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의 남자가 아내를 데려갔다. 그가 길에서 아내를 지켜본 아침, 그가 집에 들어온 그날 이후 많은 게 달라졌다.
늙은 엄마가 타주는 ‘봉지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맞는다. 커피는 밤처럼 검다. 마흔을 넘어 다시 엄마의 출근 배웅을 받는 게 여전히 어색하다. 커피보다 마음이 쓰고, 마음보다 이 아침이 더 쓰다. 아내 잃은 아들을 배웅하는 늙은 엄마의 마음은 아침마다 소금밭이다. 아이들은 최악이다.
“저는 엄마라도 있죠. 제 아이들은 없잖아요. 아이들이 무슨 죕니까?“
죄가 없는 건아내도 마찬가지다. 어디서부터 잘못 됐을까. 수없이 묻고, 자책해도 답을 모르겠다. 커피보다 검은 밤에 퇴근하고, 다시 검은 커피로 아침을 맞고..그렇게 4년 가까이 살아도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도대체 왜,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상위 1%의 남자, 서진환이 아내를 죽였다. 그는 과학으로 입증된 상위 1%였다. 그가 박귀섭의 아내 장주영(가명)을 강간살해 한 날은 2012년 8월 20일. 그때 서진환은 ‘서울에서 9위’에 올라 있었다. 학업이나 운동경기 기록이 아니다. 당시 서울보호관찰소가 관리하는 범죄인 1165명 중 서진환은 재범위험성평가에서 9위를 기록했다.
아마도 서진환이 살면서 기록한 가장 높은 순위가 아닐까 싶다. 그가 상위 1%라는 건 범죄경력으로도 증명된다.
1991년 3월 강간, 강간미수. 징역 2년
1997년 1월 강간치상. 징역 5년
2004년 특수강도강간. 징역 7년
그는 21살 때부터 41살이 될 때까지, 성폭력 범죄로만 14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2011년 11월 출소하면서 재범 위험 때문에 전자발찌 7년 부착 명령을 받았다. 성폭력 범죄자의 재범률(27%)은 미성년자 유괴(24.1%), 살인(20.5%) 범죄 재범률보다 높다. (2011년 대검찰청 범죄분석 참고)
서진환은 자신의 순위와 범죄분석 결과를 배신하지 않았다. 그는 출소 9개월 만인 2012년 8월 7일 한 여성을 강간했다. 13일 뒤인 8월 20일에는 강주영을 강간살해했다. 두 가지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전자발찌를 찬 서진환이 13일 간격으로 강간과 강간살인을 하는 동안 경찰은 뭘 했는가.재범위험성평가에서 9위를 기록한 서진환을 보호관찰소는 제대로 관리 했는가. 아이러니 하게도, 첫 번째 질문의 적절한 답을 서울보호관찰소에서 했다.
“2012년 8월 7일 강간 범죄 시, 신고를 받은 수사기관(경찰)이 전자발찌 수신자료 유무 조회 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 받아 저희에게 수신자료를 요청했으면 서진환을 검거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8월 20일 장주영 강간살인 사건을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 감사원 답변 자료에서
경찰이 제대로 수사했으면 장주영 살인을 막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서울보호관찰소의 말은 타당한 지적이다. 자, 이번엔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자. 그렇다면, 서울보호관찰소는 ‘재범위험 9위’ 서진환을 제대로 관리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을 감사원에서 했다.
“서울보호관찰소가 (서진환) 보호관찰 업무를 제때,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서진환이 2012년 8월 7일, 20일 두 차례에 걸쳐 성폭력과 살인 등의 재범을 저지르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 감사원 질의서 중에서
서울보호관찰소는 서진환을 어떻게 관리했길래 이런 지적을 받았을까? 보호관찰은 범죄인을 수용시설에 구금하지 않고 사회에서 정상 생활을 하게 하되,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으로 범죄성을 개선하는 형사정책 제도다. 보호관찰관에겐 보호관찰대상자(범죄인)의 행동과 환경 등을 제대로 살피면서 재범을 방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서진환처럼 전자발찌 착용자는 보호관찰소의 특별 관리 대상이다. 규정에 따르면, 전담 보호관찰관은 전자발찌 부착자가 어디에서 움직였는지 매일 검토하여 위치추적시스템에 ‘일일감독소견’을 남겨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전자발찌 부착 개시 후 3개월까지 월 4회 이상 면담해야 한다. 그 이후부터는 월 3회 이상 면담(이중 1회 이상은 불시에 찾아가서, 분기 1회 이상은 18시 이후에 실시)을 해야만 한다.
