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틈만 나면 땅, 농지, 지목 변경 등을 거론하며 기자를 유혹했다. 기자가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는 직접 화이트보드에 그림까지 그렸다.

“쉽게 말하면 ‘돌을 황금으로 만드는 일’이에요. 농지가 엄청 싸거든요. 서울의 돈 많은 사람에겐 거의 껌 값이죠. 근데 이걸 불법-편법으로 사서, 용지 변경한 뒤에…”

벼, 고구마가 자라는 농지가 부동산 투기를 만나면 황금이 된다는 구조의 그림. 아무리 봐도 역시 이해불가였다. A 씨는 기자 얼굴을 보고 실망스런 표정으로 화이트보드의 그림을 지웠다.

그 후 얼마 뒤, LH 사태와 대장동 사태가 연이어 터졌다. ‘50억 클럽‘이란 말이 세상에 돌았고, 누군가는 정말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았다.

그때서야 A 씨가 왜 그렇게 열심히 기자를 설득했는지 이해됐다. A는 남욱 변호사, 김만배 머니투데이 기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불법-편법으로 농지를 구입해 투기하는 세력을 고발해야 한다고 기자를 부추겼던 거다.

‘고위공무원의 수상한 땅따먹기’ 삽화 ⓒ오지원

2021년 12월 성탄절 즈음, A의 제안을 받아들여 농지 취재를 시작했다. 그동안 <셜록>이 해온 일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등이 <관보>에 공개한 재산공개 목록에서 농지를 소유한 고위공직자를 살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21년 공개한 <관보>의 쪽수는 약 6000장이 넘는다.

이 중 당사자나 그 가족이 농지(전, 답, 과수원)를 소유(상속 제외)한 고위공직자는 총 544명. 행정부처 장관부터 시도지사, 판사, 구-시-군의회 의장, 시도의회 의원, 교육감, 공사 사장까지 다양하다.

이상한 일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 즉 농지는 농사 지을 사람만 가질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헌법 정신은 농지법으로 이어진다.

“농지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국토 환경을 보전하는 데에 필요한 기반이며, 농업과 국민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한정된 귀중한 자원이다. 농지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 이용되어야 하며, 투기의 대상이 되면 안 된다.”

그 바쁘다는 장관, 시장, 도지사, 교육감, 판사가 언제 농사를 짓겠다는 거지?

이들이 소유한 농지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기자는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등기부등본을 발급 받았다. 우지민 수습기자도 이때부터 투입됐다.

우리는 등기부등본을 통해 상속, 증여, 매매 등 농지 소유 사유를 파악했다. ‘상속‘은 농지 소유 예외 사유로 인정돼 검증 대상에서 제외했다. 발급한 등기부등본만 약 5000개. 우지민 수습기자가 이 중 70%를 뗐다. 등기 발급 비용은 약 300만원이 들었다.

올해 1월 중순 취재비 청구를 위해 지출품위서를 작성해 박상규 <셜록> 대표 기자 책상에 올려놓았다. 박 대표의 넓은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기자를 올려다보는 그의 눈빛이 ‘도대체 이 취재는 언제 끝나는 거야?‘라고 묻는 듯했다. 취재 시작 약 1개월이 지나도록 기자는 책상에만 앉아 있었다. 박 대표가 뭔가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 박상규 기자 : “어… 잘 진행되고 있지? 몇 개 남았어?”
  • 김보경 기자 : “앞으로 등기부를 한 2000개 정도는 더 떼 봐야 하는데…”
  • 박상규 기자 : “……”

한숨 쉬는 박 대표, 그렇다고 할 말을 안 할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취재한 걸 다 버릴 수도 없었다.

  • 김보경 기자 : “앞으로 KTX도 많이 타야할 거 같아요.”
  • 박상규 기자 : “(한층 높아진 목소리) 왜?”
  • 김보경 기자 : “농지가 다 시골에 있잖아요. 부산, 밀양, 공주…”

취재를 열심히 하는 게 괜히 미안해지는 묘한 상황. 탐사보도가 대개 그렇듯이, 고위 공직자의 농지 소유 취재는 시간-돈-노력이 많이 들었다.

