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을 만들러 우체국에 처음 간 날은 설렜다.
사서함을 열어본 첫날은 초조했다.
사서함을 열어본 셋째 날은 뭉클했다.
<셜록>은 ‘미성년 논문’ 검증과 후속 조치에 미온적인 교육부에 대한 공익감사를 추진한다고 지난 3월 21일 밝혔다.
공익감사 청구를 위해선 성인 300명 이상의 자필 서명이 필요하다. 이 일을 <셜록> 친구 왓슨, 독자와 함께 하기로 했다. 먼저 우체국 사서함부터 개설해야 했다. 왓슨, 독자에게 개별 청구서를 받기 위해서 말이다.
회사와 가까운 우체국 사서함은 이미 다 찬 상태였다. 여러 우체국에 전화를 돌려 서울동대문우체국 사서함 자리를 겨우 찾았다. 법인인감증명서, 위임장, 사업자등록증사본 등을 들고 3월 14일 서울동대문우체국으로 향했다. <셜록>에게 배정된 사서함은 제19호.
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려는 내게 우체국 직원이 물었다.
“월 30건 이상 우편물 오죠? 그렇지 않으면 사서함 계약이 해지됩니다.”
내 목소리는 작아졌다.
“아.. 네 그럴 거예요. 300장을 모을 거거든요..”
설렌 마음의 절반에 걱정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3월 24일, 공익감사 추진 소식을 알린 지 3일이 흘렀다. 출근 전, 우체국을 들러 사서함을 처음 확인해보기로 했다. 1층을 지나 사서함이 있는 2층으로 향했다. 2층 바닥에 붙어 있는 ‘스마일’ 표시가 나를 반겼다. 과연 몇 장이나 왔을까. 열쇠로 사서함 문을 열었다.
“헉..”
우편물은 한 개가 전부였다. 사무실로 향하는 길, 다리에 힘이 다 풀렸다.
3월 29일 화요일, 공익감사 청구 소식을 알린 지 일주일이 되는 날. 다시 사서함을 찾았다. 이번엔 우편물 두 개가 전부였다.
‘큰일이다…’
우편물 위에 놓인 ‘보관 등기우편물 찾아가세요‘ 라는 안내 표찰이 희망이었다. 이걸 들고 민원실로 향했다.
“왜 이제 오셨어요. 등기 우편이 많이 와 있었는데.. 그동안 안 오셔서 안내 표찰을 넣어 놨어요.”
열다섯 개의 우편물을 받았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여전히 초조했다.
공익감사 청구서를 PC에서 내려받아 프린트하고, 자필로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 생년월일, 직업, 주소를 기입하고 서명을 한 후, <셜록> 사서함에 우편으로 부쳐야 하는 이 번거로운 일을 과연 300명이 할 수 있을까?
공익감사 추진 소식을 알린 지 2주가 지났다. 4월 4일 세 번째로 사서함을 찾았다. 18개의 우편물을 받아 왔다. 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번엔 봉투가 제법 묵직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우편물을 뜯어보니 공익감사 청구서가 쏟아졌다. 청구서를 프린트하고 작성한 다음, 우체국까지 가서 자기 돈 들여 우편을 보내는, 그 번거로운 일을 완수하는 왓슨과 독자의 모습이 그려졌다.
18살 학생부터 67세 어르신까지, 공익감사 청구서를 보내온 왓슨과 독자의 연령, 직업은 다양했다. 서울, 경기, 대구, 부산, 경북, 경남, 전북, 충북 등 전국에서 마음을 보탰다. 교육부 공익감사 청구를 준비하며 새삼 이런 걸 느낀다.
‘우리가 이렇게 연결돼 있구나.’
부부가 함께 보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자녀와 함께 뜻을 전했다. 직장 동료들의 청구서를 모아서 보낸 분도 있다. 대학교 교직원, 영화 연출가, 교사, 공무원, 대학원생, 대학생, 연구원, 시민단체 활동가, 연극배우, 법무사, 주부, 작가, 정책연구자, 임상병리사, 방송작가, 수의사, 사회복지사, 회사원, 영남공고 교사 41명 등 다양한 왓슨과 독자가 참여했다.
일반우편으로 청구서를 보낸 어느 독자는 “얼마 만에 보내는 우편인지 모른다“고 전했다. 전라북도 익산에 사는 한 왓슨은 청구서 위에 포스트잇으로 짧은 편지를 썼다.
“안녕하세요 황정빈 기자님. 기자님의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있는 왓슨입니다. 제가 학교에 남아있다 보니 주변 동기들과 후배들에게 부탁해서 10여장 가량을 동의를 얻고 자필 서명을 받았습니다. 300장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뒤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종이 한 장, 포스트잇에 적힌 메시지가 이렇게 묵직하다니. 4월 4일 기준, 공익감사 청구서 116장을 모았다. 3분의1을 채운 셈이다. 약 200장을 더 채워야 하지만 목표를 달성할 거라 믿는다.
종이 한 장에 묵묵한 응원을 담아 보내는 사람들 덕에 힘이 난다.
<셜록> 사서함 주소
(02586) 신설동 117-23 서울동대문우체국 사서함 제19호 진실탐사그룹 셜록