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에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축제와 감시는 동시에 시작됐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2012년 4월 3일 ‘나는 꼼수다-봉주10회’에서 김어준은 말했다.
“삼두노출이 언제 있느냐! 4월 8일 일요일 서울광장에서 삼두노출을 필두로 한 번개의 형식으로!“
주진우는 4월 3일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남긴다.
“4월 8일 오후 4시 11분. 서울광장. 꼼수 삼두노출 대번개. 우발적으로 참여하라! 간식은 제가 쏩니다!”
이틀 뒤 주진우는 “간식을 쏘겠다”는 말을 취소한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선거법 위반을 우려해서다. 문제는 간식이 아닌 보다 본질적인 곳에서 벌어진다. 선거관리위원회는 간식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계속 김어준의 입과 주진우의 손가락을 주시한다. 주진우가 딱 걸려든다.
“우발적으로 집결하라! 4월 8일 오후 4시 11분, 서울광장 나꼼수 삼두노출 대번개.” – 4월 7일 오후 9시 22분, 주진우 트위터.
많은 시민이 김어준, 주진우의 말과 글을 트위터 등 인터넷 공간에 퍼트렸다. 3일 뒤, 선관위가 검찰에 접수하는 고발장에는 이렇게 적힌다.
“이들(김어준, 주진우)의 추종자들이 리트윗 하거나 이들이 개설한 각종 포털사이트에 글을 옮기고..”
축제의 현장, 4월 8일 일요일 서울광장에는 시민 5000여 명이 모인다. 많은 취재진이 몰렸고, 선관위 직원들도 출동했다. 김어준, 주진우는 선루프가 열린 차에 고개를 내민 채 카퍼레이드 형식으로 현장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마이크를 잡았다. 선관위 직원은 녹음을 시작했다.
“용민이가 피투성이가 되었어요. 왜냐하면 그 뒤에 가카를 숨기려고!” – 김어준
“용민이 사전에 사퇴란 아롱사태밖에 없어요. 투표율 몇% 나오면 세상이 바뀔까? 70%!” – 주진우
많은 사람은 두 사람의 말에 환호했다. 큰 박수도 보냈다. 당시 제19대 총선에 출마한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서울 노원갑)도 선루프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일명 ‘삼두노출’ 퍼포먼스를 했다.
삼두노출은 그해 3월 13일,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손수조 후보(부산 사상)가 벌인 카퍼레이드를 패러디한 행사다. 당시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선관위는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고 손을 흔든 시간이 짧아 선거법 위반으로 단정짓기 어렵다”며 박 위원장과 손 후보에게 면죄부를 줬다.
축제와 패러디는 끝났다. 이제 고통의 시간이 시작된다.
선관위는 곧바로 김어준, 주진우를 검찰에 고발한다. 선관위 눈에 “번개 형식으로 우발적으로 모이라”는 두 사람의 말은 사전 고지, 삼두노출 행사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집회”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선거법 위반으로 불법이다. 5000여 시민은 불법 행위에 환호한 셈이다.
김어준, 주진우는 각각 그해 8월 8일과 9일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해 피의자신문을 받는다. 검사가 진지하게 주진우에게 묻는다.
“‘용민이 사전에 사퇴란 아롱사태밖에 없다’고 발언한 사실이 있지요?“
주진우는 턱을 괴고 대답하지 않았다. 사태가 커졌다. 아롱사태가 문제가 아니다. 검사가 김어준에게도 묻는다. 이 질문이 핵심이다.
“언론인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선거기간 중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집회를 개최하여 특정 후보를 지지 선전하는 행위가 법에 위반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죠?“
김어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쫄아서’가 아니다. 그는 아래의 견해를 밝히면서 피의자 권리에 따라 진술을 거부하겠다고 미리 수사기관에 알렸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그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왔으며 금번 선거에서도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를 독려하였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평소 소신에 따라 현 정부의 정책 등에 대한 평가의견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4년이 지나 다시 총선이 다가왔다. 이 사건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주진우 ‘시사인’ 기자는 구속될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괜한 엄포와 겁주기, 경고가 아니다.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높다.
두 사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법에 딱 걸렸다. 둘은 공직선거법(선거법)을 위반했다. 정치인도 아닌데, 선거법 위반이 뭐 그리 대수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 김어준, 주진우 역시 이 문제를 무겁게 받아들인다. 둘을 옭아맨 대표적 선거법 조항은 이렇다.
