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 “천재 과학도”로 불린 청년은 논문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 톤을 높였다.

“그거를 취재하시려고요? 안 돼요! 그거는 취재를 거부하겠습니다.

늘 이런 식은 아니었다. 열여덟 나이에 기술-과학적으로 인정받는 SCI급 국제학술지에 제1저자로 논문을 등재했을 때, 그는 언론을 피하지 않았다. 서울과학고등학교 2학년 구창협(가명)은 2008년 11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런 포부를 밝혔다.

“인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동아> 기사에서 그는 “천재 과학도”로 불렸다. 지나친 표현은 아니었다. 당시 구창협은 <신경과학 연구방법 저널(Journal of neuroscience Methods)>에 ‘자석을 이용한 인간 신경세포 돌기의 방향성 유도에 대한 연구’ 논문을 실었다. 구창협의 성과는 화제였다. 그는 <동아> 외 여러 매체와도 인터뷰를 하며 논문 이야기를 했다.

구창협은 서울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2009년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에 수시전형으로 합격했다. 대학 진학 후에도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2009년 대학 4년 등록금 전액이 지원되는 대통령과학장학생으로 선정됐다. 2010년에는 ‘생명과학 분야 연구성과 및 재능이 우수한 인재’로 인정받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가 주최한 ‘2009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했다. 그는 특허 여러 건을 출원하기도 했다.

구창협(가명)은 2009년 제 7회 대통령과학장학생으로 선정됐다.ⓒ한국장학재단

구창협이 짧은 시간에 이룩한 빛나는 성과들.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의 놀라운 성취는 따로 있다. 국제학술지에 제1저자 논문을 발표해 “천재 과학도”로 불리기 전인 고교 1학년 시절, 고성범은 이미 석박사도 1년에 한 편 쓰기 힘들다는 SCI급 논문 세 편에 이름을 올렸다. 구창협은 1년간 밥만 먹고 잠도 안 자고 실험만 했다는 걸까?

<셜록>은 구창협이 이름을 올렸다는 논문 세 편을 찾아봤다.

그의 논문은 생화학분자생물학회지 <EMM(Experimental and Molecular Medicine)>, 대한신경과학회에서 발행하는 <Journal of Clinical Neurology>, 뇌 연구 분야 국제학술지 <Brain Research>에 각각 실렸다.

구창협(가명)이 2007년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SCI급 논문 세 편. 세 편 모두 논문 책임자인 교신저자는 구창협의 아버지, 서울대 의과대학 신경학교실 A 교수다.ⓒ주보배

구창협 이름은 세 논문에서 제3저자 또는 제4저자로 등재돼 있다. 세 논문 책임자인 교신저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학교실 A 교수, 바로 구창협의 아버지다. 그는 국내에서 ‘신경과 명의’로 유명하며, 현재 서울대병원 신경과 과장이다.

논문의 다른 공저자 대부분은 구창협 아버지의 동료인 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들이다. 여기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구창협에게 “천재 과학도”란 칭호를 안겨준 2008년 논문 공저자들 역시 서울대 신경과 교수들이었다. 특히 해당 논문의 교신저자는 과거 A 교수의 제자였고, 지금은 서울대병원 같은 층에서 근무하는 동료 B 교수다.

구창협이 제1저자로 쓴 2008년 논문을 제외한, 서울대 교수 여러 명이 참여한 세 논문은 줄줄이 ‘연구부정’ 판정을 받았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2019년 이런 취지로 판정했다.

“연구에 직접적으로 기여한 바가 없는 자(A 교수 아들 구창협)을 공저자에 포함시킨 건 연구 부적절 행위에 해당한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에 따르면, A 교수는 고작 13일간 실험실에 나온 아들을 SCI급 논문 세 편에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각 논문에 내린 판정과 조사 결과를 보자.

우선, 구창협이 생화학분자생물학회지인 EMM(Experimental and Molecular Medicine)에 게재한 루게릭병을 일으키는 SOD1 단백질 응집에 대한 논문.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의 판정은 다음과 같다.

“위 논문은 2007년 6월 22일에 게재승인(accepted) 되었다. 피조사자(A 교수)가 증빙자료로 제출한 파일은 논문 게재 승인 이후인 2007년 7월에 이루어진 실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중략) 본 조사위원회에서 실험 시점이 게재 승인 이후임을 지적하자 (A 교수는) 네 번째 소명서에서는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대화를 나누면서 오고 갔던 내용’이라고 주장을 바꾸었다. (그의 아들 구창협이) 보조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저자로서 인정받을 정도의 기여를 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다음은 구창협이 대한신경과학회에서 발행하는 ‘Journal of Clinical Neurology’에 게재한 한국 편두통 관련 논문에 대한 판정.

“구창협의 기여는 논문 수정 단계에서 discussion의 한 단락을 추가로 작성하였다는 것이다. (구창협이 실제로 논문을 작성하였다는 점을 뒷받침할 만한 증빙자료도 제출된 바 없다). 그러나 구창협이 작성하였다고 주장하는 단락의 서술은 저자의 자격을 인정받을 만큼의 학문적 기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구창협이 뇌 연구 분야 국제 학술지인 ‘Brain Research’에 게재한 헌팅턴병 관련 논문에 대한 판정.

