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3분이 흘러도 딸은 나오지 않았다. 엄마 장연록은 조사실 앞에 서서 연신 마른세수를 했다. 초조함으로 손에 땀이 흥건했다. 딸이 아팠기 때문이다. 불과 석 달 전, 큰딸 양진희(가명, 75년생)는 성폭력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3주간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경찰이 “단 둘이 할 얘기가 있다”며 딸을 조사실로 데려갔으니, 엄마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경찰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있었다. 모든 증거 문서를 복사도 하지 않고 경찰에 곧바로 넘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엄마는 경찰이 딸의 억울함을
풀어 주리라 믿었다

“이봐요. 빨리 지장 찍어! 어차피 이 사건은 100% 진다니까!”

엄마가 문을 박찬 것은 조사실 밖으로 딸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면서였다. 5분이 지나도, 7분이 지나도 딸이 나오지 않자 엄마는 보호 본능에 이끌려 노크도 없이 조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예감은 적중했다. 딸은 괴성과 함께 울고 웃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발작 중에도 딸은 두 손을 등 뒤로 숨겼다. 고소취소장에 지장을 찍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엄마는 재빨리 고소취소장을 집어 들어 종이를 잘게 조각냈다. 고소장에 지장을 찍으라며 소리를 치던 A형사는 흠칫 당황했다.

“아픈 애를 데리고 나 몰래 뭘 하려던 거예요!”

2005년 3월 23일. 그날은 경찰과 큰딸이 처음으로 대면한 날이었다. 진희가 단역배우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기획사 직원 12명에게 4개월간 강간과 강제추행 당한 사실을 처음으로 경찰서에서 설명한 날이다. 

장연록 씨가 여의도 단역배우 기획사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주용성

도대체 그날 경찰이
딸에게 무슨 말을 했길래

그로부터 일주일 뒤, 엄마는 그날 밀실에서 벌어진 일을 자세히 알게 됐다. 조사 이후 돌연 집을 나가버린 딸이 나흘 만에 돌아와서, 정신과 약을 한 움큼 먹고는 엄마 앞에서 그날의 대화를 복기했다.

딸의 얘기를 들은 엄마는 분노와 절망감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증거가 많으면 트럭 넉 대도 보내줄 수 있다’고 장담했던 A 형사는 사실 가해자 편이었다. 조사실에서 A 형사와 딸이 나눴다는 대화는 충격적이었다.

“양진희 씨. TV에 나오는 성폭행 승소판결이 쉬운 줄 알아? 이 사건은 100% 질 게 뻔해. 내가 느긋하게 수사하는 것 보면 모르겠어? 내 나이 44세인데 이런 사건은 빨리 종결지어야지 내가 승진돼. 사건 만들어 뭐해. 빨리 사회생활 할 생각을 해야지, 이런 게 소문나면 좋을 게 뭐가 있어? 남자하고 잠잔다고 병이 들어?” – 2005년 6월 13일 엄마 장연록 씨가 경찰에 가서 진술한 내용 중 일부

피의자니까 변호사 샀지?
피해자이면 왜 변호사를 사?

장연록 씨가 여의도 단역배우 기획사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주용성

사건이 안 되지만 ‘기계적으로’ 수사한다?

엄마는 피눈물 흘리는 심정으로 진정서를 쓰기 시작했다. 검찰총장과 경찰서장에게 ‘수사관을 교체해 달라’는 진성서를 작성해 2005년 4월 4일 제출했다. ‘담당 조사관인 A 형사가 사건을 종결하려고 하니, 다른 조사관이 계속 수사를 이어 나갈 수 있게 조치해달라’고 요구했다.

엄마의 이런 호소는 처음이 아니었다. 첫 수사 담당자였던 B 형사 또한 “사건이 안 된다”고 해서, 우여곡절 끝에 A 형사로 바꿨다. 엄마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사건 정황이 적힌 딸의 메모, 딸의 증언이 담긴 정신과 의무기록이 왜 경찰 눈에는 증거가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어머니가 하도 이곳저곳에 진정을 넣어서 ‘기계적으로’ 수사할 거예요.”

