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두 글자가 외롭고 쓸쓸하다.
“엄마가 사용해 주세요. 정확한 비교어휘 사용은 수학적 개념발달에 도움이 됩니다.“
저 비교어휘를 사용할 엄마는 없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이 집에서 엄마는 금기어다. 남편 박귀섭은 집에서 엄마의 흔적을 지웠다. 더는 집에 올 수 없는 아내가 미워서가 아니다. 어린 두 아이, 성재(가명)와 소현(가명)이를 살리기 위해서다.
박귀섭 씨는 알고 있을까? 집 한쪽 구석에 저렇게 ‘엄마’라는 글자가 남았다는 걸. 엄마란,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사람. 가슴 깊이 묻어도 언젠간 가슴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사람.
지극히 일상적인 아침, 그래서 행복한 순간에 엄마는 떠났다. 엄마는 창밖에서 손을 흔들었다. 5살 성재와, 4살 소현이도 버스 창밖의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버스는 유치원으로 향하고, 엄마는 집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잠시 뒤, 상습강간범 서진환이 엄마를 강간살해했다. 2012년 8월 20일의 일이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유치원으로 가던 성재(9살)와 소현(8살)이는 이제 같은 초등학교에 다닌다. 엄마를 가슴에 묻는 방법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오늘도 고통스런 기억과 싸운다. 집에 엄마 흔적이 없어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왜 엄마가 오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안다. 아이들은 입 밖으로 ‘엄마’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래야 자기들 가슴이 덜 아프다는 걸 안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성재와 소현이는 조금은 편안해진 마음으로 “내게도 엄마가 있었지”하며 추억할 수 있을까.
두 아이에게 엄마를 빼앗은 서진환. 역설적이게도 그는 외롭고 쓸쓸한 엄마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이다. 서진환과 함께 유년을 보낸 그의 친구 A 씨가 말했다.
“엄마에 대한 애정이 큰 친구였어요. 아버지가 엄마를 많이 때린다고 ‘엄마가 불쌍하고 가엽다’는 이야기를 종종했어요. 왜 도망가지도 않고 그렇게 맞고 사는지 답답하다고도 했고.“
많은 아이들처럼, 어린 서진환은 엄마를 사랑했다. 그는 아버지가 엄마를 두들겨 패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서진환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성장했다는 건 법원 판결문, 경찰이 작성한 재범위험성 평가 문서, 보호관찰소의 판결전조사서 등으로 공인된 사실이다. 한 문서의 내용은 이렇다.
“서진환은 성장하면서 부모 및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 심리적 지지를 받은 경험이 없어 외톨이로 지내면서 고립감, 소외감, 피해의식을 느껴왔다.” – 보호관찰소의 ‘판결전조사서‘
하지만 서진환의 아버지는 이 모든 걸 부인한다. 엄마를 때린 적이 없고, 도박을 하지 않았으며, 술도 적당히 마셨다는 게 아버지의 일관된 주장이다. 지난 16일 만났을 때도 서진환의 아버지는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걔(서진환)가 나쁜 짓 하고 돌아다닌 게 왜 나 때문이야? 그 새끼는 원래 글러 먹었어. 난 잘못 한 거 없어! 지들이 알아서 사는 거지, 왜 남탓을 해.”
아버지는 아들 서진환과 자신을 철저히 분리했다. 아버지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니 사과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버지는 “아들 문제에 신경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서진환의 모든 잘못을 아버지에게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버지는 무책임했다. 그는 자식 10명을 낳았지만 제대로 보살피지 않았다. 술과 도박으로 시간과 재산을 낭비했다. 자식들 앞에서 엄마를 때렸다. 그 탓에 형제 대부분은 초등학교 졸업 무렵부터 뿔뿔이 흩어졌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오늘도 자신있게 말한다.
“나는 잘못 없어!”
이런 아버지는 장주영의 죽음을 대하는 국가와 여러 면에서 닮았다. 이 기획에서 줄곧 지적했듯이, 장주영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기관은 마치 시합이라도 하듯이 실수와 잘못을 범했다.
시작은 검찰이었다. 공익의 대변자라는 검찰은 상습 강간범 서진환에게 법을 잘못 적용했다. 최소 징역 10년형을 구형해야 하는데, 엉뚱하게 7년을 구형했다. 법원도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검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서진환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운 좋게 3년을 번 서진환. 경북북부제2교도소가 실수를 이어받는다. 교도소 측은 죄명 ‘특수강도강간죄’를 빠트린 채 서진환을 절도범으로만 분류해 관할 경찰서에 석방을 알린다.
이번엔 경찰이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을 범한다. 우범자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경찰은 서진환이 전자발찌를 찬 채 여성 A 씨를 강간했는데도 검거하지 못한다. 경찰은 전자발찌 신호를 확인하지 않았다. 서진환이 범행 현장에 DNA 정보를 남겼는데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서진환은 도망가지도 않았다. 집에서 ‘야동’을 보면서 지냈다.
보호관찰소는 서진환이 “사람을 칼로 찌르거나 성폭력을 하는 등으로 사고를 치고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경고했는데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경찰과 보호관찰소가 헛발질을 하는 사이, 서진환은 A씨 강간 13일 뒤에 장주영을 강간살해한다. 훗날 감사원은 두 기관을 감사한 뒤 이런 지적을 했다.
“(경찰은) 서진환의 2차 범행(장주영 강간살해)을 예방할 수 있었는데도 예방하기 힘든 상황을 초래했다.” – 경찰청 감사결과
“서울보호관찰소가 (서진환) 보호관찰 업무를 제때,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서진환이 2012년 8월 7일, 8월 20일 두 차례에 걸쳐 성폭력과 살인 등의 재범을 저지르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 보호관찰소 감사결과
상황이 이럼에도 장주영 사망에 대한 국가의 견해는 지난 4년간 변함이 없다.
“우린 잘못 없다. 그래서 책임질 일도 없다.”
박귀섭 씨는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했다. “서진환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던 재판부, 검사, 경찰 등 수사기관의 잘못과 이 사건 범행(장주영 강간살인 사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잘못이 없다는 서진환의 아버지와 국가. 책임 회피 하나는 쌍둥이처럼 닮았다. 문득 궁금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도 하지 않는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최근 이 기획 ‘엄마는 오지 않는다’의 한 독자가 메일을 보냈다.
“저 또한 24년 전 엄마를 살인사건으로 잃었기에 용기내어 글을 씁니다. (중략) 그때 갑자기 엄마를 잃고, 아내를 잃고, 며느리를 잃은 우리 가족들은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24년이 지나니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도 생기네요. 저희 가족은 어두운 고통의 터널을 잘 지나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24년이라는 고통의 터널을 지나서야, 그것도 ‘용기’를 내야만 과거 복기가 가능하다니. 살인사건으로 엄마를 잃은 상처는 이렇게 깊고도 크다. 엄마 장주영을 4년 전에 잃은 성재와 소현이는 이제 겨우 고통의 터널 출입구에 들어선 셈이다.
한 여자의 죽음, 두 아이의 고통에 책임이 없는 국가. 이런 나라에서 엄마 없이 맨몸으로 살아가야 할 두 아이가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2016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한 기사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