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015년 11월 23일 공개한 기사입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시작은 재소자의 쪽지였다. 살인 혐의로 전주교도소에 수감된 A씨를 상담하던 1999년 어느 날이었다. 교도소 내에서 미사를 드릴 때였다. A씨가 은밀하고 재빠르게 박영희 씨에게 쪽지를 건넸다. 무슨 일일까. 박 씨는 교도소에서 나와 쪽지를 펼쳤다.
“선생님, 저희 방에 있는 임명선을 만나주세요. 꼭 면회를 해보세요.”
임명선은 누구고, 왜 만나라는 것일까. 맥락 없는 쪽지의 내용은 이상했다. 쪽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쪽지는 사라졌고, 재소자의 부탁은 잊혔다. 그렇게 약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임명선이 누군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그 아이가 삼례 나라슈퍼 유OO(당시 77세) 할머니를 사망케 했다는 ‘3인조 강도‘ 중 한 명이었어요. 그 아이가 다시 기적처럼 내 앞에 나타났는데.. 저는 정말 기절할 뻔했어요.”
‘가짜 살인범 3인조‘의 핵심 인물 임명선. 완주경찰서가 조작한 내용에 따르면, 임명선은 범행 도구를 미리 준비해 친구들에게 강도 행각을 지시한 우두머리다. 그는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전주교도소에 수감됐다. 임명선은 교도소 같은 방에서 생활한 A씨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했다. 맥락 없는 쪽지 속의 인물.
그가 어떻게 박영희 씨 앞에 나타났을까?
임명선은 A씨의 도움으로 교도소에서 천주교 신앙 활동을 했다. 영세를 받으려면 천주교 교화위원의 상담이 필요했다. 그의 상담을 박영희 씨가 맡았다. 박씨는 10년 넘게 교화위원으로 활동 중이었다. 임명선 얼굴을 보고 박 씨가 말했다.
“당신 잘못으로 나라슈퍼 유OO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에게 사죄하고, 평생 반성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죠?”
임명선은 멍하니 허공을 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라슈퍼에 간 적도 없고, 유OO 할머니를 만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사죄하고 반성을 합니까. 할머니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잘못을 빌어요?”
이게 무슨 말인가. 가슴이 뛰었다. 박영희 씨는 임명선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이제 보니 1년 전 A씨가 건넨 쪽지 속 인물이 바로 그였다.
“임명선 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예요. 저는 나라슈퍼에 간 적도 없고, 할머니를 본 적도 없어요. 내가 사람을 안 죽였는데, 누구한테 용서를 빌어야 합니까?”
“임명선 씨, 전주지방검찰청 몇 호 어느 검사에게 수사받았습니까?”
“OOO호 C검사요.”
상담을 마친 박 씨는 임명선의 말이 맞는지 전주지검에 확인했다. 거짓이 아니었다. OOO호에 C검사가 있었다. 다시 심장이 요동쳤다. 어떻게 해야 할까. 숨겨진 진실을 위해 몸을 던져야 하나, 외면해야 하나. 머리가 아팠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임명선을 만나기 직전, 대학교수인 그녀의 남편이 모함을 받아 구속됐다. 10여 년 교화위원으로 살며 재소자를 상담해왔는데, 남편이 재소자가 되다니. 남편 구명활동을 해야 했다. (남편은 6개월 만에 복직됐다)
이런 와중에 임명선이 나타나다니, 과연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을까. 게다가 박씨는 자녀 넷을 키우는 엄마였다. 고뇌는 깊고 고통스러웠다.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남편 일만으로도 벅찼다. 고통과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억울하다고 말하면 들어 줄 사람이 있지 않은가. 변호사 구할 형편도 되지 않는가. 교도소에 있는 임명선은 도대체 뭔가. 그를 외면하고 과연 나는 하느님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까.’
고통의 밤이 끝났다. 길은 명확했다. 박영희 씨는 임명선을 만나러 다시 교도소로 향했다. ‘가짜 3인조‘ 강인구, 최대열을 차례로 만났다. 확신이 섰다.
‘너희들 정말 살인범이 아니구나.’
박 씨는 하느님 앞에서 떳떳한 길을 가기로 했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감춰진 진실, 박영희 씨는 거기에 몸을 던지기로 했다.
주먹으로 범인을 창조한 경찰, 누명을 쓰고 교도소로 간 지적장애 아이들, 법원의 허술한 재판, 진짜 살인범을 알고도 처벌하지 않은 검찰..폭력, 조작, 은폐로 얽히고설킨 진실의 실타래는 복잡하게 꼬여 있었다.
박영희 씨는 감춰진 사실의 조각을 하나씩 모아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과 많은 눈물을 거리에 뿌렸다. 비로소 완성된 진실의 퍼즐, 그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돌아보면 그게 사람이 한 일인지, 하늘의 뜻이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하늘의 뜻이었겠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박영희 씨는 ‘하늘의 뜻‘으로 돌렸다. 거부할 수 없는 숙명처럼 ‘가짜 살인범 3인조‘가 박영희 씨의 가슴에 박혔다.
고통의 밤은 끝났으나 고난의 낮이 시작됐다. 박영희 씨는 여기저기 흩어진 진실의 조각을 모으기 위해 길을 나섰다. 첫 행선지는 완주경찰서. 동료 천주교 교화위원인 이정자 씨와 함께 경찰서를 찾았다.
“3인조 아이들 때문에 왔다니까, 형사들이 날 잡아먹듯이 대하더라고요. 이미 법원에서 판결이 났고, 끝난 사안인데 왜 들쑤시고 다니냐고. 아무것도 묻지 말고 무조건 나가라는 거예요.”
