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 2015년 7월 30일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당황스럽다. 주먹과 몽둥이로 15살 아이에게 택시기사 살인 누명을 씌운 익산경찰서. 당시 수사 책임자였던 이OO 경찰은 최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해명했다.
“최성필(가명)이 아르바이트하던 다방의 업주에게 맞았다고 하길래 업주를 처벌했을 정도로 자식같이 잘 챙겨줬다. 왜 우리한테 맞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억울하다.”
자식같이 잘 챙겨줬다.. 이 말이 자꾸 걸린다.
그가 자식을 어떻게 키웠는지 알 길이 없으나, 정말로 최성필 대하듯이 자식을 양육했다면 그는 아동학대죄로 몇 번 감옥에 다녀왔을 것 같다.
익산경찰서가 최성필을 조사하면서 다방 업주를 처벌한 건 맞다. 하지만 “자식같이 잘 챙겨줬다“는 말은 검증이 필요하다. 이OO 경찰은 “억울하다“는 말도 했는데, 과연 누가 정말 억울하고 거짓말을 하는지 따져보자.
이들은 지난 15년 동안 “우리가 최성필을 때렸다는 증거 있느냐“는 식으로 말했다. 자, 그러면 당시 직접 수사를 했던 경찰들이니 이 물음에는 답해야 한다.
“최성필이 사람을 죽였다는 증거는 있나요? 증거도 없으면서 왜 당신들은 15살 아이를 범인으로 몰았나요?”
그동안 수차례 기사에서 말한 대로다. 익산경찰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까지 동원했지만 최성필이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를 살해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러자 이들은 “최성필이 모든 걸 자백했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
하지만 이들이 몽둥이로 때리고 잠도 안 재워 받아낸 최성필의 허위자백은 객관적 실체와도 맞지 않는 엉터리다.
무엇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따로 있다. 익산경찰서는 당시 범행현장을 목격한 사람의 진술을 확보하고도 이를 무시했다. 이 목격자에 진술에 따르면, 최성필은 범인이 아니다. 익산경찰서는 왜 이 사람의 말을 외면했을까?
목격자 권OO은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께 익산 약촌오거리에 있었다. 그가 있던 곳 길(왕복 4차선) 건너편에서 택시기사 강도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권OO은 바로 그날 익산경찰서에서 자신이 목격한 것을 진술했다.
“약촌오거리 OO아파트 (버스)승강장 반대편에서 저희 익스프레스 차량이 5분 정도 정차해 있었습니다. 그때 남편은 운전석에서 내려 차량 뒤 인도에 앉아 담배를 피웠고, 저는 조수석에 승차해 있었습니다.”
“02:00시경 길 건너편에서 ‘아, 아’하는 비명소리를 듣고 쳐다보니까 길 건너편 버스승강장 앞에 택시가 정차해 있고, 택시 운전석에서 기사가 허리를 구부리고 오른팔로 배를 움켜쥐고 운전석 밖으로 나오면서 ‘억’ 하는 소리를 내고 다시 운전석 안으로..”
이어 권OO은 “남편도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하였다“며 “(피해 택시 주변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익산경찰서 수사결과에 따르면,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최성필은 택시기사 유OO과 말다툼을 했고, 이에 격분하여 흉기로 택시기사를 공격했다. 신문조서를 보면 이들은 심하게 말다툼을 한 것으로 나온다.
택시기사 – “운전 똑바로 해!”
최성필 –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화가 나 택시를 세우고) “왜 나한테 욕해!”
택시기사 – “네가 운전을 잘 못하니까 욕을 한다, OO놈아!”
최성필 – (택시 문을 열며) “내려!”
택시기사 – (택시에서 내려 최성필의 멱살을 잡고 뺨을 세 대 때린다)
-2000년 8월 13일 작성된 최성필 1차 피의자신문조서에서
이들은 캄캄한 새벽 거리에서 이런 말다툼을 속삭이며 했을까? 택시기사가 최성필의 뺨을 세 대 때렸다고 나오는데, 혹시 말싸움 하다가 그냥 볼을 쓰다듬은 걸까?