<관보>에서 모은 정보를 엑셀로 정리한 다음, 정보공개청구서를 개별로 작성했다. 인물 별로 청구사유와 리스트, 근거 법령 등을 일일이 맞춰 적었다. 이후 지자체 약 150여 곳에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

수십 장에 달하는 농지취득자격증명신청서와 농지경영계획서 등을 확보했다. 여기서 농지 취득 목적, 영농거리, 주재배 작목, 노동력 확보 방안 등을 파악했다.

<셜록>이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농지 취득 관련 서류. ⓒ셜록

서류 작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KTX를 타고 전국을 다녔다. 우 기자도 함께했다. 현장에선 차량을 렌트했다. 산 넘고, 물 건너 고위공무원들의 농지를 확인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농민의 말이 생각난다.

“매실 따먹겠다고 300평 땅을 4억 주고 샀다고? (웃음) 불법 걸릴까봐 그냥 매실 나무 심어놓은 거지!”

농부는 저 높은 법대 위에 앉아 농지를 구입해 매실나무를 심어 놓은 판사를 웃음으로 비판했다. 법과 달리 농지가 투기 대상으로 전락하는 건, 특히 고위공무원의 먹이감이 된 지는 오래다.

고위공직자들이 소유한 농지를 현장실사하러 간 김보경 <셜록> 기자 ⓒ셜록

연례행사처럼 등장하는 국회의원들의 농지법 위반 사건부터 LH 직원들의 내부 정보를 이용한 농지 투기 의혹까지. 이젠 흔한 투기 수법이 됐다.

농지 투기 욕망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부동산원 전국지가변동률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논·밭 가격 상승률은 평균 27.2%로 아파트값 상승률(24.9%)보다 높다. 이는 농지를 활용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등 투기수요가 상당하다는 걸 방증한다.

현재 남은 농지 면적과 이용 현황은 더 참담하다. 2021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국 경지면적은 154만ha로 1995년 198만ha에 비해 45만ha 감소했다. 전체 경지면적 중 농업인이 소유한 농지소유 면적은 2015년 기준 56.2%로 20년 전(67%)에 비해 약 11%p 줄었다.

반면, 임대차 농지 비율은 1960년 13.5%에서 2020년 48.7%로 증가했다. 과거에 비해 농지 면적은 줄고, 비농업인 소유와 임차농은 늘었다. 가격도 올랐다. 즉, 농사용으로 쓰여야 하는 농지가 비농업인들에 의해 제 역할을 못하는 실정이다.

고위공직자들이 소유한 농지를 현장실사하러 간 우지민 <셜록> 기자 ⓒ셜록

취재를 시작한 지 약 3개월, 지금부터 그 결과를 <셜록>의 친구 왓슨과 독자 여러분에게 공개한다.

첫 번째 보도 대상은 ‘농지를 소유한 판사님‘이다.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21년 3월 25일 공개한 법관 144명의 공직자 재산공개목록부터 살폈다. 이 중 당사자나 그 가족이 농지를 소유한 법관은 총 26명이다.

한 달 동안 전국 각지로 편도 997km를 오가며, 숨겨진 사실의 조각을 모았다. 농지 취득 관련 서류에 기재된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경기도 여주, 충남 공주, 부산 금정구, 경남 밀양 등의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마을 주민들을 만나 자경 여부도 확인했다. 당사자들을 직접 찾아가, 반론도 들었다.

어떤 판사님은 반론으로 ‘매실 이야기‘를 길게 전했다. 보약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셜록>은 보도에만 그치지 않을 생각이다. 발굴한 사례에서 불법이 보이면, 형사고발 등 할 수 있는 조치를 할 예정이다. 기획 목표는 ‘전국 단위의 농지 전수조사 시행‘이다. 현재 국내 농지 활용 수준에선 비농업인의 농지이용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관할 관청이 이를 추진할 때까지 <셜록>은 추적 보도할 계획이다.

‘돌을 황금으로 만들 수 있다’는 농지 투기꾼들의 욕망이 길을 잃게 만들어야 한다. <셜록>의 친구 왓슨, 독자 여러분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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