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에게 사형을 구형한 검사 만나러 가는 길, 여러 기대가 생겼다. 사건을 수사하고, 공판 검사로 참여해 피고인의 목숨을 빼앗는 극형을 요청했던 사람 아닌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나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를 들을 수 있을 듯했다.
‘낙동강 2인조 부녀자 강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장동익, 최인철에게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사형을 구형한 S검사. 그는 지금 경남의 한 도시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가을비가 내린 지난 12일 오후, 그의 이름이 크게 적힌 변호사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부산 엄궁동 낙동강 살인사건으로 S검사님 좀 뵈러 왔습니다.”
그의 기분(?)을 고려해 일부러 ‘검사님’이라 불렀다. 그는 출입구 앞에서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래전에 다 끝난 사건인데, 왜 자꾸 기자들이 흉악범 말에 속아서 찾아오는지.. 참나. 이번엔 왜 왔어요?”
S검사는 짜증을 냈다. 그는 장동익, 최인철을 변론했던 문재인 대통령을 거론했다.
“문재인 변호사가 대통령 됐다고, 기자들이 줄서기 하는 겁니까? 대통령 됐다고 그 분이 맡았던 ‘유죄 사건’이 무죄로 바뀌는 것도 아닌데.. 뭘 알고 싶으세요?”
그에게 오면서 ‘낙동강 강간살인사건’ 기록이 담긴 노트북 컴퓨터 하나만 챙겼다. 사건은 1990년에 발생했고, 그가 수사와 공판을 진행한 때는 1991~1992년이다. 최고 엘리트 검사 출신이어도 사람 기억에는 한계가 있는 법. 검사 시절에 그가 남긴 기록을 보면서 차분히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기록 볼 필요도 없어요, 내가 다 알아! 수사를 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이제 와서 장동익, 최인철은 범인이 아니고 진범은 따로 있다고 하는데, 뭘 알고나 말하라고 하세요. 허튼 말 하는 그 사람들 전부 감옥에 쳐 넣어야 돼! 문재인 대통령도 작년에 TV 나와서 ‘억울한 사건’이라고 말하던데.. 아이고 참.. (웃음)”
흥분한 S검사를 진정시켜야 했다.
“허튼 말 하려 온 건 아니구요. 그래도 예전에 검사님께서 합리적으로 수사를 잘 하신 ‘점’도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왔습니다.”
“수사를 잘 했다고 칭친해 주니, 이거 참 뭐라 따질 수도 없고..”
드디어 그의 기분이 좀 풀렸다. 목소리도 한층 낮고 부드러워졌다.
“그래, 뭐가 궁금합니까? 물어보세요.”
사실, 그에게 궁금한 건 딱 하나였다.
“당시 여성 시신과 현장 상황이 범인으로 몰린 장동익, 최인철 진술과 맞지 않아요. 그것만 봐도 두 사람이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꽤 큰데요..”
“지금 또 무슨 말씀을… 시신이 뭐 어쨌길래요?!”
S검사, 또 흥분했다. 노트북을 켜고 기록을 열었지만, 그는 보려하지 않았다. 흥분과 외면으로 뭉갤 문제가 아니다.
1990년 1월 4일 이른 아침, 낙동강변에서 발견된 여성 시신은 여러 사실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S검사는 시신과 현장 상황이 담긴 기록을 보고 합리적 의심을 품었던 사람이다.
경찰이 시신을 발견한 그날 아침으로 돌아가보자.
부녀자 박수경(가명. 당시 30세)은 사망한 채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 갈대밭에서 발견됐다. 머리는 동남쪽, 다리는 북서쪽으로 놓여 있었다. 두 팔은 ‘만세’를 외친 것처럼 머리 위로 길게 펼쳐졌다. 웃옷은 목까지 말려 올라간 상태였다. 목 아래쪽 등 부위에는 끌린 듯한 상처가 많았다.
시신에서 눈의 띈 건 바로 그녀의 머리. 뇌가 보일 정도로 오른쪽 머리 두개골이 가로 13cm, 세로 17cm가 함몰 및 분쇄골절돼 있었다. 시신 주변에서 길게 이어진 혈흔도 발견됐다. 강변 돌무더기에 점점이 찍힌 긴 혈흔은 약 50m에 달했다.
혈흔의 끝, 아직 완공되지 않은 강변 도로에 검은색 로얄프린스 차랑 한대가 있었다. 차 옆 인도 보도블럭에는 피가 흥건했다. 그 옆에 사람 피가 가득 묻은 가로 45cm, 세로 17cm 크기의 모난 돌도 있었다.
