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스토리펀딩에서 2016년 1월 7일 공개했습니다. 스토리펀딩에서 보기]
그 남자의 멘트가 생각난다.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
10여년 전 엄기영 MBC ‘뉴스데스크‘ 앵커는 이런 오프닝 멘트로 황우석 교수에게 줄기세포가 없다는 걸 세상에 알렸다. 그의 말대로, 지금 이 순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짧게 정리하겠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진범을 직접 만났다. 그는 “우리 때문에 사망한 할머니에게 사죄하고, 대신 옥살이를 한 ‘삼례 3인조‘에게 미안하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6년 동안 괴로웠고, 사실대로 다 말하니 마음이 조금 후련하다“면서 모든 범행을 털어놨다. 그는 “지금이라도 과거의 일로 처벌을 받으라면, 받겠다“며 놀라운 사실도 밝혔다.
“16년 전에도 ‘우리가 범인이다‘라고 자백했습니다. 나라슈퍼 할머니가 사망했으니, 처벌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검사가 풀어줬습니다. 검찰이 왜 그랬는지, 저도 그날의 진실이 궁금합니다.”
진범마저 “왜 우리를 풀어줬느냐“며 진실을 요구하는 상황. 그는 법원에도 출석해 모든 진실을 말할 생각이 있다며 동영상 촬영에도 응했다.
약 15년 전 부산지방검찰청이 수사한 대로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진범은 세 명이다. 조OO, 배OO, 이OO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부산에서 나고 자란 선후배 사이다. 이 중 이OO이 만남에 응했다. 그는 여전히 부산에 산다.
진범과 접선(?) 하기로 약속한 장소는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 앞. 박준영, 신윤경 변호사와 함께 2일 오후 현장으로 갔다. 진범 이OO이 생각을 바꿔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을까 우려됐다. 기자가 온 걸 알면 만남을 피할까 봐 나는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현장에서 박준영 변호사가 진범에게 전화를 했다.
“저희 인상 착의 말하려고요.”
“됐습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다 압니다. 카카오 ‘스토리펀딩‘ 다 읽었습니다. 저 혼자 안 갑니다. 사람 한 명 데리고 갑니다.”
그는 기획 ‘가짜 살인범 3인조의 슬픔‘ 애독자로 우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조폭‘과 함께 나오는 건 아닌지 긴장됐다. 잠시 후 건장한 체구의 그가 젊은 여성과 함께 나타났다.
“제가 이OO입니다. 이 사람은 제 조카입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조카를 데려왔다. 그에겐 자식과도 같은 사람이다. 자신의 치부를 밝히는 자리에 조카와 함께 오다니.
“어젯밤 조카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삼촌이 양심을 걸고 과거의 잘못을 빌고, 진실을 말하는 걸 조카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는 취재에 응했다. 녹음과 동영상 촬영 모두 허락했다. 가까운 식당과 카페에서 약 3시간 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의 진실을 모두 털어놨다. 그는 애써 눈물을 참으며 많이 괴로워했다.
-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아시죠?
“네.”
- 그 사건에 관련 됐습니까?
“네.”
- 어떻게 관련 됐나요?
“저와 조OO, 배OO이 강도짓을 했고, 그 일로 현장에 있던 할머니가 사망했습니다.”
- 그때가 1999년 2월 6일 새벽 맞습니까?
“네.”
그의 말대로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은 지난 1999년 2월 6일 새벽에 발생했다. 강도 세 명이 나라슈퍼에 침입해 흉기로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를 제압한 뒤 현금과 패물을 훔쳐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77세의 유OO 할머니가 사망했다.
