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016년 1월 4일 공개했습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전화기에 ‘최대열‘이 찍혔다. 무슨 일일까
“57만 원이 없어서 아내가 퇴원을 못 하네요. 정말 미안하고, 죄송해요.”
병원비 57만 원 때문에 남에게 손을 벌리는 그의 답답한 마음이 작은 목소리에 담겼다. 발목을 다쳐 입원 치료를 받던 그의 아내가 생각났다. 자세히 묻지 않고 돈을 보냈다. 잠시 뒤 문자가 왔다.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게요.”
지적장애, 짧은 배움, 가난한 집안..열심히 살아도 가난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에겐 주홍글씨도 찍혀 있다.
‘살인자‘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데도 새겨진 낙인. ‘가짜 살인범 3인조‘ 중 한 명인 최대열. 그는 살인 누명을 벗기 위해 최후까지 무죄를 주장했다. 아무리 지적장애가 있는 그여도 눈물로 애원했던 16년 전의 그 겨울날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장애인입니다. 제가 돈을 벌어서 부양해야 합니다. 부모님 곁에 가고 싶습니다. 제발 집에 보내주세요.”
한 남자가 최재필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이 남자라면 나를 집에 보내줄 수 있다..’ 최대열의 기대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남자는 공부를 잘해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합격해 검사가 됐다. 검사, 공익의 대변자 아닌가! 최대열은 힘이 센 이 남자가 자신을 구원해 줄 거라 기대했다.
“최대열, 내가 판사님에게 너 사형 선고해 달라고 말할까? 이거 사람 죽은 사건이잖아. 사형까지 나올 수 있어. 너 자꾸 반성 안 하고 범행 부인하면, 내가 사형 구형한다!”
최대열은 겁을 먹었다. 힘이 센 검사 말대로 했다. 나라슈퍼에 간 적도 없는데 갔다고 했고,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데 죽였다고 허위자백을 했다. 최대열 공익의 대변자라는 검사 앞에서 다시 태어났다. 삼례 나라슈퍼에서 강도짓을 하다가 유OO 할머니를 살해한 가짜 살인범으로 말이다.
1999년 2월 6일 전북 삼례 나라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 사건을 수사했던 C검사. 그는 주먹과 몽둥이로 ‘가짜 살인범 3인조‘를 만들어낸 완주경찰서의 수사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최대열의 말도 듣지 않았다.
그의 용서받기 어려운 행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우리들이 나라슈퍼 할머니를 죽였다“고 모든 걸 자백한 ‘진범 3인조‘를 처벌하지 않았다. 자신이 기소한 ‘가짜 살인범 3인조‘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도록 방치했다. 무엇보다 그는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죄송하고, 죄책감을 느낀다“는 진범들의 반성할 기회조차 박탈했다.
C검사는 가짜 살인범을 기소하고, 진범을 처벌하지 않은 자신의 행위에 약간의 죄책감이라도 느꼈을까? 아니면 그저 더 좋은 출세의 길이 열려 다른 선택을 했던 것일까? C검사는 진범을 수사하고 약 1년 뒤에 검사 옷을 벗었다. 그는 지금 거대한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한다. 억대 연봉 받는 변호사가 수두룩한 곳이다.
이제는 C변호사라 불리는 그는 이번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그가 소속된 로펌은 “자리에 없다”며 C변호사와 연결시켜 주지 않았다. 내 휴대전화 번호를 남겨도 그는 연락하지 않았다. 취재를 거부한다고 과거의 행적이 지워지는 건 아니다. 우리는 국가가 폐기한 당시 수사기록을 모두 갖고 있다.
C검사, 아니 지금은 C변호사가 된 그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진범은 사건 발생 10개월 만에 나타났다. 부산지방검찰청이 “진범은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시작했다. 가짜 살인범 3인조처럼, 진범은 세 명이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조OO, 배OO, 이OO이 이들이다.
이들의 자백은 범행 현장 상황은 물론이고 피해자 진술과 일치했다. 나라슈퍼 내부 약도까지 정확히 그렸다.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까지 모두 털어놨다. 요약하면 이렇다.
“여관에서 ‘히로뽕’을 투약한 뒤 돈을 구하려고 강도짓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라슈퍼에 가기 전에 다른 집 몇 곳을 털려고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나라슈퍼 대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집에 있던 할머니가 소리를 질러 청테이프로 입과 다리를 결박했습니다. 잠시 뒤 할머니가 숨을 쉬지 않아 물을 떠다 먹이는 등 인공호흡을 했습니다. 그래도 움직임이 없어 훔친 돈 십여만 원과 반지, 목걸이 등 패물을 들고 도망갔습니다.”