이 돌에서부터 역으로 혈흔을 따라가면, 여성 시신이 발견된 갈대밭이다. 누구나 쉽게 이런 유추를 할 수 있다.
‘이 큰 돌로 여성의 머리를 내리 찍었다. 그 뒤 시신을 강변 갈대밭으로 끌고 가 유기했다.’
무엇보다 여성의 함몰된 두개골은 꽤 크게 무거운 도구로 가격당했다는 걸 말해준다. 사망한 여성 부검감정서를 본 이호 전북대학교 법의학 교수의 말도 이를 뒷받침 한다.
“망치와 같이 면적이 좁은 도구로 (두개골) 함몰은 만들 수 있지만 분쇄골절은 만들 수 없습니다. 피해자의 두개골은 함몰이 되면서 주변으로 쭉 금이 갔고, 골절 면적이 넓은데, 주먹 크기 만한 돌로는 이런 상태를 만들 방법이 없습니다. 두 손으로 겨우 들 수 있는 물건으로 내리 찍었을 때 피해자의 상태와 같은 함몰과 분쇄골절이 생길 수 있습니다.” 2016년 <그것이 알고 싶다> 인터뷰에서
자, 그렇다면 여성을 살해한 범인으로 장동익, 최인철을 지목한 부산 사하경찰서는 어떻게 수사를 했을까. 결론을 말하면, 사하경찰서는 시신 상태는 물론이고 현장 상황과도 맞지 않게 조작을 했다.
우선, 사하경찰서가 1991년 11월 11일 작성한 최인철 1차 피의자진술조서에 따르면 그는 이렇게 진술한 것으로 나온다.
“각목으로 (여자) 머리를 쳐서 죽인 사실이 있습니다.”
이틀 뒤인 11월 13일에 작성된 최인철 2차 피의자진술조서에는 이렇게 나온다.
“나무를 오른손에 들어 여자의 어깨를 친다고 하는 것이 (잘못 되어) 머리에 맞았는지 여자가 옆으로 쓰러졌습니다.(중략)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잠시 기절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하루 뒤인 11월 14일에 작성된 된 장동익의 자술서에도 이렇게 나온다.
“인철이가 도로공사 하는 곳에서 각목을 들고 와서 여자를 때렸습니다.”
정리하면, 이때까지 사하경찰서는 최인철이 각목으로 여자 머리를 때린 것으로 조작했다. 당시 수사인력 상부에 ‘각목으로 사람 머리를 쳐서는 두개골이 분쇄골절되지 않는다’는 합리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던 걸까?
시신과 맞지 않는 사하경찰서의 조작은 바로 다음날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최인철이 (차량 옆에서) 각목으로 여성의 안면부를 2회 강타하고, (둘이 여성을 들고 강변 갈대밭으로 가던 중 돌무더기 위에서) 장동익이 주먹 크기 만한 돌로 여성 우측 머리를 1회 강타했다.”
시신과 당시 현장에 조금이나마 부합되게 조작을 한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로 45cm, 세로 17cm 크기의 피 묻은 돌은 어떻게 설명하지? 이 돌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어쨌든 사하경찰서는 물고문으로 살인범을 조작해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이때부터 나름대로 합리적 의심을 하는 S검사가 등장한다. 때는 1991년 11월 18일 오전 11시 5분, 장소는 부산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 조사실.
S검사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최인철에게 물었다. 당시 대화 내용은 녹취록으로 남아 있다. 일부 내용을 여기에 그대로 옮긴다. 드디어(!) 검사와 검사실 계장이 피 묻은 돌에 대해서 묻기 시작한다.
- 검사 : 피가 이래 많이 흘러가, 많이 흘려 있고, 돌이 큰데, 돌에도 피가 묻어 있고, 보다시피 사람을 끌고 와 놓으니까, 차에 피가 질질 흘러가 긁혔잖아! 피가 많이 났잖아!
- 계장 : 털어 놓을 거 다 털어놔!
- 검사 : 돌에 피가 이래 많이 있거든. 이 돌에 피가 많이 있는 걸, 여기서 한 방, 차에 끌어다 놓고 때렸다거나. (중략) 여기서 때렸나? 돌로?
- 최인철 : 여기서는 안 때렸습니다.
피 묻어 있는 큰 돌로 여자를 때린 게 아니냐고 추궁하는 검사와 계장. 이를 부인하는 최인철. 만족스런 답을 듣지 못한 검사는 버럭하고 만다.