목격자 권OO이는 택시기사의 비명소리 외에 다른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한 적이 없다. 게다가 그는 피해 택시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고 진술했다. 익산경찰서 측도 이상한 점을 느꼈나보다. 이들은 바로 다음인 8월 14일 권OO를 불러 2차 진술조서를 작성한다.
경찰 – 당시 부근에서 싸우는 소리를 들은 적 있나요?
권OO – “아니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악’ 소리만 들었습니다.”
경찰 – 택시기사가 오른팔로 오른쪽 옆구리를 움켜 쥐고 운전석 밖으로 몸을 빼고 있을 때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가요?
권OO – “예, 아무도 없었습니다.”
경찰 – 당시 다른 차량은 보지 못했나요?
권OO – “예, 아무 차량도 보지 못했습니다.”
경찰 – 다른 것은 전혀 목격한 게 없다는 말인가요?
권OO – “예,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목격자 권OO은 싸우는 소리를 들은 적 없고, 택시 주변에서 오토바이는 물론이고 사람도 본 적이 없다고 재차 말했다. 이쯤되면 최성필이 범인이 아니라고 보고 그를 풀어줘야 한다. 하지만 익산경찰서는 그대로 밀고 갔다.
익산경찰서는 권OO가 잘못 보고 착각한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실 확인을 위해 다른 목격자를 부르는 게 마땅하다. 그게 정확한 수사다. 권OO은 1차 진술 때 분명히 현장에서 “남편도 비명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익산경찰서는 왜 남편을 부르지 않았을까?
의도적으로 외면한 게 아니라면 부실 수사를 한 셈이다. 게다가 당시 현장에는 권OO만 부부만 있었던 게 아니다. 이들 부부를 포함해 총 네 명이 있었다. 권OO보다 사건 현장을 잘 지켜본 인물은 따로 있다. 그는 권 씨 부부와 동업을 했던 최OO이다.
당시 최OO은 일명 ‘탑차‘라 불리는 이삿짐센터 차량 운전석에 앉아서 사고 택시를 목격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사건 직후 출동한 의료기관 관계자가 구급차에 피해 택시기사 유OO을 태울 때 직접 돕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13년 6월 2일 자필로 ‘사실확인서‘를 박준영 변호사에게 써줬다.
“오토바이 (탄 사람과) 택시기사가 다투는 것은 못 보고, 택시 주변에 오토바이가 서 있는 것도 못 보았습니다. 택시가 선 자리에서 싸움질을 했더라면 우리가 못 보았겠습니까. 확실한 것은 죽은 택시기사가 싸우는 것도 못 보고, 오토바이도 못 봤습니다. 이는 모두 사실입니다.”
문득 궁금하다. 익산경찰서는 최성필이 범인이 아니라 걸 뻔히 알면서도 몽둥이로 살인 누명을 씌운 것일까? 아니면 살인범으로 의심이 가서 때렸을까?
어느 쪽이든 폭행은 정당하지 않지만, 목격자의 진술까지 외면한 익산경찰서의 일처리를 보면 자연스레 의문이 든다.
다시 당시 익산경찰서 경찰이 말한 ‘자식론‘으로 돌아가자. 최성필 씨는 그 보도를 보고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라며 “자기 자식이었다면 정말로 나를 그렇게 다뤘겠느냐“고 말했다.
최성필이 택시기사를 살해했다는 물적 증거는 없다. 과학 검증에서도 그 어떤 범행 흔적이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목격자 진술까지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최성필이 범인이 아니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익산경찰서는 왜 15살 최성필에게 살인 누명을 씌웠을까? 자식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는 부모를 본 적 없다. “자식같이 잘 챙겨줬다“는 경찰에게 묻고 싶다.
자식같은 사람에게 그게 할 짓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