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시신을 발견한 날은 지난 일주일 중 가장 더웠다. 낮 최고 기온 26.1도. 2021년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시신은 예상과 달리 안방 침대 위에 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침대 아래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자세로 사망했다. TV는 켜져 있었고, 창문은 열린 상태였다. 시신에 외상 등 외력 흔적은 없었다. 무척 마른 몸이 눈에 띄었다. 시신을 살핀 검안의는 시체검안서에 이렇게 적었다.
‘입안에 구더기 있음. 전신 부패로 변색. 사망 원인은 영양실조증에 따른 내인사로 추정.’
사건기록에서 여기까지 읽은 서울 소재 한 의과대학 교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입안에 구더기가 있다…. 이건 판결의 기본 전제를 흔드는 건데요.”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안 갔다.
“파리가 시신에 알을 낳는다고 바로 부화하진 않잖아요. 5월 초면 아무리 빨라도 하루는 걸릴 테고, 전신 부패로 변색됐다면 또 며칠 지났다는 거고.”
이 교수는 검안의가 작성한 시체검안서의 한 대목 ‘사망일시’를 오른손 검지로 짚었다.
‘사망일시는 5월 4일 08:00 ~ 5월 6일 23:39 사이로 추정.’
미세하고 단순한 내용. 그래서 더 간과된 중요한 사실이 그제야 이해됐다.
사망자는 56세 남성 강영식(가명). 현장에서 체포된 피의자는 강영식의 아들 강도영(가명, 21)이다. 지난 겨울 많은 사람에게 충격과 슬픔을 준 간병살인 청년 그 강도영이 맞다. 대구고등법원이 존속살해 혐의로 징역4년을 선고하면서 일단락된 사건. 이걸 다시 거론하는 이유가 있다.
강도영 상고심을 맡은 변호인단,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의사-의대 교수 몇 명이 강도영 아버지 부검감정서, 시체검안서, 병원진료기록지 등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대법원에서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내용이다.
법원은 강도영이 아픈 아버지를 고의로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그를 단죄했다. 만약 강도영의 방치가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인과관계가 흔들린다면? 사건의 본질은 달라진다.
먼저 1심 재판부가 강도영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정리한 사실 관계를 보자.
“강도영은 5월 1일부터 5월 8일 20시까지 약 8일간 치료식과 물, 처방약을 중단하고 아버지 방에 들어가지 아니하여 피해자를 방치하였다. 그 결과 아버지는 그 무렵 심한 영양실조 상태에서 폐렴 등 발병으로 사망했다. (중략) 사망 당시 피해자의 체중은 39kg으로, 신장(166cm) 대비 이상적인 체중(약 62.1kg)의 약 63%에 불과하였다.”
검찰의 공소장을 그대로 인용한 법원의 판단은 언뜻 논리적이고 타당해 보인다. 건강한 사람도 여드레 굶으면 사망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객관적 증거인 아버지 시신을 놓고 따지면 모순이 드러난다.
아버지는 5월 8일에 죽지 않았다. 그날 시신으로 발견됐을 뿐이다. 부패해 변색된 시신, 알에서 부화된 파리 유충 등이 그 증거다. 검안의는 이를 토대로 아버지 사망 시점을 5월 4~6일께로 추정했다. 의대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렇게 되면 ‘8일간 굶기고 방치 -> 체중감소 등 심한 영양실조 -> 아버지 사망’이라는 검찰과 재판부가 단정한 인과관계의 설득력이 떨어지잖아요. 검안서, 부검감정서에 따르면 강도영 씨는 나흘 정도 아버지를 방치했다는 건데, 그 기간에 급격히 살이 빠졌다? 그게 참…”
재판부는 강도영의 방치 탓에 사망한 아버지 체중이 적정 수준에서 63%에 불과했다며 심한 영양실조 책임을 강도영에게 돌렸다. 이 인과관계가 성립하려면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퇴원 당시 아버지 체중이 적정 수준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강도영의 상고심을 대리하는 변호인단은 강도영 부친의 의료기록지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2021년 2월 2일 A요양병원이 아버지의 키와 몸무게를 측정한 내용이다.
‘키 165cm. 몸무게 48kg.’
키에 대한 이상 체중(62.1kg)의 약 77%에 불과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기준에 따르면, 이상 체중에서 85% 미만이면 영양실조 상태다. 2월 2일은 아버지가 B병원에서 약 5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고 A요양병원으로 옮긴 날이다. 병원에서 의사-간호사-간병인의 보호 아래 의약 처방과 식사 서비스를 받는 상태에서도 아버지는 이미 영양실조 상태였던 셈이다.
아버지는 2020년 9월 13일 심부뇌내출혈 및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B병원에서 수술과 입원치료를 받았다. 약 5개월간 치료받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당시 B병원은 강도영에게 “환자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설명한 뒤 경과기록지에는 이렇게 적었다.
“입원중 뇌경색, 심근경색, 폐색전증, 폐렴 -> 패혈증, 내부장기 마비, 위 장관 출혈, 다발성 장기부전 가능성 설명함.”
