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에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
이계삼 앞에서 눈물 흘린 적이 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밀양 어르신들이 겪은 인간적 모욕과 인생 후반부에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치욕을 이야기했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을, 차마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상처를 이야기할 때면 그는 눈을 감았다. 목소리는 낮았고, 가끔씩 떨렸다.
고통을 말하는 이계삼의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가 언젠가 <한겨레>에 쓴 글의 한 대목이 문득 떠올랐던 것일까.
“밀양 송전탑 싸움에서 공사용 헬기가 뜨지 못하도록 막았던 주민들이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당해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젊은 검사는 50대 아주머니에게 호통을 쳤다. 말끝에 그는 ‘자식한테 부끄럽지도 않냐’고까지 했다. 아주머니는 검사실을 나오자마자 너무나도 서러워서 기다리던 이웃들 앞에서 엉엉 울었다.”- 2013년 7월 5일 <한겨레> 이계삼 칼럼에서
나는 이계삼 앞에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말았다. 눈을 뜬 이계삼은 당황했고, 나는 그보다 더 당황했다. 햇수로 기자 생활 10년 동안 취재원 앞에서, 그것도 인터뷰하다가 울어버린 건 2013년 10월 22일 밀양의 밤, 그 순간이 처음이었다.
시간이 흘러 2016년 지금, 이계삼은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2번’으로 제20대 총선에 출마했다. 국회의원 후보자가 되기 전, 이계삼은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밀양 할매, 할배들과 풍찬노숙하며 약 4년여를 싸우기 전, 그는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친 중등학교 교사였다.
그냥 눈 딱 감고 살면, 교사로서 그럭저럭 중산층으로 지내다, 정년퇴직 후엔 연금 받으면서 노년의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계삼은 이걸 버렸다. 왜 그랬을까. 우정, 의리, 가난. 이 세 가지 가치와 키워드가 아니면 거꾸로만 가는 이계삼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2012년 2월 10일, 그는 학교에서의 마지막 종례 시간에 학생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이해가 잘 안 될지 몰라도,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 것은 너희들이 나한테 준 우정에 대해서 내가 보답하는 표현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교사 시절 이계삼은 “(아이들에게) 사기를 그만 좀 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도 대개의 청년이 실업과 비정규직을 벗어날 수 없으니 교사로서의 자책은 괜한 게 아니었다. 그는 인문학과 농업이 중심이 된 ‘농업학교’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그의 고향 밀양에서 벌어진 송전탑 반대 투쟁이, 그 싸움을 하던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이 그를 활동가로 만들었다. 이번엔 송전탑 반대 투쟁을 하던 어르신들에 대한 ‘의리’가 이계삼을 새로운 길에 서게 한다.
“약간의 우연과 거부할 수 없는 필연이 겹쳤다. 필연은 밀양송전탑 투쟁이 담고 있는 중요한 가치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싸움에서 만난, 이 책 곳곳에서 내가 수없이 드러내는 어르신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분들이 내게 베풀어 준 우정, 그리하여 형성된 어떤 ‘의리’일 것이다.
그것은 나를 포함하여 밀양송전탑 투쟁을 통해서 삶의 방향이 바뀐 많은 이들이 한결같이 고백하듯, 그 ‘고운 얼굴들’이 나를 지난 4년간 이 자리에 서 있게 했다. 그들은 외로움에 주리고, 지금 핍박받고 있으며,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나는 지난 4년간 열심히 살았다. 풍찬노숙으로 점철된, 때로는 어이없는 폭력과 선동에, 때로는 두려움에 시달리기도 하였으나, 끝내 넘어서고 말았던, 패배하였으나 이미 승리한 이 싸움의 정신은 이 어르신들의 의로움, 가난한 마음들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싸움을 지나오면서 나는 결국 정치의 문턱을 넘게 되었다. (중략) 지금 이 세상이 아주 가파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고 그것은 상당 부분 ‘정치의 부재’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지난 밀양송전탑 투쟁 4년 동안 나는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그러나 정치만은 내 몫이 아니라며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것은 의롭지 않은 일이었다.” – 이계삼 <고르게 가난한 사회>에서
이계삼은 밀양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는 자신의 강변 고향마을 남포리를 자주 생각한다. ‘가난한 동네가 늘 그러하듯 밤이면 취한 아저씨들의 주정과 쌈박질’ ‘일거리 없는 동네 아재들이 날품팔이를 위해 새벽 자전거를 타고 읍내로 가던 길목’ 등 그 시절의 풍경과 사람을 그리워한다. 그것은 이계삼이 꿈꾸는 ‘고르게 가난한 사회’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내가 살고 싶은 나라는 마을 공화국이다. 풍요와 안락의 광태가 사그라든 뒤에야 찾아올지도 모를 고르게 가난한 사회다. 관건은 ‘민주주의’이리라. 민주주의는 복잡하고, 더디며, 소란스러운 것이며, 주권은 누군가에게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직접 행사해야만 주권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개인의 책임성 범위 내, 곧 마을 수준에서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 <고르게 가난한 사회>에서
그것만으로도 한국 정치사에서 흔하지 않은 출마의 변인데, 이제는 고르게 가난한 나라를 꿈꾸고 있단다. 총선에 출마한 대부분의 사람은 경제 발전, 개발, 성장, 부자를 말하는데 그는 거꾸로 가난한 삶과 가난의 정경을 말한다.
그는 왜 이 시대에 가난과 핵 없는 세상,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해도, 그 역시 말하고 싶어도, 이계삼에겐 크게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
한국의 공직선거법(이하 선거법)은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와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명확히 구분한다. 이계삼 같은 비례대표 후보자는 독자적으로 공개장소에서 ‘연설, 대담’을 할 수 없다. 질문을 받을 수도, 답변을 할 수도 없다. 문제의 선거법은 이렇게 규정돼 있다.
