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 2015년 10월 13일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그 놈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움직이면 죽여버린다.”
놈은 목에 흉기를 갖다 댔다. 금속의 차가운 느낌이 온몸으로 퍼졌다. 눈을 떠도 보이는 건 없었다. 캄캄한 새벽이었다. 한 놈이 아니었다.
“돈 어디에 있어?”
금속의 흉기만큼 차가운 목소리. 최미숙(가명) 씨는 꼼짝하지 않은 채 “돈은 장롱에 있다“고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네 자식이랑 남편 살려줄게.”
가늘고 자연스런 경상도 사투리였다. 최미숙 씨는 5살 아들을 꼭 껴안았다. 몸이 부들부들 떠렸다. 아들이 깨어나 울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듯했다. 남편도 자신처럼 이미 제압당했다. 강도들은 청색 테이프로 부부의 눈과 입을 막았다.
암흑의 세상. 강도들의 움직임 소리만 들렸다. 누군가 고모님 유OO(당시 77세)의 방으로 간 듯했다.
“누구야!”
고모님의 짧은 외침이 들렸다. 그게 끝이다. 세상은 다시 조용해졌다. 잠시 뒤 방문을 통해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그 차가운 공기와 고요함으로 강도가 떠났다는 걸 알았다.
결박을 푼 최미숙 씨는 고모님방으로 달려갔다. 고모님은 사망한 채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1999년 2월 6일 새벽 4시께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 사건은 이렇게 끝났다.
수사에 돌입한 완주경찰서는 한참을 헤맸다. 명확한 물증, 목격자는 없었다. 강도들은 딱 하나만 남겼다. 경상도 사투리의 낮고 가는 목소리. 최미숙 씨는 그 목소리를 단 하루도 잊은 적 없다. 완주경찰서에서도 목소리에 대해 진술했다. 사건 발행 이후 약 열흘 뒤 경찰에게 연락이 왔다.
“범인들 체포했습니다. 3인조입니다.”
최미숙 씨는 곧바로 경찰서로 달려갔다. 고모님을 사망하게 만든 그들의 얼굴을 직접 보려고 했다. 목소리만 들으면 진범이 맞는지 알 수 있었다. 최 씨는 지난 9월 12일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이 만나지 못 하게 막더라고요. 좋지도 않은 일인데, 뭐라고 만나려 하느냐면서 극구 말리더라고요. 아주 나쁜 놈들이니 그냥 보지도 말라는 거예요.”
최미숙 씨는 약 1년 뒤 무서운 진실을 알았다.
완주경찰서가 체포했다는 범인은 가짜였다. 경찰이 가난하고, 못 배운,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잡아와 누명을 씌워 만든 ‘가짜 3인조‘였다! 도대체 어떤 아이들이었을까.
강인구 – 당시 18살. 중학교 중퇴. 지적장애 있음. 한글을 쓸 줄 몰랐음. 6살 때 엄마 사망. 알코올 중독 아버지 역시 한글을 모름. 당시 월 10만 원짜리 집에서 아버지와 둘이 거주.
최대열 – 당시 19살. 중학교 졸업. 지적장애 있음. 한글을 잘 쓸 줄 모름. 엄마는 하반신 마비 1급 장애인, 아버지는 척추장애 5급 장애인. 모든 가족이 보증금 100만원-월세 2만 원짜리 방 한 칸 집에 거주. 최대열이 건설 노동하며 부모 부양.
임명선 – 당시 20살. 중학교 중퇴. 아버지 알코올 중독. 엄마는 임명선 수감 뒤 정신질환 앓기 시작. 당시 부모님 전 재산 500만 원. 아버지는 임명선 수감중 사망.
이들은 범인이 아니다. 진범은 따로 있다. 사건 발생 1년 뒤 부산지방검찰청이 ‘진범 3인조‘를 수사했다. 그들은 모든 걸 자백했다. 진술은 사건 정황과 일치했다. 최미숙 씨는 부산으로 달려갔다. 수사하면서 녹음한 그 놈 목소리를 검찰청 직원이 들려줬다. 낮고 가는 경상도 사투리..그 놈이었다! 최 씨는 오열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죠? 완주경찰서는 범인을 잡지 않고, 조작으로 범인을 만들었습니다!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경찰이 무슨 짓을 한 거죠?”