경상도 말투, 열린 대문, 물에 젖은 할머니의 입 주위, 심지어 사라진 돈 액수까지 모든 게 범행 상황과 일치했다. 게다가 이들이 훔친 패물을 매입했다는 금은방 주인까지 나타나 구체적으로 검찰에서 진술했다.
“여자용 목걸이에는 녹색 큐빅이 4~5개 정도 들어 가고 하얀색 작은 큐빅이 수십 개 박혀 있었고, 여자용 반지에는 큰 큐빅이 한 개 박혀 있었으며, 팔찌에는 큐빅이 3개가 박혀 있었습니다.”
이는 강도치사 사건 피해자 가족이 빼앗긴 패물과 그대로 일치한다. 진범이 자백하고 ‘장물‘을 매입한 당사자까지 나타난 상황. 부산지검은 사건이 발생한 관할인 전주지검으로 사건을 넘긴다. 전주지검에서 진범 3인조를 맡은 인물은 다름 아닌, 약 1년 전 가짜 3인조를 처벌한 그 C검사였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셈이다.
과연 C검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제대로 수사를 했을까?
당시 진범 3인조는 C검사에게도 모든 걸 자백했다. 딱 1차 진술 때까지만 말이다. 2차 진술 때부터 진범 3인조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진범 3인조와 C검사는 무슨 수상한 거래를 했던 것일까?
“아니, 우리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을 다 했는데도 (C검사가) 오히려 ‘너희는 범인이 아니다‘라고 말을 하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뭘 어떻게 합니까?”
진범 이OO의 말이다. 살인범을 조작한 완주경찰서 형사들과 C검사에겐 악몽같은 일이고 도저히 인정하기 싫겠지만, 우리는 진범을 접촉했다. 진범은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 도대체 진범과 C검사 사이에는, 아니 한국 검찰과 살인범은 무슨 거래를 했을까?
당시 C검사는 모든 걸 자백한 진범 3인조에게 ‘범죄혐의없음‘이라고 손쉬운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가짜 살인범 3인조의 지적장애에 대해서 이렇게 적어놨다.
“임명선, 최대열, 강인구의 지능에 관하여 보면, IQ가 70을 약간 상회할 정도로 지능이 낮은 것은 사실이나, (중략) 지능이 낮을 뿐 범죄적 지능은 발달한 것으로 보여 종전의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허위자백하였다고 단정하기 어려움.”
‘범죄적 지능‘을 논하는 C검사. 변호사로 변신한 지 약 15년이 됐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다. 당연히 가짜 살인범 3인조에게도 사과하지 않았다. 자신의 과거를 뉘우친 적이 없다. 어떤 점에서 그는 진범 3인조보다 독하다.
무슨 말이냐고? 진범 3인조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자신들이 살해한 할머니와 유가족에게 사죄한다면서 반성의 말을 했다. 또 이들은 가짜 살인범 3인조에게도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은 밤마다 할머니가 죽어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등 수많은 죄책의 밤을 지새웠습니다. 사망한 할머니, 유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잘못했습니다.” – 진범 이OO 2000년 1월 25일 부산지검에서 진술
“저희들로 인하여 무고한 옥고를 치르고 있는 다른 사람들(가짜 살인범 3인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모든 사실을 솔직히 털어 놓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작정을 하니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 진범 배OO 2000년 1월 25일 부산지검에서 진술
“배OO, 이OO와 같이 강도짓을 하다 할머니를 죽인 사건 때문에 밤마다 할머니의 혼령이 꿈에 나타나 저를 괴롭혀 저로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 진범 조OO 2000년 1월 27일 부산지검에서 진술
C검사는 이런 진범을 풀어줘 반성의 기회마저 빼앗았다. 배OO은 약 6개월 전 자살했다. 조OO은 전북의 한 도시에서 산다. 그는 여러가지로 어려운 처지다. 이OO은 경남의 한 도시에서 일한다. 가짜 살인범 최재필은 병원비 57만 원이 없어 전전긍긍이다. 진범들도 힘들게 살거나 자살했다.
이러는 사이, C검사는 변호사가 돼 대형 로펌에서 일한다. 문득 궁금하다. C변호사를 만나면 꼭 묻고 싶었다.
변호사님도 진범처럼 죄책감으로 밤을 보냅니까? 당신이 처벌한 가짜 살인범의 얼굴이 나타나지는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