사건이 발생한 나라슈퍼 현장도 힘들게 찾았다. 사망한 유OO 할머니 가족은 이미 이사하고 없었다. 이웃에게 묻고 또 물어 유가족 최미숙(가명)씨에게 연락이 닿았다. 최 씨는 박영희 씨를 외면했다. 당연한 일이다. 범죄 피해를 입고 가족까지 잃은 사람 아닌가. 상처는 크고 공포는 깊을 수밖에.
박영희 씨는 기다렸다. 최미숙 씨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선까지만 다가갔다. 조금씩, 천천히 최 씨를 설득했다. 최 씨의 마음을 열기까지 약 6개월이 걸렸다. 최 씨는 범행 현장에서 범인의 목소리를 들은 유일한 사람이다. 재소자 A씨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다.
“임명선을 한 번 만나주세요. 목소리를 들으면 그 아이가 범인인지, 아닌지 알 거 아닙니까.”
박 씨에 이어 최 씨도 길을 나섰다. 전주교도소에서 임명선을 만났다. 그놈 목소리가 아니었다. 최미숙 씨가 어렵게 입을 뗐다.
“사실, 얼마 전 부산지방검찰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강도 사건으로 빼앗긴 반지, 목걸이 등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더라고요.”
박 씨와 최 씨는 한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동료 이정자 씨가 동행했다. 이들은 부산지검으로 향했다. 최미숙 씨는 어린아이를 업고 왔다. 진범을 수사했던 검사를 만나야했다. 검사 사무실 앞에서 수사관이 길을 막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강하게 밀고 나갔다. 전주에서 아줌마들이, 그것도 어린아이를 업고 찾아온 게 신기하고 불쌍했는지 검사가 만나줬다.
진범을 수사했던 검사가 최미숙 씨에게 물었다.
“범인 목소리 기억합니까?”
“기억합니다. 그놈 목소리를 하루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럼 갑시다.”
검사는 둘을 어떤 방으로 데리고 갔다. 진범을 수사하면서 녹화했던 그놈 목소리를 들려줬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최 씨는 오열했다. 그 놈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박영희 씨는 검사에게 진실을 요구했다. 그 검사의 손을 떠난 사건이었다. 대신 그가 작은 길을 알려줬다.
“선생님,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요. 서울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찾아가세요. 그쪽에 도움을 청하세요.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박영희 씨는 서울로 향했다. 여러 변호사를 만나 도움을 청했다. 인권단체의 문도 두드렸다. 여러 방송사와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취재를 요청했다. 많은 언론인이 머뭇거렸다. 박 씨는 이번에도 강하게 나갔다.
“억울한 3인조가 교도소에 있습니다. 진범은 따로 있습니다. 경찰–검찰–법원 모두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데요. 언론인, 당신들이 이걸 외면하면 말이 됩니까? 당신들이 진실과 사실을 논할 자격이 있습니까?”
여러 기자, 피디를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가짜 살인범 3인조‘ 이야기가 조금씩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박영희 씨는 약 3년간 3인조를 위해서 뛰었다. 박영희 씨는 “그땐 거의 반 미친 상태에서 뛰어다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다행히 자녀 넷은 스스로 잘 자라줬다.
그녀는 왜 이렇게 뛰어다녔을까.
“아이들이 불쌍하잖아요. 죄 없이 감옥에 갔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가난하고, 지적장애도 있고, 가족들도 도울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돌아보면, 제가 한 일이 아니라 정말 하늘이 한 일로 보여요. 저는 그냥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인 거고요. 하늘의 섭리였겠죠.”
박영희 씨는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다. 왜 뛰어다녔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불쌍해서” 어디서 힘이 났냐고 물으면 “하늘의 뜻“이라고 했다. 자신이 걸은 힘든 여정은 “하늘의 섭리“라고 했다.
박영희 씨는 교도소에 있던 임명선과 주고받은 편지를 약 15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임명선이 2002년 6월 7일에 쓴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깨지지 않는 믿음, 믿고 사랑하는 것. 하느님은 당신의 마음을 알고 계십니다. 사회에 나가면 제가 꼭 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자매님(박영희)을 도우면서 정성껏 일을 하고 싶어요.”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가짜 살인범 3인조는 아직 누명을 벗지 못했다. 지난 3월, 3인조는 “우리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며 전주지방법원에 재심 청구서를 접수했다. 이때 박영희 씨도 함께 했다. 박 씨는 3인조 모두의 손을 잡아줬다.
“다 잘 될 거야. 모두들 걱정 말고, 우리 끝까지 가보자.”
박영희 씨의 네 자녀는 엄마가 3인조를 위해 뛰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아직 갈 길이 남았다. 딸이 엄마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박 씨의 둘째 딸 백선경은 변호사다. 백 변호사도 가짜 3인조를 돕기로 했다. 진실을 위한 여정, 이런 것도 가업이다.
백선경 변호사는 “엄마가 ‘가짜 살인범 3인조‘를 위해 한 일을 다 기억하고 있다“며 “그들을 돕고, 진실을 밝히는 건 내 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박영희 씨와 함께 성당에 갔다. 박 씨는 또 “내가 한 일은 별로 없고, 다 하늘이 한 일“이라고 다시 ‘하늘 타령‘을 했다. 그런 그녀에게 한마디 했다.
“하늘이 아니라, 선생님이 하신 일이죠. 박영희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자 박영희 씨는 성을 냈다.
“어허..그만 합시다. 하늘이 한 일을 두고 자꾸 그러는 거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