경찰은 주먹과 몽둥이질로 미성년 장애인들을 엮어 범인으로 제작했다. 증거 있느냐고? 있다. 진실의 한 조각이 담긴 일명 ‘풀 동영상‘을 갖고 있다. 경찰은 자신들이 조작한 가짜 3인조가 현장검증에서 범행 재연을 못하자 이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때리면서 연기까지 시켰다. 그 순간 경찰은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웃는다.
검찰은 뭘 했을까? 가짜 3인조 중 한 명인 최대열 씨는 아직도 검사의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제가 억울하다고 범행을 부인하니까, C검사가 ‘내가 무기징역 구형해 줄까? 아니면 사형?’이라고 하더라고요.”
검찰은 조직적으로 움직인 모양새다. 부산지검은 진범 3인조를 갑자기 전주지방검찰청으로 넘겼다. ‘가짜 3인조‘를 수사하고 재판에 회부했던 C검사가 ‘진범 3인조‘를 또 수사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C검사는 진범 3인조를 기소하지 않았다. 가짜 3인조가 계속 감옥생활을 했다.
그럼 법원은? 지적장애가 있고, 미성년자이며, 가난 탓에 변호사 조력도 받지 못한 이들에게 판사는 가혹했다. 사실 관계도 따지지 않았다. 간이공판 한 차례만 열고 바로 가짜 3인조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국선변호인은 경찰, 검찰과 비슷했다. ‘가짜 3인조‘가 억울함을 호소하자 오히려 “그냥 잘못했다고 빌고 감옥에서 몇년 살다 나오라“며 허위자백과 반성을 유도했다.
가짜 3인조가 비장애인, 부잣집 아들이었어도 국가는 이들을 함부로 대했을까? 왜 국가는 사회적 약자인 이들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짓밟았을까.
박준영–신윤경 변호사가 다시 나섰다. 두 변호사는 지난 3월 ‘가짜 3인조‘의 재심청구서를 전주지방법원에 제출했다. 글을 쓰는 박상규 기자도 힘을 보탠다. 셋은 다시 팀으로 뭉쳤다. 무기수 김신혜 사건,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에 이은 세 번째 기획이다.
우리는 국가 권력이 약자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낱낱이 공개할 예정이다. 사건에 책임이 있던 당시 완주경찰서 소속의 한 형사는 과거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팀에게 이런 말을 했다.
“때리긴 누가 때려요! 내 얼굴을 보세요. (지적장애가 있는 ‘가짜 3인조‘는) 보기에는 아둔해 보이는데요 (중략) 범죄 아이큐는 하늘과 땅 차이예요. 범죄하는 방법은요, 걔네들 나름대로 그 유전자가 발달되어 있어요.”
21세기에 범죄 유전자를 거론하는 경찰이라니. 이 사건과 관련 있는 경찰, 검사, 판사는 모두 승승장구하고 있다. 현직에 남은 사람은 승진해 높은 자리에 있다. 공직을 떠난 사람은 억대 연봉을 받고 있다. 현직 국회의원도 한 명 있다.
웃을 일이 아님에도 ‘가짜 3인조‘를 수사한 경찰, 검찰의 기록을 보면 종종 웃음이 나온다. 그야말로 뒤죽박죽 엉터리다. 객관적 실체 파악조차 안 된다. 그것만 봐도 ‘가짜 3인조‘는 범인이 아니란 걸 쉽게 알 수 있다.
근거도 없이 주먹과 권력으로 범인을 창조한 사람들. 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끝까지 추적해 밝히겠다.
국가는 당시 사건 기록을 모두 폐기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기록을 갖고 있다. 우리는 유전자 운운할 생각이 없다. 자료와 근거로 말하겠다. 진실은 거기에 있다.
이제는 조작이 아닌 진실이 말할 차례다. 16년 만이다. 왜 오래전 일을 끄집어 내냐고? 가짜 3인조의 삶은 철저히 망가졌다. 그들은 아직도 누명을 못 벗고 고통 속에서 산다. 진실만이 이들을 위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