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했다.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 김신혜의 고모부 김정한(62세. 가명)씨와 이야기 나눌수록 그랬다.
김씨는 ‘김신혜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보험금을 노리고 수면제로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수가 된 김신혜. 그녀에게 범행 일체에 관한 자백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바로 김씨다. 그는 직접 김신혜를 경찰서로 데려가기도 했다. 법정에서도 관련 내용을 증언했다.
법원은 김신혜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김씨의 증언을 주요 근거 중 하나로 삼았다. 하지만 당시 사건자료만 봐도 고모부의 말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진술이 계속 바뀐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지난 2015년 1월 26일 오후 전남 완도에서 김정한씨를 직접 만났다. 그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의 증언이 무기징역 선고의 근거가 될 만했는지 독자 여러분들이 직접 판단해보길 바란다.
[거짓말] 그는 김신혜의 자백을 듣긴 했을까
“김신혜가 완도 대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범행을 자백했다고 했는데, 어떻게 아버지를 죽였는지 물어보셨나요? 그때 수면제 이야기도 나왔나요?”
박준영 변호사가 먼저 물었다. 그러자 김씨가 정색을 했다.
“수면제? 그런 말은 안 했지! 그 순간에 어떻게 그런 걸 물어보겠어요. 상식적으로 장례식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왜 합니까. 신혜를 경찰서에 데리고 갈 때까지 저는 (신혜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은 줄 알았다니까요!”
정리하면, 그는 김신혜에게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고만 들었을 뿐이다. 2000년 3월 8일 오후 11시 20분께 완도 대성병원 장례식장 휴게실에서 말이다. 그는 범행 이유, 수단 등에 대해서는 묻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상식을 강조했다. 자, 그럼 이제 김정한씨가 경찰서에서는 어떻게 진술했는지 보자. 그는 김신혜가 체포된 다음날인 3월 9일 완도경찰서에서 참고인 진술을 했다.
경찰) 김신혜가 최초로 당신에게 (아버지를 죽였다고) 자백을 했나요?
고모부) “예, 그렇습니다.”
(중략)
아버지를 죽인 동기가 뭐라고 하던가요?
“평소에 주벽이 심하고 자식들을 너무 괴롭혀서 그랬다고 하였습니다.
그외 다른 이유는 말하지 않던가요?
“막내 동생인 수현이(여. 가명)를 성추행했다는 말을 듣고 분개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아버지를 죽였다고 하던가요?
“자수하겠다는 신혜를 보고 자세히 묻기도 싫었지만, 그때 (신혜가) 말하기를 수면제 30알을 먹여서 죽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죽은 후 완도군 OO리에 사체를 유기했다고 말하던가요?
“예, 그렇게 시인하였습니다.”
경찰 참고인 진술조서를 보면 고모부는 김신혜에게 아버지를 살해한 동기, 수단, 사체 유기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그런데 그는 왜 이제와서 그런 걸 듣지 못했다고 하는 걸까. 사건 이후 15년이 지나 기억이 희미해져서?
그렇게만 보기 어렵다. 처조카 김신혜의 범행 자백을 들었다는 고모부 김씨의 발언은 사건 당시부터 일관되지 않았다.
이번엔 그가 2000년 3월 21일 광주지방검찰청 해남지청에서 한 이야기를 보자. 그는 경찰에서 했던 것과 전혀 다른 말을 검사에게 한다.
검사) 김신혜에게 자기 아버지를 왜 죽였는지 물어보았나요?
고모부)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김신혜에게 자기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먹여 죽인 다음 OO리 버스승강장 부근에 버렸는지 물어보지 않았나요?
“김신혜가 자기 아버지를 수면제를 먹여 죽였다고 했으므로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을 물어볼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고..(중략)”
경찰, 검찰에서 한 그의 증언 중 하나는 거짓이다. 진실은 뭘까? 그는 정말 김신혜에게 자백을 들었을까? 그의 거짓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모부 김씨가 김신혜의 자백을 들었다는 시각은 2000년 3월 8일 오후 11시 20분께. 어찌된 일인지, 그는 경찰서가 아닌 자신의 집으로 김신혜를 데려간다. 김신혜 큰아버지 김용철(가명), 친척 이용구(가명), 김신혜의 여동생 수현(가명)과 함께 말이다.
집에는 그의 아내 김은정(가명. 김신혜 고모)이 있었다. 총 6명이 한 방에 있게 된 상황. 고모부 김씨는 여기서도 김신혜가 자백했다고 주장한다. 검사가 그에게 물었다.
검사) 집에 가서 김신혜와 어떤 대화를 나눴나요?
고모부) “제가 김신혜에게 ‘정말 수면제를 먹여 아버지를 죽였냐’라고 물으니까 ‘그렇다’고 하였고..(중략)”
하지만 김씨는 그해 6월 27일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또 말을 바꾼다. 당시 증인으로 출석한 그에게 검사와 변호사가 각각 물었다.
검사) 집에서 다시 피고인에게 아버지를 약으로 살해했냐고 물었나요?
“집에서는 물어보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특별히 없고 그냥 급한 마음에 자정을 넘기지 않고 빨리 자수를 시켜야 된다는 생각으로 물어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변호사) 그때 (집에서) 피고인은 무엇이라고 자백을 하였나요?
