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했다. 다만, 얼굴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정부 주도의 신상공개는 별 효과가 없을 거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라, 감치명령 결정에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2명의 신상을 여성가족부 온라인 홈페이지에 19일 공개했다.
시민들은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서 양육비 미지급자 2명의 이름, 생년월일, 직업, 주소 또는 근무지, 양육비 채무 불이행기간, 양육비 채무액 등을 볼 수 있다. (신상정보 보기 링크)
이번 공개는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른 첫 시행이지만, <배드파더스> 사이트와 다른 게 있다.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 사진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고의적으로 주지 않은 양육자들의 신상(얼굴, 이름, 주소 등)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양육비 이행 강화 법안이 시행된 이후 <배드파더스> 측은 자발적으로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배드파더스>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구본창 씨는 2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런 의견을 냈다.
“여성가족부에서 (얼굴 사진을 빼고) 공개한 내용으로는 미지급자가 누구인지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신상공개는 미지급자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줘서 양육비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데,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과거 <배드파더스>가 신상공개로 해결한 양육비 미지급 사례는 220건에 이른다.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신상공개 될 것“이라는 통보만으로 사전에 해결된 사례도 약 700건이다. 이런 성과는 ‘얼굴 공개‘에서 비롯됐다는 의견이 많다.
구 씨는 “<배드파더스>에서 얼굴을 공개해도 양육비를 외면하는 사람이 많았다“며 “여성가족부의 신상공개가 어떤 압박이 될지 잘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약 10년간 양육비 1억2000여만 원을 미지급해 여성가족부 홈페이지에 신상공개된 홍O현 씨는 <배드파더스>에 등재된 이력이 있다.
구 씨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성범죄자 신상공개’ 제도와 비교할 때도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이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여성가족부는 법원으로부터 신상공개 명령을 선고 받은 성범죄자의 성명, 나이, 실거주지 주소, 얼굴 사진 등을 전용 온라인 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공개 대상 성범죄자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등이다.
구 씨는 “양육비 미지급도 아동학대이자, 아동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위로 본다면, 얼굴 사진을 공개하는 건 과도한 사생활 침해로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가 주도로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받는 이들에게도 인격권, 명예권이 있기 때문이다. 살인, 성폭력 등 강력범죄자의 얼굴을 수사단계에서 공개할 때도 경찰의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를 거치는 등 일정한 기준과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국세청은 고액상습체납자, 조세포탈범의 신상을 공개하는데, 여기에서도 얼굴 사진은 제외된다.
여성가족부 청소년가족정책실 가족지원과 소속 담당자 A씨는 20일 기자에게 “신상공개가 시행된 지 1년도 안 됐기 때문에 조금 더 지켜보고 보완이 필요하면 나중에 개선을 해볼 생각“이라면서 “사진 공개는 굉장히 엄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여성가족부가 신상공개 전 양육비 미지급자에게 3개월간 의견진술 기회를 주는 점도 비판을 받고 있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올해 7월부터 신상공개가 시행됐지만, 양육비이행심의위원회의 심의와 3개월의 소명 기간을 거쳐 12월 말이 돼서야 신상공개가 이뤄졌다“면서 “적시에 양육비가 전달되지 않아 아동의 생존권이 침해된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편, 양육비 안 주는 부모의 신상을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했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혐의로 기소된 구본창 씨의 항소심 선고가 이달 23일 오전 10시 30분 수원고등법원 제801호 법정에서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