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는 체육관 내 사무실로 경기에서 진 선수들을 집합시켰다. 선수들은 열중쉬어 자세를 한 채 일렬로 코치 앞에 섰다. 코치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도구를 집어 들었다. 

“니는 지금 이 꼴 났는데 쳐 웃고 있냐?”

그는 커피포트를 쥐고 1학년 선수의 관자놀이 부위를 후려갈겼다. 퍽 소리와 함께 선수 몸이 휘청거렸다. 맞은 선수는 신음도 못 내고 자세를 잡았다.

코치는 ‘날라차기’로 경기에서 실수한 선수의 복부를 가격했다. 선수는 뒤로 날아가 코치실 문에 부딪혔다. 이 선수 역시 곧바로 일어나 다시 자세를 잡았다. 분을 이기지 못한 코치는 자동차 키를 체육관 바닥에 던졌다. 부서진 키 파편이 체육관 바닥에 흩어졌다.  

이날 청주공고 핸드볼팀은 전국중고핸드볼선수권대회 6강에서 극적인 승부를 펼쳤다. 청주공고가 1점 차로 뒤지던 경기 종료 직전, 승부 던지기 기회가 찾아왔다. 이 골을 넣으면 승부는 원점, 다시 대결을 펼칠 수 있다. 

3학년 김승환(가명. 당시 19세)이 승부 던지기 선수로 나섰다. 그는 자세를 잡고 골대를 향해 공을 뿌렸으나 골키퍼가 더 빨랐다. 공은 골키퍼에 막혔다. 청주공고는 극적으로 패했다.  

일렬로 선 줄 저쪽 끝에, 골을 넣지 못한 김승환이 있었다. 코치는 김승환을 때리지 않았다. 청주공고 핸드볼팀 주장 김승환, 그는 코치의 아들이다. 

‘이젠 이 지옥을 떠나야겠다.’

이규민(가명)은 청주공고 핸드볼부에서 코치와 3학년 주장에게 폭행을 당했다. ⓒ주용성

이규민(가명. 당시 17세)은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었다. 그는 청주공고 핸드볼팀에서 탈출하기로 했다. 운동부 기숙사로 돌아온 오후 5시 47분, 이규민은 경남 창원 집에 있는 엄마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로 자기 결심을 알렸다.

“(코치가 내일 또) 조질 거 같다.”

탈출 계획을 아는 엄마는 이미 한 차례 만류했었다.

“규민아, 엄마가 내일 새벽 기차로 가면 오전 9시 30분 전에 청주에 도착하는데 그때까지 참으면 안 돼?”

더 버틸 수 없었다. 코치에 이어 밤에는 그의 아들 김승환이 옷걸이 쇠봉으로 또 매타작 할지도 모른다. 이규민은 탈출을 미루지 않았다. 

기숙에서 탈출하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화장실 창문, 나머지는 기숙사 정문. 이날 따라 선배들이 화장실을 자주 이용했다. 저녁이 저물고 밤이 깊었다. 이규민은 정면 돌파를 택했다. 

밤 12시 53분, 이규민은 보는 사람 없는 틈을 타 정문으로 뛰어나갔다. 한동안 앞만 보고 뛰었다. 옅은 저녁 비가 내렸다. 갖고 나온 건 휴대폰과 충전기, 지갑뿐이다. 

‘이젠 다 끝났다. 지독한 구타, 지긋지긋한 기합…. 다 끝났다.’

이규민은 다시 빗속을 달렸다. 저쪽 상가건물, 엄마가 기다리는 곳을 향해 무작정 뛰었다. 드디어 엄마와 상봉. 허겁지겁 달려온 아들은 슬리퍼 차림이었다. 2020년 7월 1일 새벽, 트라이애슬론 최숙현 선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인 지 닷새 되는 날이었다. 

그날 새벽, 엄마는 아들과 오송역 인근 모텔에서 밤을 보냈다. 탈출에 성공한 아들은 엄마 곁에서도 잠들지 못하고 오래 뒤척이며 떨었다. 이 불안은 어떤 암시였을까? 지옥을 떠났어도 고통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2021년 7월, 현재까지 말이다. 

“집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한숨도 못 잤어요. 코치님이 창원에 먼저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에요.”

이규민이 중학생 시절 때 골키퍼 훈련을 하는 모습. ⓒ이규민 제공

이규민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핸드볼을 했다. 팀에 골키퍼가 없어 자연스럽게 그가 골문을 지켰다. 이게 포지션으로 굳었다. 그는 핸드볼을 위해 창원에서 청주공고로 ‘유학’을 갔다. 이규민은 중학교 3학년이던 2019년 7월부터 청주공고 핸드볼부에서 훈련했다. 

