실무를 담당했다는 현직 고위 경찰에게 14일 박준영 변호사가 전화를 했다.
- 당시 수사 재검토 실무 담당하셨죠?
“뭘 알고 싶으세요?”
- 그때 재검토가 어떻게 됐는지..
“재검토 안 했어요. 뭘 어떻게 재검토를 해요.”
- 당시엔 보도자료 통해 재검토 한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언론에서 그렇게 말한 거고. 재검토 한 건 없어요. 수사기록을 한 번 훑어 봤을 뿐이에요. 그 당시에 적법하게 수사해서 기소하고 법원 판결이 났는데, 어떻게 재검토를 합니까?”
- 그럼 왜 재검토 하겠다고 발표했나요?
“(폭행, 강압수사) 뭐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 서류상으로 확인했을 뿐이죠”
- (최성필씨는) 익산경찰서 숙직실에서 많이 맞았다는데요.
“어디 때렸대요? 그건 그 사람들 주장이죠. 그게 맞는 말이 아니잖아요. (웃음) 아이고 참말로..”
- 어쨌든 재검토한 건 아니었네요.
“(웃음) 10년형 살면서 아무 말 없다가,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 어쨌든 한 번 불러다 얘기를 들어봐야죠.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에겐 왜 (15살 피의자를) 여관에 데리고 갔는지도 확인했어야죠.
“그건 법원에서 이야길 해야죠.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요”
- 어쨌든 재검토 약속은 거짓말이었네요.
“입에서 나온다고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죠, 변호사님! (중략) 끊으세요!”
이렇게 경찰 스스로 ‘재검토 약속‘은 거짓말이었음을 인정했다. 이 경찰은 현재 전북지방경찰청에서 고위직으로 일하고 있다. 이 경찰은 여전히 사실 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있으며, 거짓말도 하고 있다.
과연 익산경찰서는 적법하게 수사했을까? 이들은 최성필을 연행한 첫 순간부터 불법을 저질렀다. 이들은 최성필을 경찰서에서 체포하지 않았다. 여관방으로 먼저 끌고 갔다. 이 사실은 당시 경찰들도 인정했다. 일종의 불법 체포이자 감금이다. 최성필은 “여관방에서부터 두들겨 맞고 허위 자백을 강요당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와 인터뷰한 경찰은 “10년형 살면서 아무 말 없다가 왜 이제와서 그런 말을” 하느냐며 최성필을 비판했다. 이는 사실과 한참 다르다.
최성필은 여러 차례 범행을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범행을 부인했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경찰의 폭행을 밝혔으며, 2003년 진범을 잡은 군산경찰서 소속 형사들에게도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상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위 경찰은 뭐가 그리 즐겁고 당당했을까. 그는 박 변호사와 이야기하며 여러 차례 웃었다. 그는 박 변호사가 최성필이 경찰에게 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전할 때도 웃었다. 과연 이게 웃을 일인지 2003년 8월 13일 최성필이 국가인권위원회 김OO 조사관에게 진술한 내용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 진술인(최성필)은 익산경찰서 형사계 형사들에게 폭행 및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했는데, 어떠한가요.
“예, 그렇습니다. 제가 하지도 않은 범행을 자백하라며 위 형사들로부터 폭행 및 가혹행위를 당했습니다.”
- 진술인은 (경찰) 조사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폭행 등을 당했나요.
“형사 한 사람이 저의 뺨을 아무말 없이 몇 대 때리길래, 제가 ‘왜 때리느냐’고 하자 ‘네가 사실대로 말하면 안 때리겠다’고 하여, 제가 다시 ‘무엇을 더 얘기 하냐, 여태까지 말한 것이 전부다’라고 말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래도 (경찰은) 막무가내로 수갑을 채운 채로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잠을 안 재우고 조사를 하였습니다.”
- 어떤 식으로 안 재우던가요.
“제가 계속 범행을 부인하자 수갑을 의자 뒤로 채운 채로 앉힌 뒤, ‘빨리 말하고 끝내자’고 말하면서 제가 졸면 어깨 등을 흔들어 깨우는 방법으로 잠을 재우지 않았습니다.”
- 그러면 경찰봉으로 폭행당하고 대걸레 자루 등으로 맞은 것은 언제인가요.
“조사 마지막 즈음이었을 겁니다. 제가 계속 (범행을) 부인하자 형사 중 3명이 취조실(숙직실)로 저를 데리고 가더니, 한 사람은 뒤로 수갑이 채워진 저를 붙잡고 다른 한 사람은 소지하고 있던 경찰봉으로 저의 허벅지를 계속하여 수십 차례에 걸쳐 때렸습니다. 제가 고통스러워서 일어나니까 뒤에 있는 형사가 저를 엎어뜨린 후 무릎으로 팔을 누르고, 위 경찰봉으로 (저를) 폭행하던 형사는 취조실 안에 있는 대걸레를 때리기 좋은 크기로 부러뜨린 후 그것으로 온몸을 폭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진술인은 폭행과 가혹행위 등에 못 이겨 자백을 하였나요?
“예, 제가 범행을 하지 않았지만 폭행 등을 못 이겨 제가 자백했습니다”
- 하지 않은 범행에 대하여 자백을 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알고 있었나요?
“물론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혹행위와 폭행 등을 참기가 너무 힘들어 하는 수 없이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자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형사들에게 ‘내가 다 뒤집어 쓴다’라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당시 최성필은 변호사 조력없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때 그는 15살이었다. 아직도 웃음이 나오는가?
익산경찰서 관계자들은 과거부터 계속 “폭행은 없었다, 그건 최성필의 주장일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폭행의 증거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사실 이건 익산경찰서가 먼저 답해야 할 사안이다.
익산경찰서는 최성필의 죄를 입증하려 살인사건이 발생한 택시의 지문감식을 의뢰했다. 최성필이 사건 당시 입었다는 옷, 자신들이 수집한 범행도구인 칼 등 총 7개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혈흔 감식을 의뢰했다. 최성필의 지문, 피해자의 혈흔 등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다.
게다가 익산경찰서는 사건 당시 현장을 목격한 권OO씨의 진술까지 확보했다. 권씨의 진술은 익산경찰서의 수사결과와 판이하게 달랐다. 익산경찰서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최성필이 범인이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목격자는 있습니까?”
익산경찰서는 자신들의 폭행 증거를 요구하기 전에, 과학 검증과 목격자 진술과도 일치하지 않는 15살 소년의 허위 자백이 어떻게 나왔는지 먼저 밝혀야 한다. 최성필은 감옥에 있던 2000년 9월 13일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썼다.
“어머님 진짜로 제 말 좀 믿어 주세요. 제가 안 그랬어요! 경찰서에서도 말씀 드렸지요. 그때는 제가 갈 데가 없어서 그랬어요. 진짜예요. 이제는 어머니께 진심으로 제 마음을 열어서 말씀드립니다. 어머님, 이제는 집에 가고 싶어요.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 익산경찰서는 15살 소년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벌써 15년이 지났다. 이들은 언제쯤 진실을 말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