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을 노리고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15년 8개월째 복역 중인 김신혜 씨가 다시 재판을 받는다.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지원장 최창훈)은 2015년 11월 18일 오후 김신혜 씨의 재심을 결정했다. 법원은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심리해, 김씨의 유무죄를 판단한다.

이로써 한국 사법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그동안 시국 사건 관련 재심은 한국에서 여러 차례 열렸다. 하지만 형사사건, 그것도 무기수로 복역 중인 사람에 대한 재심 결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일명 ‘김신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의 직무상 범죄가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를 선언했다.

무기수 김신혜 씨가 법정 출석을 위해 2015년 11월 18일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으로 이송됐다. ⓒ박상규

사건이 발생한 2000년 3월 당시 완도경찰서는 압수수색영장 없이 김신혜의 서울 집을 수색해 여러 증거물을 압수했다. 게다가 완도경찰서 소속 강OO 경장은 동료 경찰이 아닌 자신의 군대 동기와 함께 김씨의 집을 수색했다. 그럼에도 강 경장은 동료 경찰이 압수수색에 참여한 것처럼 허위 공문서를 작성했다.

또한 재판부는 김신혜 씨가 현장검증을 거부했음에도 경찰이 이를 강제로 재연시키는 등의 강압 수사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법원이 지적한 경찰의 문제 행위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허위공문서작성죄에 해당하며, 이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7항에 따라 재심 사유에 해당되기도 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김신혜 씨와 변호인단이 무죄를 주장하며 제출한 증거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김씨와 변호인단은 그동안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이 폭력을 행사했으며, 수사보고서 등을 허위로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아버지의 성추행 사실은 없었다’ ‘김신혜가 아버지 교통사고 사망 보험금을 수령할 목적이 없었다’ ‘사망한 아버지 몸에서 검출된 독실아민 성분의 함량 등은 객관적 상황과 맞지 않는다’ 등의 김신혜 주장은 무죄를 입증할 새롭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재심 개시 사유는 수사 경찰의 직무에 관한 죄 때문이고,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할 명백한 증거가 발견된 것이 아니기에 형의 집행을 정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결정대로라면 김신혜는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강문대, 박준영, 신윤경 변호사(왼쪽부터)가 법원의 재심 결정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박상규

법원의 이번 결정에 대해 김씨의 변호인단 중 한 명인 강문대 변호사는 “시국사건이 아닌 형사사건, 그것도 무기수로 복역 중인 사람에 대해서 재심이 개시된 건 사법 역사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라며 “형 집행정지가 이뤄지지 않아 아쉽지만 본안 재판에서 최선을 다해 무죄를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개시결론은 환영하나 위법수집증거를 근거로 대부분의 재심사유를 배척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라며 “수사절차의 위법을 인정하면서 그 위법수사결과물을 근거로 다른 재심사유에 대하여 판단한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라고 밝혔다.

일명 김신혜 사건은 지난 2000년 3월 김씨의 아버지가 완도군의 한 버스승강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완도경찰서는 사건 발생 다음날 “첫째 딸 김신혜가 보험금을 노리고 수면제를 탄 술을 아버지에게 먹여 살해했다”며 김 씨를 긴급 체포했다.

하지만 완도경찰서는 수면제, 술병, 술잔 등 김씨의 범행을 입증할 만한 물적 증거를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다.

김신혜 씨는 당시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며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강압수사를 받았다”고 무죄를 주장해왔다.

김신혜씨의 사연은 그동안 카카오 <스토리펀딩> ‘그녀는 정말 아버지를 죽였나’를 통해 세상에 많이 알려졌다. 당시 이 기획에는 2418명이 후원에 참여해 후원금 2100여만 원이 모였다.

(박상규 기자가 2015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셜록>에 다시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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