제60조(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자)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으로 정하는 언론인.
한국은 법으로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나라다. 김어준, 주진우는 이걸 어겼다. 검찰은 이들을 기소했다. 선거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두 사람은 유죄다.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600만 원 이하의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여러 변호인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실력 있는 변론과 방어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너무도 명백하게, 그것도 수많은 목격자 앞에서 선거법을 어겼다. ‘삼두노출’만이 아니다. 김어준, 주진우는 제19대 총선 때 몇몇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모두 검찰의 공소장에 적힌 선거법 위반 행위다. 두 사람이 언론인이라는 게 핵심 이유다.
손수조-박근혜는 괜찮고, 김어준-주진우는 안 되는 형평성 문제는 잠시 미뤄두자. 가만히 생각해보자. 도대체, 왜 언론인은 선거운동을 하면 안 되지? 뭐가 문제일까? 물론 여러 사람은 ‘언론인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져보자.
김어준-주진우는 기사나 자신들이 속한 매체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 직업으로서의 언론인이 아니라, 개인 자격으로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했다. 누구든 표현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 의사 역시 자유롭게 밝힐 수 있다. 언론인에게 이를 제한하는 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침해 아닐까?
‘언론인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언론이 쓴 기사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지, 언론인이 중립적일 필요는 없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에는 사실이 아닌 기사를 바로 잡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기자를 처벌하는 제도와 법이 있다.
문제가 있는 보도를 규제하면 될 일이지, 언론인 개인의 정치적 표현을 제한하는 건 기본권 침해다. 한국은 언론인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는 나라다. 정당 가입은 돼도 선거운동은 안 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영국의 ‘가디언’이 한국에서 발행되는 매체였다면, 그 사장이나 편집국장은 선거 때마다 구속됐을 거다. 이들 매체는 선거 때마다 사설과 칼럼, 논평 등으로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을 밝히니 말이다. 두 매체만이 아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민주주의 국가의 많은 유력 언론은 선거 때마다 그렇게 한다. 한국에서 그랬다간 모두 중한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나라 중에서 언론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랜 세월 공산체제를 유지했던 러시아에도 관련 조항이 없다.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도대체 이 법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법률 조항은 1981년 1월 29일 국회의원선거법(법률 제3359호)으로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전두환 신군부 정권 때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의결, 제정됐다. 30여년 전 군사정부 시절의 법률이 언론의 입을 막는 형국이다. 자, 이제 독자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김어준, 주진우를 처벌하는 게 맞을까? 정치적 의사 표현 등 표현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는 나라에서 과연 합당한 조처일까?”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법률에는 문제가 있다. 김어준-주진우는 관련 선거법은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두 사람의 사건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관련 법률은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심판을 받고 있다. 합헌 결정이 나면 김어준, 주진우는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악법도 법이지만, 인간은 불합리한 법을 계속 고쳐왔다. 호주제, 야간집회 금지, 간통죄 등이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기획 ‘선거 축제, 누가 가로막나’는 두 사람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모든 언론인을 위한 일이며, 모두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일이다.
한국의 선거법은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외에도 여러 문제가 있다. 트위터에서 ‘RT(리트윗)’ 버튼 눌렀다고 경찰에 불려간 사람이 있고,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를 때도 신중해야 한다.
선거의 쟁점이라는 이유로 ‘4대강 사업 찬반’ ‘무상급식 찬반’ 의사를 밝혔다고 법정에 선 사람도 있다. ‘자유’는 제한적이고 ‘금지’는 넘친다. 심지어 선거법은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의 공개연설마저 금지하고 있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면서, 주권자인 시민은 선거운동 기간에 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없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할 생각이다. ‘박 대통령 5촌조카 살인사건’ 의혹을 제기했다가 검찰에 불려가고, 작년 1월 16일 2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어준. 당시 그는 법정을 나오면서 이런 소감을 밝혔다.
“이상한 사건을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를 지켜준 사법부의 판단에 감사드린다. 그 권리를 지켜 준 국내외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이상한 사건을 이상하다고 말하겠습니다.“
이 기획을 통해 이상한 법을 이상하다고 말할 생각이다. 모든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