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주최한 ‘2014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은 서초고등학교 2학년 최지희(가명)는 당시 장래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의과 대학에 입학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관심이 있던 뇌 과학자가 되는 것이 본인의 꿈입니다.”
당시 수상자 자료집에는 최지희가 ‘뇌과학 연구 SCI 논문’을 공동 제1저자로 발표했다고 나온다. 해당 논문이 대한수의학회에서 발행하는 영문 학술지 ‘Journal of Veterinary Science’에 실렸다는 내용과 함께 말이다. 역시 인재는 다르다. 고교 2학년이 석박사도 쓰기 힘들다는 과학·기술적 가치가 높은 SCI급 논문을 썼으니 말이다.
최지희는 수상 직후 성장 과정과 가치관도 덧붙였다.
“아버지로부터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과 수학 문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계산하는 방식을 배웠습니다. (중략) 대한민국 인재상을 계기로 앞으로도 남들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이용한 연구를 통하여 사회와 국가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최지희는 바람대로 2016년 고려대학교 의과 대학에 진학했다. 2022년 1월 현재, 졸업을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 인재’ 최지희의 부정행위는 6년 뒤에 밝혀졌다. 그가 쓴 수법에 대한 힌트는 수상 소감과 자료집에 나온다. 최지희는 “남들이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기발한” 방법을 썼다.
고교생의 부정행위에는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 세 명이 연루돼 있다. 그 중 한 명은 최지희의 아버지 A 교수다. 내막은 이렇다.
최지희는 서초고등학교 3학년 때 SCI급 논문 두 편에 제2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두 편 모두 ‘트레드밀 운동이 당뇨병 쥐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으로, 아버지 전공인 수의학과 분야다. 논문을 책임지는 교신저자는 아버지 동료인 B, C 교수가 각각 맡았다.
해당 논문은 2020년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이하 연구진실위) 조사 대상에 올랐다. 세 교수는 최지희가 논문 두 편에 기여했다고 연구진실위에서 주장했다.
“Cu, Zn-superoxide dismutase에 대한 면역조직화학염색을 수행하였고, imageJ를 이용하여 면역염색성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하였다.” – 대상 논문 1
“예비 실험을 통해 면역조직화학염색에 대한 조건을 설정하였고, 이후 본 실험을 통해 Iba-1에 대한 면역조직화학 염색을 실시하였다. 현미경을 통한 사진 촬영을 실시하였으며, 면역염색성을 정량화하기 위한 분석을 일부 수행하였다.” – 대상 논문 2
서울대 연구진실위는 세 교수의 주장을 배척하고 최지희가 두 논문에 기여한 게 없다면서 ‘연구 부정’ 판정을 내렸다.
“미성년자(최지희)는 A 교수의 자녀이다. B, C는 이 사실을 밝히지 않다가 예비조사위원회의 추가적인 소명 요청에 비로소 이 사실을 밝혔다. 피조사자들(세 교수)은 증빙자료로 미성년자가 작성하였다고 주장하는 연구 노트를 제출하였으나, 아래의 사정에 비추어 보면 위 연구 노트가 실제 연구 과정에서 미성년자에 의해 작성된 것인지 의심스럽고, 그 내용도 미성년자의 기여를 뒷받침하기에 부족하다.”
게다가 연구 부정 판정받은 두 논문은 ‘국가 R&D 과제’로 수행된 것이다. 한 편은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 사업 과제로 총연구비 6000만 원이 쓰인 ‘만성 당뇨에 따른 해마의 퇴행성 변화 확인 및 이와 관련된 key molecule 도출’ 과제에 포함됐다. 또 다른 논문은 2014년 교육부 사업 과제로 총연구비 5900만 원이 쓰인 ‘노화 모델에서 비만에 의한 해마의 형태 및 기능 평가’ 과제에 포함됐다.
한마디로, 서울대 수의대 교수 세 명이 국가 세금으로 작성한 연구 논문을 ‘미성년자 스펙 쌓기’에 밀어준 셈이다. 이 과정에서 학연과 연줄이 끈끈하게 작동했다.
최지희가 부정하게 이름을 올린, B 교수가 교신저자인 논문을 보자. 해당 논문은 SCI급 국제 저널 ‘Neurological Research’에 실렸다. B가 서울대 학부생 시절 때, 그를 가르친 교수 중 한 명이 A다. 스승과 제자였던 둘은 훗날 서울대 같은 학부 동료 교수가 됐다.
