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살인범 강인구, 그를 보고 운 진범

[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015년 10월 19일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가짜 살인범 3인조‘는 눈만 깜빡일 뿐 말이 없었다.

박준영 변호사가 서류 뭉치를 꺼내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지난 2월, 전주의 한 식당이었다.

“재심청구서예요. 집에서 읽어 보세요. 이번에 강도치사 누명 벗어야죠. 잘 풀릴 테니까, 너무 걱정들 마세요.”

16년째 짊어진 살인 누명, 이번에는 벗겨질까?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세 남자는 긴장한 모습이었다. 강인구(34) 씨가 머리를 긁적이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근데..다시 재판하면..저 때린 그 형사도..법정에 나와요?”

“당연하죠! 제가 다 증인으로 부를 겁니다.”

강인구 씨의 눈이 커졌다. 말더듬이 더 심해졌다.

“그러면..저는..법정에..안 나가고 싶은데. 솔직히..무서워요..그 형사한테 제가..너무..많이 맞아서..”

식당에 정적이 흘렀다. 말하지 않아도 세 사람 모두 비슷한 심정인 듯했다. 식탁에 놓인 콩나물국밥에서 하얀 김만 모락모락 올라왔다.

18살 강인구는 경찰서에서 얼마나 맞았길래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도 공포에 떠는 걸까.

“그냥..계속 때려요. 수갑 채운 채..저를 세워서..발로 가슴 차고..넘어지면..’일어나 XX놈아’욕하면서..발로 밟고..자기들이 원하는..답을 못하면..뺨 때리고..뒤통수 때리고..형사가..’야, 발 올려!’그러면..책상에 신발 벗고..두 발을 올려요.

경찰봉으로..발바닥을 때리는데..발바닥 맞아 봤어요? 진짜 아파요..눈에서 번개 친다니까!”

지적장애가 있는 강 씨는 말을 많이 더듬는다. 긴 말을 할 때면 힘들어한다. 질문 내용을 종종 잘못 파악한다. 대화할 때 상대방 눈을 잘 쳐다보지 않는다. 대신 잘 웃는 편이다. 강인구는 어쩌다 강도치사범이 됐을까.

약 7개월 뒤 강 씨를 다시 만났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9월 25일, 전남의 한 중소도시에 있는 강 씨의 집에서다.

강 씨의 인생 이야기, 강 씨에게 누명을 씌우고 지금은 경찰 간부가 된 그들이 꼭 읽었으면 한다.

강인구 씨는 보증금 25만 원, 월세 20만 원인 원룸에서 혼자 산다. 냉장고는 있어도 음식은 없다. 캔커피 하나뿐이다. 음식만 없는 게 아니다. 그에겐 없는 것 투성이다.

그는 가족이 없다. 엄마는 그가 7살 때 사망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어렴풋이 있지만, 얼굴은 모른다. 지적장애가 있던 아버지는 술을 좋아했다. 술을 마시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취해 돌아오면 엄마를 괴롭혔다.

왼쪽 팔에 장애가 있던 엄마가 생계를 책임졌다. 노점에서 호떡을 굽고, 과일도 팔았다. 늘 가난했고, 엄마는 괴로워했다.

그날도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슬프고 괴로운 모습으로 방에 누워 있었다. 엄마는 흰 종이에 무언가를 써서 글을 모르는 7살 강인구에게 내밀었다.

“이거 OO가게 아저씨 보여주고, 아저씨가 주는 거 받아와.”

강인구는 아픈 엄마를 위해 가게로 달려갔다. 종이를 받아본 아저씨가 어떤 약을 줬다. 강인구는 다시 전속력으로 집으로 향했다. 엄마를 돕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했다.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에 약을 털어 넣었다. 잠시 뒤 엄마 입에서 흰 거품이 일었다.

“엄마가..자꾸..침을 질질..흘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옷소매로..엄마 입을..닦아줬죠.”

아무리 닦아도 엄마는 침을 계속 흘렸다. 7살 강인구의 옷소매는 엄마 침으로 젖었다. 엄마가 힘겹게 말했다.

“인구야, 엄마 괜찮아. 엄마랑 같이 자자.”

엄마는 팔베개를 해주며 강인구를 품에 꼭 안았다. 엄마 품은 따뜻했다. 그 따뜻함 속에서 강인구는 까무룩 잠들었다.

다음날, 엄마는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는 사망했다.

엄마의 죽음으로 세상은 더욱 어두워졌다. 아버지는 한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다. 자기 이름도 못 썼다. 돈 계산도 어려워했다. 1만 원 내고 소주 한 병 사면, 가게 주인이 주는 대로 잔돈을 받아오는 식이다.