완주경찰서는 사건 발생 약 열흘 만에 가난한 미성년 지적장애인 강인구, 최대열, 임명선을 범인으로 체포해 구속했다. 이들 ‘삼례 3인조‘는 “경찰이 주먹과 몽둥이로 때려 허위자백을 했다“며 자신들은 범인이 아니라고 밝혀왔다. 사건 발생 약 10개월 뒤에는 부산지방검찰청이 이씨를 포함해 ‘진범 3인조‘를 수사했다. 이들은 모든 걸 자백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동안 여러 언론과 인권단체는 “경찰과 검찰이 살인범을 조작했다“며 재수사와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과 검찰은 그동안 “범인 조작은 없었다“며 “삼례 3인조가 범인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 이렇게 취재에 응하고 동영상 촬영도 허락하는 이유는 뭔가요?
“그때 범인이 바뀌었으니까요.”
- 범인이 바뀌었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우리가 (범행을) 했는데, 그 사람들(삼례 3인조)이 대신 (교도소에서) 살았습니다.”
- 그 일 때문에 많이 힘들었나요?
“지금도 힘듭니다.”
- 왜, 어떤 게 힘든가요?
“마음의 죄책감..우리가 (우리가 할머니를 죽게) 했는데, 그 사람들이 누명 썼으니까요. 죄책감에 갇혀서 사람들에게 마음을 못 열었습니다. 한동안 술만 마셨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된 꿈을 자주 꾸고, 피 터지게 얻어 맞는 꿈을 자주 꿨습니다.“
그의 이런 감정 고백은 처음이 아니다. 이씨는 지난 2000년 1월 25일 부산지검에서 수사받을 때에도 “사실은 밤마다 할머니가 죽어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등 수많은 죄책의 밤을 지새웠습니다. 사망한 할머니, 유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지난 2009년 2월 5일 끝났다.
- 지금 과거 범행을 고백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걸 알았나요?
“아닙니다. 얼마 전에야 알았습니다.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죄책감마저 끝난 건 아닙니다. 지금도 무척 괴롭습니다.”
- 가족들도 당신이 진범이란 걸 알고 있나요?
“네, 제가 다 이야기했습니다.”
- 범인은 당신과 조OO, 배OO이라고 이야기했나요?
“네.”
- 가족들의 반응은?
“큰형님은 감옥에 들어가 살라고 했고, 작은형과 모친은 ‘다 끝났는데 왜 이제 와서 인터뷰를 하느냐, 그냥 모른 척 하면 안 되느냐‘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가족이니 걱정을 많이 합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노모는 조카에게 전화를 걸어 “삼촌이 말 잘 했느냐“고 물었다. 조카는 “마음 편히 털어놨다“고 말했다.
- 가족의 만류에도 이렇게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뭔가요?
“제가 범인이고, 제가 한 일이니까요. 언젠가는 이렇게 진실을 말할 순간이 올거라 예상했습니다.”
- 1999년 2월 6일 새벽, 나라슈퍼에서 유OO 할머니에게 인공호흡을 한 일이 있습니까?
“(검찰) 조서에 나오듯이, 할머니가 미동도 하지 않아 인공호흡을 하고 물을 떠다가 뿌리고 먹인 기억이 있습니다.”
진범 3인조의 자백에 따르면, 당시 이씨와 조OO은 소리를 지르는 할머니를 제압한 뒤 입을 청테이프로 막았다. 이 과정에서 유OO 할머니는 질식사했다. 검찰 조서에 따르면, 놀란 이들은 할머니에게 물을 떠다 먹이는 등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 그 후에 겁이 나서 도망갔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정신을 차려보니 저희들이 도망을 가고 있었습니다.”
- 나라슈퍼 외에 다른 곳도 털었습니까?
“나라슈퍼에 가기 전에 다른 집 두세 곳을 털려고 했습니다.”
- 범행 전에 ‘히로뽕‘에 취한 상태였나요?
“네 그렇습니다. 사건 당시 조OO이 전북 익산에 있었는데, 그가 놀러 오라고 해서 배OO과 함께 부산에서 올라갔습니다. 여관방에서 술을 마셨는데, 나중에 보니 조OO과 배OO이 화장실에서 주사기로 히로뽕을 투약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어렸을 적에 마약을 해 본 적이 있는데, 생각나서 저도 투약을 했습니다.”