상황은 오히려 수사관이 바뀔수록 악화됐다. 네 번째 수사관은 아예 대놓고 ‘기계적으로’ 수사하겠다고 선언했다. ‘기계적으로’라는 표현을 처음 들은 엄마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C 형사의 수사 태도에서 그 뜻을 어느 정도 체감했다.

C 형사는 단 한 번
사건 현장에 나가지 않고
‘기계적으로’ 조서만 꾸몄다


장연록 씨 뒤로 여의도 기획사 앞에서 1인 시위할 때 들었던 피켓이 보인다. ⓒ주용성

C 형사는 ‘피해 입증’에 집중했다. 진희에게 ‘어떻게 당했는지’ 계속 따져 물었다. 그 근거를 제시하라고 압박했다. 엄마는 궁금했다. 폭행 사건을 수사할 때는 가해자에게 ‘왜 때렸냐’라고 물으면서, 성폭력 사건에서는 왜 피해자에게 ‘피해 여부’를 먼저 확인할까.

경찰은 딸에게 ‘어떻게 반항했는지’ 연거푸 물었다. 그 이유를 나중에 알았다. 현행법상(형법 제297조) 강간죄는 가해자의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만 성립된다.  사건 당시 피해자가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려고 했다’는 게 증명이 돼야만 가해자에게 강간죄 적용 여부가 검토된다.

“사랑방 모텔로 가자고 할 때 어떻게 반항했나요?”– 2005년 5월 21일 양진희의 진술조서 중 경찰 질문”

“촬영 숙소에 눕혔을 때 어떻게 반항을 했나요? – 2006년 5월 12일 양진희의 진술조서 중 경찰 질문”

딸은 사건이 벌어진 이전부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입원까지 했었다. 그런 딸에게 경찰은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느냐’ ‘왜 주변에 이 사실을 바로 알리지 않았느냐’ 등을 계속 추궁했다.  ‘딸이 꽃뱀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듯한 질문으로 딸을 위축시켰다.

“처음 강간을 당했다면 목동 모텔방에서는 어떤 수단 방법을 써서라도 끌려가지 않아야 하고 또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나요? – 2005년 5월 12일 양진희의 진술조서 중 경찰 질문”

“차에서 나와 신고한다는 생각은 안 했나요? – 2005년 5월 27일 양진희의 진술조서 중 경찰 질문”

이뿐만이 아니다. 수사 초기 경찰에 제출한 증거는 몽땅 사라졌다. 분명 A 형사가 그 메모장을 탁자에 내리치며 ‘이게 사건이 됩니까?’라고 말한 게 선명히 기억나는데, C 형사로 수사관이 바뀌었을 때는 그 기록이 모두 사라졌다.

딸의 증언이 담긴 기록이
경찰에 의해 사라졌다

장연록 씨가 두 딸의 유해가 뿌려진 추모공원에서 딸들의 영정사진을 보고 있다. ⓒ주용성

크레파스로 ‘성기를 그려보라’고 한 경찰

본격적인 지옥은 대질심문부터였다. 경찰은 가해자 12명과 딸을 일일이 대면시켰다. 경찰은 사실 확인을 위해서라며 딸에게 강간 사실을 가해자 앞에서 상세히 이야기하도록 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엔 얇은 칸막이뿐이었다

경찰이 가해자와 마주 보고 질의응답을 하면, 칸막이 뒤쪽에 있는 딸이 그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엄마는 딸의 손을 잡고 진정시키려고 애썼지만 불가능했다. 경찰의 질문과 가해자의 대답은 딸의 가슴을 후벼 팠다.

“(경찰이 가해자에게 질문) 구강성교를 할 때 어땠습니까?”