선거법 제79조(공개장소에서의 연설·대담) ① 후보자(비례대표국회의원후보자 및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후보자는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는 선거운동기간 중에 소속 정당의 정강·정책이나 후보자의 정견,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을 홍보하기 위하여 공개장소에서의 연설·대담을 할 수 있다.
②제1항에서 “공개장소에서의 연설·대담”이라 함은 후보자·선거사무장·선거연락소장·선거사무원(이하 이 조에서 “후보자등”이라 한다)과 후보자등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 중에서 지정한 사람이 도로변·광장·공터·주민회관·시장 또는 점포, 그 밖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으로 정하는 다수인이 왕래하는 공개장소를 방문하여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하거나 청중의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대담하는 것을 말한다.
분명하게 나온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는 제외한다”고 말이다. 사문화된,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이 법률의 규제를 받았다.
이계삼 말대로 “민주주의는 복잡하고, 더디며, 소란스러운 것”이고, 국민 주권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선거는 축제처럼 떠들썩해야 제맛일 텐데, 한국의 선거법은 이계삼에게 이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을 수준에서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는, 국회의원 후보자 이계삼과 주권자인 마을 주민이 서로의 눈을 보고 토론하고 대화할 수 있는 길은 거의 막혀 있다.
이계삼에게만 길이 막힌 건 아니다. 최근 새누리당에 입당한 강효상 전 ‘조선일보’ 편집국장, 김종인 더불어 민주당 대표, 박선숙 국민의당 선대위 총괄본부장, 조성주 정의당 후보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소속 정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다.
이계삼이 독자적으로 유세차량에 올라 탈핵이 필요한 이유를 연설할 수 없듯이, 강효상 후보도 언론계에 있다가 국회의원이 되려는 이유를 유권자에게 직접 연설할 수 없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고, 법은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법은 만인에게만 평등하다는 조롱을 받는가 하면, 때로는 의도하지 않은 불평등을 낳기도 한다. 선거법이 그러하다.
선거법은 비례대표 후보자가 연설, 대담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자와 함께 하면, 그가 곁에 있으면 비례대표 후보자도 마이크를 잡고 연설할 수 있다. 공평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새누리당과 더불어 민주당은 전국 거의 대부분 지역구에 후보자를 냈지만, 군소 정당은 그렇지 못하다.
즉 같은 비례대표 후보인 김종인 더불어 민주당 대표는 선거운동에서 크게 불편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이계삼 녹색당 후보와 조성주 정의당 후보 등에겐 연설할 기회 자체가 크게 축소된다. 유권자 역시 군소정당 후보자의 정책과 철학, 비전을 들을 기회를 잃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비례대표 선거로 당선자를 많이 배출한 진보정당이 불평등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진보정당은 주로 비례대표를 통해 명망가를 영입했는데, 이들을 선거운동 기간에 적극적으로 내세울 수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아쉽겠는가. 이런 사정 때문에 과거 노회찬 민주노동당 후보,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가 관련 선거법 조항 등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당시 홍세화 대표는 청구서를 통해 주장했다.
“해당 법률 조항은 비례대표 후보자와 정당의 선거운동 자유 및 정당활동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유권자들이 직접 비례대표 후보자들과 대면해 정당의 정강과 정책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 유권자들의 알 권리도 침해합니다. 또한 충분한 재원을 가지지 못한 군소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들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정당의 정강이나 정책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막고 있습니다. 따라서 해당 법률 조항은 선거운동의 기회균등원칙과 관련된 평등권을 침해합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례대표는 전국 단위 선거인만큼 공개장소에서의 연설, 대담보다 신문, 방송, 인터넷 광고를 통한 선거운동이 비용과 효율 면에서 좋다는 게 주요 이유였다.
군소정당 쪽에서는 “신문, 방송, 인터넷 광고를 하려면 훨씬 많은 비용이 드는데, 무슨 소리냐. 헌법재판소에 현실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헌재의 견해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
비례대표제는 이 사회에 존재하지만, 잘 들리지 않는 소수자의 주권을 실현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유용한 제도이다. 비례대표 출신 의원들이 한국 정치사에 남긴 흔적은 작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제14대 총선 때 전국구(현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14대 ‘친박’으로 통하는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도 ‘친 이명박’ 계열이 다수이던 18대 국회 때 비례대표로 국회의 입성했다. 김광진, 은수미 더불어 민주당 의원은 물론이고 과거 강기갑, 노회찬, 심상정, 이정희 등도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과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 이어 이번엔 녹색당이 나섰다. 녹색당 이유진(서울 동작구갑 후보), 하승수 후보(서울 종로구 후보) 등은 작년 5월 15일 헌법재판소에 관련 법률 조항 등에 대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이들은 선거법 79조 1항은 기성 정당과 국회의원에게만 유리한 차별적 법률이라며 위헌을 주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번엔 어떻게 판단할까. 과거처럼 ‘합헌’ 결정을 내릴까, 아니면 ‘위헌’ 결정으로 비례대표 후보자들에게 연설, 대담의 자유를 줄까?
아, 박근혜 대통령의 여동생 박근령 씨도 올해 총선에서 공화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했다. ‘위헌’ 결정이 나면 박근령 후보도 자유롭게 연설, 대담할 수 있다. 유권자 역시 박 후보에게 궁금한 걸 자유롭게 물을 수 있다. 이를 테면 “출마 전에 현직 대통령인 언니와 상의를 했는가” 등 말이다.
국회의원 출마자는 자유롭게 자신의 정책과 철학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유권자 역시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원래 소란스러운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