‘재범위험성평가 9위’ 서진환은 이 규정대로 관리됐을까?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서진환에 대한 ‘일일감독소견’은 날마다 기록되지 않았다. 출소해 장주영을 살해할 때까지 9개월 동안 그의 행적은 짧게는 이틀, 길게는 보름간 한꺼번에 기록됐다.
특히 2012년 8월 1일부터 16일까지 보름 간 ‘일일감독소견’은 8월 17일 한꺼번에 입력됐다. 이 기간 중 하루인 8월 7일은 서진환이 한 여성을 강간한 날이다.
‘월 3회 면담’에도 안타까운 점이 있다. 서진환 전담 보호관찰관은 애초 A씨였는데, 2012년 7월 16일 인사이동으로 B씨로 바뀌었다. B씨는 서진환이 장주영을 강간살인 할 때까지 약 1개월 동안 한 차례도 면담하지 않았다. B씨는 관련 문제 등으로 그해 10월 12일 감사를 받았다. 감사 담당자가 집중 추궁하며 묻는다.
- 전자발찌 부착자를 대상으로 한 보호관찰업무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위치를 추적해 전자발찌 부착자가 항상 관찰받고 있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어 재범을 예방하는 것이 주요 업무입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묻겠습니다. 전자발찌 부착자를 어떤 방법으로 면담하는지요?
“보호관찰소 출석 면담, 불시 현지 출장 면담, 통신지도, 서신지도 등 다양합니다.”
- 전자발찌 부착자를 면담하는 것은 재범을 예방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업무라고 판단되는데, 맞습니까?
“예. 면담은 재범을 예방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합니다.”
- 서진환 전담 보호관찰으로서 그의 성격, 재검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전 담당자 A씨에 따르면, 서진환은 쉽게 마음을 여는 성격이 아니었고, 재범 위험이 있어 좀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했습니다. (이하 생략)”
- (당신이) 서진환을 점담하게 된 7월 16일부터 보호관찰소로 그를 불러 면담 적이 있나요?
“아니오. (이하 생략)”
- 현지 출장을 통해 서진환을 면담한 적이 있나요?
“아니오. (이하 생략)“
- 서진환을 방문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죠?
“새로 맡은 보호관찰 업무량이 많아 업무 파악에 많은 시간이 걸려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 지침대로 ‘월 3회 면담’을 해야 하는데, 왜 서진환을 대면 접촉하지 않았나요?
“7월 16일 인계인수를 받고 업무량이 증가하였습니다. (중략) 8월에는 20일(장주영 강간살해된 날) 이후 출장을 통해 대면 접촉 2회를 실시할 예정이었습니다.”
- 8월의 바쁜 일정에도 다른 전자발찌 부착자는 면담했는데, 서진환은 안 했습니다. 긴급 면담 대상자가 아니었나요?
“아니오. 전자발찌 부착자는 모두 긴급합니다.”
- 그럼 전자발찌 부착자 면담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요?
“재범위험성이 더 높은 사람을 면담하는 게 우선입니다.”
- 서진환은 재범위험성이 높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오. 높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데도 서진환을 우선 면담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죠?
“서진환은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서진환을) 적극적으로 면담했으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예. 적극적인 면담을 실시했다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B씨는 마지막에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끼져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물론 B씨의 항변(?)이 완전히 터무니 없던 건 아니다. 공교롭게도 인사이동으로 그가 서진환을 점담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사건이 발생했다. 게다가 지침에 따르면, 보호관찰관 1명은 전자발찌 부착자 15명을 초과해서 관리하지 않도록 돼 있다. 하지만 당시 서울보호관찰소는 B씨에게 25명을 담당하게 했다. 업무가 과중했다는 B씨의 말은 과장이 아니다.
어쨌든, 서울보호관찰소는 재범위험성이 높은 서진환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여러 규칙을 어겼다. 감사원 지적대로 경찰과 보호관찰소 모두 잘못을 했다. 이들은 예방할 수 있는 범죄를 막지 못했다.
그 결과 한 여성이자 두 아이 엄마인 장주영이 끔찍하게 살해됐다.
담당 공무원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사죄를 했지만 ‘장주영 사망에 국가의 책임은 없다’는 게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재범 위험성 상위 1%의 남자 서진환, 그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국가 탓에 박귀섭씨의 가족은 ‘하위 1%’의 삶을 살고 있다.
강간살인 사건으로 아내를 잃은 남편, 갑자기 엄마를 잃은 두 아이, 아내 잃은 아들을 지켜보는 늙은 엄마..국가에게 단 한 번도 사과를 받지 못한 이들은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커피처럼 검은 나날을 견디며 살아간다.
(2016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한 기사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