- 마약을 한 상태여서 당시 일을 세부적으로 다 기억하지 못 합니까?
“듬성듬성 기억납니다.”
- ‘가짜 살인범 3인조‘ 현장검증 동영상 봤죠? (스토리펀딩 9화) 당시 범행을 했던 장소가 그 나라슈퍼 맞나요?
“네, 맞습니다.”
- 나라슈퍼에서 잠자던 부부를 흉기로 제압하고, 청테이프 등으로 묶었던 일을 기억합니까?
“조OO이와 같이 들어가서 (부부를) ‘묶어라‘ ‘잡아라‘..그런 기억은 있습니다.”
- (부부를 제압한 뒤에) 할머니 방엔 누가 들어갔습니까?
“저와 조OO이 들어갔습니다. 배OO은 (할머니를 제압하는) 그 순간에 없었습니다. 배OO은 나중에 들어 왔나 그럴 겁니다.”
이씨의 말은 부산지검 수사기록과 일치한다. 할머니를 제압했을 때 배OO은 없었다. 부부와 아이가 있던 다른 방에서 이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배OO은 할머니방을 턴 후 부부방으로 돌아온 일행과 함께 있다가 낌새가 이상하여 할머니방에 가 보았고, 그가 “할머니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알려줬다.
- 사건 발생 약 10개월 뒤에 부산지검에서 모든 범행을 시인했습니다. 왜 시인했죠?
“범행을 저지르고 부산으로 도망왔습니다. 우리가 한 행동은 기억이 나는데 좀 희미했습니다. 배OO을 만나 ‘야, 우리가 사고쳤지?’ 하니까 그가 ‘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죽은 줄은 몰랐습니다. 강도 사건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나중에 조OO이 할머니가 죽었다고 말해줬습니다.”
- 도망칠 당시엔 할머니가 사망했다는 걸 몰랐습니까?
“사망한 줄 몰랐습니다. 제가 인공호흡을 했었고, 숨이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 부산지검에서 범행을 자백한 이후 전주지검으로 이송됐습니다. 전주지검에서도 범행을 인정했죠?
“네, 모두 인정했습니다.”
- 사건 기록을 보면 전주지검에서 2차 진술 때부터 범행을 부인합니다. 왜 부인했죠?
“우리가 다 자백했는데도, 갑자기 우리가 범인이 아니라는 식으로 분위기가 흘렀습니다.”
이씨의 말대로다. 진범 3인조는 부산에 이어 전주지검에서도 범행을 모두 자백했다. 자백은 범행 상황은 물론이고 피해자 진술과 일치했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2차 진술 때부터 약속이라도 한 듯이 범행을 부인했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교도소에 있는데) 공범 조OO 동생이 면회를 왔습니다. 그가 ‘우리가 범인이 아닌 쪽으로 간다, 범행을 부인하라‘는 눈치를 줬습니다. 그때부터 범행을 부인했습니다.”
- 당시 검사가 공범 조OO에게 무슨 언질을 주거나 거래를 했나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 수사할 때 검사의 태도와 분위기는 어땠나요?
“우리가 범인이란 걸 다 알면서도, 감싸주는 분위기였습니다.”
당시 전주지검에서 C검사가 이들을 수사했다. C검사는 약 10개월 전 ‘가짜 살인범 3인조‘를 기소한 당사자다. 가짜 살인범을 처벌한 검사가 진범을 다시 수사하는 상황. 그는 과연 제대로 수사를 했을까?
- 범행을 자백하고 다 인정했는데도, 검사가 감싸줬다고요?
“우리는 범행을 다 인정하고 자백했습니다. 그런데도 검사가 ‘너희들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검사가 아니라고 하는데, 어느 범인이 계속 ‘내가 범인이 맞다‘고 주장하겠습니까.”
- 당시 검사가 했던 말 중 기억나는 게 있나요?