건강이 무척 안 좋은 상태였지만 아버지는 B병원에서도 식사를 거부했다. 2020년 11월 13일 작성된 간고경과기록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06:00 – 두유 섭취하도록 격려하였으나 머금고 뱉음. 다른 음료 및 간식 섭취 거부함.
08:15 – 아침 식사 세 숟갈 먹음. 식이양상 매우 불량함.
14:10 – 식이량 저조하여 아침 BST(혈당) 80 나오셔서 아침 당뇨약 hold 함. 입 안이 헐어서 식사를 못하겠다고 함.
다음날인 11월 14일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09:00 – 입 안 헐어서 식사량 저조함. 전신 부음.
10:00 – 최근 가래양 많으며 식사량은 저조하고 식사 시 사레 걸림. 주치의 보고함.
뇌출혈로 몸 대부분이 마비 탓에 아버지는 거의 침대에서만 생활했다. 건강악화와 운동 부족, 여기에 식사 거부까지, 아버지의 체중 감소는 불가피했다.
요양병원으로 전원한 2월 2일 이후에도 상황에 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계속 식사에 거부 반응을 보였다. A요양병원이 작성한 3월 1일 자 의무기록지를 보자.
17:45 – 밥 먹기 싫다면서 점심도 안 먹고 내놓은 상태에서 저녁도 안 먹으려고 하고 있음. 속불편감이나 복통은 없는 상태에서 그냥 먹기 싫다고 해서 정서적으로 지지함. 겨울 달래고 설득해서 당뇨밥 1/2정도 섭취함. 저혈당 증상 관찰함.
20:00 – 먹는 것도 귀찮고, 아무 것도 하기 싫다고 하며 무기력한 모습과 우울한 표정 보여 계속 정서적으로 지지함.
다음날 상황은 더 안 좋다.
07:30 – 아침식사 1/2 먹고 vomiting(구토) 함.
12:00 – 속 불편감 지속되며 자연배뇨 하지 못함. 주치의에 의해 지속적으로 식사 못하고 배뇨하지 못할 시 수액처지와 유치도뇨관 재삽입 해야 함을 설명함.
13:00 – 컨디션 저하로 점심 식사하지 못함.
18시 30분 – 저녁식사 먹지 않고 두유 한 개 먹음.
이와 비슷한 상황은 3월 20일까지 이어진다. “식사량 저조하며 관찰중임. 스스로 치료에 대한 의지 없음” 이란 대목은 의무기록지에서 자주 등장한다. 요양병원에서도 아버지 체중은 더 빠졌거나 영양실조가 이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간병청년 강도영에게 존속살해 유죄를 선고한 대구지법과 대구고법은 이런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았다. 시신 발견 당시 체중 만을 기준으로 ‘네가 아버지를 굶겨 죽였지!’ 식으로 모든 책임을 강도영에게 몰아갔다.
“무엇보다 강도영 아버지의 사망 인과관계가 확실하지가 않아요. 방치 결과로 굶어서 사망했는지, 원래 지병으로 죽은 건지 특정이 어렵다는 겁니다. 안타깝지만, 의료기록지를 보면 아버지 건강은 언제든 돌아가실 수 있는 상태였거든요.”
강도영 아버지의 병원기록을 검토한 한 의료인의 지적이다. 실제로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있던 2021년 4월 8일 감염, 신부전, 정신 혼미, 신은땀 등 여러 요인으로 무호흡과 맥박이 잡히지 않아 응급 상황에 놓였다.
B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아버지는 반혼수상태(semi coma) 상태였고, 호흡기를 착용했으며, 산소포화도는 54%까지(건강한 성인의 정상 수치는 99~100%) 떨어졌다. 혈압은 너무 낮아 잡히지도 않았다. 병원 측은 강도영에게 설명했다.
“현재 상태로는 추가적인 검사도 어렵고 갑자기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는 의식을 회복하고 약 2주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이 기간 의료기록을 살펴본 한 의료인(4년제 대학 학장)은 조심스럽게 이런 의견을 밝혔다.
“병원입원 중반 부터 혈압이 많이 떨어지고, 산소 포화도 역시 떨어졌습니다. 언제든 사망(심정지)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빈혈이 감지되었고, 위장 출혈 의심이 되며, 헤모글로빈 수치가 7.4까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출혈을 치료하지 않으면 저혈압 쇼크(hypovolemic shock)로 급사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강도영 부친 시신 결과 “심한 영양실조 상태에서 폐렴 등이 발병하여 사망에 이르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아버지는 입원 치료를 받은 병원에서 이미 영양실조였고, 사망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돈이 없던 강도영은 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아버지를 방치했고, 끝내 사망했다.
1심, 2심 재판에선 의료인이 증인으로 나온 적 없다. 아버지 시신과 건강상태, 의료기록 등은 쟁점이 되지 않았다. 검찰 공소장과 재판부의 판단에 일부 오류가 있지만 시정되지 않았다.
오직 강도영의 방치만 문제됐고, 그만 처벌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