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저렇게 술을 잘 마실까 감탄하다가 끝내 속이 울렁거렸다. 저 깊은 곳에서 불어터진 면발이 알코올과 함께 역류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다. 찬 바람 쐬면 속이 진정될까 싶어 밖으로 나갔다. 겨울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방으로 들어와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밤새 마시고 아침에 또 술 마시는 세 여자를 바라봤다. 내 입에서 술 냄새가 나는 듯해 쩝쩝 거리길 몇 번, 창밖으로 지리산 윤곽이 보였다. 푸른 새벽이었다. 

20대 후반 여자 세 명이 부어라, 섞어라, 마셔라 하는 게 뭐 그리 재밌다고 이 나이에 드라마 보며 밤을 샜을까. 스스로에게 혀를 차며 눈을 붙였다. 늦은 아침에 눈 뜨자마자 다시 세 여자를 봤다. 순식간에 드라마 정주행. 

술병 뚜껑 돌아가는 소리, 소주-맥주 섞이는 소리, 폭탄주 목구멍 넘어가는 소리에 이어, 폐활량 좋은 한선화의 “너~~~~무 맛있죠?”가 여진처럼 귓가에 남았을 때, 누워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드라마 보며 밤샌 게 얼마 만이지?’

기억도 안 난다. OTT 티빙 오리지널 <술꾼도시여자들> 시청 경험은 신선했다. 내가 밤샌 이유? 뭐 대단한 게 있겠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고, 재밌으니까 그랬지. <술꾼도시여자들> 밤샘 시청 경험은 내 행동 패턴 복기로 이어졌다.    

나는 드라마를 거의 안 본다. 누군가 내게 <술꾼도시여자들>이 재밌다고 추천했다. “아, 네…”하고 말았다. 지인이 또 추천했다. “너나 많이 봐라” 하고 말았다. 가까운 사람이 꼭 보라고 또 추천했다. 이쯤 되면 “그래, 한 번 봐주지, 뭐” 하기 마련이다. 

나는 넷플릭스, 왓챠 회원이다. 근데 이 드라마는 ‘티빙’ 오리지널이다. ‘넷플릭스 천하에서 한국의 티빙이라니. 얘네 되겠어?’ 하는 시답지 않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패드에 티빙 앱을 깔고, 회원가입하고, 결제 정보를 입력했다.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스틸컷. ⓒ티빙

귀찮은 걸 싫어하는 내가 이 모든 과정을 완수하고, 돈까지 내면서 밤새 드라마를 봤다니. <술꾼도시여자들>의 세 주인공 주량보다 이걸 감내한 내가 더 신기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지 티빙 기업가치가 작년 대비 6배 오른 2조 원이라는 뉴스가 최근 나왔다. 

올해 <셜록> 시무식 때 구성원들에게 못 박았다. 

앞으로 <셜록> 기사는 포털에 보내지 않습니다. 힘들더라도 콘텐츠의 힘으로 돌파해 봅시다. 우리가 좋은 기사를 쓰면 독자들이 찾아서 볼 겁니다.”

<셜록> 규모와 기사 생산량은 ‘포털 입점’ 요건에 아직 부족하다. 그 탓에 2019년부터 인터넷매체 프레시안에 기고하는 방식으로 포털에 뉴스를 전송했는데, 이런 우회로마저 우리 스스로 끊기로 했다. 드라마 한 편에 필름 끊긴 듯이 취해 얼결에 내린 결정 아니다.  

포털에 뉴스를 전송하면 여론 형성에 도움이 된다. 많은 이용자가 쉽게 기사를 접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포털에서 우리 기사를 많이 본다고 <셜록> 독자나 유료회원 ‘왓슨’이 느는 건 아니다. 규모 작은 우리가 정성스럽게 죽 쒀 대기업 포털 떠먹인다는 느낌도 든다. 

많은 시민이 포털에서 뉴스를 보는 시대에 <셜록>의 시도는 무모한 것일 수 있다. 한국의 많은 언론은 포털 입점을 당연하게 여기고, 생존과 직결하니 말이다. 여러 언론사가 포털을 욕하면서도 탈출하지 않는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유혹적인 콘텐츠 사용료와 광고료, 그게 언론사의 발목을 포털에 단단히 묶어 놓는다. 

<셜록>은 광고로 먹고 사는 회사가 아니다. <셜록>의 친구 왓슨이 내는 구독료로만 운영한다. 먹고 사는 방식이 다른 우리가 굳이 ‘다른 매체처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그럴 능력도 안 되고 말이다. 

포털 전송을 그만두자고 했을 때 이견이 없지 않았다. 힘들여 기사를 썼는데, 기대만큼 여론의 반향이 없으면 ‘포털에 보낼 걸…’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나는 조금 서운한(?) 말로 기자들을 다독였다. 

“독자 반응 없는 게 정말 포털에 안 보낸 탓인 거 같아요? 포털에 보낸다고 전 국민이 우리 기사 보면서 환호할 거 같아요?”

괜히 미안한 나는 죄 없는 전지현을 끌어 들였다. 

“천하의 전지현이 나오고, 그 유명한 김은희가 썼는데도 드라마 <지리산> 흥행 저조했잖아요. 누구나 공짜로 볼 수 있는데도, 많이 안 보잖아요. 왜겠어요. 재미없으니까 그렇지.

근데 대형 스타 하나 없는 <술꾼도시여자들>은 앱 깔고 돈 내면서도 많은 사람이 보잖아요. 왜 그러겠어요? (잠시 말 끊고 침묵. 기자 얼굴 보면서) 우리가 좋은 기사를 쓰면 독자들이 찾아서 볼 겁니다. 믿으세요. 독자는 좋은 기사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말이 쉽다는 거, 세상사 말처럼 되지 않는다는 거, 잘 안다. 그래도 우린 독자 생존의 길을 한 번 걸어보기로 했다. 해보지도 않고 겁먹고 포기하는 게 가장 바보같은 일이니까. 

ⓒ지리산

사실 이번 시도는 <셜록>의 과거를 떠올려보면 새롭지 않다. 2017년 1월 2일 창간한 <셜록>은 약 2년간 무척 힘들었다. ‘월급날 25일’이 포함된 주가 시작되면 나는 여기저기 돈을 꾸러 다녔다. 졸업 후 16년간 연락 안 한 대학 동기에게 전화도 했다. 

어려움에서 우리를 구한 건 투자자, 정부지원, 기업 광고가 아니었다. 2018년 여름, 재판거래 피해자 오재선, 이외식 선생 기사를 보도한 뒤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오재선 선생 기사 보기

이외식 선생 기사 보기

독자는 포털에 없는 우리 기사를 퍼나르기 시작했다. 유료독자 ‘왓슨’도 눈에 띄게 늘었다. 부채를 털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수준이지만, ‘긍정적 신호’는 분명했다.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 <케어> 박소연 대표를 보도할 때도 우린 포털에 입점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셜록>만의 ‘오리지널 콘텐츠’가 우리를 구원했다. 우리가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좋은 기사를 썼을 때, 독자는 기꺼이 자기 지갑을 열고 <셜록>의 친구 왓슨이 됐다. 포털에서 공짜로 기사를 보는 시대에 말이다. 

포털에 기사를 안 보낸 지 2개월,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외부 사람들이 많이 우려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잘 헤쳐나갈 거다. 모두가 비관할 때, 반전의 성과를 내는 건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별 기대 없던 <술꾼도시여자들>이 대형 홈런을 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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