“검사가 저희에게 ‘교도소에 있는 것만이 처벌 받는 건 아니다, 너희들이 지금 나간다고 떳떳한 건 아닐 거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검사 자신은 우리가 범인이란 걸 다 알면서도 그걸 회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너희들이 범인이 맞는데, 내가 풀어 주니까 밖에 나가서 조용히 살아라‘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먼저 잡혀온 사람들이 있으니까, 너희들을 풀어준다..그런 느낌이 팍 왔습니다.”
- 그때 기분은 어땠나요?
“우리가 했다는데, 왜 검사가 아니라는지, 좀 황당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처벌을 면하니 좋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금방 이게 아닌데..싶었습니다. 10년, 20년 지나든 진실을 밝혀지는 날이 올 건데..싶었습니다.”
- ‘가짜 살인범 3인조‘는 전주지검에서 당신들과 대질했다고 말하던데요.
“맞습니다. 맨 마지막에 그들을 만났습니다.”
- 무슨 일이 있었나요?
“검사가 우리는 범인이 아니고, 삼례 3인조가 범인이라고 했습니다.”
- ‘가짜 살인범 3인조‘ 중 한 명인 강인구씨에 따르면 진범 중 한 명이 그때 울었다고 하던데요.
“맞습니다.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 울었습니다. 저와 배OO이 울었습니다.”
- 왜 울었죠?
“우리가 범인인데..앞에 앉아 있던 그들이 불쌍해 보였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죄책감도 들었고요.”
- 그들 억울한 3인조가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에 나가 사실대로 진술할 의향이 있습니까?
“그때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당연히 사실대로 이야기해야죠.”
- 피해자 유가족과 사망한 할머니에게 사죄할 마음이 있습니까?
“예, 당연히 사죄하는 마음입니다. 죄송합니다. 교도소에서도 할머니를 위해 많이 기도했습니다. (이씨는 마약 사건으로 복역했다) 우리 때문에 돌아가셨으니까요.”
- 정말로 그동안 많이 힘들었습니까?
“지금도 많이 힘듭니다. 우리 대신 감옥에 간 사람들이 불쌍합니다. 그때 우리가 범행을 했다고 했는데, 검사가 아니라니까..방법이 없었습니다.”
진범 이OO씨가 박준영 변호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까?
“저도 그날의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 그게 무슨 의미인가요?
“우리가 했는데, 왜 저 사람들(삼례 3인조)이 했다는 건지..왜 그들이 처벌을 받았는지..알고 싶습니다.”
- 당신은 자백을 했는데도 무시를 받았고, 대신 약자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당신이 자백한 16년 전 그때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제가 다시 ‘나는 범인이 아니다‘라고 하면 끝나는 일인데..아니라면 그만인데..(이씨의 눈이 젖었다) 저도 지금까지 많이 괴롭습니다. 왜 범인이 바뀌었을까..그 사람들이 왜 범인이 됐을까..궁금합니다. 그동안 나쁘게 살았지만, 이제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 곧 법원이 ‘삼례 3인조‘가 청구한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합니다. 판사님께 할 말이 있습니까?
“제가 무슨 이야길 해야할지..그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습니다. 첫 진술 때 (자백을) 했고, 모든 사실이 맞습니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서 그 사람들(삼례 3인조)의 억울함이 풀리고, 돌아가신 할머니도 좋은 데 가셨으면 합니다.”
자, 이젠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과 경찰이 응답할 차례다. 진범을 처벌하지 않은 C검사는 지금 대형 로펌에서 일한다. 의지를 갖고 진범을 수사했던 부산지검의 검사는 지금 ‘검찰의 꽃‘이라는 지검장이 됐다.
‘가짜 살인범 3인조‘를 주로 수사했던 당시 완주경찰서 소속의 두 형사는 모두 전주의 경찰서에 일한다. 이 중 한 명은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경찰서장) 후보자다.
이들은 모두 취재를 응하지 않고 있다. 진범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용서를 구하는데,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와 경찰은 모두 함구하고 있다. 이들은 “살인범을 조작하지 않았다“고 밝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