아버지의 지적장애와 문맹은 강인구에게 이어졌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자주 강인구를 때렸다. 어린 강인구의 눈은 자주 “밤탱이가 됐다.”

아버지의 방임 속에서 아이는 혼자 자랐다. 느리게 이해하고, 더디게 생각하는 강인구에게 학교의 벽은 높았다. 초등학교 1,2,4학년 때는 결석을 많이 했다. 그의 생활기록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어쨌든 학교는 다녔다. 서툴게 한글을 읽게 됐지만, 쓰기의 장벽은 여전히 높았다. 아버지는 가끔 학교 앞에서 아들을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면 아버지는 아들을 앞세워 은행으로 갔다. 자기 이름을 못 쓰는 아버지는, 돈 찾는 일도 어려워했다.

강인구도 한글을 못 쓰는 건 마찬가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강인구가 아버지 이름을 말하면 은행 창구 직원이 종이에 써줬다. 아버지는 자기 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고 아들에게 말했다.

“그대로 그려.”

강인구는 돈 찾는 종이에 아버지 이름을 그렸다. 강인구에게 글은, 쓰는 게 아니라 그리는 거였다. 강인구는 학교를 중학교 2학년까지만 다녔다. 그의 나이 14살, 배가 고파 친구들과 돈을 한 번 훔쳤다. 그 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4년 뒤인 1999년 2월 어느 날, TV 뉴스에서 동네 이야기가 나왔다. 삼례 나라슈퍼에서 강도치사 사건이 발생해 77세 할머니가 사망했다고 했다.

며칠 뒤인 2월 14일 밤 10시께, 완주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강인구의 집을 덮쳤다. 강인구는 월세 10만 원짜리 방에서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형사들은 18살 강인구에게 수갑부터 채웠다. 먼저 삼례파출소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 뒤 완주경찰서로 갔다. 한 형사가 강인구를 앞에 앉히고 물었다.

“그 할머니, 네가 죽였지?”

무슨 소린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다가 뺨을 맞았다. 눈에서 별이 보였다. 형사가 다시 물었다. 강인구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 XX놈이, 거짓말을 하네.”

형사들이 그렇게 욕을 잘 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형사는 수갑 채워진 강인구를 일으켜 세워 발로 가슴을 찼다. 강인구는 뒤로 넘어졌다.

“일어나 XX놈아. 죽였어, 안 죽였어?”

한 발을 강인구 가슴에 올려놓고 형사가 다시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가 또 맞았다. 형사는 종이를 가져와 ‘자술서‘를 쓰라고 했다.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한글을 쓸 줄도 모르고..다시 찾아온 진퇴양난. 흰 A4 종이가 까마득해 보였다. 손에 펜을 들고 벌벌 떨며 한참을 헤맸다. 사정을 모르는 형사는 강인구의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제가..글을 쓸 줄 모르니까..형사가..디게 답답해..하더라고요. 뒤통수를..셀 수 없이..맞았죠.”

한참 뒤에야 형사는 사태를 파악했다. 잠시 뒤 형사는 흰 종이에 뭔가를 적어왔다. 그가 오래전 아버지처럼 말했다.

“그대로 그려.”

강인구는 다시 글을 그렸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일단 그렸다. 친구들과 나라슈퍼에서 강도 짓을 하다가 할머니를 죽였다는 내용의 자술서.

강인구는 형사에게 또 맞을까 봐 자세히, 신중하게, 천천히, 정성스럽게 자술서를 그렸다.

그렇게 한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의 한글 자술서가 완성됐다. 한글을 모르는 자가 썼는데도, 오탈자가 거의 없는 자술서. 지적장애인이 썼는데도, 매우 긴 문장으로 어떤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자술서. 세상에 이런 자술서가 또 있을까?

게다가 형사가 적어준 것인데도, 강인구가 ‘그린‘ 자술서는 실제 사건 정황과도 맞지 않는다. 진짜 범인은 세 명인데, 형사는 범인을 네 명으로 설정해놨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진짜 무서운 일은 그 뒤에 벌어진다.

검찰, 법원에서도 이 말도 안 되는 자술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대로 무사 통과, 증거로 채택됐다. 강인구는 글만 못 쓴 게 아니다. 그는 지금도 길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걸 어려워한다. 그때도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경찰–검찰의 신문조서를 보면 강인구가 어떤 상황을 그림처럼 자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냥..자기들이..마음대로..적어요. 제가..그게 뭔지나..알았겠어요?”

당시 강인구는 아버지의 연락처도 못 외우는 아이였다. 전주보호관찰소 보호관찰관 신OO 씨가 강인구를 면담한 뒤 작성한 ‘판결 전 조사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정신연령이 낮은 정신박약자여서 가족상황도 파악할 수 없었던 아이. 완주경찰서 형사와 전주지방검찰청(전주지검) C검사는 어떤 신묘한 기술로 강인구에게 논리적이고 자세한 말을 이끌어 냈을까.

