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보는 이 여성, 무기수 김신혜입니다. 많은 고민 끝에 얼굴을 공개합니다. 김신혜도 어려움을 감수하고 동의했습니다. 그만큼 절박합니다.
사진 속 김신혜, 15년 전 모습입니다. 나이 스물셋, 그녀는 보험금을 노리고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수가 됩니다. 그 뒤 감옥 밖으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재심이 아니면, 앞으로도 그녀가 살아서 세상으로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그녀는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독한X’로 유명합니다. 수감된 이후 단 하루도 노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징역은 “죄인을 형무소에 가둬 노동을 시키는 형벌”을 의미합니다. 노동을 전제한 형벌, 김신혜는 15년 동안 이를 거부했습니다.
노역을 거부하는 무기수. 당연히 감형이나 가석방 대상자가 아닙니다. 그녀는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합니다. 김신혜는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다리를 왜 스스로 부쉈을까요.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죄가 없으니, 당신들이 강제로 시키는 일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그녀는 15년째 감옥에서 결백을 주장합니다. 복종하며 용서를 구하는 대신, 무죄를 주장하며 감옥에 남았습니다. 그것도 독방에 말입니다.
살아서 세상에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는 김신혜. 그녀를 기다리는 남자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거의 한 세기를 산, 99세의 김정길옹입니다. 김옹은 김신혜의 할아버지입니다.
김옹은 노환으로 귀가 들리지 않습니다. 대화를 하려면 노트에 적어서 드려야 합니다. 김옹께 손녀딸 신혜에 대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99년을 산 어른의 깊은 한숨이 터졌습니다.
“정말 참담합니다. 신혜를 생각하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증거도 없으면서 왜 죄 없는 신혜를 잡아갔어요? 죽기 전에 우리 신혜를 한 번 만나고 싶습니다.”
김옹의 사연은 기구합니다. 수사기관의 결론에 따르면, 김옹의 아들을 손녀딸인 김신혜가 살해한 겁니다. 아들은 피해자고, 가해자는 손녀딸입니다. 김옹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의 기구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건이 발생했던 2000년 3월 그때, 김옹은 손녀딸 구명을 위해 이웃들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성추행 탓에 벌어진 일이니, 김신혜의 선처를 바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기사 <‘아버지 성추행’ 시작은 고모부였다>에서 보도한 대로, 아버지의 성추행은 사실이 아닌 조작이었습니다.
김옹은 누군가에게 살해된 자기 아들을 성추행범으로 만들면서까지 김신혜 구명을 위해 노력한 겁니다. 김옹은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는 손녀딸의 말을 믿습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만든 음식이 아니면 일체 입안에 넣지 않습니다. 아들이 살해된 것처럼, 누군가 음식에 독약을 탈까봐 염려하는 겁니다.
감옥에 가기 전까지 할아버지, 할머니(2011년 사망)는 물론이고 미성년이었던 두 동생을 부양한 이는 김신혜였습니다. 무기수가 된 김신혜에게 영치금을 보내는 사람은 김옹입니다. 김옹은 기초생활수급비 등으로 받은 돈의 일부를 매달 감옥의 손녀딸에게 보냅니다.
김옹의 소망은 “고향으로 돌아온 신혜 얼굴 한 번 보는 것”입니다. 그가 기억하는 김신혜의 모습은 23세 그때의 얼굴뿐입니다. 김옹은 김신혜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김신혜가 탈옥하지 않는 한, 합법적인 길은 하나 뿐입니다. 다시 재판이 열리고 거기에서 무죄나, 감형을 받아야 합니다.
그동안 기획 ‘그녀는 정말 아버지를 죽였나’를 통해 김신혜 사건을 수사한 경찰의 위법과 조작을 보도했습니다. 사건의 핵심 관계자로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의 거짓말과 위증 가능성도 보도했습니다.
형사소송법 420조에 따라, 이것만으로도 재심 사유는 분명합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1월 28일 재심청구서를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 접수했습니다.
김신혜와 당시 미성년자였던 두 동생은 모두 경찰에게 폭행 당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공범으로 의심받은 김신혜의 전 남자친구 역시 경찰에게 폭언을 듣고 가혹수사를 받았다고 증언합니다. 당시 완도경찰서에서 근무했던 경찰(현재 은퇴), 의경도 무리한 수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들은 모두 “기억나지 않는다” “모르겠다” “나는 관련 없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완도, 목포, 광주에서 현직 경찰로 일하고 있습니다.
경찰 수사기록에서 문제점이 명확히 보이는데도 이를 바로잡지 않고 김신혜에게 사형을 구형했던 검사, 그 역시 서울에서 현직 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건 핵심 관계자들의 거짓말을 거르지 못하고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김신혜의 주장을 귀담아 듣지 않은 판사, 그는 현재 법원을 떠나 변호사로 활동중입니다.
이렇게 모두 자리를 지키고, 영전했으며, 법률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김신혜와 그 가족들은 상처를 간직한 채 뿔뿔이 흩어져 살아갑니다.
김신혜는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을까요? 고향 완도로 돌아가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요?
(박상규 기자가 2015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셜록>에 다시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