- 검사 : 니 보다시피, (사건 당시) 사진 봐라! ‘사체 있는 갈대밭 앞 돌에 혈흔이 묻어 있음.’ 갈대밭에 질질 끌고 가면서, 피가 질질 묻어 있잖아! 사진 나온 것 안 있나, 현장 사진! (중략) 봐라! 이 도로에 피가 질질 이래 되어 있잖아! 끌려 가면서 흐른 것이가, 어찌된 거고?
- 최인철 : 이거는 잘 모르겠어예.
범인이 아닌 최인철이 혈흔에 대해 모르는 건 당연하다. 큰 돌도 금시초문이다. 계속 답답한 상황이 이어진다. 검사는 ‘합리적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이번엔 각목을 언급한다.
- 검사 : 이게 각목으로 맞았다고 볼 수 있지만은, 돌로 때린 거 같은데. 이게 어찌된 것인지 그에 대해서 아는 대로 이야기 해봐라.
- 최인철 : 돌로 때린 거는 진짜 저는 모릅니다.
- 계장 : 돌을 가지고 때린 부분에 대해서 말이야. 이 현장에 있던 니가 모르면, 그건 숨기는 거야. (중략)
- 검사 : 각목 맞아가지고서는, 쉽게 이래 골이 깨지고 그래 되지는 않는데, 응? 각목 맞아가지고 깨져봤자, 골 벌어지고는 하지 않아. (중략) 어느 만큼의 돌을 갖다가 어떻게 때렸길래 그렇다고 생각이 드노?”
최인철, 장동익이 사하경찰서에서 했던 진술은 시신 모습은 물론이고 현장 상황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두 차례 진행된 현장검증 역시 사건 모습과 많이 달랐다. 사하경찰서가 엉뚱한 두 사람에게 누명을 씌웠으니 당연한 결과다. S검사는 최인철을 상대로 이 부분을 집중 추궁한 것이다.
최인철, 장동익은 물론이고 S검사마저 사건의 실체를 모르는 상황. 대개의 형사 사건에서 범행 당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수사관이 아니라 범인이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범인으로 지목한 두 사람은 범행 당시 모습을 거의 모르고 있다.
이쯤되면 ‘두 사람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적인 일이다. 게다가 이 사건에서 두 사람의 범행을 입증할 명백한 물적 증거는 하나도 없다. S검사는 합리적인 의심을 유지하면서 상식적인 판단을 했을까?
아쉽게도 최인철을 상대로 한 녹취는 “점심 먹고 하자”는 걸로 끝난다. 이후 장동익, 최인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해도 S검사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여성의 시신에서는 강간이 있었다는 확실한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부검 결과 목졸림 흔적이 발견됐으나, 장동익과 최인철은 그에 대해 진술한 적도 없다.
시신의 등에 남은 긁힌 상처는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이 시신을 유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뜻한다고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 교수는 말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참조)
형사사건 수사와 재판의 최종 목적은 실체적 진실규명이다.
당시 수사 관계자와 1심부터 3심까지 모든 재판부는 여러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실체 규명에도 실패했다. 장동익, 최인철은 자백, 그것도 사건 상황과 일치하지 않는 허위자백으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S검사는 이런 말을 하면서 장동익, 최인철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피고인들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져버리고 야수의 길을 선택하여 도저히 이들에게 관용이나 동정을 베풀 여지가 없음을 확신합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법원이 사형을 받아들였다면, 두 사람은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김영삼 정부는 1997년 12월 30일, 무더기로 사형을 집행했다.
이번 12일 만남 때 S검사에게 다시 물었다.
“아직도 두 사람의 유죄를 확신 합니까?”
“당연하죠! 그 흉악범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잘하는데! 그거에 속으면 안 됩니다!”
“아무런 물적 증거도 없고, 두 사람의 자백도 당시 상황과 안 맞잖아요.”
“정황을 보면, 그 사람들이 범인 맞아요! 그들이 아니면 누가 범인인데요?”
정황으로만 사형을 구형했다니. 하나를 더 물었다.
“장동익씨가 시각장애인인거 아십니까?그 사람이 어두운 새벽에 범행했다는 게 가능 할까요?”
“그날 달도 뜨고 훤했어요! 범죄 충분히 저지를 수 있지!”
S검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날 달도 없이 컴컴했습니다. 달이 없었다는 사실, 바로 검사님이 제대로 수사해서 밝히고 기록으로도 남겼습니다. 보여드릴까요?”
“아.. 그런가? 그날 달이 없었어요? 내가 뭐 제대로 수사했다면 그게 맞을 텐데..”
S검사는 말끝을 흐렸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그 흉악범들 재심한다고 어쩐다고 떠들고 다니던데, 재심이 뭐 쉬운 줄 아십니까? 진범이 따로 있으면 모를까, 한 번 재심 해보라고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