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015년 8월 7일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기획 ‘그들은 왜 살인범을 풀어줬나‘를 마무리하면서, 살인범 김OO 당신에게 공개 편지를 씁니다. 최고 애독자는 당신이었을 테니 마땅히 인사를 해야지요.
글을 쓰기 전 당신 명함을 오래 바라봤습니다. 거기에 당신 얼굴 사진이 담겨 있으니까요. 우리는 얼굴을 걸고 이 기획을 진행했으니, 당신도 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알겠지요.
특히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님을 잘 아시죠? 황상만 전 반장님이 당신을 체포했었고, 당신은 그에게 택시기사를 어떻게 살해했는지 모든 걸 자백했으니까요.
혹시라도 부인할 생각은 마십시오. 당신이 어떻게 자백했는지, 그때의 음성파일 일부를 이미 공개했으니까요.
인연이란 게 참 묘합니다. 아마 당신은 우리의 얼굴보다도 우리 중 누군가의 이름을 보고 더 놀랐겠지요. 아, 너무 당황하지는 마십시오. 그것도 개인정보이니 이렇게 공개된 곳에서 자세히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놀라운 인연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김OO 당신은 지난 15년 동안 2015년 8월 9일을 기다렸겠지요. 원래대로라면, 바로 그날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마무리되니까요.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께 택시기사를 무참히 살해하고도 단 하루도 처벌받지 않은 당신이 그날을 얼마나 고대했을지 상상이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됐습니다. 이제는 끝까지 가는 겁니다. 고대하던 날의 환희가 사라져 실망하고 있을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신이 꼭 알아야만 합니다.
당신이 흉기로 10여 차례 공격해 살해한 택시기사 유OO. 그에게는 어린 두 자녀와 아내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끔찍하게 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가족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지난 7월 23일 유OO의 유가족은 당신을 꼭 체포하고, 누명을 쓴 최성필(가명)이 신청한 재심을 받아달라는 탄원서를 대법원에 접수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내를 아끼는 자상한 남편이었습니다. 직장에서도 정직한 모습으로 늘 동료들에게 신뢰를 받았습니다. 그런 남편이 갑자기 살해됐습니다. 그 후 남겨진 가족들의 삶도 달라졌습니다. 저는 힘들게 일하며 두 어린아이들을 키웠습니다. 갑자기 혼자 두 아이를 키우려니 참 막막하고 힘들더군요. 그래도 참고 견뎠습니다.”
당신은 돈 몇 푼 빼앗으려고 성실하게 노동하며 세 가족을 부양하던 한 아버지를 죽인 겁니다. 그의 유가족은 차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게 살았습니다. 사망한 택시기사 유OO의 아내는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등은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며 “저와 가족들은 그래야만 살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유가족들이 그렇게 힘들게 살고 있을 때, 당신은 해외로 골프 여행을 다니며 인생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약촌오거리‘를 떠올리기도 싫어할 때,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전히 익산에서 생활하며 약촌오거리를 활보했습니다.
그의 아내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드리겠습니다.
“(남편이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고 원광대학교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그 진동하던 피비린내를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저는 아직 모릅니다. 흉기로 10여차례 공격당한 남편의 시신 모습은 또 어떠했겠습니까.”
사랑하는 가족의 피비린내를 잊지 못하는 사람의 인생. 당신은 가늠할 수 있습니까? 이쯤에서 당신이 간직하고 있을 ‘살인의 추억‘을 건드려야겠습니다.
김OO, 당신도 택시기사 유OO의 피비린내를 기억하고 있지요? 당신이 그를 살해했고, 그때 당신의 옷은 그의 피로 범벅이 됐으니까요.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당신을 숨겨줬던 친구,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임OO은 떨리는 목소리로 당신이 택시기사를 살해하고 온 날을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방에 들어가서 불을 켜니까 (김OO) 옷에 피가 묻어 있더라고요.“
옷에만 피가 묻지 않았지요. 당신이 사용한 흉기, 바로 끝이 휘어진 칼에도 피가 묻었습니다.
이건 또 어떻게 아느냐고요?
12년 전인 2003년 6월 5일 당신이 어떻게 자백을 했는지, 녹음파일에 다 담겨 있습니다.
김OO – “피가 묻어 있는 거..”
황상만 형사반장 – “그리고 피만 묻어 있었어? 그거 외에는 기억이 잘 안나? (기억) 안 나는 거 억지로 막 만들어 낼라고 하지 말라니까. (기억) 안 나면 안 나고 그러고 마는 거야. 그냥 그런 것 같다라든지, 뭐 이런 것은..기억 안 나면 안 나는 거야. 오래 되었기 때문에..”
김OO – “아니요. 피는 묻어 있었어요. 피는 묻어..”
어떤가요?
황상만 전 형사반장님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는 당신을 배려하면서 “(기억) 안 나는 거 억지로 막 만들어 내려고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오히려 당신이 적극적으로 “칼에 피는 묻어 있었어요“라고 말합니다.
이게 다가 아닙니다. 당신이 택시기사 유OO을 공격했을 때 칼끝에 뼈가 걸린 느낌과 그 소리를 잊은 건 아니죠?
경찰 – “택시기사 칼로 찔렀잖아. 택시기사가 죽었을거라 생각했어?”
김OO – “그런 느낌을 받았죠”
경찰- “그런 느낌은 받았어?”
김OO – “왜냐하면 퍽, 제가 그랬잖아요. 소리가 났다고요. 제가 그때 느낌에는 뼈인 거 같았거든요.”
칼이 뼈에 부딪혀 손에 느껴진 감촉과 귀로 전해진 ‘퍽‘ 소리. 살인범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정보입니다. 게다가 당신의 자백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사체 부검결과와도 일치합니다.
살인범 김OO 씨, 당신은 우리의 연재 기사를 읽으며 어떤 심적 고통을 겪었는지요. 분명히 당신의 고통은 살해당한 택시기사 유OO과 그의 유가족, 당신 대신 누명을 쓰고 10년을 감옥에서 보낸 최성필의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닐 겁니다. 당신은 이들에게 평생 사죄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획이 끝났다고 너무 안도하지는 마십시오.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당신을 괴롭히는 사람은 계속 나타날 겁니다. 대한민국에 언론사는 많고, 기자는 그보다 더 많습니다.
당신의 음성, 사진, 명함은 법원과 검찰에 제출되었고,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여러 사람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살짝 변조된 음성 공개는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누군가는 더 많은 것을 공개할 겁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인연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어쩌면 시작일지도 모릅니다.당신에게도 양심이 있길 바랍니다.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 박준영 변호사, 신윤경 변호사, 박상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