그는 공을 막는 골키퍼지만, 날아오는 코치와 그의 아들 김승환의 주먹까진 막지 못했다. 코치 김병국의 폭행은 청주공고 핸드볼부에 들어간 지 2개월째인 9월부터 시작됐다. 

핸드볼을 가르치는 코치는 야구방망이도 잘 다뤘다. 그는 훈련 중에 패스를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이규민을 코치실로 불러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렸다. 

2019년 11월 12일, 이날을 잊을 수 없다. 청주공고 체육관에서 볼 막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뭐가 잘못됐는지, 하프라인에 서 있던 김병국 코치가 이규민을 불렀다. 김 코치는 이규민을 하프라인에 세웠다. 그러곤 사진은 이규민 등 뒤쪽으로 갔다. 

“형들이 어떻게 연습하는지 똑바로 봐.”

정면의 형들을 보는데, 뒤에서 김 코치의 손바닥이 얼굴로 날아왔다. 고개가 돌아갔다. 

“고개 들고 똑바로 보라고!”

똑바로 앞을 보고 싶은데, 코치의 손바닥이 뒤에서 계속 날아왔다. 뺨을 때리는 코치의 두 손은 멈추지 않았다. 선 채 계속 맞았다. 코피가 체육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오른손으로 코 밑을 받치자 피가 팔뚝을 따라 흘렀다. 

“1분만 지나면 피가 멎으니까, 걱정하지 마.”

코치는 이 말을 하면서 뒤에서 또 뺨을 때렸다. 코치가 자리를 뜬 뒤에도 이규민은 그 자리에 남았다. 바닥에 고인 자기 피를 그가 걸레로 닦아냈다. 

청주공고 핸드볼부에서 나온 뒤 이규민은 창원 집에서 지내고 있다. ⓒ주용성

북채, 밥주걱, 커피포트, 야구방망이…. 김병국 코치는 체육관에 있는 모든 물건을 폭행 도구로 썼다. 청주공고 핸드볼팀에서 그는 얼마나 자주 맞은 걸까. 

“일일이 세진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2019년엔 일주일에 한두 번 맞은 거 같아요. 고등학교 1학년 돼선 이들에 한 번꼴로 맞았고.”

김병국 코치는 자기 골대에서 반대편 골대까지 공을 못 던진다고 때렸다. 다른 학생에 비해 달리기를 못 해도 때렸다. 패스가 정확하지 않다고 때리고 또 때렸다. 체육관에서만 때린 게 아니다. 술에 취한 어느 날 밤엔 괜히 운동부 기숙사로 들어와 이규민 뺨을 때리고 나갔다. 

코치가 없을 땐 그의 아들 김승환이 왕 노릇을 했다. 아버지를 보고 배웠는지, 그 역시 야구방망이를 잘 휘둘렀다. 2020년 동계 훈련이 끝난 봄이었다. 체육관에서 훈련 중 김승환이 공을 달라고 이규민이 말했다. 이규민은 그 말을 못 들었다. 김승환은 코치실, 아니 아버지 방으로 이규민을 불렀다. 

“엎드려뻗쳐.”

누가 왕의 명을 거역할까. 이규민은 시키는 대로 했다. 김승환은 야구방망이로 이규민 엉덩이를 두 번 내려쳤다. 그가 이규민만 때린 건 아니다. 

작년 2월 어느 날 오후, 훈련이 평소보다 늦게 오후 7시 30분에 끝났다. 코치가 떠나자 그는 후배들에게 화풀이를 시작했다. 김승환은 1, 2학년 선수들을 코치실로 불러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그는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후배들 엉덩이를 한 대씩 때렸다. 

핸드볼 선수답게 김승환은 던지기를 잘했다. 그는 던지지 말아야 할 것도 잘 던졌다. 코로나19로 학교 급식소가 문을 닫은 작년 봄, 체육관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식사를 위해 1학년 선수들이 책상과 의자를 정리했다. 김승환이 느닷없이 플라스틱 의자를 집어 던졌다. 

“빠릿빠릿하게 빨리 못하냐!”

갑자기 골키퍼 본능이 살아났는지, 이규민이 팔로 의자를 막았다. 핸드볼이 아닌 의자는 그의 팔을 까지게 했다. 

김승환은 아버지처럼 온갖 물건을 폭행 도구로 사용했다. 그중 하나가 옷장에 설치된 쇠봉이다. 그는 야밤에 수틀리면 후배들을 집합시켜 옷장에서 쇠봉을 꺼내 휘둘렀다. 엉덩이를 맞은 학생들은 코치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신음도 제대로 못 냈다. 

