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포기하지 말자.’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자.’
은행권 채용비리 기획을 진행할 때 <셜록> 구성원과 이런 다짐을 자주 했다. ‘부정입사자를 은행에서 내보내자’는 기획 목표를 세웠으나,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잦은 다짐은 우리 내면에 불안과 걱정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다짐을 실천하니 좋은 성과가 났다. 우리은행 등이 부정입사자를 정리하고 내보냈다. 우리는 한 걸음 더 가기로 했다.
은행권 채용비리 공범이면서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금융감독원에 대한 공익감사 청구가 그것이다. 이를 위해선 시민 300명 이상의 자필 청구서가 필요했다. <셜록> 자발적 유료독자 ‘왓슨’과 독자들의 참여로 지난 4월 9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우리의 요구는 분명했다.
“은행권 채용비리 사후조치를 마련하지 않는 금융감독원을 감사해 주십시오.“
감사원은 지난 6월 11일, <셜록>의 공익감사 청구를 기각했다.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감사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아쉬운 결과다.
<셜록>의 시도가 무의미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는 은행권 채용비리에 대한 시민의 분노,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확인했다. <셜록>이 공익감사 청구인 약 300명과 함께 지적한 건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금감원은 은행권 채용비리 재발방지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우리는 “은행에 대한 감독·검사권을 가진 금감원이 은행권 채용비리와 관련해 재발방지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건 위법행위”라고 감사청구서에 적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금감원이 채용비리 재발방지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그 근거로 1)금감원이 개별 은행들의 채용절차 운영상의 미흡 사례에 대해 경영유의 또는 개선 조치 등을 통해 채용절차를 개선하도록 지도한 점과, 2)2018년 6월 은행연합회와 협의해 은행권 채용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을 마련한 사실을 들었다.
<셜록>으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감사원이 밝힌 위 사실들은 그동안 은행권 채용비리 관련 금감원의 솜방망이 대응 근거로 사용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우선, ‘개선 조치’는 금감원이 금융사에 내릴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명령에 불과하다. 주의 또는 자율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 지도적 성격인 셈이다. 개선사항 조치를 받은 금융사는 3개월 내로 문제가 된 내용에 대한 대응과 수정 방안을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면 더 이상의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도 법적 강제력이 없는 한계가 있다. 모범규준은 부정입사 사실이 확인되면 개별 은행이 채용 취소 또는 면직할 수 있는 근거와, 피해자 구제 대상의 범위와 구제 방안을 정해놓기는 했으나, 사실상 단순 권고사항에 그친다.
더구나, 소급적용 규정도 없어 이미 벌어진 채용비리에는 적용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이런 사례들을 금감원이 마련한 재발방지 방안으로 봤다.
두 번째는, 금감원의 은행권 채용비리에 대한 사후조치 미실행이다.
<셜록>과 공익감사 청구인들은 “금감원이 은행권 부정입사자 채용취소 및 피해자 구제 등 사후조치를 하지 않은 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금융감독원이 부정채용 입사자에 대한 채용 취소 및 피해자 구제와 관련한 조치를 은행에 직접 요구하지 않은 건 관계 법령 등에 따른 금감원의 권한 범위 등을 감안할 때 명백히 위법, 부당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부정입사자의 채용취소와 관련해 “금융관련법규상 제재 근거가 없어 금융감독원이 개별 은행에 직접 채용취소 등을 요구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기관 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제 19조 등에 따라 은행 직원이 위법 부당행위를 한 경우 금융관련법규에 따라 금융기관의 장에게 소속 직원에 대한 면직 조치를 취할 걸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이는 ‘금융관련법규’에 근거가 있는 경우에 한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위법, 부당행위를 해 금융기관 또는 금융거래자에게 중대한 손실을 끼치는 경우 등에만 해당된다.
감사원은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에 대해 “법령 등에서 별도로 정하는 경우 외에는 금융행정지도의 방법으로 금융회사 인사에 개입할 수 없도록 되어 있어 금융회사의 인사, 예산 등에 대해 금감원이 관여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부정입사자 채용취소 및 피해자 구제 모두 법적 근거가 없어 금감원이 은행을 직접 제재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금감원도 이번 감사 청구에 대해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등 청구 취지에 전반적으로 공감하고 있으나, 현재 은행을 강제할 법적 권한이 없는 등의 이유로 역할 수행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어 금감원은 “‘채용비리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 요청이 있을 경우 관계 부처와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결국 공은 국회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은 ‘채용비리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을 올해 1월 19일 대표발의했다. 법안에는 부정입사자의 채용 취소,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 방안, 채용비리 실행자 및 청탁자에 대한 처벌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해당 법안은 올해 3월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됐지만, 아직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공익감사 청구인이자, 시민단체 금융정의연대 대표 김득의 씨는 이번 감사원 결정에 이렇게 말했다.
“감사원의 결정은 ‘금융회사 업무와 관련해서 유죄가 나와도 금융 관련 법령에 해당되지 않으면 제재가 어렵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금융 외에 다른 법에 따른 유죄 판결에는 어떤 징계도 내릴 수 없다는 건 불합리하다. 최소한 형사법적으로 유죄가 확정되면 금감원이 은행권을 제재를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은행-대구은행-부산은행은 작년 9월부터 이어진 <셜록>의 집중 보도 이후 부정입사자 전원을 퇴사시켰다. 대법원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은행 가운데, 부정입사자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광주은행뿐이다.
공익감사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셜록>은 앞으로도 계속 쉽게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예정이다.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방식 그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