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한잔 걸친 강원도 산골의 농부는 술김에 ‘통일 대박’ 아이디어를 말했다.
“우리나라가 통일되는 간단한 방법이 있지. 박근혜를 김정일에게 시집보내면 되는 거야!”
그 다음날 농부는 정보기관으로 끌려갔다. 키워드 ‘박근혜’ ‘김정일’이 들어간 농담의 끝은 참혹했다. 농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몇 년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농부는 출소 후 한마디를 더 했다.
“취중에 농담도 못 하냐! 농담 한마디 한 것 가지고 몇 년씩 징역을 살리는 이놈의 세상이 김일성보다 못하면 못하지 나은 게 뭐야!”
농부는 또 정보기관으로 끌려갔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다시 몇 년의 징역살이를 했다.
기막한 이 농부의 사연, 지어낸 이야기 아니냐고? 아니다. 여러 책과 글에서 인용될 정도로 유명한 실제 사건이다. 1970년대 ‘막걸리 보안법’을 논할 때면 자주 거론되는 사연이다. 1970년대에는 누군가의 딸이라는 것이, 아내라는 것이 쉽게 이야기되던 시절이었기에 가볍게 한 말이었지만 농부는 징역까지 살아야 했다.
박근혜는 대통령 자리에 올라 한때 ‘통일 대박’을 외쳤으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지금은 구치소에 있다. 그곳에선 ‘대통령’이 아닌 ‘수인번호 503번’으로 불린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 강산이 바뀌고, 정치 상황도 달라졌다. 인권과 표현의 자유는 크게 신장됐다. 농담 한마디 했다고 정보기관에 끌려간 농부 이야기는 이제 코미디로 들린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정말로 한국은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권력자를 풍자해도 별 탈 없는 ‘안전한’ 사회일까? 아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박근혜 관련 농담 몇 마디 했다고 온갖 고생을 한 사람이 최근에도 있었다. 그는 경찰의 은밀한 ‘사이버 미행’과 내사를 받았고, 검찰에 불려 갔으며, 기소돼 피고인 신분으로 약 2년 동안 재판을 받았다. 문제의 중심에는 공직선거법이 있다.
1970년대 유신시대로 돌아간 듯한, 웃기고도 슬픈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일용직 노동을 하는 장용철(가명, 50대) 씨는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 관련 글을 <다음> 아고라 등에 꾸준히 올렸다. 손수조 씨 비판, 대법원장-검찰총장 직선제를 주장하는 글도 있다.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였다. 검찰이 그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 신분이었다. 이미 경찰이 그에 대한 내사를 마치고 검찰에 사건을 이첩한 상태였다. 수사기관은 장 씨가 인터넷에 올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관련 게시물 두 개를 문제 삼았다.
장 씨는 대선을 약 2개월 앞둔 2012년 10월 12일, 한 인터넷 공간에 박근혜 후보와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이런 댓글을 달았다.
“지아비 정일이만 살아있었으면 북풍을 불어줬을 텐뎅 ㅉㅉㅉㅉ”
장 씨는 같은 해 12월 13일에 박근혜 후보와 허경영 씨의 모습이 함께 담긴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고 이런 댓글도 달았다.
“여보야를 여보야라고 부르지 못하고.”
검찰은 선거법을 위반했다면서 장 씨를 기소했다. 장 씨가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댓글로 허위사실을 유포해 선거법 제250조(허위사실공표죄) 2항을 어겼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자, 여기서 한 번 따져보자. 북한의 김정일이 남한의 박근혜 지아비(남편)가 아니라는 건 남북한 7,000만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장 씨를 불러, 아래처럼 진지하게 추궁을 했다.
- 검찰: “결국 ‘지아비 정일이’..라는 말은 전혀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 장용철 씨: “말도 안되는 소리지요. 제가 그렇게 한 이유는 박근혜 후보의 정책들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저도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박근혜 후보를 풍자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검찰 수사기록 95쪽)
두 번째 게시물과 댓글 역시 마찬가지다. 박근혜 후보와 허경영 씨는 부부관계가 아니며, 그래서 서로 “여보야”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건 5000만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다. 이 댓글에도 검찰은 역시 허위사실공표죄(선거법 제250조 2항) 위반을 적용했다.
장 씨는 검찰 수사 때 “말도 안 되는 내용으로 박근혜 후보를 풍자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라고 댓글을 쓴 경위를 설명했다. 이런 댓글 모두 박근혜 후보가 여성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차별적 발언이지만, 이를 ‘박근혜 당선 저지를 위한’ 허위사실 유포로 보는 건 뭔가 억지스러워 보인다.
유력 대통령 후보였고 끝내 대통령이 된 사람을 농담,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장용철 씨. 사실 특별한 일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권력자를 풍자, 조롱하는 일은 인류 역사에서 늘 있었다. 권력자는 이를 허용했고, 현명한 왕은 평민들의 풍자에서 자신을 돌아보곤 했다. 한국의 고전 문학, 판소리, 마당놀이, 탈춤 등에는 그런 풍자, 조롱, 해학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에 사는 장용철 씨는 권력자를 풍자했다는 이유로 수사기관에 불려갔다. 그는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도 섰다. 1심, 2심 법원은 장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기어코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최종 무죄 선고를 받기까지 약 2년이나 걸렸다. 두 댓글의 수준과 내용이 과연 이렇게 긴 법정 다툼을 할만큼 중대한지 정말 의문이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다. 경찰은 법적 근거도 없이 장 씨를 상대로 사실상 사이버 미행까지 했다.
경찰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될 때 수사를 개시할 수 있다. 물론 수사 개시 여부를 판단하는 내사를 하기도 한다. 여기에도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 ‘경찰내사규칙’이 그것이다. 외부의 진정이나 신고 없이 ‘비신고내사’를 하려면 “수사부서의 장에게 보고하고 지휘를 받아 내사에 착수한다”는 게 원칙이다.
경찰은 장 씨 사건에서 이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경찰은 2012년 11월 1일 오전 9시께부터 장 씨에 대한 증거수집을 개시했다. 하지만 ‘내사 착수 보고’는 약 1개월 뒤인 12월 14일에야 이뤄졌다. 결국 경찰은 수사, 내사 상태가 아닌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장 씨를 관찰하며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한 셈이다.
이 모든 문제의 배경에는 선거법이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 표현의 자유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특히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기간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견해를 밝히고 타인과 토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토론 과정에서 좋은 정책, 좋은 후보가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선거법은 오히려 선거기간 동안 시민의 입을 다물게 한다. 문제가 있는 후보자를 명백한 객관적 사실을 들어 비방해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선거법 제251조 후보자비방죄) 위의 장 씨 사례처럼 농담이나, 풍자를 하면 선거법 제250조 허위사실공표죄에 걸려들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올해 대선 후보자 중 누군가를 인터넷 댓글이나 게시물로 비판-비방했다면 조심하는 게 좋다. 어쩌면 수사기간이 벌써 당신의 인터넷 게시물을 주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현행 선거법은, 1970년대 ‘막걸리 보안법’만큼 무섭다. 후보자, 시민단체 인사만 선거법으로 곤욕을 치르는 게 아니다. 일용직 노동자 장 씨처럼 누구든 걸려들 수 있다. 권력자를 비판하는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좋은 대통령을 뽑는 것만큼 선거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2017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한 기획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에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