코치와 주장은 자기들의 폭행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게 두려웠을까? 부자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팀원들 휴대폰을 빼앗았다. 김병국 코치가 아들에게 휴대폰 수거를 지시할 때가 있고, 김승환이 직접 빼앗을 때도 있다. 김 코치는 휴대폰 내부를 보고 싶을 때 학생들을 코치실로 불러 비밀번호를 풀게 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메신저, 문자메시지까지…. 코치님이 다 확인하는 거예요. 폭행 사실을 우리가 부모님이나 외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지 불시에 검사하는 겁니다. 저는 그래서 엄마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수시로 지웠어요.”

낮엔 체육관에서 코치가 때리고, 밤엔 기숙사에서 코치 아들이 때리고. 부자가 돌아가면서 휴대폰을 압수해 문자메시지를 일일이 검사하고. 이런 데가 지옥이 아니면 어디가 지옥일까.  

이규민의 엄마 박지희 씨는 이 모든 문제를 알고도 처음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가해자들의 사과를 받고, 아들을 전학 보내려 했다. 전학을 위해 작년 7월 8일 학교를 방문했다. 

그때 박지희 씨는 몰랐다. 학폭 가해자들이 가장 못하는 게 사과고, 주먹질 다음 잘하는 게 사실 조작 등 2차 가해라는 것을. 

사건의 물길은 누군가 김병국 코치-김승환 주장의 학교폭력을 교육부에 신고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교육청, 학교가 학폭 상황은 인지했다. 7월 7일의 일이다. 

가해자들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앞으로 다가온 2020년 7월 13일로 다가온 태백산기전국종합핸드볼대회(이하 태백산기대회), 김병국 코치는 이규민이 이 대회에 못 나가는 이유를 ‘학폭 가해자’로 명시했다. 

‘내 아들은 학폭 피해자이고, 그 때문에 전학까지 가려는데 도대체 이게 뭔가.’

이 사실을 안 박지희 씨는 분노했다. 이제 사건의 쓰나미처럼 커졌다. 이튿날, 박지희 씨는 김 코치에게 문자로 선전포고를 했다. 

“이전까지는 제가 시작한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은 제가 하는 겁니다. 저도 이제는 아들을 위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이규민의 어머니 박지희 씨가 지난 7월 6일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주용성

청주공고는 7월 8일 이미 핸드볼부 내 학교폭력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다. 김승환은 7월 14일 태백산기대회에 나섰다. 학교 측은 “가해자 출전을 금지시켰다”라고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 막지 못했다.

박지희 씨는 대한체육회 인권센터에 김승환이 학교폭력 가해자라고 7월 14일 신고했다. 최숙현 선수 사망 여파 때문인지 대한핸드볼협회는 빠르게 김 코치와 김승환의 출전 금지를 결정했다. 

이 대회에서 청주공고 핸드볼팀은 남자 고등부 2위를 차지했다. 이 실적은 훗날 김승환의 대입 입시에 영향을 미친다. 가해자에게 아주 유리하게 말이다. 

약 1개월 뒤인 8월 21일, 충북교육청에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가 열렸다. 이 자리에 가해 부자와 피해자 이규민 등이 참석했다. 가해 아버지와 아들은 똑같이 학폭 혐의를 부인했다. 아버지 김병국 코치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위원장님, 그런데 제가 꼭 알고 싶은 게 있거든요. 진짜 먼저 신고하는 사람이 피해자가 되는 겁니까?”

두 부자의 말은 학폭위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고, 피해 복구를 노력하지 않는 모습이 나쁜 요소로 작용했다. 학폭위는 김승환에게 퇴학 전 단계인 강제전학이라는 중징계를 결정했다. 김승환은 그제야 이규민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가 “사과 메시지”라고 주장하는 내용은 이렇다. 

“형이 욕하고 기합 준 거 상처가 될지 몰랐어. 다 규민이(가명) 잘되라고 그런 거지 너 미워서 그런 게 아니었어. 상처받았으면 정말 미안하다.”

“너 잘되라고 그랬다”라는 가해자들의 전형적인 2차 가해 멘트. 3일 뒤 김승환은 학폭위 징계에 따라 서면 사과문을 제출했다. 