“구창협의 기여는 OOO연구원이 설계하여 진행하던 실험에서 OOO연구원을 도와 그 지휘·감독 하에, 마우스 모델에 투여할 약품의 용량을 계산하고 약품을 투여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약품 투여를 하였다는 점을 뒷받침할 만한 증빙자료도 제출된 바 없다). 그러나 마우스 모델에 약품을 투여하는 처치만으로는 저자의 자격을 인정받을 만큼의 학문적 기여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즉, 논문 세 편에서 구창협이 기여한 건 별로 없으며, 설령 기여했더라도 보조 수준에 그칠 뿐 저자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뜻이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연합뉴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위반한 논문이 3편이고, 자녀를 공저자에 포함시킨 것이어서 사안이 가볍다고 볼 수만은 없다”고 판정했다. 하지만 “부당 저자 표시는 연구데이터 허위 작성 등과 같은 연구부정행위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행위 유형에 속하며, 저자로서의 기여에는 이르지 못하였더라도 여러 정황상 적어도 실험 보조 등의 업무는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위반의 정도는 ‘비교적 경미’하다고 봤다.

기자는 지난 9일 구창협과 전화 통화를 했다. 그는 논문 이야기에 다시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걸(논문) 취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보도할 상황이 아니에요, 제가 기여를 했기 때문에요.”

그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 서울대에서 연구부정이라고 판정을 내렸잖아요?

“글쎄요. 경미위반 단계라고 한 것 같은데.”

  •  기여도가 없다고 판명이 났는데요.

“기여도가 없지 않거든요. 제가 직접 관여 다 했어요. 아버님께 여쭤보세요. 연구승인자시니까 모든 걸 책임지시고 말씀해 주실 거예요. 이만할게요.”

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논문 책임자인 그의 아버지 A 교수의 견해를 들기 위해 9일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A 교수.ⓒ주보배

서울대병원 신경과 과장이자 ‘명의’로 불리는 그에게 초진을 받으려면 지금 예약해도 내년 6월에나 가능하다. 진료가 아니어도 A 교수를 만나기는 어렵다. 오전 10시인데도 그의 방 앞에는 의사, 제약회사 직원들로 이미 줄이 길었다. 기자도 약 1시간 줄 서 대기했다. 직원을 통해 인터뷰 뜻을 전하자, A 교수는 “업무상 인터뷰는 불가하다”는 답을 보내왔다.

A 교수 방 앞에서 약 1시간을 더 기다렸다. 노크를 해도 그는 반응하지 않았다. 약 3시간이 지났을 때 A 교수는 진료를 위해 방에서 나왔다. 그는 기자를 보자 빨리 걷기 시작했다.

  • 교수님, 2007년 논문에 자녀분을 왜 올려주셨나요?

“……”

  • 아들 이름 올린 논문 세 편이 모두 연구부정 판정이 났는데요.

“홍보팀 통해서 얘기하세요.”

그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이후 다시 연락이 닿은 구창협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결국에는 배가 아픈 거거든요. 어린 학생이 이렇게 실적을 내고… 어떻게 보면 그렇잖아요. 좋은 전형에 입학을 해서 어떻게 한 것처럼 보이니까. 이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코로나 시국에 마음이 비좁아지고, 여유가 없어져서 그런거 같은데… 저는 그런 (부정) 의도가 없었습니다.

이어 그는 서울대 측의 판정이 끝내 ‘무혐의 처리’ 났다고 주장했다.

“조민 사건 터지니까 교수 자녀에 대해서 전수 조사가 들어가서, 저도 조사 대상에 들어간 거고…(중략) 해명이 돼서 무혐의 처리가 2020년도 3월에 났어요.”

사실이 아니다. 서울대 연구윤리팀은 10일 전화 통화에서 “(<셜록>이 확보한 자료는) 이의신청 결과 판정이 뒤집히지 않은 결정문”이라며 “부정으로 확정난 사안”이라고 말했다.

구창협은 대한민국인재연합회 설립자 자격으로 2013년 2월 <동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노벨상도 받고 싶어요.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 그 과정도 노벨상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A 교수는 3편의 논문에 아들 이름을 올려주는 연구 부정을 저질렀지만, 징계는 구두 경고 조치에 그쳤다. 2007년에 벌어졌던 연구 부정이 2019년에 밝혀졌으니, 이미 당시 연구 부정 징계 시효(3년)가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여전히 서울대 교수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A 교수.ⓒ주보배

구창협은 연세대 생명공학과 졸업 후 같은 대학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했다. 현재 그는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중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서동용 의원실이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미성년 공저자 연구 부정 판정 논문 결정문을 전수 분석한 결과, 2007년부터 10년간 나온 서울대 교수의 미성년 공저자 논문은 64건이었다. 이 중 22건(34%)은 미성년자가 기여한 게 없는 논문으로 ‘연구부정’ 판정을 받았다.

부정을 범한 서울대 교수를 소속 대학별로 따져보면 의과대학 4명, 수의과대학 4명, 치의학대학원 2명, 약학대학 2명 등으로 의학 계열이 압도적이다. 연구 부정을 저지른 교수들은 모두 징계 시효 도과로 구두 경고, 주의 조치만을 받았다.

<셜록>이 지금까지 취재하고 보도한 ‘논문에 자녀 끼워 넣기’ 부정을 범한 서울대 교수는 모두 세 명. 이들의 자녀는 모두 의대, 의전원에 진학했다. 서울대병원 홍보팀은 11일 <셜록>에 A 교수 답변서를 보냈다.

“비교적 경미한 사안으로 경고 조치를 받았습니다. 15년이나 지났고 연구진실성위원회에서 충분한 소명을 하여 특별한 입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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