B 교수는 2018년 교내 성추행 사건 가해자로,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다. B 교수는 자기 논문으로만 최지희에게 혜택을 준 게 아니다. 그는 동료 C 교수가 교신저자를 맡은 논문에도 최지희가 등재되도록 힘을 썼다. C는 서울대 연구진실위에 이렇게 진술했다.
“제1 저자 학생이 B 교수의 연구실에서 실험하는 과정에서 미성년자(최지희)가 도와줬다고 얘기하여, B 교수에게 확인 후 공저자에 포함시켰습니다.”
정리하면, A 교수는 제자이자 동료인 B 교수에게 부탁해 자기 딸 최지희를 SCI급 논문에 등재하고, C 교수는 별다른 확인도 없이 동료 B 교수의 말만 듣고 또 다른 논문에 최지희 이름을 올린 것이다.
A 교수는 서울대 연구진실위 조사 때 이렇게 항변했다.
“B 교수에게 실험실 인턴을 부탁했을 뿐 논문 공저자가 되도록 부탁한 적은 없으며, 논문이 출간된 뒤에 비로소 자녀가 공저자가 된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서울대 연구진실위는 “피조사들(A, B, C 교수) 사이의 관계 등에 비추어 보면, 위 진술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고, 명시적인 부탁이 있었거나 적어도 묵시적인 부탁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라고 판단했다.
서울대 측은 세 교수의 연구 위반 정도를 이렇게 정리했다.
“A 교수의 경우, 학부 지도학생이었고 연령 차이가 많이 나는 B 교수와의 관계를 이용하여 자신의 자녀를 두 편 논문의 공저자로 만든 점을 고려하면 위반의 정도는 중대하다.
B 교수의 경우, 자신이 교신저자인 논문에 기여 없는 동료의 자녀를 공저자로 포함시켰을 뿐만 아니라 다른 논문에도 포함되도록 한 점을 고려하면 위반의 정도는 중대하다.
C 교수의 경우, 다른 공저자들의 말을 믿고 수동적으로 이 사건 위반행위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하면 위반의 정도는 경미하다.”
세 교수는 모두 2022년 현재 서울대 수의대에서 연구하고 가르친다. 징계 시효가 도과해 세 교수는 구두 경고·주의 조치만 받았다. <셜록>은 세 교수의 반론을 듣기 위해 21, 24일 서울대 수의과대학을 방문했으나, 이들은 모두 부재중으로 만날 수 없었다.
24일 전화 통화로 연결된 A 교수는 “누구신지 모르겠네요. 나중에 통화하죠”라며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B 교수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C 교수는 해당 연구 부정 논문에 대해 “별로 얘기할 게 없다”라며 전화를 끊었다.
고려대 의과 대학에 진학한 최지희는 2022년도 제86회 의사 국가시험을 치렀다. 올해 졸업 예정이다.
최지희와 고려대 의과 대학 동기인 복수의 학생은 “최지희는 수시 전형으로 입학한 것으로 안다”고 최근 <셜록>과의 인터뷰에서 답했다.
기자는 지난 19일 최지희에게 전화를 걸어 부당 저자로 오른 논문에 대해 물었다. 최지희는 “지금은 통화가 어렵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기자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기자가 보낸 문자메시지에도 답변하지 않았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19년 10월 미성년 공저자 논문 특별감사 결과 발표하면서 엄정한 후속 조치를 약속했다.
“교육부는 미성년 공저자 논문 연구 부정 검증과 연구 부정행위로 판정된 논문에 대한 후속 조치를 그 어떤 예외도 두지 않고 끝까지 엄정하게 추진할 것입니다.”
유은혜 장관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셜록>이 보도한 ‘유나와 예지’ 사례에 이어, 이번 최지희의 논문도 2020년 연구 부정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교육부는 지금까지 아무 조치도 안 했다.
교육부는 지난 7일 “미성년자에 대한 조치는 계속 진행 중인 사안으로 현재 밝히기 어려운 사항”이라고 <셜록>에 밝혔다.
대학 관계자들은 대입 시 부정 논문 활용 여부에 대해 “수사기관이 아니라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일관되게 답하고 있다. 부정한 논문이 입시에 활용됐는지 여부는 교육부 감사와 수사기관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하지만 교육부와 유은혜 장관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그러는 사이 유나와 예지는 의사가 됐다. 지희는 의대 졸업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