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저 바다의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한 번도 닿아본 적 없는 저 바다 밑바닥, 그래서 상상할 수도 없는 물 속 세계. 거기에 딸이 있다. 

배 타고 수학여행 떠난 자식들은 눈을 감은 채 차가운 몸으로 돌아왔다. 항구의 부모들은 그 차가워진 몸을 안고 울었다. 엄마도 같이 울었다. 모두 소중한 자식, 딸의 친구들 아닌가.

기다리면 돌아오겠지. 죽일 놈의 바다를 보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생환의 기대를 접어야 했던 끔찍한 시간, 차가워진 딸의 육신을 기다리는 참혹한 시간. 지옥은 멀리 있지 않았다.

가장 견딜 수 없는 슬픔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슬픔이다. 바다의 깊이처럼, 이제는 이 슬픔의 끝이 가늠이 안 된다. 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500 여일을 기다리면 돌아올까?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잡을 수 없는 시간은 꾸준히 흘렀다. 그리하여 10월 1일 아침이 다시 밝아왔다. 18년 전, 딸을 낳은 날이다. 이름을 허다윤이라고 지었다. 허다윤.. 바다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이.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9명 중 한 명이다.

생일상을 차려야 하는데, 손과 가슴이 떨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윤이 언니 허서윤 씨와 이모들이 대신 생일 음식을 마련했다. 허서윤 씨와 두 이모(박은경, 박은정)는 케이크와 음식을 들고 1일 단원고로 향했다. 다윤이 생일상을 차리기 위해서다.

그 순간 다윤이 엄마 박은미 씨는 서울 하늘병원 10층에 있었다. 다윤이 아빠 허흥환 씨가 허리디스크 질환으로 그곳에 입원해 있다. 남편 입원이 아니어도 엄마는 단원고에 갈 수 없었다. 작년 4월 16일 이후 단 한 번도 학교를 찾지 않았다.

“딸에게 미안하잖아요. 너무 미안해서 갈 수가 없어요. 배에서 꺼내 주지도 못 하고.. 제가 어떻게 다윤이 학교에 갈 수가 있어요.“

다윤이가 공부하던 2학년 2반 교실은 ‘명예 3학년 2반’이 됐다. 교실에서 복도 쪽 맨 뒤가 다윤이 자리다. 아이들이 있어야 할 자리마다 꽃, 사진, 편지 등만 가득했다. 교실은 고요했다.

언니와 두 이모가 다윤이 책상 위에 생일 음식을 차렸다. 흰 쌀밥, 검은 미역국, 잡채, 전, 샐러드, 다윤이가 좋아하는 치킨이 올려졌다. 언니 허서윤 씨가 흰 케이크에 꽂힌 초에 불을 붙였다. 초는 19살을 의미했다. 모두 한 마디씩 했다.

“다윤아, 생일 축하해.” 

“다윤아, 조금만 기다려. 곧 꺼내줄게.” 

“엄마는 마음 아파서 못 왔어. 이모들이 대신 왔어.” 

바람 없는 교실에서 촛불은 흔들리지 않고 타들어갔다. 촛불을 끌 사람은 자리에 없었다. 언니와 두 이모는 모두 고개를 돌렸다. 생일인데, 웃음이 아닌 눈물이 터졌다. 다윤이가 키우던 강아지 ‘깜비’는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반짝이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돌렸다.

“다윤아, 깜비도 왔어. 깜비도 다윤이 생일 축하한대.“

큰 이모 박은경 씨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교실 밖 복도로 나갔다. 복도에서 우두커니 서서 울었다.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 복도에 흐느낌이 퍼졌다.

주인공 없는 케이크 위에서 촛불은 바닥까지 탔다. 언니 허서윤 씨가 작은 불꽃을 입으로 불어 껐다.

이제는 교실을 떠나야 할 시간. 교실을 둘러보니 벽에 시인 황지우가 쓴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적혀 있었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 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다윤이의 두 이모는 꽃을 들고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로 향했다. 분향소 내 다윤이 얼굴이 있어야 할 곳에는 사진이 없다. 노란 종이 위에 글자만 적혀 있다.

“세월호 속에 아직 다윤이가 있습니다.”

두 이모는 헌화를 한 뒤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지난 500 여일처럼 다시 눈물이 터졌다. 큰 이모는 세월호 희생자 얼굴이 가득한 그곳에서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묻었다. 솔직한 말이 터져 나왔다.

“다윤아.. 이모가 많이 힘들어. 엄마, 아버지도 많이 힘들어..”

두 이모는 서로를 부축하며 분향소를 떠났다. 얼마 뒤 인터넷에 한 뉴스가 떴다.

‘세월호 분향소 설치된 안산 상인들, 유족에게 손배소’ 

합동분향소가 위치한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 인근의 상인들이 분향소 탓에 영업 피해를 봤다며 세월호 유가족, 안산시, 경기도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다.

다윤이 하버지 허흥환 씨가 병원 침대에 누운 채 한 말이 생각났다.

“세월호 참사 뒤 직장을 잃었죠. 딸 찾아야 하니까. 당연히 생활이 어려워졌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러더라고요. 수십 억 벌었으면서 왜 죽는 소리하느냐고..“

딸 죽음으로 수십 억 원 번다는 오해를 받는 상황.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고, 여전히 못 찾은 이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엄마는 말했다.

“원하는 건 딱 하나예요. 다윤이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혹시라도 미수습자 유실되지 않도록 세월호 인양작업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합니다. 인양 작업하는 사람들 다치지 않았으면 하고요. 미수습자 9명 모두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빕니다. 딸을 꼭 찾고 싶어요.” 

기다림은 언제 끝날 지, 딸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역시 가늠이 안 된다.

(2015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해당 기사를 2021년 <셜록> 홈페이지에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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