“이규민이 2학년에게 수시로 무시하고 욕을 했다. (중략) 3학년이고 주장인 내가 애들을 훈계하는 도중에 내 의지와 다르게 욕이 나왔다. 훈계하는 도중 이규민이 x같다고 얘기하고 말을 무시하길래 애들 앞에서 자존심 상할까 봐 코치실로 불러서 얘기했다. 나는 장난으로 분위기도 풀 겸 장난삼아 북채로 엉덩이를 한 대 툭 쳤는데, 내 의지와 다르게 폭력으로 느꼈으면 미안하다…“

주로 피해자 탓을 하다가 마지막에 “미안하다”라는 말이 들어갔다. 이 문서를 제출한 다음 날 김승환은 청주지방법원에 ‘강제전학 조치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그는 “미안하다”라는 네 글자가 무색하게 폭력으로 볼 만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해 9월 22일 김승환은 다른 학교로 강제전학 갔다. 이틀 뒤, 김승환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 핸드볼 명문 경희대학교가 수시전형 모집을 시작했다. 그는 원서 준비를 시작했다. 

다른 학교로 전학 간 피해자 이규민. 그도 핸드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시끄러운 애”로 낙인찍혀 있었다. 그를 받아주는 학교는 없었다. 그렇게 그는 운동을 접었다. 

이규민은 핸드볼부에서 나온 뒤 인문계 고교에 전학을 갔다. 그는 공부에 적응하는 중이다. ⓒ주용성

박지희 씨는 피해자가 운동을 떠나고, 가해자가 명문대에 입학하는 현실을 그냥 볼 수 없었다. 그는 경희대에 김승환의 강제전학통지서와 경찰에 신고된 사건송치자료를 메일로 보냈다. 

“경희대 입학처에서 연락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전화를 했어요. 서류 보내고 다른 서류도 또 보내고…”

그럼에도 김승환은 경희대 21학번으로 입학했다. 경희대 체육특기자 전형에서 경기실적은 가장 높은 비중인 70%를 차지한다. 김승환이 출전이 금지됐던 태백산기대회에서 청주공고 팀이 2등 한 성적이 그의 입시에 반영됐다.

이에 대해 경희대 입학처는 지난 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입시) 절차에서 학폭 사실을 알 수 있는 전형 요소가 없었다”라고 답했다. 

운동만 하던 이규민은 요즘 인문계 고교에서 수업 따라가기 바쁘다. 문학이 가장 “빡세다”고 했지만 사실 모든 과목이 버겁다. 그는 가해자의 경희대 입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승환보다는 경희대가 너무 혐오스러운 거예요. 저도 꿈에 그리던 대학교였는데 그런 식으로 (학폭 가해자를 받아주니까) 핸드볼 자체도 싫어지고 경희대도 싫어지고…”

핸드볼부에서 나온 지 한두 달이 됐을 땐 이규민은 매주 악몽을 꿨다. 꿈에서도 이규민은 체육관에서 코치에게 맞았다. 코치에게 벗어나기 위해 뛰었지만,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매단 것처럼 다리가 무거웠다. 잡히려는 순간 그는 현실로 돌아왔다.

박지희 씨는 더는 김승환과 김병국 코치에게 바라는 게 없다고 했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규민이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하던 운동을 접었어요. 아들은 지금이 좋다고 하는데 그게 (실제) 마음이겠어요? 그런 아이에게 ‘용서해야 착한 거야’라고 말하면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요? 저는 가해자 두 사람이 끝까지 반성 안 했으면 좋겠어요. (반성하면) 용서해야 할 거 같으니까, 그냥 그 사람들 벌줄 수 있게 저한테 시간이 허락됐으면 좋겠어요.”

이규민과 어머니 박지희 씨의 모습 ⓒ주용성

박 씨가 가해 부자를 용서할 길은 멀어 보인다. 어쩌면 그런 일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가해 부자는 야구방망이만 잘 휘두른 게 아니다. 둘은 거짓말도 잘했다. 이들은 이규민에게 성추행 가해자 누명을 씌우고자 했고, 운동부 학생을 동원해 사실 조작까지 했다. 

김승환 측은 강제전학 조치 취소를 제기한 소송에서 최근 패소했다. 가해자는 항소했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5월 6일 김승환에게 자격정지 3년을 결정했다. 김승환은 너무 과하다며 재심을 요청했다. 청주교육지원청은 2020년 7월 17일 김병국 코치의 직무 정지를 결정했다. 

김 코치를 지난 9일 충북학생체육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반론을 요구한 기자에게 “할 이야기가 없다”라고 했다. 그의 아들 김승환에게는 현장에서 전화를 해봤다. 그는 “전화하지 말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몰락한 피해자, 잘 나가는 학폭 가해자, 가해자의 2차 가해와 조작, 재기를 위한 소송, 여기에 학교의 침묵과 방관. 학폭 가해자를 거르지 못하는 운동부 입시까지….

청주공고 학폭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운동부 폭력이 멈추지 않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기획 ‘피 묻은 핸드볼, 잔인한 학폭 가해자’를 통해 이 모든 문제를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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