“(가해자 대답) 이가 닿아서 아팠습니다.”

“(경찰이 딸에게) 진희 씨. 김 씨의 말이 사실입니까?

장연록 씨가 두 딸의 유해가 뿌려진 추모공원에서 딸들의 영정사진에 입을 맞추고 있다.ⓒ주용성

경찰이 ‘성기를 그려보라’고
말한 것도 그때였다

C 형사는 종이와 자를 내밀며 “가해자 성기의 색깔과 모양, 길이까지 정확하게 그려보라”고 했다. 크레파스는 엄마에게 사오라고 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엄마가 경찰의 말을 따른 것은 사실이 증명되면 모든 게 해결되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딸이 당한 피해를 자신들의 농담거리로 삼았다. 경찰서 단체 체육행사가 있던 날로 엄마는 기억한다. 조사를 위해 대기 중인 딸과 엄마에게 경찰들이 단체 몰려와 비꼬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어디 12명을 상대했다는 아줌마인지 아가씨인지 얼굴 좀 봅시다. 모자 좀 벗어봐요.”

약 19개월 동안, 딸은 병원과 경찰서를 오가며 조사를 받았지만 결국 고소를 취소했다. 견딜 수가 없었다. 어렵게 그린 가해자의 성기도 검찰에 송치되지 않았고, 가장 많이 피해 사실이 적힌 메모장은 사라져 버렸다. 2006년 10월, 딸의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이 사건은 검찰에서 ‘공소권 없음’이라는 불기소 처분을 받고 종결됐다.

딸은 고소 취소를 죽는 순간까지 후회했다. 일상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자려고 누우면 가해자와 경찰의 모습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고 고통스러워했다. 결국 딸은 자살을 택했다. 엿새 후 막내딸도 언니를 따라갔다. 아빠는 그 충격으로 병세가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과연 누가 평범한 가정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는가.’

가해자는 딸 인생을 망쳤고,
경찰은 딸을 죽였다고
엄마는 생각했다

장연록 씨가 두 딸의 유해가 뿌려진 추모공원에 놓을 꽃을 들고 있다. ⓒ주용성

진상조사 시작… “딸 죽인 경찰, 징계하라”

“100원짜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서라도 죽은 두 딸의 억울함을 풀고 싶어요.”

2018년 4월 18일, 엄마는 딸이 죽은 지 9년이 되어서야 그때의 끔찍했던 기억을 경찰에 털어놓을 수 있게 됐다. ‘단역배우 두 자매 자살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이 22만 명의 동의를 받으면서, 사건 진상조사팀이 지난달 28일 경찰청에 꾸려졌다.

4월 18일에 열린 첫 조사는 10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오후 2시에 시작한 조사는 자정이 되어서야 끝났다. 질문의 초점은 ‘수사관들의 과오 여부’였다. 공소시효 만료로 수사 자료들 대부분이 폐기되었기 때문에 엄마의 증언이 중요했다.

엄마의 기억은 비교적 정확했다. 오랜 약물치료로 몸은 정상이 아니지만, 수사관의 이름과 당시 분위기를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두 딸이 자살한 날짜만 선명하고, 딸 생일조차 기억을 못 할 정도로 시간 개념을 상실했지만 그때 일을 어제처럼 그려냈다.

“두 딸이 죽은 뒤, 길도 잘 못 찾고 시간도 잘 기억 못 해요. 하지만 그때 일은 생생히 기억합니다. 내가 바로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엄마는 무엇보다 당시 수사관들의 징계를 원한다

엄마는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진짜 살인범인 당시 수사관들이 지금이라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길 바라고 있다. 그들이 연금 받으며 죄책감 없이 여생을 보내는 걸 그냥 볼 수 없다. 두 딸을 잃은 슬픔에는 공소시효가 없기에, 엄마는 그들에게 사과라도 받길 원한다.

“당시 수사관들의 뼈를 곱게 갈아서 마시고 싶은 심정으로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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