법원은 정신감정이 필요하다는 보호관찰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 한 차례의 공판을 연 뒤 바로 강인구에게 징역 장기 4년과 단기 3년형을 선고했다. 강인구는 교도소에서 스스로에게 몇 번을 물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을까..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감방에 있던 어떤 아저씨가 강인구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다. 서툴게나마 글을 쓰게 됐다. 강인구는 교도소에서 출역을 거부했다. 출역을 해야 모범수가 되고, 그래야 가석방–감형 대상이 되는데도 이걸 거부했다. 양심에 따른 투쟁의 결과가 아니다.

“어차피..교도소에서..빨리 나가도..갈 데가 없었어요.”

교도소에서 약 1년을 보냈을 때였다. 강인구는 전주지검으로 향하는 호송버스에 태워졌다. 함께 교도소에 온 두 친구 임수철, 최재필도 버스에 탔다. ‘가짜 살인범 3인조‘가 다시 모였다. 불안한 강인구가 친구들에게 물었다.

“야, 너네..무슨 사고 쳤냐?”

모두 고개를 저었다. 전주지검에 도착하니 가짜 3인조를 기소한 무서운 C검사가 다시 이들을 맞았다. 3인조 앞에 또 다른 3인조가 앉았다. 세상에나, 부산지방검찰청에서 수사했다는 ‘진범 3인조‘였다. ‘가짜 3인조‘와 ‘진범 3인조‘의 맞대면 순간. 

지적장애가 있는 ‘가짜 3인조‘는 진범을 앞에 두고 “우리는 범인이 아니에요!”라고 외칠 수 있을까. 갑자기 최 검사가 ‘가짜 3인조‘에게 무섭게 큰 소리로 다그쳤다.

“너희들 똑바로 말해! 너네가 나라슈퍼 할머니 죽게 했지? 맞잖아!”

겁에 질린 강인구는 “네, 우리가 범인이에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진범 3인조‘ 중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강인구 얼굴을 바라봤다. 다시 고개를 숙인 진범은 소리 내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강인구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갔다.

“세상에서..나를 위해..울어 준 사람은..그 사람뿐이었어요. 그 진범..”

강인구는 2003년 교도소에서 나왔다. 갈 데가 없었다. 천주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무연고자 쉼터에서 약 1년을 살았다. 다시 2년 뒤인 2006년 아버지의 소재를 수소문했다.

아버지는 서울에 있었다. 기차를 타고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폐지 등을 주우며 쪽방에서 살았다. 두 명이 자기엔 좁은 방이었다. 딱 하루 아버지와 함께 밤을 보냈다. 강인구는 혼자 고향 삼례로 내려왔다.

배달 일 등을 하며 혼자 삶을 꾸렸다. 6년이 지났다. 너무 오랫동안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아버지는 다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관공서에 가 물으니 한 공무원이 말했다.

“아버지 3년 전에 돌아가셨네요.”

이로써 강인구는 완벽한 혼자가 됐다. 아버지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술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강인구는 엄마, 아버지가 이 세상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지적장애가 있어도 강인구는 남들이 좋아하는 건 똑같이 좋아하고, 남들이 싫어하는 건 똑같이 싫어한다. 그에게도 잊고 싶지 않은 행복과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있다. 언제 가장 힘들었는지 물었다.

“뭐..내 인생이..계속..힘들었죠. 외롭고. 그래도..형사에게 끌려가..이유없이 맞았을 때..그때가..제일 괴로웠죠. 왜..그렇게..사람을..때리는지..”

그의 집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요?”

“내 인생에..뭐 그런 날이..있었겠어요? (웃음)”

강인구는 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뒤 장판을 보며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때..있잖아요. 엄마가..나 끌어 안고..마지막으로 잔 날..그때..정말..따뜻했어요. 생각해보니까..그때가 제일..따뜻했고..행복..네..행복했어요.”

7살 강인구가 전속력으로 가게와 집을 오간 그날 밤. 엄마의 체온은 강인구가 잠들기 전까지 식지 않았다. 강인구는 엄마의 따뜻한 품을 기억한다. 엄마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준 그 따뜻한 체온, 잠들기 전에 느낀 그 짧은 순간의 따뜻한 기억.

그것이 강인구 인생의 최고 화양연화였다. 이를 앙다물고 그의 집에서 나왔다. 강인구가 쫓아나와 캔커피를 내밀었다.

“이거..드세요..멀리서..오셨는데..”

이로써 그의 냉장고는 완전히 비었다. 운전을 해 서울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주차장 차 안에 앉아 한동안 펑펑 울었다. 진범이 그랬던 것처럼, 계속 눈물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