“저는 현관 문 밖에서 앉아 있었고, 방안에서 피고인이 뭐라고 말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분명히 검찰에서는 김신혜에게 수면제 관련 질문을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이를 뒤집었다. 역시 검찰, 법원에서 한 증언 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이상한 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건 발생 1년 뒤인 2001년 SBS <뉴스추적>은 김신혜 사건을 다뤘다. 그때 취재팀이 고모부에게 “신혜씨가 ‘내가 아버지를 죽였어요’라는 말을 (당신에게) 했나요?라고 물었다. 그의 답은 이렇다.
“그런 거 같아요.”
그는 김신혜를 경찰서로 끌고 간 사람이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김신혜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처조카에게서 아버지를 죽였다는 엄중한 자백을 들었다는 사람이 그 기억을 1년 만에 잊은 걸까? 그는 왜 애매하게 대답했을까.
[조작된 성추행] “고모부가 ‘허위사실’ 다그치며 강요”
“우리 아버지는 성추행범이 아닙니다.”
김신혜는 물론이고 여동생 수현씨의 주장이다. 성추행 피해자로 지목된 두 사람이 이를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아버지의 성추행을 김신혜가 아버지를 살해한 동기 중 하나로 봤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긴 했다.
진술에 일관성이 없었지만, 김신혜와 수현씨는 수사기관에서 아버지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진술했다. 물론 이들은 금방 이를 부정했다. 있지도 않았던 아버지 성추행 이야기, 어떻게 등장했을까?
“고모부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어요. 아빠에 대해 나쁘게 말해야 언니가 빨리 풀려난다고요. 저는 ‘성추행은 없었다’고 말했는데, 고모부가 계속 ‘아버지가 성추행 했잖아!’ 그렇게 다그쳤어요. 어른들이 시키니까, 저는 그렇게 말했죠.”
수현씨의 말이다. 성추행설의 진원지는 바로 고모부의 집으로 보인다. 고모부가 김신혜를 집으로 끌고 간 3월 8일 밤, ‘아버지 성추행’ 이야기는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모부 김씨는 이를 전면 부인한다. 하지만 당시 그 집에 함께 있었던 김신혜의 큰아버지 김용철씨는 조작을 인정했다.
“나도 그렇고, 우리들이 그런 말을 했죠. ‘성추행 당했다고 말을 해라. 그래야 정상참작이라도 된다’라고요.”
[자백 이전에 범행 알았다?] “밤 11시 이전에 신고”
“분명히 MBC 9시 뉴스 끝난 뒤 드라마를 볼 때였어요.”
현직에서 은퇴한 전 경찰 H씨를 지난 1월 26일 완도에서 만났다. 그는 드라마 방영시간을 강조했다. H씨는 김신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완도경찰서에 근무했다. 그는 “신혜가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 김정한의 최초 신고 전화를 받은 인물이다. 그 시각은 몇시였을까?
“아니, 왜 자꾸 물어요! 드라마 보다가 전화를 받았다니까. 그럼 아무리 늦어도 밤 11시 이전이죠.”
2000년 3월 8일은 수요일이었다. 당시 MBC 수목드라마는 오후 9시 55분에 시작해 11시 전에 끝났다. H씨는 “확실히 오후 11시 이전에 신고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신혜와 고모부는 모두 오후 11시 20분께 완도 대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대화했다고 밝혔다. 이 점은 서로 이견이 없다. 그런데 11시 이전에 고모부는 김신혜의 범죄를 경찰에 신고했다니, 이게 가능한 일일까?
증언은 또 있다. 바로 김신혜의 큰아버지다. 그 역시 “3월 8일 오후 9시가 안 됐을 때 여동생 부부(김은정-김정한)가 ‘신혜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내게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경찰과 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한은 김신혜와 대화하기도 전에, 그녀가 범인이라고 확신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관련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오직 3월 8일 오후 11시 20분에 김신혜의 자백을 듣고 범행을 알았다고 주장했다.
[김신혜의 주장] “나는 자백한 적 없다”
“고모부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난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고, 고모부에게 자백한 적도 없어요. 밤 11시 20분께 고모부는 저를 불러서 ‘네 동생 종현(가명)이가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 네가 자백하지 않으면 동생이 큰일난다’라고 말했어요. 그 뒤 저는 고모부 집으로 끌려갔고, 내 뜻과 상관없이 경찰서로 간 거예요.”
김신혜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두 동생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남동생 김종현씨는 당시 누나와 나눈 짧은 대화를 잊을 수 없다. 김신혜가 고모부를 만난뒤 빈소에 있던 자신을 불렀단다.
“너가 그랬냐(아버지를 죽였냐)?
“내가 미쳤어?”
누나가 구속되기 전, 이것이 남매의 마지막 대화였다. 여동생 수현씨도 “당시 장례식장 휴게실 앞을 지나다 고모부와 언니의 대화를 들었다”며 “고모부가 누나를 다그치는 듯한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진실은 무엇일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기록상으로 봤을 때 고모부 김정한은 경찰-검찰-법원에서 거짓말을 했다. 처조카 김신혜가 무기징역을 선고받는 데 근거가 된 그의 증언 일부는 거짓이다.
형사소송법 제420조 2호는 유죄판결의 증거가 된 증언이 위증으로 밝혀진 경우 재심을 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모부 김씨 스스로 “(김신혜에게) ‘수면제로 살해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법정에 증인으로 섰던 본인이 위증을 인정한 것이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고모부 김정한의 거짓말은 분명 큰 문제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다. 김씨의 거짓말을 거르지 못한(혹은 일부러 거르지 않은) 수사기관의 부실한 수사와, 뻔히 보이는 그의 거짓말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판사의 과실이 그것이다.
(박상규 기자가 2015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셜록>에 다시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